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청주대 #미투, 그 엔딩은 다시 쓰여야 한다

가해자의 자살로 끝이 알려진 청주대 #미투…

당사자들은 연출로, 배우로 복귀해 ‘권리장전’ 지키는 연극 만드는 중
등록 2018-12-08 11:01 수정 2020-05-03 04:29
<font color="#008ABD">그 많았던 #미투는 다 어떻게 되었을까. #미투 결산 기사는 아주 단순한 질문에서 출발했다. 우리가 아는 것은 #미투의 시작일 뿐 #미투의 전부가 아니다. 스포트라이트가 꺼진 지금도 #미투는 진행 중이다.
2018년 #미투 이후에 대한 기사를 ‘가해자 사망’이라는 비극으로 각인된 청주대 연극학과 #미투로 시작하는 이유는 청주대의 사례가 #미투의 좌절보다는 도약을, #미투가 부딪힌 벽보다는 넘어선 문턱에 대한 가장 극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물론 성차별의 벽은 여전히 공고하다. 은 지난 3월 정부가 설치한 ‘공공부문 성희롱·성폭력 특별 신고센터’ 접수 사건 중 선정위원회를 거친 36건의 피해자 직접 지원 사례를 전수분석했다. 국립국악원, 동덕여대 등 직장 내 성폭력을 고발한 여러 #미투의 피해자들이 가해자와 다시 대면하는 등 고통 속에 놓여 있었다. 한국의 1호 #미투 서지현 검사는 죽기 전에 검찰 조직이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을까 의심한다고 했다. 직장 내 성폭력 이후 정신적 피해로 인한 업무 능력 상실을 산업재해로 인정해야 한다고 믿는 피해자들도 만났다. 직장 내 성폭력 피해자들이 말하는 #미투를 잘했다고 느끼는 순간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봤다.</font>
[%%IMAGE2%%]

2018년 3월9일 오후 제자들로부터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된 배우 조민기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됐다는 속보가 전해졌다. 하루 전날인 8일 《SBS 8 뉴스》에는 2016년 11월 불거진 조씨의 성추행 의혹을 학교 쪽이 무마한 정황이 있다는 보도(조민기 2년 전에도 ‘성 추문 논란’…사흘 만에 ‘음해’ 결론)가 나왔다. “추가 피해를 막을 수 있었던 중요한 기회가 그렇게 사라졌”다는 이 보도는 조씨가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에 내몰리는 상황을 막을 ‘기회’에 대한 것이기도 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가해자와 피해자, 모두가 빼앗긴 ‘기회’</font></font>

지난 11월30일 만난 ‘성폭력 반대 청주대 연극학과 졸업생 모임’의 강윤지(26)씨는 바로 그 ‘기회’에 대한 이야기부터 꺼냈다. “졸업생 모임이 꾸려진 뒤 새로 알게 된 일이 있다. 2015년 한 피해자가 학교 상담실로 피해 사실을 알리려고 전화했는데 상담실이 ‘바쁘다’고 전화를 끊었다는 것이다. 2016년 영화학과 학과사무실로 전화가 걸려온 일도 있었다. 2017년에는 국민신문고 고발이 학교에 이첩돼 징계위원회가 열렸다. 중징계라고는 하지만 정직 3개월은 방학 때 쉬고 나오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미투 이전 공동체가 놓쳐버린 내부 해결의 기회는 피해자와 가해자를 똑같이 덮쳤고, 가해자의 사망까지 피해자들이 책임지는 또 다른 비극을 낳았다.

조씨 사망 하루 전날 SBS 보도가 있던 시각 ‘성폭력 반대 청주대 연극학과 졸업생 모임’은 발족 이후 두 번째 정기 모임을 하고 있었다. 강윤지씨는 당시 보도를 보고 “여기서 시작하면 되겠다”고 실마리를 찾았던 순간을 아직도 기억한다. 강씨의 계획은 다음날 조씨 사망 소식과 함께 물거품이 됐다. 연극학과 11학번 재학생·졸업생의 지지 성명, 연극학과 전체 졸업생의 지지 성명에 이어 실제 미투 고발에 나선 ‘피해자 연대’의 성명서도 휴지 조각이 됐다. 20여 명의 피해자로 꾸려진 피해자 연대 이아름(24)씨는 당시 작성하던 성명서 초안을 아직도 기억한다. “사회가 강요하는 피해자다움에 갇히지 않고 당당하고 용기 있게 얘기하겠다. 우리의 목소리가 다른 피해자들에게 용기가 될 거라 믿는다.” 조씨의 사망은 과거의 성폭력 고발을 넘어 미래의 성평등 문화를 꿈꾸던 청주대 연극학과 공동체를 ‘1차 피해’도 모자라 ‘2차 피해’의 지옥으로 밀어넣었다.

“‘미투가 사람을 죽였다’ ‘말하지 않았으면 살렸을 거다’ ‘너희가 살인자다’. 포털 베스트 댓글을 보지 말자고 하면서도 계속 보게 됐다. 고소하려고 자료를 모았는데 결국 못했다. ‘우리가 또 누구를 그렇게 만들면 어떻게 하지?’ 두려웠다. 우리가 그를 그렇게 만든 게 아닌데, 그가 그를 그렇게 만든 건데, 그냥 두려웠다. 3월은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아무도 그때의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다.”(이아름씨)

그렇다면 청주대 연극학과의 #미투는 비극으로 끝났을까. ‘청주대 연극학과 교수 성폭력 사건’에 대해 대중이 아는 결말은 가해자로 지목된 유명 배우의 사망뿐이다. 은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닌 변화한 것을 취재했고, 대중이 무관심한 사이 진행된 반전의 결말을 찾았다. 지난 12월2일 일요일 오후 서울 대학로의 한 연습실에서 만난 강씨와 이씨, 그리고 ‘성폭력 반대 청주대 연극학과 졸업생 모임’ 졸업생들 한명 한명이 변화의 ‘증거’였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두 번째 미투’는 연극계 전반 </font></font>

“그런데 이거 너무 폭력적인데요. 루피 배우님이나 틸틸 배우님 마음은 괜찮은지 내상이 걱정돼요.”

이날 찾은 연습실에서는 일주일 뒤 무대에 오르는 공연의 에피소드 ‘청소하는 조연출’ 연습이 한창이었다. 배우 백혜경(26)씨가 ‘너무 폭력적’이라고 지적한 장면은 남성 연출이 여성 조연출을 모욕하는 장면이었다. “작업 다 같이 하는 거다, 언제까지 옛날처럼 할 거야”라고 번듯한 소리를 하던 연출에게 “그러면 다 같이 쓰는 연습실 청소를 다 같이 하면 안 되냐”고 제안한 뒤 벌어진 일이었다. 조연출의 순진한 제안에 연출은 “극단을 위해서 청소 하나 못해? 그따위로 해서 무슨 연극을 하냐” “시대가 좋아졌다지만 연출한테 따박따박 대드냐” “너 아니어도 싹싹하고 예쁜 애들 많으니 꺼지라”는 등의 폭언을 쏟아낸다.

이 장면은 연출을 맡은 강윤지씨가 #미투 이후에 겪은 경험담이 기초가 됐다. “연극 연습실에는 피라미드가 있다. 꼭대기에 ‘왕’인 연출이 있고, 조연출은 피라미드 끝이다. #미투 이전 조연출을 했을 때는 청소를 하라면 청소를 하고 배우들 물을 떠다 놓으라면 물을 떠다 놨다. 이제는 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 거절한다.”

강씨는 연습실에 존재하는 피라미드에서 생기는 ‘위계 폭력’과 ‘성폭력’이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라고 했다. “내 옆에 앉은 여자 후배에게 술을 따르라 말하고, 분위기 칙칙하니까 술자리에 여자 후배들 나오라고 말한다. 위계의 상위에 있는 이들이 저지르는 폭력은 언제든 성폭력으로 바뀔 수 있다. #미투 이후 성폭력이 나쁘다고만 할 뿐, 위계 폭력이 나쁘다고 하지 않는 문제를 지적하고 싶었다.”

강씨는 ‘청소하는 조연출’의 대본을 직접 썼다. 연습 과정에서 다른 배우들의 경험담이 대본에 추가됐다. 예술적으로는 연극에 대한 문제 제기를 연극으로 하는 ‘메타 연극’이지만, 20대 중반 젊은 연극인들이 ‘연극판’에서 실제 경험한 ‘실화’를 토대로 한 장면은 성차별적이고 폭력적인 연극 제작 과정에 대한 고발이다. 청주대 연극학과 구성원들의 ‘두 번째 미투’는 연극계 전반을 겨냥한다.

공연에 오르는 세 에피소드 중 ‘필모그래피’는 연극계의 큰 상을 휩쓰는 유명 작가가 후배 여자 배우에게 이런저런 충고를 하는 내용으로 연극계 내 여성 혐오를 여실히 드러낸다. 자신이 쓰는 ‘히어로물’의 배역을 주겠다는 작가는 “슈트를 입은 멋진 악당”을 하고 싶다는 후배에게 “여자가 무슨 슈트야? 치마 입어, 치마. 혜경아, 남자랑 여자랑 싸우면 그게 되겠어?”라고 훈계한다. 주변적이고 남자의 부속물 정도로 그려지는 여성 배역에 실망하고 자리를 뜨는 후배에게 “마침 여자 원톱(단독 주연)인 얘기가 둘 있다”며 “하나는 모성애 얘기고, 하나는 창녀 얘긴데 이것도 기깔나(기막혀). 어때 뭐 할래?”라고 묻는 장면은 그저 ‘웃플’ 뿐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금지 언어에서 긍정 언어로</font></font>

무엇보다 이번 는 연극 내용보다 제작 방식이 특별하고, 무대보다 연습실이 새롭다. 제작진이 ‘권리장전’을 공유하는 게 대표적이다.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거나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낀다면 언제든 작업을 중단할 수 있는 권리” “성적 불쾌감을 느끼는 발언을 하거나 위계를 작동시킨다고 느낄 때 (모든 혐오 발언 포함) 그를 저지하거나 나의 입장과 의견을 발화할 권리” 등 모두 15개 조항으로 이뤄진 권리장전은 피라미드 같은 연극계 내 ‘위계 문화’를 대체하는 새로운 문화를 대변한다.

강씨는 여성의 전화 내규를 수정해 이 권리장전을 만들었다. “10분 희곡 페스티벌을 준비할 때 썼던 내규는 성희롱적 발언을 하지 않는다, 차별과 혐오 발언을 하지 않는다, 품평하는 발언을 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예술가에게 뭔가를 금지하는 방식으로 돼 있었다. 다른 언어는 없을까 고민하다가 긍정의 언어로 바꿨다.” 강씨는 ‘시카고 시어터 스탠더드’(CTS)를 살펴보고 있다고 했다. 시카고 스탠더드는 2015년 초 미국의 연극계 내 성폭력 피해자·연대자들이 벌인 ‘낫 인 아워 하우스’(Not in Our House·우리 극장에선 안 돼) 운동의 성과물로 일종의 ‘성평등 공연 규정’이다. 지난 11월29일 한국예술종합학교 여성활동연구소가 연 ‘2018 정기 심포지엄’은 ‘한예종 스탠더드’를 만들기 위한 자리였다. 강씨의 권리장전은 ‘청주대 스탠더드’가 될까.

자극적인 피해 사실에 가해자를 비난하다가도 가해자의 비극 앞에 피해자를 원망하는 이중적인 사회는 그대로다. 변한 것보다 변하지 않은 것이 더 많다. 하지만 #미투의 당사자들은 변했다. 의 세 에피소드는 대충 보면 변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지만, 자세히 보면 ‘변화’에 대한 이야기다. ‘감히’ 연출에게 청소를 같이 하자고 제안하는 조연출, 촉망받는 작가의 여성혐오적 배역 제안을 거절하는 후배는 현실에서의 이아름이고, 백혜경이다.

“#미투 이전에는 폭력적이고 여성을 비하하는 대사가 불편한 줄도 몰랐다. 작품이니까 다 용인했다. 이제는 아무리 작품이어도 ‘이건 아니지 않나’ 싶으면 말이 통하는 대상을 찾아 이야기를 한다. 연출도 달라졌다. 관객이 문제 제기하면 성차별적인 장면을 수정한다.”(이아름씨)

“#미투 이전에는 인지하지 못했고, 작품이 불편해도 참고 따라갔는데 #미투 이후에는 조금이라도 이견이 생기면 바로바로 얘기할 수 있는 힘이 내 안에 생겼다. 여전히 대부분은 ‘그렇게까지 예민해야 돼?’라고 반응하지만, 이제 더 이상 허용할 수 없다.”(백혜경씨)

이들은 #미투의 당사자에서 연출로, 배우로, 원래 제자리로 복귀하고 있다. 12월2일 연습실에서 만난 강씨는 지난 3월 #미투 이후 본업인 연출로 언론 인터뷰를 한 것이 처음이라고 했다. 수많은 영상과 기사에 등장했지만 강씨를 연극 연출로 소개한 기사는 없었다. 졸업생 모임에서 언론 대응을 전담한 그는 한동안 #미투의 ‘활동가’였기 때문이다.

청주대 #미투의 결말은 대중의 뇌리에 남은 것과 다르다. 청주대 #미투의 결말은 가해자의 사망이 아니라, 청주대의 변화다. 청주대는 #미투 이후 학교 내 성폭력 사건을 심의하는 양성평등위원회가 총장 직속 성폭력특별위원회로 격상됐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올해 실시한 ‘대학 내 성희롱·성폭력 실태 조사’를 보면, 전국 306개 대학 가운데 총장 직속 또는 독립기구로 독립성을 확보한 성희롱·성폭력 기구는 34곳(11.1%)에 불과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하지 않는 질문 ‘무엇이 변했나’</font></font>

청주대 교내 화장실 전체에 불법 동영상(몰카) 방지 비상벨이 설치됐고, 올해 최초로 교수를 포함한 대학 구성원 전체에 대한 성폭력 예방 동영상 교육도 했다. 임정섭 청주대 학생종합상담센터장은 “시간강사들의 경우 해당 교육 수료증이 없으면 아예 강의를 할 수 없도록 내부 규정을 만들었다. 12월 초까지 전임교수를 포함해 구성원의 80%가 강의를 수료한 상태다”라고 말했다. 연극학과 #미투에 대한 진상조사위원회의 최종 보고서도 11월 말 나왔고, 피해자들에 대한 설명회만을 남겨두고 있다. 11월부터는 연극학과 재학생은 물론 졸업생 전원에게 ‘성폭력 피해 실태 전수조사’도 하고 있다.

임 센터장은 에 청주대를 ‘성폭력 학교’로 낙인찍는 부정적인 기사가 나갈 것을 내내 우려했다. 그는 #미투 이후 ‘학교는 무엇이 변했냐’는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했다. 적지 않은 피해자들이 아직도 가해자 사망 당시에 가해진 ‘2차 피해’의 트라우마로 고통받고 있다. 성폭력 피해 고발 너머 성평등으로 가는 #미투의 도약을 가로막는 것은 정말 누구일까.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독자 퍼스트 언론, 정기구독으로 응원하기!


전화신청▶ 1566-9595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font color="#C21A1A">http://bit.ly/1HZ0DmD</font>
카톡 선물하기▶ <font color="#C21A1A">http://bit.ly/1UELpok</font>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