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가진 것을 나누는 일은 어렵다. 그렇더라도 말 그대로 최저임금일 뿐인데 ‘최저임금 8350원’ 후폭풍이 과도하다. 임대료, 프랜차이즈 가맹비, 카드 수수료, 원청-하청 불공정 거래 등 고질적인 경제구조 문제는 다 잊히고, 영세 자영업자가 망하는 것도, 고용률 악화도, 물가 상승도, 어느새 “최저임금 인상 탓”이 되어버렸다. 경영계에선 최저임금 차등 적용을 요구한다. 영세 자영업자들은 최저임금 불복종 투쟁을 외친다. 자본가와 소상공인의 불평일 뿐, 회사원인 나, 학생인 나, 전업주부인 나와는 무관한 일로 여기기 십상이다.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아파트에 살며 떡볶이집과 패스트푸드 전문점 단골일 뿐, 최저임금 정책과는 무관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평범한 나들’ 역시 부지불식간에 최저임금 인상 부담을 최저임금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괴물”(ㄱ아파트 입주민의 고백)이 될 수 있다.
시멘트만 대충 발라놓은 휴게실에서서울 강북의 ㄱ아파트 가격은 2018년 한 해 동안 실거래가 기준으로 많게는 63%(82㎡·24평 기준) 올랐다. 5억5750만원이던 집값이 8억9천만원으로 뛰었다. 앉은자리에서 1년 만에 자산이 3억3천만원 늘었지만, 이 아파트의 최근 이슈는 집값 상승이 아니라 최저임금 인상이다.
ㄱ아파트에는 1월 초 ‘경비 휴게시간 및 미화원 근무시간 변경 안내’ 공지문이 나붙었다. 공지사항을 보면 “최저임금이 작년 16.4%에서 올해 10.9% 토탈 30% 가까이 올랐다”며 “2019년 최저임금제(시급 8350원) 시행에 따라 입주자대표회의 의결에 의거, 아파트 경비원 및 미화원의 근무시간이 아래와 같이 변경되었음을 알려드리오니 양해와 협조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1월1일부터 경비원 야간 휴게시간을 1일 1시간 연장하고, 미화원 근무시간을 1일 30분 단축”한다는 설명이었다.
현재 이 아파트에는 경비원 10명이 맞교대 근무를 하고 있다. 경비 1인당 일평균 최소 15.5시간 이상씩 맞교대 근무를 해야 ‘결원 없는 경비 근무’가 가능하다. 하지만 하루 평균 15.5시간을 일하면, 야근수당 등을 포함해 1인당 월급여가 220만원 남짓으로 인상된다. ㄱ아파트는 경비원 1인당 13만원씩 정부로부터 일자리 안정자금을 지원받는데, 1인당 월급여가 210만원(지난해 190만원) 이상이면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없게 된다. ㄱ아파트는 경비원 휴게시간을 1일 1시간 늘리고 1일 근무시간을 14.5시간으로 줄여 월급을 ‘210만원 이하’로 묶는 방식을 택했다. 최저임금을 받고 1일 14.5시간씩 근무할 경우, 경비원 1인당 연차수당을 제외하고 월 206만원(최저임금 8350원×14.5시간×15.5일+야간가산금 19만510원)을 받게 된다.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는 공지문에서 “국가지원금을 포기하고 15.5시간 근무제로 시행하면 지원금 130만원과 월급 인상분 200만원을 포함해 (한 달에) 약 330만원의 추가금이 발생한다”며 휴게시간 연장이 불가피한 이유를 밝혔다. 이 아파트는 약 1천 가구로 구성됐다. 산술적으론 가구당 관리비 월 3300원만 더 부담하면 정부 지원이나 경비원 휴게시간 연장 없이 임금을 지급할 수 있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이 아파트 경비원은 “휴게시간을 늘려봐야 휴게시설 미비로 쉴 수가 없다”며 “어차피 쉬지도 못할 거 휴게시간 대신 그냥 일하고 시급이나 더 받는 게 낫다”고 하소연했다. 아파트 지하에 마련된 휴게실은 마감도 제대로 안 하고 시멘트만 대충 발라놓은 상태라고 했다. 경비원이 10명인데 침상은 2개뿐이라 야간 휴게시간이라도 잘 수가 없다. 운 좋게 침상을 차지해도 외풍이 하도 심해 잤다 하면 감기에 걸린다고 했다. 휴게실엔 샤워시설은 물론 화장실도 없다. 옆동 커뮤니티센터 화장실이 있지만 경비원들은 쓸 수 없다. “내가 정말 살면 얼마나 산다고….” 이 경비원은 종종 서글픈 생각이 든다고 했다.
“왜 210만원이 정부 지원 상한선인지”서아파트 입주자대표 ㄴ씨는 “만장일치는 아니었으나 두 번에 걸친 입주자대표회의를 거쳐 연말에 (휴게시간 연장이) 결정됐다”며 정식 절차를 밟아 결정된 사안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관리비 부담이 많이 올라가는 것을 떠나서, 정부 지원금이 있는데도 안 받으면 입주민들로부터 ‘왜 안 받느냐’고 항의받을 수 있어서 정부 지원금을 포기하기 어렵다”고 속사정을 털어놨다. 그는 “정치권에서 왜 210만원을 정부 지원 상한선으로 뒀는지 모르겠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월급을 조금이라도 더 받을 수 있었던 노동자들이 상한선 때문에 (근무시간 단축 등으로) 오히려 손해를 볼 수 있다”고 항변했다.
아파트 주민 ㄷ씨는 공지문이 붙고서야 이 사실을 알았다. 그는 “이 이야기를 듣고 잠이 안 오고, 우리 아파트가 괴물처럼 느껴졌다”며 공동체의 냉혹함에 치를 떨었다. 또 다른 입주민 ㄹ씨는 “관리비가 한 달에 3천~4천원이라도 덜 나가면 좋긴 좋지만, 그렇게까지 꼼수를 쓰면서 경비 아저씨 몫을 가져오는 건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아파트 입주민처럼 직간접으로 임금을 주는 처지가 아니더라도, ‘소비자’라는 사실만으로 최저임금 해법의 열쇠를 쥔 ‘키 플레이어’ 처지에 놓일 수 있다. 다른 사람의 노동에 ‘제값’을 주고 최저임금 인상의 부담을 나눠지겠다는 공감대만 형성돼도, 최저임금 결정을 둘러싼 사회적 대화가 이토록 소모적이지 않을 수 있다.
보수 언론과 경제지들은 연초부터 유명 즉석 떡볶이 프랜차이즈의 가격 인상을 ‘최저임금 인상 부작용’으로 대서특필했다. 이 떡볶이 프랜차이즈는 1월1일부터 일반(성인) 기준으로 1인당 떡볶이 가격을 7900원에서 8900원으로 1천원 올렸다. 최저임금 인상에 반대하는 매체들이 서민들의 가벼운 주머니 사정을 내세워 최저임금을 공격하며 ‘을과 을의 갈등’을 부추기는 기사를 쏟아냈다. 실제 관련 기사의 댓글에는 “누가 저녁 있는 삶을 만들어준다고 했잖아요… 저녁은 (외식값 오르니) 집에 가서 밥 지어 먹으라는 말이었는데 다들 몰랐나요???” “최저임금 더 오르면 아마도 짜장면 한 그릇에 1만원 시대가 곧 올 듯” 등 조롱이 주를 이뤘다.
시급은 800원 오르고 떡볶이 값은 1천원 오르고‘사회적 분위기’ 탓인지 최저임금이 오른 이 떡볶이 프랜차이즈의 아르바이트 학생은 상당히 위축된 모습이었다. 지난 1월17일 낮 서울의 한 여대 인근에 있는 매장을 찾았을 때, ㅇ씨는 에 “시급 더 주는 건 좋지만, 최저임금 인상으로 아르바이트 자리 자체가 전보다 준 것 같아 걱정된다”고 했다. 이 매장 사장은 “시급이 지난해 7600원에서 8400원으로 800원 올랐고, 떡볶이값은 1인당 1천원 올랐다”며 “가격 인상 때문인지 방학이라 그런 건지 학생 손님이 좀 줄어든 듯도 싶지만, 두 달 전부터 가격 인상이 공지된 상태라 항의하는 손님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근처 회사에 다니는 30대 직장인 ㅈ씨는 이날 점심시간 직장 동료 2명과 함께 떡볶이집을 찾았다. ㅈ씨는 “최저임금이야, 올리는 게 맞다면 올려야지 어쩌겠나. 비록 우리 회사는 임금 동결이지만(웃음), 떡볶이값 1천원 올랐다고 최저임금 인상에 반대하진 않는다”며 오히려 호들갑스러운 언론 보도에 의아함을 드러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전화신청▶ 1566-9595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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