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은 세 분류로 나눌 수 있다.
재학생과 졸업생, 그리고 중퇴생. 대개 재학생과 졸업생은 정상으로, 중퇴생은 비정상으로 여기기 쉽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학교를 다니고 싶어도 계속 다닐 수 없는 학생들도 있다. 줌머 난민 2세 룸비니 세주파 차크마(17)가 그랬다.
앞서 두 기사에서 무사히 한국 정규 고등교육 과정을 마친 이주니(19), 씩씩하게 3학년으로 고등학교를 다니는 강설아(17)의 생활을 따라가봤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세주파의 이야기를 들여다본다. 세주파는 지난해 10월 양곡고등학교를 그만두고 학교 밖 청소년이 됐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잠도 제대로 안 자고 공부해도</font></font>
설아와 동갑내기 단짝인 세주파는 방글라데시 치타공에서도 산악지대에 가까운 랑가마티에서 태어났다. 설아와 마찬가지로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방글라데시를 떠나 인도 콜카타에서 자랐다.
아빠는 세주파가 유치원에 다닐 나이가 되자 “외국 출장 다녀올게”라며 훌쩍 외국으로 떠났다. 몇 년 뒤 엄마도 아빠를 따라나섰다. 세주파는 기숙사 학교에서 생활했다. 인도에서 다니던 중학교를 그만두고 2013년 한국에 올 때까지 아빠가 외국에서 일한다는 사실만 알았지 그곳이 한국인지는 몰랐다. 아빠가 한국에서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는 것은 더더욱 몰랐다. 콜카타에서 세주파는 영어로 공부하는 유치원과 국제학교를 다녔다.
예닐곱 살 때부터 전세계 국가와 수도 이름을 모두 외울 정도로 총명했던 세주파는 학업 성적도 뛰어났다. 전교에서 1, 2등을 놓친 적이 없었다. 특히 영어와 역사 과목에 자신 있었다. 2012년 겨울방학 때 쯤 델리에 있는 대학교를 다니던 사촌언니가 세주파를 데리러 왔다. 며칠 뒤 아빠가 “한국에 함께 가자”며 델리로 왔다. 세주파는 콜카타의 친구들을 다시 볼 수 없을 거라고 직감했다.
부모를 따라 김포로 온 세주파는 자신과 같은 다문화 학생들이 일반 학교에 가기 전 한국 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인천 한누리학교에 갔다. 6개월 정도 적응 기간을 거친 뒤 양곡중학교에 입학했다.
공부에 자신 있던 세주파는 중학교 3학년까지 정말 열심히 했다. 밤에 잠도 제대로 안 자고 공부한 날은 왈칵 코피를 쏟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생각만큼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았다. “한번은 시험 치고 80점 정도 나올 거라고 기대했는데 40점을 받고 너무 속상해서 온종일 펑펑 울었다. 한국 친구들보다 몇 배로 열심히 공부하고 시간을 들여도 도무지 성적이 나오지 않아 견디기 힘들었다.”
항상 밝고 씩씩했던 세주파는 학업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 조금씩 어두워졌다.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이 많아졌고, 성적은 항상 꼴찌를 지켰다. 학교에 가는 날보다 안 가는 날이 더 많았던 고등학교 1학년 때, 인도로부터 슬픈 소식이 날아들었다.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낸 사촌오빠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세주파는 더욱 무기력해졌고 멍하니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학교에서 정신과 상담을 권했다. 병원을 찾은 세주파는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세주파는 인터뷰에서 “밝은 성격이라고 생각하고 씩씩하게 살아왔는데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점점 우울하고 불안해졌다. 돌이켜보면 슬퍼도 슬프다고 표현하지 않고 내 감정을 적절하게 표현하지 못한 것이 문제였던 것 같다”고 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1년으로 부족하면 다시 도전하면 되지”</font></font>
세주파 같은 난민 아동·청소년은 우울·불안에 취약하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국내 난민아동 한국사회 적응 실태조사’(이하 난민아동 조사) 보고서를 보면 난민 아동·청소년의 우울·불안 점수는 3점 만점에 1.48점으로 한국 아동·청소년(2013년 아동종합실태조사)의 1.25점보다 높았다. 고등학교 2학년이 돼서도 학교를 다니는 둥 마는 둥 했던 세주파는 결국 지난해 10월 학교를 그만뒀다. 특히 외국에서 태어나 한국으로 이주한 난민 아동에게 한국 정규 교육과정은 높은 벽이다. 난민 아동 조사 결과, 초등학교 고학년이 돼야 할 11~13살 어린이 중 38.1%가 초등학교 저학년에 다녔고, 중학교에 진학해야 할 14~18살 청소년이 초등학교 고학년에 다니는 비율도 10%인 것으로 파악됐다.
어릴 때부터 총명했던 세주파가 한국에서 열심히 공부해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당당하게 좋은 직장에서 일하리라고 믿었던 부모는 지금 딸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기도한다. 김 공장에 다니는 엄마는 세주파와 한국어로 이야기할 정도로 한국에 익숙해졌지만, 대기업 하청공장에 다니는 아빠는 한국에 온 지 11년이 됐지만 좀처럼 한국어 실력이 늘지 않아 차크마어를 잘 못하는 세주파와 종종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다. 돈 벌기 위해 일하다보니 한국어를 공부할 시간이 부족했다.
지난 4월에는 가족이 휴가를 내고 친척을 만나러 프랑스에 다녀왔다. 세주파 부모의 고향은 치타공 카그라차리에 있는 디기날라다. 디기날라에선 1986년 6월 방글라데시 군과 벵골인들의 습격을 피해 줌머 소년 72명이 인도를 거쳐 프랑스로 망명했다. 현재 프랑스 파리와 리옹 등지에는 세주파의 친척을 포함해 줌머인 300여 명이 살고 있다.
더 넓은 세상을 보고 한국으로 돌아온 세주파는 의욕을 되찾았다. “다시 공부해서 올해 고졸 검정고시를 보고 대학 입학에 도전할 생각이다. 1년으로 시간이 부족하면 내년에 다시 도전하면 된다.” 눈빛을 반짝이며 말하는 세주파는 우울증도 거의 나았다고 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선입견과 경쟁적 교육체계는 개선해야</font></font>
세주파는 “우리 모두 같은 사람인데 꼭 먼저 어디서 왔는지 물어보는 건 불편하다”며 한국 사람들이 여전히 동남아시아 사람을 선입견 갖고 대하는 것과 지나치게 경쟁적인 교육체계는 앞으로 개선해야 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세주파에게 이름을 바꿀 생각이 있는지 물었다. “내 이름은 ‘월요일에 태어난 손과 발’이란 뜻인데 너무 예쁘지 않나? 한국어로 이름을 바꾸어도 그대로 ‘세주파’라고 쓰겠다.” 인터뷰 끝에 세주파는 학교 밖 청소년들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잘해보자. 우린 할 수 있어.”
<font color="#008ABD">글</font> 이재호 기자 ph@hani.co.kr<font color="#008ABD">사진</font>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font color="#008ABD">이 기존 구독제를 넘어 후원제를 시작합니다. 은 1994년 창간 이래 25년 동안 성역 없는 이슈 파이팅, 독보적인 심층 보도로 퀄리티 저널리즘의 역사를 쌓아왔습니다. 현실이 아니라 진실에 영합하는 언론이 존속하기 위해서는 투명하면서 정의롭고 독립적인 수익이 필요합니다. 그게 바로 의 가치를 아는 여러분의 조건 없는 직접 후원입니다. 정의와 진실을 지지하는 방법, 의 미래에 투자해주세요.
*아래 '후원 하기' 링크를 누르시면 후원 방법과 절차를 알 수 있습니다.
후원 하기 ▶<font size="4"> <font color="#C21A1A">http://naver.me/xKGU4rkW</font></font>
문의 한겨레 출판마케팅부 02-710-0543
</font>
전화신청▶ 1566-9595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font color="#C21A1A">http://bit.ly/1HZ0DmD</font>
카톡 선물하기▶ <font color="#C21A1A">http://bit.ly/1UELpok</font>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미 대선 윤곽 6일 낮 나올 수도…끝까지 ‘우위 없는’ 초접전
숙명여대 교수들도 “윤, 특검 수용 안 할 거면 하야하라” 시국선언 [전문]
황룡사 터에 멀쩡한 접시 3장 첩첩이…1300년 만에 세상 밖으로
회견 이틀 전 “개혁 완수” 고수한 윤...김건희 문제, 인적 쇄신 어디까지
미 대선, 펜실베이니아주 9천표 실수로 ‘무효 위기’
SNL, 대통령 풍자는 잘해도…하니 흉내로 뭇매 맞는 이유
“명태균씨 억울한 부분 있어 무료 변론 맡았다”
이런 감나무 가로수 봤어?…영동, 1만9천 그루에 수백만개 주렁
오빠가 무식해서…[한겨레 그림판]
[영상] “사모, 윤상현에 전화” “미륵보살”...민주, 명태균 녹취 추가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