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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경계가 필요해

아하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 박현이 부장이

이야기해주는 ‘불편해도 알아야 할 가정 안 성교육’
등록 2019-07-31 11:27 수정 2020-05-02 04:29

형제자매 부모형제는 특별한 인간관계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서로 편하게 옷을 벗고 함께 씻기도 하고 만지기도 하며 살아간다. 이르면 초등학교 3학년 늦으면 중학생 때부터, 평균적으론 초등학교 4학년 무렵부터 변화의 시기가 찾아온다. 아빠와 딸이, 엄마와 아들이, 오빠와 동생이 어려서부터 허물없이 반복해왔던 자연스러운 행동인데 어느 순간 ‘불편한 느낌’이 스며든다.

“싫다” 했을 때 존중받은 경험이 쌓이도록

아하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 박현이 부장(사진)은 이 시기가 “사적 영역에 대한 경계 존중 등 에티켓을 교육할 적기”라고 조언한다. 남매를 키우는 가정만의 문제가 아니다. 형제간, 자매간, 부모자식 간에도 ‘경계’와 ‘성적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도록 교육해야 한다. 특히 어린 시절 타인에게 가벼운 추행을 하는 아이들의 경우, 반대로 성적 피해를 입었거나 성적으로 유해한 매체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있다. 교육과 상담으로 성폭력 개념 이해와 피해자 처지에서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줘야 한다.

사춘기 이전 유아 시기부터 가정에서 “스킨십은 상대의 동의와 합의하에 해야 하며, 합의 없는 스킨십은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라는 점이 몸에 배도록 할 필요가 있다. 아기들에게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가서 뽀뽀해라, 안아줘라” 요구하는 문화가 있다. 어른은 아이를 귀여워하는 행동의 표현이지만 아이는 불편할 수 있다. 아이가 싫어하는 내색을 보이면 부모가 나서서 “네가 싫으면 안 해도 된다”고 얘기해줘야 한다. 평소 “싫다”라고 했을 때 존중받은 경험이 쌓여야만 성적인 상황에서도 거부 의사를 표현할 수 있다.

사춘기에는 몸이나 공간 등 사적 영역에 대한 존중을 충분히 경험해야 한다. 자기가 존중받아봐야 다른 사람의 사적 영역을 존중할 수 있다. 단순히 가족끼리 서로 맨몸을 보이지 않거나 과도하게 신체를 접촉하지 않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부모가 노크하고 아이 방문을 여는 등 아이의 영역을 인정하고 가정 안에서부터 ‘경계’를 세워야 할 시기다. 단순한 경험이 쌓여 결국엔 경계나 성적 자기결정권과도 이어진다.

가족 안에서 노출이나 스킨십 정도, 혼욕은 ‘가족문화’다. 서로 포옹하고 입 맞추는 스킨십은 가족이 친밀감과 애착을 표현하는 중요한 소통 수단이기도 하다. 가정마다 분위기와 친밀감이 달라서 천편일률적으로 언제부터 어디까지 조심해야 할지 규정할 수는 없다. 그렇더라도 가족 사이에 해서는 안 되는 스킨십이 있다. 가령 아이들이 가족과 진한 키스를 해보고 싶다고 할 때가 있다. 연령대에 맞지 않는 영상이나 게임에 노출돼 호기심이 생길 수 있다. 박 부장은 “키스는 나중에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거지, 가족 간에 하면 안 된다는 점을 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목욕·스킨십·잠자리 ‘습관’ 변화를

성폭력은 ‘진화’하는 경향이 있다. 몰래 훔쳐보거나 살짝 만져보고, 팔다리를 만지다가 가슴을 만지고, 성기를 만지다가 성폭행을 한다. 박 부장은 성폭력의 진화 단계를 설명하면서 “가족 안에서 경계 교육을 하고, 아이가 부적절한 행동을 하면 그때그때 정확하게 ‘그런 행동은 안 된다’고 지적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또 “자녀가 누구에게든 불편한 신체 접촉을 당했을 경우 즉시 부모와 교사한테 알려야 하고, 그래야 불편한 접촉이 진전되지 않는다는 점을 가르쳐야 한다”고 덧붙였다. 말로만 가르친다고 되는 일은 아니다. 부모 자식 간 친밀감과 신뢰를 바탕으로, 아이가 생각과 감정을 편안하게 표현하는 연습을 충분히 했을 때 가능한 일이다.

사춘기 무렵부터는 이성 부모와 남매가 함께 목욕했던 습관을 바꿀 필요가 있다. 저학년에서 고학년으로 넘어가는 시기면 아이 혼자 충분히 씻을 수 있다. 굳이 이성 부모가 도와주지 않아도 된다. 씻은 뒤에는 적당히 옷을 갖춰입고 욕실 밖으로 나오는 상호 존중과 경계의 에티켓이 필요하다는 점도 알려줘야 한다. 물론 사춘기 전이라도 가족 사이에 지켜야 할 경계는 있다. 아이가 목욕 중 호기심으로 부모의 성기를 만지거나 장난치면 “성기는 소중하고,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함부로 만지고 장난치면 안 된다”는 것을 인식하도록 해야 한다.

자녀가 사춘기에 접어들면 잠자리도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이성 자녀들을 함께 재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부모와 아이가 함께 잘 때도 마찬가지다. 부부가 나란히 눕고, 아빠 옆에 아들, 엄마 옆에 딸이 자는 정도의 경계는 필요하다. 특히 남자아이는 일찍부터 사람을 성적 대상화하고 성적 호기심을 부추기는 자극적인 문화에 노출되는 일이 많다. 범죄인지도 모르고 유해 콘텐츠에서 본 대로 가까운 가족을 상대로 성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 또 잠결에 우연히 가족의 몸을 만졌는데 기분이 좋아지고, 그러다 점점 만지는 정도가 심각해지는 경우도 있다.

박 부장은 “가정교육만큼이나 학교·교육청·교육부 차원의 성교육, 미디어교육이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아이들이 너무 일찍 무분별하게 인터넷, 게임, 미디어에 노출되는 탓에 부모의 노력만으론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서울에만 아하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 같은 청소년성문화센터가 8곳 있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교육을 신청할 수도 있고, 학교로 단체 신청을 할 수도 있다. 성교육 기관과 부모, 교육기관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우리 아이들이 성적 상황에 부닥칠 때 성평등 의식을 갖고 현명하게 행동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야 한다는 지적이다.

‘가해자 되지 않기’와 ‘목격자로서 역할 하기’

박 부장은 우리 사회가 좀더 근본적으로 지향해야 할 성교육 목표도 언급했다. “과거 성폭력 예방 교육은 ‘피해자 되지 않기’에 치중했지만 성폭력은 피해자가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가해자 되지 않기’ 교육으로 바뀌었지만 짧은 교육으로 가해자를 바꾸기는 쉽지 않다. 일상적인 성교육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성폭력이든 학교폭력이든 차별과 폭력 상황을 목격했을 때 ‘목격자로서 역할 하기’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인간한테는 양심이 있다. 양심에 반하는 상황을 보았을 때 직접 개입하고 역할을 하면 자존감이 향상된다. 현명한 시민에 걸맞은 역할을 하는 긍정적 경험이 쌓이면 그 자체로 (가해자가 되지 않을 수 있는) 인권 감수성이 높아진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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