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임신중절을 임신 몇 주까지 허용할 것인가?
이제 새로운 질문이 시작됐다. 인공임신중절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의 2라운드다. 무대는 헌법재판소에서 국회로 바뀌었다. 헌법재판소가 4월11일 인공임신중절을 처벌하는 형법 조항에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국회는 2020년 12월31일까지 새로운 법을 만들고 통과시켜야 한다. 국회 논의 과정에 많은 쟁점이 있겠지만, 인공임신중절 허용 가능 기간을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벌써 정치권과 시민단체에서 서로 다른 의견을 내고 있다.
22주, 자기결정권 행사에 충분한 시간헌법재판소 판결에는 임신 14주와 22주가 주요 변곡점으로 언급됐다. 먼저 22주는 인공임신중절이 가능한 ‘최대치’로 나와 있다. 재판관 4명(유남석·서기석·이선애·이영진)은 헌법 불합치 의견에서 임신 22주를 “태아가 모체를 떠난 상태에서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시점”이라고 판단했다. 세계보건기구(WHO)와 산부인과 학계에서 낸 의견이 그 근거다. 22주부터는 태아가 인간에 훨씬 근접한 상태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으므로 인공임신중절을 기존처럼 극히 예외적으로만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헌법 불합치 의견을 낸 재판관들은 또 임신 22주면 여성이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라고 봤다. 구체적으로 “임신 사실을 인지하고, 자신을 둘러싼 사회적·경제적 상황 및 그 변경 가능 여부를 파악하며, 국가의 임신·출산·육아 지원 정책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고, 주변의 상담과 조언을 얻어 숙고한 끝에, 만약 낙태하겠다고 결정한 경우 낙태 수술을 할 수 있는 병원을 찾아 검사를 거쳐 실제로 수술을 완료하기까지 필요한 기간”으로서 충분하다는 것이다.
‘최대 임신 22주까지 인공임신중절 허용’은 단순위헌 의견을 낸 재판관 3명(이석태·이은애·김기영)도 동의했다. 앞으로 국회에서 만들어질 법도 인공임신중절 허용 범위는 임신 22주 이내로 삼을 것으로 보인다. 재판관들은 여기에 ‘임신 14주’를 변곡점으로 추가했다. 임신 14주 이전까지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기 위해 본인 동의만 있다면 제한 없이 허용하고, 그 뒤부터는 제한적으로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임신 14주를 기준으로 삼은 주요 이유는 ‘임신부의 안전’이다. 재판관 3명은 국제산부인과학회(FIGO)의 ‘재생산 및 여성 건강의 윤리적 측면의 연구를 위한 위원회’가 밝힌 내용을 인용해 “임신 제1삼분기(0~14주)에 적절하게 수행된 비의료적 이유에 의한 낙태는 만삭분만보다도 안전하다”고 했다.
다른 말로 하면 임신 14주를 넘어서면 임신부의 안전에 위험이 커진다는 뜻이다. 단순위헌 의견에는 “임신 제1삼분기를 경과한 이후에 이루어지는 낙태는 그 이전에 이루어지는 낙태에 비하여 수술 방법이 더 복잡해지고, 수술 과정에서 합병증이나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되어 임신한 여성의 생명이나 건강에 위해가 생길 우려가 크게 증가하므로, 임신 제1삼분기를 지나 이루어지는 낙태에 대하여는 태아의 생명 보호 및 임신한 여성의 생명, 건강 보호라는 공익이 더욱 고려될 수 있다”고 나와 있다.
정의당 ‘14주 분기점’ 개정안 내놓았더니덧붙여 임신 14주가 넘을 경우 태아의 성별이나 기형을 이유로 인공임신중절을 할 우려가 있다는 점도 고려했다. “임신 제2삼분기(임신 14~28주)의 일정한 시점에 이르면 태아의 성별이나 기형아 여부를 알 수 있는데, 임신한 여성이 그 시기 이후에도 자신의 의사만으로 낙태할 수 있도록 한다면 태아의 성별이나 기형을 이유로 한 선별적 낙태가 이루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22주’와 달리 ‘14주’는 재판관 6명 이상의 동의로 결정된 내용이 아니라 강제성을 띠지는 않는다. 참고로 현행법은 임신 24주까지 극히 예외적으로 인공임신중절을 허용하고 있다. 모자보건법은 부모가 유전병 또는 전염병이 있거나, 성폭행으로 임신한 경우, 근친상간, 임신부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칠 경우 등 5가지를 예외 사유로 삼고 있다. 이 경우가 아니라면 형법에 따라 모든 인공임신중절은 처벌받는다.
국회도 발 빠르게 대응에 나섰다. 헌재 판결 나흘 뒤인 4월15일, 이정미 정의당 의원(대표발의)과 정의당·바른미래당·무소속 의원 9명은 처음으로 인공임신중절 관련 모자보건법·형법 일부개정안을 제출했다. 개정안은 헌재 결정문에 나온 두 변곡점을 그대로 가져왔다. 임신 14주 이내에는 임신부의 동의만 있으면 제한 없이 인공임신중절을 가능하게 했고, 14주부터 22주까지는 기존 5가지 사유에 사회적·경제적 사유를 더해 제한적으로 허용했다.
이정미 의원 개정안에 대한 반박은 진보 진영에서 먼저 나왔다. 녹색당은 4월15일 ‘누가 임신중지의 조건을 말하는가!’라는 제목의 논평을 냈다. 사실상 임신 전 기간에 제한 없이 인공임신중절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임신중지 논의에서 필요한 것은 여성에 대한 ‘처벌’도 ‘허락’도 아니며, 건강과 권리에 대한 ‘보장’과 ‘지원’이다. 여성은 임신을 중지하고자 할 때 ‘임신 기간(주수)’으로든 ‘임신중지의 사유’로든 그것을 국가에 증명하고 허락받을 이유가 없(다).” 민주노총에서도 4월17일 반대 성명이 나왔다. “낙태를 허용하는 시기의 제한과 사유에 대한 논쟁은 여성의 임신중지 결정에 대해 국가와 사회가 통제해온 한계가 많은 역사의 결과물이다. (…) 이는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진행되어온 낙태죄 폐지 논의를 전혀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길 바란다.”
인공임신중절 허용 시기에 대한 논쟁은 이제 막 시작됐다. 헌재는 최대치(22주)를 설정했을 뿐 최소치는 설정한 바가 없다. 임신 극초반만 제한적으로 허용하자는 법안부터 임신 22주까지 무제한 허용하자는 법안까지 나올 수 있다. 참고로 현재 국내 인공임신중절의 95%는 임신 초기(12주 이내)에 이뤄진다. 2018년 2월14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만 15살 이상 44살 이하 여성 1만 명에게 설문조사한 뒤 발표한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2018년) 주요 결과’에 나온 내용이다. 이 조사에서 인공임신중절 경험자들이 답한 수술 시기의 평균은 임신 6.4주였다. 누적 비율로 보면 임신 기간이 4주 이하 31.5%, 8주 이하 84.0%, 12주 이하 95.3%였다. 12주 이상은 4.7%였다.
유럽 대체로 임신 14주, 영국 24주, 일본 22주여론도 임신 초기 낙태만 허용하는 분위기다. 2011년 11월7일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낙태의 실태와 대책에 관한 연구’의 일부로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에 의뢰해 만 16살 이상 여성 1천 명에게 ‘기간에 따른 낙태 허용도’를 조사했다. 그 결과 응답자들이 선택한 낙태 허용 시기는 2주 이내 9.1%, 4주 이내 19.8%, 8주 이내 21.5%, 12주 이내 35.9%, 16주 이내 8.7%, 20주 이내 2.7%, 24주 이내 1.2%였다. ‘2주 이내’부터 ‘12주 이내’까지 응답자를 합하면 86.3%였다. 24주 이후에도 가능하다는 응답자는 0.9%에 불과했다. 나라 바깥으로 눈을 돌려보면, 인공임신중절 허용 시기와 조건이 제각각 다르다. 유럽 국가는 대체로 임신 14주 이내에 일정한 요건을 갖춘 인공임신중절을 형사처벌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미국은 주마다 규제가 다르고 영국은 24주, 일본은 22주다. 북한과 중국은 별다른 규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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