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전 6학년이고 오빤 고1인데 엄마 아빤 볼일 보러 가시고 하셔서 오빠랑 저랑 안방에서 자고 있었어요 별로 신경 안 썼는데 갑자기 오빠가 자기 거기를 제 엉덩이에 비비면서 전 무서워서 암 말도 못하고 자는 척했어요 사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수치심 들고 너무 무서워요. 또 오빠가 갑자기 키스를 하면서 이건 아니다 싶어서 나중에 깬 척했어요 (중략) 가만히 있으려고 하면 너무 힘들고 그렇다 해도 일 벌이면 우리 가족이 욕먹을 것 같아서 진짜 어떻게 해야 할까요ㅠㅜ”(네이버 지식게시판 ‘오빠에게 성폭행당했어요’ 질문 중)
친족 강간은 7년 이상 유기징역포털사이트 게시판에는 주기적으로 “오빠한테 성폭행을 당했다”는 글이 올라온다. “사촌오빠한테 성폭행을 당했다”는 글은 더 많다. 대부분 “어떻게 하면 좋으냐”는 질문과 하소연으로 이어진다. ‘법무법인 감사합니다’의 송명호 변호사는 이런 질문들에 상세하게 댓글을 달아주곤 한다. 송 변호사는 지난 7월1일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피해자 아이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형사고소를 할 수 있는지 여부”라며 “너무 당연한 건데 나이 어린 피해자들은 고소가 가능하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어 놀랄 때가 많다”고 설명했다.
과거 형법은 강간죄 등을 친고죄로 규정했으나 2013년 친고죄 규정이 폐지됐다. 오빠 성폭력 역시 피해자 고소가 없어도 수사 및 처벌이 가능하다. 또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신고의무제 시행으로,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과 시설 또는 단체 관계자는 미성년자 성범죄 발생 사실을 아는 즉시 수사기관에 신고해야 한다.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에서는 친족(4촌 이내 혈족·인척과 동거하는 친족) 관계에 의한 강간의 경우 7년 이상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돼 있다. 성폭력처벌법상 피해자가 13살 미만일 경우 무기징역 또는 10년 이상 징역형이 가능하다.
일반 형사사건의 공소시효는 사형을 받을 수 있는 강력범죄는 25년, 무기형을 선고받을 수 있는 사건은 15년, 10년 이상 징역형이 가능한 사건은 10년, 5년 미만 징역이나 벌금형은 5년이다. 성범죄의 경우 ‘과학적이고 법리적인 증거’가 존재하면 공소시효를 10년 연장(성폭력처벌법에 규정)할 수 있다. 특히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서는 13살 미만 미성년자에 대한 성폭력 범죄의 공소시효를 없애, 성인이 된 뒤 가해자를 형사처벌할 수도 있다.
다만 해당 법이 2011년부터 시행된 탓에 그 이전 사건은 소급 적용되지 않는다. 피해자가 만 13살 이상일 때도 적용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피해자 인생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는 친족 성폭력은 피해 시점과 피해자 나이와 상관없이 공소시효를 폐지해야 한다는 문제제기가 이뤄지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6월24일 ‘친족 성범죄 공소시효 폐지를 청원합니다!’ 글이 올라왔다. 청원 마감일인 7월24일까지 4512명이 참여했다.
아빠보다 오빠 성폭력 신고율 훨씬 낮아현행법에서 ‘오빠 성폭력’을 처벌할 길이 열려 있지만, 실제로 가해자인 오빠가 신고·처벌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2018년 9월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법무부로부터 받아 분석한 통계를 보면, 친족 성범죄는 2010년 369건, 2011년 385건, 2012년 466건, 2013년 504건, 2014년 564건, 2015년 520건, 2016년 500건, 2017년 535건으로 나타났다. 2018년 한국성폭력상담소 상담통계를 보면, 전체 상담 건수 1189건 중에 친족 성폭력이 130건(11%)을 차지했다. 피해 연령별로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를 살펴보면, 아동·청소년이 친족에 의한 성폭력 피해 비율이 특히 높았다. 청소년은 친족에 의한 성폭력 피해 건수가 27건(20.2%)으로 학교 관계자에 의한 피해(33건·24.3%) 다음으로 많았다. 어린이와 유아는 그 피해가 각각 47건(56.6%), 13건(61.9%)으로 압도적으로 높았다. 친족 성범죄 신고율이 5% 미만으로 추정되는 수준임을 고려하면 실제 친족 성폭력 건수와 전체 성범죄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이보다 훨씬 높을 것이다.
친족 성폭력 가운데 가해자가 오빠인 경우는 따로 분류조차 없을 정도로 통계적으로 ‘미미’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암수율’(범죄가 발생했으나 수사기관에 인지되지 않거나, 용의자 신원 파악이 안 돼 공식 범죄통계에 집계되지 않는 비율)이 높아서 통계가 없을 뿐, 실제 오빠 성폭력 자체는 결코 적지 않다고 지적한다. 친족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쉼터나 해바라기센터 관계자들은 “아빠보다 오빠 성폭력 신고율이 훨씬 낮다”고 입을 모은다.
박미혜 서울경찰청 여성대상범죄특별수사팀장은 2014년 2월부터 성폭력 수사를 전담해온 베테랑이다. 박 팀장은 6월26일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부모가 나서서 오빠 성폭력을 신고한 사례는 한 건도 없었다”며 일반 성폭력과 오빠 성폭력의 극명한 차이를 설명했다. 일반 성폭력 사건에서는 수사기관이 성폭력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경우에도 부모들이 “내 딸은 피해자”라고 우길 때가 많다. 반면 오빠 성폭력 사건에선 “부모가 다 알면서도 입 닫고 귀 닫고 눈감아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법으로 열어놓은 가해자 처벌과 피해자 지원의 길을 부모가 닫는 셈이다.
친권자 부모가 경찰 접근 막기도가해자와 피해자가 학생일 경우 부모가 딸에게 “오빠 대학 갈 때까지만 참아달라”며 신고를 막거나, 반대로 “딸이 학원 가고 대학 가야 한다”며 쉼터 분리에 반대한다고 했다. 부모의 도움 없이 살아가기가 힘들다는 걸 잘 아는 피해자들은 결국 진술 포기를 선택한다. 친고죄 폐지로 피해자의 신고 없이도 수사는 가능하지만, 물증이 없는 상황에서 피해자가 진술을 거부하면 수사 시작 자체가 사실상 어렵다.
교사와 의사 등 제3자가 신고했을 때, 친권자인 부모가 강경하게 피해자에 대한 경찰의 접근을 막기도 한다. 박 팀장은 “법적으로 부모 허락 없이 조사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부모가 가해자가 아닌 이상 보호자 뜻에 반해 경찰이 피해자를 조사하거나, 가정에서 분리시키거나, 병원에 입원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수사의 한계를 설명했다.
오빠 성폭력 대부분이 수사 전 단계에서 묻히지만, 일단 수사가 시작되면 유죄 비율은 높다. 통상 ‘물증’이 없는 오빠 성폭력에서 가장 중요한 건 피해자 진술이다. 박 팀장은 “피해자 진술이 유·무죄 판단의 약 70% 정도를 차지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수년간 피해가 반복되다보면, 피해자가 정확한 일시와 장소를 특정하지 못할 수는 있지만 피해 행위 자체는 잊어버릴 수 없는 성폭력 사건의 특징 때문이다. 박 팀장은 “피해자가 구체적이고 일관되게 진술하고, 자해 등 병원치료 기록이나 심리상담 기록 등이 있으면 무죄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부모가 반대하는 상황에서 신고의무제와 가해자 처벌이 피해자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접근하는 편이다. 일단 가해자가 가족인 탓에 피해자 쪽에서 처벌보다는 진심 어린 사과와 재발 방지를 원하는 경우가 있다. 또 수사기관에 신고가 들어가면 피해자의 원가정 복귀가 사실상 힘들어진다. 피해자가 가족으로부터 분리될 수 있다는 ‘유기공포’를 극복할 때까지 신고를 기다려줄 필요도 있다. 1심 판결 때까지 통상 3~6개월이 걸리는 법적 절차 기간에 피해자가 잊고 싶은 기억을 떠올리면서 받는 스트레스도 많다.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오빠의 변호인이나 부모에게 받는 심리적 압박감도 만만치 않다. 수사 개시 이후 이 모든 과정을 두려워한 피해자가 신고를 피하려 상담받는 것조차 회피하면, 오히려 피해자를 더욱 고립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한 피해자 쉼터의 ㄱ원장은 말했다. “아이들은 신고까지 생각 안 하고 그냥 힘들어서 말한 것뿐인데, 피해자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신고의무제 준수만을 생각하고 무턱대고 신고부터 하면 결과적으로 가해자 처벌이 더 힘들어질 수 있어요. 아버지나 오빠 등 직계가족의 성폭력만큼은 ‘당구장 표시(※, 참고·유의사항)’가 필요한 것 같아요. 전문기관과 의논한 뒤 신고 시기를 결정하는 등 섬세한 접근이 필요해요. 또 처음부터 가해자 처벌을 언급하면 피해자가 ‘내 가족을 처벌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뒤로 물러날 수도 있어요. 먼저 ‘오빠도 잘못에 책임을 져야 하고 무엇을 잘못했는지 교육받아야 한다’는 점을 설득하면 피해자도 용기를 내는 경우가 많아요.”
잘 갖춰진 피해자 지원과 보호
“자립 때까지 지원해줘요”
박미혜 서울경찰청 여성대상범죄특별수사팀장도, 장형윤 경기남부해바라기센터(거점) 부소장도, 친족 성폭력 피해자 보호 쉼터 나는봄의 이영아 소장도 말한다. 사실 “한국의 성폭력 피해자 지원 제도 자체는 꽤 잘 만들어져 있다”고. 더러 제도를 운영하는 사람의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성폭력 피해자가 도움을 요청하면 치료와 법률, 주거와 학업 지원 등이 체계적으로 이뤄진다는 설명이다. 오빠 성폭력 피해자 역시 일반 성폭력 피해자들처럼 지원받을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친족 성폭력 특별보호 쉼터에서 성인이 될 때까지, 비슷한 아픔을 가진 또래들과 함께 보호받을 수도 있다.
상담과 신고 방법은 여러 가지다. 학교 담임·상담 선생님, 교육·의료기관 등 아동·청소년 보호 의무가 있는 기관과 시설 관계자 누구에게라도 털어놓으면, 의무적으로 수사기관에 신고해준다. 마땅히 얘기할 어른이 없다면 전화상담을 해주는 곳도 많다. △여성긴급전화 국번 없이 1366 △한국성폭력상담소 02-338-5801~2 △한국여성민우회 02-335-1858 △한국여성의전화 02-2263-6465 △경찰 신고 112 및 117 등 어디에나 상담할 수 있다. 포털사이트에 ‘성폭력 상담’을 검색하면 관련 기관 전화번호가 뜬다. 일단 성폭력 사건 발생이 접수되면 ‘상담-의료 지원-수사 지원-법률 지원-신변 보호-경제적 지원-보호시설 입소-학업 지원’까지 다양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표 참조).
충분하지는 않으나, 성인이 된 뒤에도 시설별로 전문대 졸~만 24살까지 자립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친족 성폭력 피해자를 보호하는 한 쉼터의 ㄱ원장은 “친족 피해자는 친족이라는 가장 중요한 ‘사회적 자원’이 끊긴 상태이기 때문에 단순한 미성년자 보호를 넘어 스스로 경제적 능력을 취득해 자립할 때까지 돕고 있다”며 “자립 지원금 500만원 이외에 LH(한국토지주택공사)와 국토교통부, 여성가족부 지원으로 자립지원공동생활시설 등도 지원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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