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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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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 복지’ 어쩔 수 없응께 하는 기다

지자체 ‘현금성 복지’ 사업, 신규 사업 가운데 68% 차지…

현금 복지는 ‘포퓰리즘’ ‘선심성 퍼주기 예산’일까
등록 2019-04-08 00:32 수정 2020-05-02 19:29
전남 장흥군이 2018년 12월4일 결혼장려금 시행 1주년을 맞아 혜택을 받은 신혼부부를 초청해 간담회를 열었다. 장흥군청 제공

전남 장흥군이 2018년 12월4일 결혼장려금 시행 1주년을 맞아 혜택을 받은 신혼부부를 초청해 간담회를 열었다. 장흥군청 제공

장흥군 4만 인구 지키기 방법입니다. 한번 해보세요.
저는 장흥관산중학교 2학년 김준혁입니다. 저는 인구에 관심이 많아서 이 글을 씁니다. 지금 장흥군 인구수는 3만9994명(1월) (중략) 장흥군 4만 지키기 방법입니다. 1. 장흥군에 이사 오는 사람한테 300만원 지급. 2. 볼링장 같은 청년, 학생이 좋아하는 시설 만들기. 3. 아이가 셋 이상 있거나 임신부한테 250만원 지급하기 (중략) 이상 4만 지키기 방법을 적었습니다. 장흥군 인구가 4만1천 명이라도 되면 좋겠습니다.
930건 복지사업 중 신설은 721건

2018년 2월10일 전남 장흥군청 누리집 ‘군수에게 바란다’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군청 담당자는 준혁이의 제안에 군청이 펴고 있는 인구정책 등의 내용을 담아 일일이 답변을 달았다. 준혁이는 두 달 뒤 “군에서 실시하는 결혼장려금(500만원)의 액수를 높여야 한다”는 글도 올렸다. 올해 중3이 돼 이제는 공부에 ‘올인’한다는 준혁이에게 4월2일 학교가 끝나기를 기다려 전화를 걸어 물었다. 왜 인구문제에 관심을 가지냐고.

“3학년은 저를 포함해 전교생이 26명이에요. 신입생은 점점 줄어들어요. 올해 24명 입학했어요.” 수업 시간에 배운 저출산, 지역 인구 감소 문제가 자신의 교실에서 벌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은 준혁이는 장흥군청·행정안전부 누리집을 뒤지고 관련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장흥군 인구는 2016년부터 줄어들어(2015년 12월 4만3513명→2016년 12월 4만669명) 2018년 4만 명 선이 붕괴됐고, 올해 2월 말 기준 3만9091명을 유지하고 있다.

준혁이는 결론을 내렸다. “농어촌은 노인시설이 많아요. 젊은 사람들은 즐길 거리가 없어 떠나고, 학생들은 사교육 때문에 도시로 가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뭐라도 계속해야 하는 것 아니에요? 안 하는 게 문제인 것 같은데….” 준혁이가 군청 누리집에 올린 제안과 자기 나름으로 내린 결론은 최근 지방자지단체가 앞다퉈 도입하는 ‘현금성 복지’ 정책과 맞닿아 있다. 현금성 복지는 일부 야당과 언론이 ‘포퓰리즘’(대중주의), ‘선심성 퍼주기 예산’ 등이라 하며 비판받고 있다. 지자체장들의 지방선거 선심성 공약이 지자체 재정이나 현실성을 고려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현실화된다는 게 비판의 주요 내용이다. 지자체가 현재 실시하는 사업들을 뜯어보면 지자체의 재정자립도에 비해 과하거나 지속가능성이 의심되는 사업도 있다. 그럼에도 중학생이 군청 누리집에 글을 올리고, 지자체가 현금 지급 복지사업을 잇따라 도입하는 배경에는 인구 감소로 재정이 악화되고 학교나 마을이 사라지거나 활력을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과 ‘위기감’이 자리잡고 있다.

정부의 ‘보편적 복지’ 정책 방향과 지자체의 맞춤형 복지 자율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으며 전국 지자체는 지난해와 올해 자체 복지사업의 수와 종류를 늘렸다. 이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통해 보건복지부로부터 받은 ‘2018년도 사회보장제도 신설·변경 협의 내용(2019년 2월 말 기준)’ 자료를 보면, 전국 지자체가 복지부와 협의해 지난해와 올해 실시하는 복지사업은 930건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신설된 사업은 721건이다. 신규 사업 가운데 현금·지역화폐·상품권 등을 주는 ‘현금성 복지’ 성격이 있는 사업은 488건으로 약 67.7%를 차지했다.

복지 수혜 대상 저소득층에서 다양화해

보통 사회복지사업 예산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분담해서 조성하기 때문에 지자체의 자체 복지사업은 중앙정부의 복지사업에 쓰고 남은 자투리 예산으로 한다. 지자체가 기초연금·무상보육·아동수당 등 중앙정부의 복지사업에 대부분의 예산을 쓰고 자체 복지사업에 쓰는 예산은 보통 9% 안팎(2015년 기준 국고보조사업 91.9%, 지자체 자체 사업 8.1%)이다. 이 과정에서 중앙정부(보건복지부 사회보장위원회)는 2013년 개정된 사회보장기본법에 따라 지자체와 복지사업 확대 여부를 협의하는 방식으로 관여한다. 2017년까지는 중앙정부가 기존 사업과 중복된다고 판단하면 ‘부동의’(不同意) 결정을 내려 사업 확대를 막았지만 2018년 1월부터 부동의 결정을 없애고, ‘협의 완료’ ‘재협의’ 결정을 내리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지자체의 특수성과 자율성을 보장하겠다는 취지다. 2013~2017년 복지부가 부동의 결정을 내린 지자체의 자체 복지사업은 매년 20~30건씩 있었지만, 2018년 협의에서는 신규 사업 721건 중 42건이 재협의 뒤 그대로 하거나 사업 내용을 일부 조정하기로 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지자체 복지사업의 종류와 수가 많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지난 몇 년간 무상보육·청년수당 등 보편복지 담론이 공론화되며 지자체의 ‘복지 욕구’가 많이 늘어난 현실의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다. 사회보장위원회의 통계(연도별 ‘동의’ 현황)를 보면 2013년 19건, 2014년 28건에 머물던 지자체 자체 신규 복지사업의 수는 2015년 137건, 2016년 484건, 2017년 591건으로 꾸준히 늘었다. 2018~2019년 지자체 신규 사업 721건을 뜯어보면 복지 수혜 대상이 기존 저소득층 위주에서 청년(212건), 노인(68건), 아동·영유아(67건), 출산가정·임신부(51건) 등으로 다양화하는 흐름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사업들을 살펴보면 지자체가 현재 어떤 문제로 고민하는지 엿볼 수 있다. 인구 감소로 골머리를 앓는 농어촌 지역에선 출산장려금, 결혼장려금, 보육료 지원, 아동수당 등 출산과 보육에 동기부여를 하는 사업에 초점을 맞춘다. 모유 수유 지원(유축기 지원), 임신부·영유아 영양제 제공, 임신부 튼살크림 지원 등 예산은 적지만 출산·육아와 관련된 사업도 많다. ‘인구 4만 지키기’에 사활을 건 장흥군은 2017년 전국 최초로 신혼부부에게 500만원(장흥 거주 조건으로 2년 동안 세 차례 나눠서 지급)을 주는 결혼장려금을 도입해 2017년 15쌍, 2018년 53쌍이 혜택을 받았다. 올해도 3억원 예산이 잡혀 있다. 결혼과 아이 키우기가 힘든 사회에서 무조건 결혼을 장려하는 것이 적절하냐는 비판이 계속 나오지만, 장흥군 처지에서는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는 것이다. 장흥군의 출생아 수는 2000년 507명에서 2017년 161명으로 매년 꾸준히 줄었다. 이 사업의 장흥군청 담당자는 “출산율을 높이려고 고민하다보니 결혼을 기피하거나 늦어지는 현실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해에는 전년보다 출생아가 20명 늘었다. 조금이라도 효과가 있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전남 나주와 영광, 영암도 장흥군을 따라 올해 결혼장려금 제도를 도입했다. 장흥군은 결혼장려금을 받은 부부들의 의견을 수렴해 올해 1억5천만원 예산으로 주택구입(대출) 이자 지원, 집수리·청소 서비스 지원 사업을 새로 실시할 예정이다.

경기도 성남시는 올해부터 ‘청년배당’ 정책을 실시한다. 성남시 제공

경기도 성남시는 올해부터 ‘청년배당’ 정책을 실시한다. 성남시 제공

같은 출산장려금도 효과는 천차만별

중앙정부가 올해 청년구직활동 지원금(취업을 준비하는 청년에게 월 50만원씩 최대 6개월 지급)을 도입하는 가운데 청년인구가 많은 수도권이나 지역 대도시에선 청년 면접수당, 면접 정장 대여, 국가기술자격증 취득 지원, 주거비 지원 등 자체 사업을 줄줄이 들고나왔다. 영유아·아동 사업은 어린이집 보육료 지원이 대부분이다. 충남 아기수당(0~12개월), 경기도 광주 셋째 이상 자녀 양육비, 인천 강화군 양육비, 강원도 양육기본수당 등 중앙정부가 6살 미만 아동 모두에게 월 10만원씩 주는 아동수당과 별도로 2만~30만원의 현금을 주는 사업도 늘고 있다.

문제는 지자체의 현금성 복지가 지방선거에서 충분한 검증 없이 나온 공약으로 실시되거나, 타 지역의 사업을 그냥 베끼는 형식으로 이뤄지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기존 복지사업과 중복되거나 실제 효과가 불투명하고, 재정자립도 차이가 있는 지자체 간 복지 형평성 논란을 낳을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최근 논란이 된 서울 중구의 ‘어르신 공로수당’이 대표적 예다. 복지부가 기초연금과 중복된다며 제동을 걸었지만, 중구는 지난 2월 만 65살 이상 기초생활수급자와 기초연금 대상자 1만1천 명에게 어르신 수당 10만원(예산 156억원)을 지역화폐로 지급했다. 중구는 서울 자치구 중 저소득 독거노인 비율과 노인 고립·자살 우려 비율이 가장 높기 때문에 필요한 사업이라고 주장하지만, 성동구 등 인근 기초단체에서는 반발하기도 한다.

2000년 초반 전남을 시작으로 최근까지 지자체가 도입하는 출산장려금 역시 출산율 증가에 일정 부분 기여했다는 연구 결과(‘한국의 출산장려 정책은 실패했는가? 2000~2016년 출산율 변화 요인 분해’ ‘출산장려금의 출산율 제고 효과: 충청 지역을 중심으로’ 등)가 있지만 지자체별로 명암이 엇갈린다. 6년 연속 합계출산율(가임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자녀 수) 전국 1위인 해남군에선 대규모 출산장려금(첫째 아이 300만원, 둘째 350만원, 셋째 600만원)과 산후조리원 비용, 난임 부부 시술비 등의 지원 사업으로 효과를 봤고 이는 전국으로 확산됐다. 하지만 강원도 속초시나 인천시는 출산장려금이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재정난만 심화해 중단했다가 최근 부활시키는 등 지자체별로 상황이 다르다. 출산장려금 제도가 정착된 전남 도의회의 2017년 조사 결과 최근 5년간 22개 시·군에서 돈만 받고 다른 지역으로 전출한 ‘먹튀 출산자’가 1584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자체의 산업구조, 일자리, 육아, 교육 전반에 걸쳐 사회복지가 촘촘히 설계되지 않는 이상 현금성 복지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물론 지자체도 이 문제를 알고 있다. 하지만 체계적인 복지 대책을 펴기에는 막대한 예산과 시간이 들고, 인구는 계속 줄어드는 가운데 지자체의 선택지는 많지 않은 상황이다.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 많다”

강원도는 논란 끝에 올해 도에서 태어나는 아기에게 월 30만원씩 4년간 ‘육아기본수당’을 지급한다. 애초 월 70만원까지 지급할 계획이었지만 복지부가 제동을 걸었고, 도의회에서도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려로 반대가 심해 월 30만원으로 축소됐다. 도의회는 별도의 위원회를 구성해 2년마다 육아기본수당의 성과를 평가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육아기본수당 예산안을 심의했던 강원도의회 사회문화위원회 회의록(2018년 11월28일)을 살펴보면 현재 각 지자체가 처한 딜레마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주대하 위원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무엇이 가장 필요한지 종합적으로 검토를 하셨습니까? (중략) 젊은층이 일자리를 찾아서 이 지역으로 들어오고, 또 이 지역에서 탄생한 신생아들이 잘 자랄 수 있는 기반 조성을 충분히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강원도 보건복지여성국장 위원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동의하는데, 그런 것들을 체계적으로 완벽하게 갖춰서 무엇을 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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