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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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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산 있어야 항심 있다’ 맹자께서 말씀하셨거늘

“한국의 최저임금 수준 어떤가요?” 맹자 선생께 물어봤다
등록 2019-01-26 17:09 수정 2020-05-03 04:29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월2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6차 경제활력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월2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6차 경제활력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항산(恒産)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항심((恒心)을 유지할 수 있다.”

맹자가 정치세력을 형성하는 것에 실패한 뒤 고향으로 돌아가 쓸쓸하게 지낼 때였다. 이웃 국가인 등나라의 문공이 찾아와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을 묻자 이와 같이 답했다. 항산은 생업과 적정한 소득을 말한다. 지금 표현으로는 “일정 소득을 통해 생활이 안정되지 않으면 평정심을 유지하기 어렵다”로 고쳐 쓸 수 있겠다. 기원전 4세기에 산 것으로 추정되는 맹자도 ‘실업’과 ‘최저임금’을 놓고 고민한 것이다. 최저임금계의 선구자라 할 수 있겠다. 이 맹자 선생을 모시고 세계 각국의 ‘최저임금’ 논란에 대해 물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스페인 최저임금 22% 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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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절인데 일단 절 받으시지요. 너무 뵙고 싶었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현안을 놓고 이야기하시는 것이지요.

“반가워요. 유학이 주전공이지만 항산을 강조했던 사람으로서 경제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뉴스를 꼼꼼히 챙겨보고 있지요.”

우선 프랑스 이야기를 좀 드려야겠습니다. 항심을 잃은 민중이 정부에 항산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어 승리했습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지난해 12월10일(현지시각) 생방송 연설에서 ‘노란 조끼’의 시위가 계속되자 “내년 1월부터 노동자의 최저임금이 월 100유로(약 12만8천원) 인상될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지난해 기준 프랑스의 월 최저임금은 세전 1498유로(약 192만원)였습니다. 독일 경제사회연구소(WIS)가 환산한 표를 보면 시급으로 9.88유로(약 1만2700원)입니다.

“‘최저임금 인상’은 현재 세계경제를 관통하는 중요한 열쇳말입니다. 2019년에는 프랑스뿐만 아니라 뉴질랜드, 멕시코, 스페인 등도 최저임금을 올립니다. 1894년 최저임금을 법으로 명시한 뉴질랜드는 시간당 16.5뉴질랜드달러인 현행 기준을 17.7뉴질랜드달러(약 1만3700원)로 올렸습니다. 2021년까지 점차적으로 20뉴질랜드달러(약 1만5300원)로 올린다는 계획이지요. 멕시코는 최저시급을 지난해(88.36페소)보다 16% 올린 102.68페소(약 5800원)로 정했습니다. 이는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에 따른 것인데 저임금 국가로 분류됐던 멕시코에서 내부적으로 북미 국가들과의 협상과 노동시장 균형을 위해 최저임금을 올려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가능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스페인은 최저임금 22% 인상을 결정했습니다. 페드로 산체스 총리는 1월12일 의회에 출석해 ‘부자 나라에 가난한 노동자가 있어선 안 된다’며 올해 월 최저임금을 1050유로(약 135만원)로 올리겠다고 밝혔습니다. 2008년 세계경제 위기 이후 줄곧 긴축정책 기조를 유지해왔던 스페인이지만, 빈부 격차 심화와 내수경기 침체를 개선하기 위해 40년 만에 최대 폭 인상을 결심했지요.”

시애틀 최저임금 인상에서 찾은 해법 2018년 최저시급이 7530원이었던 한국은 올해 10.9%를 올린 8350원으로 최저시급을 정했습니다. 선생께서 말씀하신 국가들과 비교하면 인상폭이 크지 않고, 금액도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소상공인들과 기업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다른 국가에서 반발은 없었습니까?

“‘경제에서 최저임금보다 격렬한 논쟁을 일으키는 주제는 없다’. 영국 일간지 의 피터 선생 글이 생각납니다. 반발이 왜 없겠습니까. 더 험악하면 험악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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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계는 더 큰 폭의 인상을 주장하고, 재계는 인상폭이 커 고용률이 줄어들 것이라 주장하는 것은 만국이 똑같습니다. 언론도 한바탕 전쟁을 벌이지요. 최저임금 인상을 주장하는 쪽은 노동자들의 소득이 늘고 삶의 질도 좋아질 거라고 보도합니다. 최저임금 인상에 반대하는 쪽에서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고용주가 고용을 줄이고 실업률이 높아질 거라고 합니다.

최저임금 인상과 관련해 자주 언급되는 사례가 바로 미국 시애틀입니다. 시애틀은 2015년 9.47달러였던 최저시급을 지난해 15달러까지 3년 만에 58.4%를 올렸습니다. 이는 연방정부가 제시하는 최저시급 기준인 7.25달러의 두 배가 넘는 금액이었습니다. 경제계가 강하게 반발했죠. 도산하는 사업체가 줄을 잇고 경제가 파탄 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흥미로운 부분은 최저임금 인상 효과 분석을 놓고 학계도 갈라졌다는 겁니다. 워싱턴주립대학 경제학자들은 시애틀의 최저임금 인상으로 고용률이 줄었고, 저임금 노동자들의 소득이 줄었다고 분석했습니다. 하지만 버클리캘리포니아주립대는 정책 의도대로 노동자의 수입이 늘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최저임금 인상 후 기업들이 시애틀을 떠났다는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되레 인상된 최저임금에 부담을 느낀 영세한 중소업체들이 외곽으로 밀려났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시애틀은 올해 1달러를 더 올려 16달러(약 1만8천원)를 최저시급으로 정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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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요. 어느 곳이나 최저임금 인상에는 반발이 따르게 마련이군요. 그렇다면 적정한 최저임금이란 얼마입니까? 선생께서 ‘항산’이 중요하다고 말씀은 하셨지만 항산의 양을 정확하게 정의해주지 않아 혼란스럽습니다. 제 1시간 노동의 값은 얼마가 마땅합니까?

“지난해에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운영하는 한국경제연구원에서 ‘2018년 기준 한국의 주휴수당을 포함해 계산하면 한국의 최저임금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3위’라고 발표한 내용을 봤습니다.

내용을 들여다보니 주휴수당을 법제화한 국가는 한국, 대만, 터키뿐이라는 설명이 있었습니다. 빈약한 주장이었습니다. 주휴수당을 법제화한 국가가 세 곳뿐인데 주휴수당을 포함해서 최저임금을 계산하면 당연히 한국이 높게 나오겠지요.

이렇게 국가마다 최저임금 산입 범위와 개념이 달라, 국가 간 비교도 쉽지 않습니다. 미국만 해도 주별로 최저임금이 달랐죠. 국가나 지역별로 물가가 다르기 때문에 수평 비교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OECD와 국제노동기구(ILO)는 노동자의 평균임금 중위값 대 최저임금 비율로 비교하고 있습니다. 2017년 기준으로 한국은 53%로 OECD 회원국 31개국 중 13위입니다. 낮지도 높지도 않은 중간그룹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고려 우선순위 ‘저임금 노동자’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다는 것입니까. 좋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한국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보십니까?

“대립하는 양쪽이 합의 가능한 부분에서 실마리를 찾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앞서 시애틀의 최저임금 인상 사례를 소개했습니다만, 당시에 양쪽이 모두 공감했던 부분이 있습니다.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평가하려면 저임금 노동자의 수입이 실제로 늘었는지를 봐야 한다는 당위성이었습니다. ‘소득 양극화 해소’와 ‘저임금 노동자의 소득 증대’라는 최저임금의 존재 이유를 다시 곱씹어보는 게 어떨지요. 여러 나라가 저마다 다른 최저임금 체계를 갖고 있지만 목표는 같습니다.

2008년 세계경제 위기 이후 세계적으로 소득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이를 해소할 방안으로 최저임금이 주목받아왔습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보수정당의 대표지만 2015년 최저임금을 법제화했지요. 이런 세계적인 흐름에도 한국의 과거 정부들은 최저임금 인상에 인색했습니다. 최근의 인상은 뒤늦게나마 이러한 세계적인 흐름을 좇아가려는 노력으로 보입니다.

‘항산 없이는 항심이 없다’고 제가 2400년 전에 말했지만 이는 아직도 유효합니다. 기본적인 국민의 삶을 이루지 못하는 국가는 유지될 수 없습니다. ‘백성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권력은 축출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가 공자를 모신 사당에서 초상화가 떼이기도 했지만 제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물어보고 싶은 게 너무 많습니다. 정녕 인간은 선하게 태어났다는 게 진실입니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 그리고 선생의 어머니께서는 일찍이 선생의 교육을 위해 이사를 세 번이나 하셨습니다. 선생께 영향받은 한국 사람들이 모두 자녀 교육을 위해 좋은 학교가 있는 동네로 이사 가려고 경쟁이 아주 치열합니다. 한강 이남으로 이사 가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가 됐습니다.

“음, 저도 최근에 인기 드라마 을 보면서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마침 드라마 하는 시간이군요. 가봐야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

‘사용자 지급 능력’ 고려한 최저임금 개편안 초안 논란


‘노동자 구매력’ 따지는 프랑스, 위원회 전원 합의 영국


지난 10년간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사용자위원·공익위원 합의에 따라 최저임금이 결정된 때는 2008년과 2009년 단 두 해뿐이다. 노동자든 사용자든 어느 한쪽이 불참하거나 퇴장하는 바람에 결국 공익위원 표결로 결정되는 경우가 많았다. 2019년 최저임금을 결정할 땐 민주노총과 사용자 쪽 위원이 불참했다.
정부는 최저임금 결정 체계를 합리화·객관화하는 것이 갈등을 줄일 근본적 방안이라는 인식 아래, 2017년 최저임금위원회 제도 개선 티에프(TF)를 꾸렸다. 그러나 1월7일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자못 갑작스럽게 ‘최저임금 결정 체계 개편 초안’을 발표하면서 오히려 논란이 과열되고 있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 지난해 12월27일 신년사에서 “최저임금 결정 구조 개편, 구분 적용, 결정주기 확대 등 다양한 측면에서 합리적인 제도 개선이 이뤄지도록 적극 건의하겠다”고 밝힌 지 불과 열하루 만에, 30년간 지속돼온 결정 구조 개편안을 내놓은 탓이다. 양대 노총은 노동계와 상의 없이 ‘최저임금 속도조절론’을 반영한 개악안을 내놨다고 반발한다.
정부가 국민 의견 수렴 중인 개편안 초안을 보면, 노동자위원·사용자위원·공익위원 각 9명씩 총 27명이 모인 최저임금위원회가 결정해온 최저임금을 올해부터 ‘구간설정위원회’와 ‘결정위원회’로 나눠 정하도록 하고 있다. 노사정 동수 추천 전문가 9명으로 구성돼 상시 운영되는 구간설정위원회가 최저임금 인상폭의 상·하한선을 설정하면, 노동자·사용자 대표와 공익위원으로 구성된 결정위원회가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방식이다.
‘최저임금 결정 기준’을 보면 속도조절론이 제기되는 이유가 설명된다. 현행 결정 기준엔 근로자의 생계비, 유사 근로자의 임금, 노동생산성, 소득분배율을 고려하도록 돼 있다. 개편안은 여기에 고용수준, 기업 지급 능력, 경제성장률 포함 경제 상황, 사회보장급여 등을 추가했다. 사용자의 지급 능력을 고려하는 것은 노동자 임금의 ‘최저 수준’을 보장하려는 최저임금법 취지를 무력화하는 조처로 받아들여진다.
어느 나라든 재계와 노동계 사이에는 최저임금을 둘러싼 의견 대립이 있기 마련이라, 각국은 형편에 맞게 다양한 최저임금 결정 체계를 두고 있다. 우리나라와 여건은 다르지만 각국의 장단점을 살펴 구간설정위원회와 결정위원회가 실질적인 갈등 조정 구실을 할 수 있도록 ‘디테일’을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저임금위원회의 보고서 ‘주요 국가의 최저임금제도’를 보면, 프랑스는 행정명령에 따라 규정된 통계지수와 ‘단체협상 국가위원회’에 제시된 노사 대표의 의견을 종합해 노동부가 최저임금을 결정한다. 결정 기준은 소비자 물가지수(소득이 가장 낮은 하위 20% 가구를 담배 제외하고 매월 측정), 노동자 구매력 상승률(노동자 기본 시급률의 인상률에서 물가상승률을 고려한 수치로 노동부에서 분기별로 측정)의 2분의 1, 정부 재량에 따른 인상률 등 세 가지다. 독립적 전문가그룹이 해마다 ‘단체협상 국가위원회’와 정부에 최저임금 인상률에 대한 보고서를 내는데, 전문가그룹 위원들의 독립성이 보장된다. 또 직전 최저임금을 결정한 때로부터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를 넘기면 물가상승분만큼 최저임금이 자동 인상되도록 했다.
독일의 상설기구인 최저임금위원회는 1명의 위원장과 사용자 대표 3명, 노동자 대표 3명, 학계 자문위원 2명으로 이루어지는데, 의결권은 사용자·노동자 대표만 갖는다. 박귀천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과 한 전화 통화에서 “독일 방식이 겉으로는 최저임금위원회 결정 방식이지만 실제로는 산별교섭에서 나온 수준으로 최저임금이 결정되고, 의결권도 노사위원에게만 있다”며 “노사 의견이 실제로 반영되는 이상적인 최저임금 결정체계지만 산별교섭도 안 되는 우리와는 동떨어진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영국에서는 저임금위원회가 권고안을 내면 사업·에너지·산업전략부 장관이 최저임금을 최종 결정한다. 최저임금액 권고안은 의장 1명, 공익 2명, 노동자 3명, 사용자 3명으로 구성된 저임금위원회의 ‘전원 합의’로 결정된다. ‘주요 국가의 최저임금제도’를 보면 “마지막 회의 때는 전 위원이 호텔에 격리된 상태에서 끝장 토론식으로 진행해 위원들의 합의를 끌어낸다”고 설명한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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