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처음 웃었다. 아들을 잃은 뒤 사고 현장에서, 빈소에서, 거리에서 울부짖고 흐느꼈던 엄마가 옅은 웃음을 띠었다.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아들의 동료도 꼬옥 안아줬다. 2018년 12월27일, 아들 이름을 딴 법안 처리에 대한 여야 합의가 극적으로 이뤄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위원회 회의실 앞에서다.
김용균의 엄마 김미숙씨는 위험의 외주화를 방지하는 내용을 뼈대로 하는 ‘김용균법’(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전부 개정안에 여야가 합의했다는 발표가 나오자 “너로 인해서 다른 사람들이 살 수 있었다고, 엄마가 가서 얘기해줄게”라며 기뻐했다.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인 아들이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뒤, 엄마는 슬퍼할 겨를도 없이 국회로 달려갔다. 12월24일, 26일, 27일 여야가 협상하는 회의실 앞에 종일 서서 때로는 “제2의 김용균이 생기지 않게 해달라”고 호소하고, 때로는 “왜 이렇게 애를 먹이냐”고 소리쳤다.
김씨의 절규는 자유한국당을 향했다. 김용균의 처참한 죽음에 함께 분노하는 여론 속에 무난히 통과되리라 예상됐던 산안법은 12월26일 자유한국당이 재계의 반발 논리를 들어 막판 ‘공개토론’을 제안하면서 한때 연내 처리가 불투명해졌다. 그러나 이튿날인 27일 문재인 대통령의 ‘김용균법 연내 처리’ 지시로 분위기가 극적으로 반전됐다. 청와대 특별감찰반 논란과 관련해 ‘조국 민정수석을 국회에 출석시키라’는 자유한국당의 요구를 청와대와 여당이 수용하기로 한 것이다. 엄마는 이날 밤 국회 본회의장 방청석에서 법안이 통과되는 장면을 끝까지 지켜봤다.
한때 김용균법은 ‘구의역 김군법’으로 불렸다. 2016년 5월 서울 구의역에서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였던 19살 김아무개군이 홀로 승강장 안전문을 수리하다 참변을 당한 뒤 산안법 개정 논의가 불붙었다. 그러나 가장 열악한 지위의 노동자를 위한 법안 논의는 빠르게 현안에 묻혔다. 2018년 2월 정부가 뒤늦게 관련 논의를 모아 전면 개정안을 만들고 의견 수렴에 들어갔지만, 재계는 ‘사업주에 1년 이상 징역형을 명시한 처벌 규정이 과도하다’ ‘유해 작업의 하도급 금지 조항은 기업의 계약 체결 자유를 침해한다’며 조항 하나하나에 문제를 제기했다. 여기에 탄력근로제 등 다른 노동 현안에서 전선을 펼친 여야도 이 법안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으면서 법안 논의는 또 해를 넘기는 듯했다.
김용균의 죽음이 다시 살려낸 개정안은 법의 보호 대상을 기존 ‘근로자’에서 ‘노무를 제공하는 자’로 확대했다. 최근 특수형태 근로종사자와 배달 노동자, 가맹사업 종사자 등 노동 형태가 다양해진 현실을 반영했다. 또 사업주가 자신의 사업장에서 도금 작업처럼 유해하고 위험한 작업을 도급(하청) 주는 것을 금지했다. 다만 일시·간헐적으로 작업하는 경우 등에 예외적으로 허용된다. 위험한 업무를 하청업체 비정규직 등에게 떠넘기는 관행을 막기 위한 조처다. 이와 함께 중대 재해가 발생했거나 재발 우려가 있는 경우 고용노동부 장관이 작업 중지를 명령해 노동자를 보호하도록 했다.
원청의 산업재해 예방 책임도 강화된다. 개정안은 사업주의 도급 책임 범위를 자신의 사업장뿐 아니라 ‘도급인이 제공하거나 지정한 장소로서 도급인이 지배·관리하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장소 등’으로 확대했다.
또 안전·보건 조치 의무를 위반해 노동자를 죽게 한 사업주에게는 현행대로 7년 이하 징역형 또는 1억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되, 5년 이내에 같은 죄를 지었을 경우 가중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전화신청▶ 1566-9595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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