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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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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역은 말한다, 하면 된다

2016년 구의역 사고 이후, 하청 주는 대신

서울교통공사 직접 고용하고 2인 1조 작업 원칙 지켜
등록 2018-12-28 13:21 수정 2020-05-02 04:29
2018년 12월21일 밤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구의역 김군’ 동료(맨 오른쪽)인 승강장 안전문 정비 노동자가 만났다. 김진수 기자

2018년 12월21일 밤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구의역 김군’ 동료(맨 오른쪽)인 승강장 안전문 정비 노동자가 만났다. 김진수 기자

“용균이를 떠나보내고 나서 그날부터 지금까지 쭉 투쟁해오고 있는데…. (한숨) 한편으론 그런 마음이 있습니다. 이 친구를 마음속으로 떠나보내지 못한 게 있는데… 앞에 계시는 분들도 동료를 떠나보내고 많이 힘들었을 텐데 어떻게 극복하셨는지….”(충남 태안화력발전소 하청업체 노동자 ㄱ씨)

“솔직히 저는 아직 극복 못했어요. 그 친구(구의역 김군) 기관사가 꿈인 아이였어요. 저희는 정규직이 됐지만 (그걸) 원했던 아이는 옆에 없어요. 극복은 잘 되지 않아요. 그런 힘든 부분을 안고서도, 싸워야 누가 죽지 않잖아요. 더 이상의 죽음을 피하기 위해서는 극복하지는 못하더라도 그걸 안고 살아가야죠.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은 그것밖에 없네요.”(서울교통공사 스크린도어 정비 노동자 박창수씨)

“절대 포기 마시라, 그건 용균의 꿈도 포기하는 것”

2018년 12월21일 밤 11시께 청와대 사랑채 앞 도로에 마련된 ‘대통령과의 대화를 요구하는 비정규직 100인 대표단’의 노숙농성장에서 ‘구의역 김군’과 함께 일했던 박창수(29)씨와 비정규직 노동자들 사이에 ‘노상 간담회’가 열렸다. 하청업체 계약직 직원 19살 김아무개군은 2016년 5월28일 구의역 9-4 승강장에서 장애물검지센서(장애물센서) 청소를 하다가 진입하던 열차와 스크린도어(승강장 안전문) 사이에 끼여 숨졌다.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24)씨는 12월11일 낙탄 처리 작업을 하다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세상을 떠났다. 두 동료를 허망하게 보낸 노동자들이 만난 것이다. 간담회가 끝난 뒤 박씨는 김용균씨 동료 ㄱ씨에게 다가가 팔을 벌렸다. 두 사람은 서로 말없이 끌어안았다. 박씨가 “힘든 일이 많을 것이다. 그래도 절대 포기하지 마시라. 그럼 동료(김용균)의 꿈도 다 포기하는 것이다”라고 격려했고, ㄱ씨는 굳은 얼굴로 “예, 감사합니다”라고 답했다.

태안화력 참사는 2년7개월 전 구의역 김군 사건과 ‘판박이’로 평가받는다. 두 사람 모두 하청업체 소속이었고, ‘2인1조’로 작업하지 못하고 홀로 일하다 변을 당했다. 하지만 현재 승강장 안전문 정비 노동자들은 하청업체가 아닌 서울교통공사 소속 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 정규직화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는 않는다. 기존 정규직과 갈등, 노동조건 개선, 인력 확충 등 풀지 못한 과제가 수두룩하다. 하지만 위험 업무를 하청업체에 ‘외주화’하는 대신, 원청(서울교통공사)이 끌어안은 뒤 현장 노동자들은 “적어도 안전에는 변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구의역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구의역은 ‘위험의 외주화’를 중단하면 노동자들의 허망한 죽음을 막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 답이 될 수 있을까.

2018년 12월26일 찾은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잠실 방향 9-4 승강장 안전문 오른쪽 위에 정사각형 모양의 장애물센서가 보였다. 2016년 5월28일 서울메트로(현 서울교통공사) 승강장 안전문 유지·보수 용역업체 은성PSD 소속인 김군은 구의역 9-4 승강장에서 선로 안으로 몸을 집어넣어 센서를 닦다가 사고를 당했다. 2013년 1월 2호선 성수역에서, 2015년 8월 2호선 강남역에서도 용역업체 노동자들이 선로 쪽에 몸을 넣고 장애물센서를 점검하다 열차에 치였다.

장애물센서는 먼지가 묻거나 습기가 차면 잦은 고장(2015년 611건 발생)을 일으키는 애물단지였다. 광고판이 설치돼 열 수 없는 고정문 때문에 노동자들은 선로 안으로 몸을 들이밀어 일해야 했다. 임선재 서울교통공사 승강장안전문(PSD) 지회장이 작업환경에 대해 설명했다. “예전에는 단순 점검뿐만 아니라 수리할 때도 몸을 집어넣어 장비를 고쳤다고 한다. 볼트를 풀고 열차가 지나가길 기다렸다가 케이블을 제거하고, 또 열차 지나가면 장비를 새것으로 달고… 30~40분 동안 교체 작업을 했다.” 서울시 구의역 사고 진상규명위원회의 사고 조사 보고서에는 “2016년 1~5월까지 22건이 열차 운행 중 선로 측 작업승인(작업시간 최고 10분~최대 65분)이 있었고, 작업자들이 배차 간격이 좁은 출근시간대(아침 7시40분~8시7분)에 6대 열차가 통과하는 동안 위험을 무릅쓰고 작업을 실시했다”고 쓰여 있다.

더 이상 선로 안으로 몸을 넣지 않아도
2017년 5월21일 새벽 서울메트로(서울교통공사) 3호선 대치역 선로 안에서 선릉 PSD 관리반 직원들이 2인1조로 고장난 승강장 안전문 장애물검지센서 교체 작업을 하고 있다. 한겨레 황금비 기자

2017년 5월21일 새벽 서울메트로(서울교통공사) 3호선 대치역 선로 안에서 선릉 PSD 관리반 직원들이 2인1조로 고장난 승강장 안전문 장애물검지센서 교체 작업을 하고 있다. 한겨레 황금비 기자

현재 노동자들은 장애물센서 점검에 적어도 ‘목숨’은 걸지 않고 있다. 애물단지였던 장애물센서는 고장이 적은 레이저 센서로 교체됐고, 고정문도 승강장에서 여닫을 수 있는 비상문으로 교체됐거나 교체될 예정이다. 더는 노동자가 선로 안으로 몸을 넣을 필요가 없다. 노동자들은 “교통공사 직원이 된 뒤 ‘2인1조’ 작업 원칙은 확실히 지켜지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수리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은 열차 운행 종료 뒤 야간에 한다. 물론 이는 교통공사-하청업체 구조에서도 안전을 위해 갖춰야 할 조건이고, 지켜야 할 원칙이었다. 하지만 원청 업무를 쪼개 하청을 주며 갑을 관계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된다고 노동자들은 말한다. 원청-하청의 갑을 관계에서 안전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묻힐 수밖에 없고, 용역비를 받아 이윤을 내려는 하청업체에 노동자의 안전은 뒷순위로 밀리기 때문이다.

“그때는 당연히 그렇게 일하는 거로 알았죠. 그렇다고 (안전에 관해) 문제 제기를 함부로 할 수 없었어요.”(박창수씨) 장애물센서에 문제가 있고, 선로에 몸을 넣어서 작업하는 게 위험하다는 것은 김군과 박창수씨 모두 알았지만 바꿀 수 없는 현실이었다. 임선재 지회장은 “태안화력에서 노동자들이 수차례 작업환경 개선을 요청했지만 묵살당했다고 한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작업 안전 개선이나 장비 교체를 요구해도 은성(하청업체) 시절에는 씨알도 안 먹혔다고 한다. 외주화 시절에는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교통공사는 2013년, 2015년, 2016년 승강장 안전문 사고 직후 “하청업체가 2인1조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며 계속 책임을 미루었다. 하지만 진상규명위의 사고 조사 보고서 등을 보면 원청-하청 구조에서 2인1조 원칙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보고서에는 “서울메트로는 승강장 안전문 정비 인력을 과소 설계하여 작업 인력 부족 문제가 발생했다”고 돼 있다. 당시 서울메트로는 하청업체(은성PSD)와 용역계약을 하며 97개 역에 125명을 소요 인력으로 산정했는데 이마저도 행정인력(15명)과 전적자(서울메트로 퇴직자)가 자리를 차지해, 실제 현장 정비 인력은 절반인 60여 명에 불과했다. 게다가 서울메트로가 “점검을 철저히 하면 유지·보수가 불필요하다”며 유지·보수 비용을 빼고 용역비를 산출해 이전 계약(2011년)보다 용역비가 14억4천만원이 적게 지급됐다. 이는 하청업체의 인력 확충을 제한했고, 김군 같은 저임금 초급 기술자를 고용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보고서에는 “4~6명이 48개 역을 담당해 현실적으로 2인1조 작업이 불가능했다”고 쓰였다. 서울메트로가 2015년 강남역 사고 뒤 하청업체에 1인 근무를 2인1조로 일한 것처럼 서류에 허위로 기록하라는 지시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김군이 홀로 승강장 안전문을 수리하러 나간 날 근무조 중 1명이 정규직 요구 집회에 참석했다는 사실이 나중에 드러나 논란이 됐지만, 만성적 인력 부족으로 사고 위험은 늘 존재했다. ‘고장 접수 후 1시간 이내에 출동을 완료’하고, ‘정당한 사유 없이 이를 이행하지 못하면 지연배상금을 청구’한다는 서울메트로와 하청업체 사이의 ‘과업지시서’ 규정은 김군과 동료들이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쫓기듯 일하게 만들었다.

정비 인력 두 배 가까이 늘어

현재 승강장 안전문 정비 인력(TO)은 206명으로 2016년보다 두 배 가까이 늘었다. 4개 PSD 관리소에서 121개 역을 30개씩 나눠 관리하고 있다. 서울교통공사 직접고용 뒤 ‘1시간 출동 규정’은 당연히 사라졌다. 승강장 안전문을 매일 점검하고 수리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한 인력이라 노조는 인력 충원을 요구한다. 하지만 최소한 2인1조 근무가 지켜지는 것에 박창수씨는 이렇게 말했다. “과거 하청업체에서 내가 받은 돈은 ‘사업비’였다. 업체가 사업비로 이윤을 남기려면 두 명을 고용하는 대신 한 명을 쓰는 구조였다. 하지만 공사 직원이 된 뒤 내가 받는 것은 ‘인건비’다. 그것이 큰 차이다.”

외주화한 업무를 다시 하나로 합쳐 업무 체계가 일원화되고 현장 노동자들 사이에 소통이 활성화되면 작업 안전이 강화된다는 ‘평범한 원칙’도 뒤늦게 확인되고 있다. 24시간 승강장 안전문 관제 시스템이 구축돼 교통공사 본사 ‘컨트롤타워’에서 각 지하철역의 상황을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열차 운행을 통제하게 됐다. 승강장 안전문 정비 노동자의 보고·출동 체계도 간소화됐다. 12월23일 찾은 동대문역사문화공원 PSD관리소에는 모니터 4개가 설치됐다. 승강장 폐회로텔레비전(CCTV) 화면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어, 역마다 승강장 안전문의 고장 여부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과거에는 장애 신고가 접수되면 별다른 정보 없이 현장으로 가서 상황을 파악해야 했다면, 이제는 정비 노동자들이 출동 전에 현장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과거에는 서울교통공사 직원들과 하청업체 직원들이 서로의 업무에 관여하지 않았다. 그래서 승강장 안전문을 정비할 때 해당 역사무소에서 이를 모르는 일이 많아 안전 매뉴얼이 있어도 무용지물이었다. 현재는 역무원과 승강장 안전문 정비 노동자 사이에 소통이 이뤄진다고 한다. 임선재 지회장은 “예전에는 역무원들이 우리를 외부 업체 직원, 에어컨 수리 기사를 부르는 느낌으로 대했다면, 지금은 동료 직원으로 대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고 했다. 하청업체에서 전동차 경정비 업무를 했던 유성권 서울교통공사 노조쟁의국장은 “사고가 아예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직접고용 뒤 산업재해 건수가 줄어드는 등 안전 문제는 개선되고 있다. 특히 안전과 관련된 작업 중지 같은 결정이 예전에는 여러 단계를 거쳐야 했다면, 현재는 바로 처리돼 문제 해결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승강장 안전문 고장 발생 건수만 봐도 2016년 6657건에서 2018년 3250건(11월 말 기준)으로 줄어드는 등 직접고용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서로 업무를 몰랐던 역무원과 정비 노동자

정규직화 이후 문제는 다른 곳에서 불거졌다. 기존 정규직들이 정규직 전환자들을 ‘무임승차자’ ‘일자리 도둑’으로 규정하며 갈등이 계속됐고, 채용 비리 의혹마저 제기돼 감사원 감사를 받는 등 뒤숭숭한 상황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승강장 안전문 노동자들이 김군처럼 시간에 쫓겨 위험한 작업환경에 몸을 던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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