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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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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유세 트라우마 벗어라

‘보유세 강화 시민행동’, 정부에 일침…

사회가 만든 토지가치 사회가 환수해야 불평등 해소
등록 2018-10-27 14:57 수정 2020-05-03 04:29
10월17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옥상에서 최지희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왼쪽)과 남기업 토지+자유연구소 소장이 이야기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10월17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옥상에서 최지희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왼쪽)과 남기업 토지+자유연구소 소장이 이야기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부동산 투기라는 호랑이가 우리를 탈출해 거리를 활보하면서 대한민국을 갈기갈기 찢어놓고 있다. 소수의 부자들은 너무 좋아하고, 타이밍을 놓친 사람들은 억울해하고 있으며, 무주택 서민들은 절망에 빠져 있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황.”(‘보유세 강화시민행동’ 출범 선언문 중)

종합부동산세(종부세)를 향해 ‘세금폭탄’이라고 비난을 쏟아내는 이들이 있다면, 다른 한편에 종부세를 넘어 부동산을 보유하는 것 자체에 세금을 물리는 보유세를 강화해 ‘부동산 불평등’을 해결하고 투기를 뿌리째 뽑아야 한다는 이들이 있다. “호랑이에게 자유를 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과다 대표되는 현실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다는 것으로, 이제는 호랑이를 우리 안에 가두는 근본적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런 생각을 가진 이들이 ‘부동산 불평등 해소를 위한 보유세 강화 시민행동’(시민행동)이라는 이름 아래 뭉쳤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민달팽이유니온, 참여연대, 토지+자유연구소, 헨리조지포럼 등 10개 시민사회단체는 10월10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출범식을 열어 “시민들이 정부와 국회를 직접 압박해 보유세 강화를 관철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시민행동 공동대표인 남기업 토지+자유연구소 소장, 최지희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을 10월17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1층 카페에서 만나 시민행동의 출범 취지와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봤다.

보유세 강화 시늉뿐인 정부

“문재인 정부 들어 아홉 번의 부동산 대책이 발표됐습니다. 과거보다 체계화됐고, 금융 규제 대책도 촘촘한 편입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보유세 강화는 시늉만 한 것 같아요.”(남기업 소장)

시민행동이 출범한 계기는 문재인 정부에서 발표한 아홉 차례의 부동산 대책에서 ‘주인공’이 되지 못한 보유세 때문이었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12월 보유세 강화 방침을 밝히고 대통령 직속 재정개혁특별위원회(재정특위) 권고안 등을 참고해 지난 7월 종부세 개편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10년 만에 나온 정부의 종부세 개편안은 세수 효과가 재정특위 권고안보다 약 3500억원 줄어드는 등 ‘찔끔 인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참여정부 시절 ‘종부세=세금폭탄’ 프레임에 시달린 트라우마 때문에 종부세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이후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정부는 9월13일 ‘주택시장 안정대책’(9·13 대책)을 발표하며 집값이 급등한 서울 등 43개 조정대상지역에서 종부세 세율을 최고 3.2%까지 올리기로 했다. 과세표준 3억~6억원(1주택 시가 기준 18억~23억원) 1주택자의 세 부담도 늘렸다. 급격하게 치솟는 집값을 잡으려는 긴급 처방 성격이 강했다.

시민행동은 “보유세 하나만으로 부동산 문제를 해결할 순 없지만, 보유세 강화 없이 부동산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부동산 불로소득을 환수하는 가장 좋은 수단은 부동산의 기대수익률을 떨어뜨리는 것이며,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가장 강력한 수단이 바로 보유세 강화다”라고 주장한다. 남 소장은 이에 대해 “불필요한 부동산을 보유하는 것은 돈을 벌기 위해서다. 보유세 강화로 부동산 기대수익률이 줄어들면 꼭 필요한 경우만 토지와 부동산을 살 것이다. 실수요자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되는 가장 좋은 수단이다”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주장의 배경에는 부동산 보유와 그로 인한 소득이 소수에게 몰리는 현상이 계속 심화되는 현실이 자리잡고 있다. 경실련과 정동영 민주평화당 의원이 ‘지난 10년간 토지·주택 등 부동산 소유 통계 자료’(2007~2017년)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주택 공시가격 기준으로 상위 1%가 지난해 보유한 주택은 평균 6.7채로 2007년(3.2채)보다 두 배 늘었다. 상위 1%의 주택 공시가격 총액도 202조7천억원으로, 10년 전(2007년 123조8천억원)보다 두 배가량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상위 10%로 넓히면 3.3채로 2007년(2.3채)보다 1채 늘었다. 경실련은 “정부가 주택 공급을 확대하더라도 상위 1~10%의 다주택 보유자들이 주택을 독식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불로소득 환수로 투기 근절
‘보유세 강화 시민행동’이 10월10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출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보유세 강화 시민행동’이 10월10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출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시민행동이 보유세 강화를 외치며 부동산 불로소득을 환수해야 한다는 주장의 바탕에는 ‘부동산이 사회적 자산’이라는 명제가 자리잡고 있다. 토지와 건물의 가치는 사회가 만들어내기 때문에 여기서 생긴 불로소득의 일부를 세금으로 환수하는 것이 부동산 불평등과 그 때문에 벌어지는 청년·저소득층의 주거 문제를 해결하는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남 소장은 “보유세는 사회가 교육시설·도로·지하철 등 좋은 인프라로 주는 혜택에 대한 대가를 내라는 것이다. 투기가 목적이든 아니든 지금까지 혜택의 대가를 적게 냈으니 이제 제대로 내자는 것이다. 이건 보수가 목청 높이는 시장경제를 제대로 하자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 정책을 바탕에 깔아야 공공임대주택, 청년을 위한 주택을 공급하기가 쉬워진다”고 덧붙였다. 이는 토지 가격 상승으로 생기는 이익에 무거운 세금을 매겨야 한다는 미국의 경제사상가 헨리 조지의 ‘토지공개념’과 맞닿아 있기도 하다.

최근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국토보유세’를 제안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국토보유세는 일정 기준의 공시가격을 초과하는 토지와 건물 소유자에게 부과하는 종부세, 모든 토지와 건물 등에 개별적으로 부과하는 재산세에서 토지만을 떼어 통합적으로 과세하자는 것이다. 이 지사는 이렇게 마련된 재원을 기본소득으로 배분한다는 구상을 내놨다.

청년들의 열악한 주거 현실을 공개하고 정책 제안 활동을 벌여온 민달팽이유니온이 시민행동에 참여한 이유도 부동산 불평등이 청년들의 현재와 미래를 옥죌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최근 온라인에서 “청년들은 방 한 칸에 살면서도 매달 50만원씩 1년에 600만원을 월세로 내고 있는데, 30억원 부동산 가진 사람 종부세가 그것보다 적으면 안 되는 것 아니냐”는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의 언론 인터뷰가 화제가 됐다. 특히 주거 불안을 겪는 청년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최근 에스엔에스(SNS)에서 ‘나도 종부세 내고 싶다’는 자조 섞인 반응이 나오잖아요. 청년들은 돈을 벌어도 구조적으로 안정적 주거를 누리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이 구조가 언제쯤 바뀔 수 있는지 기대는 해보지만 나오는 대책들은 복잡하고 어렵고….”(최지희 위원장)

보유세 재원으로 공공임대주택 건설을

종부세 논란이 벌어질 때마다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서울 강남 아파트에 사는 소득 없는 고령층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최 위원장은 “왜 강남의 특정한 사례만 언급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청년 문제를 이야기할 때마다 기존에 있는 자원도 부족한데 청년이 들어갈 자리가 있냐는 반응을 자주 접한다. 그렇다면 보유세 강화로 생긴 재원으로 청년과 소외계층 등의 보편적 주거권 보장을 확대하면 되지 않냐”고 말했다.

시민행동은 문재인 정부가 보유세 강화에 전향적인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남 소장은 “보유세 강화는 국가적 과제고,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 대책이다. 청와대가 주도해서 국민을 설득하고 여당도 같이 움직여야 하는데, 재정특위를 만들어서 ‘권고안 내면 받아줄게’라는 방식으로 하면 떠넘기기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지난 10년간 종부세가 무력해지고 지금도 시늉만 내는 것을 보면 정책 결정자들이 재산세·종부세 대상이라서 그런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고 꼬집었다.

시민행동은 문재인 정부가 보유세 실효세율(납세자가 실제 내는 세금이 과세 대상 소득이나 재산에서 차지하는 비중) 1%(2016년 기준 0.16%)를 목표로 한 정책을 제시하고 임기 중에 실효세율 0.5%를 이루라고 요구한다. 또 공정시장가액비율(세금 부과 기준인 과세표준을 정할 때 적용하는 공시가격 비율)을 폐지하고, 공시가격의 시세 반영률 85% 달성을 위한 구상안 제시도 요구한다. 이렇게 보유세로 마련한 재원은 신혼부부·청년·주거취약계층 등을 위한 공공임대주택 건설에 최우선으로 써야 한다는 게 시민행동의 주장이다.

“보유세 강화 안 되면 촛불도 불사”

현재 시민행동은 보유세 강화 서명 캠페인을 하고 있다. 서명을 모아 11월1일 청와대에 보유세 강화를 요구하는 면담을 신청할 계획이다. 남 소장은 “보유세 강화 여론이 높은 지금이 적기다. 서명운동으로 안 되면 촛불까지 들 생각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9월12일 전국 500명에게 한 여론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4.4%포인트)에서 응답자들은 종부세 강화에 56.4%가 “찬성한다”(매우 찬성 32.5%, 찬성하는 편 23.9%)고 했다. “반대한다”(매우 반대 11.7%, 반대하는 편 19.0%)는 30.7%로 집계됐다. 한국갤럽이 지난 7월(3~5일) 1002명에게 한 여론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에서도 종부세를 “현재보다 올려야 한다”는 응답이 51%로 집계됐다(낮춰야 한다 11% vs 현재 수준 유지 27%). 과거 참여정부 시절 종부세가 대통령 지지율 하락의 주범으로 지목되던 것과 다른 양상이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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