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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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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종부세를 혐오했는가

종부세 무력화의 역사 짚어보니…

대통령부터 장관까지 종부세 이해당사자였다
등록 2018-10-27 14:38 수정 2020-05-03 04:29
2008년 9월23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 중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08년 9월23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 중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오제세 위원(당시 통합민주당 의원)

“아니, 아파트를 파시고 재산을 늘리시고 한 것을 묻는 것이 아니라 재산 액수 자체가 31억, 아드님 재산을 빼더라도 본인 재산이 25억 정도 되시는데 25억의 재산을 가진 사람을 중산층으로 보시는지, 상류층으로 보시는지 하는 것을 여쭈어보는 겁니다.”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후보자 ○○○

“저는 지난 10년 사이 상당 기간 정규직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21억으로 올랐다 하더라도… 우리 아파트가 노무현 정부가 시작될 때보다 3배 정도가 뛰었습니다. 뛰었습니다마는 저에게는 하나의 소득이 없고 오히려 종부세만 더 많이 내게 되기 때문에….”

2008년 2월27일 국회 재정경제위원회(기획재정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의 한 대목이다. ○○○은 누구일까? 바로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다. 후보자의 재산이 많다는 인사청문위원의 질문에 답하다가 뜬금없이 자신의 처지와 종합부동산세(종부세)의 관계를 언급했다. 종부세에 대한 노골적인 혐오를 드러낸 것이다.

기재부 장관은 종부세 납세자
2008년 11월13일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이 종합부동산세 위헌 여부 결정 선고를 위해 대심판정에 들어서고 있다. 한겨레 자료

2008년 11월13일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이 종합부동산세 위헌 여부 결정 선고를 위해 대심판정에 들어서고 있다. 한겨레 자료

강 전 장관이 낸 종부세는 얼마일까. “10년 전에는 5억원으로 신고가 됐는데 21억원으로 신고가 돼서 4배가 올랐다. 집값이 워낙 많이 올랐기 때문에 세금이 오른 것 아니냐”는 인사청문위원의 지적에, 그는 “작년 12월에 1700만원 정도를 냈다”고 답했다. 참여정부가 힘겹게 도입한 종부세의 운명이 이명박 정부에서 곧바로 무력화할 것이라는 예고편과 같은 장면이다.

참여정부 마지막 해인 2007년 종부세 대상자는 48만6천여 명으로 전국 세대의 2%만이 과세 대상이었다. 주택분 종부세를 내는 개인은 37만9천여 명으로 2채 이상을 가진 다주택 보유자가 전체의 61.3%인 23만2천 명, 전체 세액 중 다주택 보유자의 점유율은 71.6%였다. 기본적으로 종부세를 내는 이들은 ‘그들만의 리그’에 속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참여정부의 종부세는 ‘세금폭탄’ ‘현대판 가렴주구’ ‘징벌적 세금’ 등 저주에 가까운 비판에 시달렸다.

종부세를 처음 도입한 2004년, 그해 11월6일치 에는 ‘종합부동산세가 벌주는 몽둥이여선 안 돼’라는 사설이 실렸다. 집을 보유만 하고 있을 뿐인데 매년 내야 하는 세금이 늘어난다는 인식은 종부세 대상자가 아닌 이들에게도 조세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이른바 고가 주택을 소유한 고령자들의 부담과 저항만이 아니라, 이른바 화이트칼라 중산층들의 불만도 심각했다. 고가 주택의 ‘실효세율(납세자가 실제 내는 세금이 과세 대상 소득이나 재산에서 차지하는 비중) 1%’는커녕 0.3%밖에 가지 못했을 뿐인데 이른바 여론 주도층들의 반발이 터져나온 것이다.”(김수현, , 오월의봄)

결국 참여정부의 퇴장과 함께 종부세는 누더기가 될 운명을 갖고 있었다. 본인도 종부세 대상자인 이명박 전 대통령과 강만수 전 장관이 총대를 메고, 자신들의 핵심 지지층인 ‘여론 주도층’을 의식한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이 지원사격을 했다. 대규모 주택 공급 등 건설 경기를 부양해 경제를 활성화하려던 이명박 정부가 국정을 끌고 나가려면 종부세는 눈엣가시이기도 했다.

2007년 대선 기간부터 종부세 무력화는 예고됐다.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대선 경선 후보가 “서민을 살린다”면서도 종부세 완화를 공약으로 내세운 것은 예상됐던 대목이지만, 참여정부를 계승한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마저 대선을 코앞에 둔 2007년 12월2일 태도를 바꿨다. “현 정부의 종부세 근간은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보이던 그는 이날 ‘세금폭탄’이란 말이 다시는 대한민국에서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며 “종부세 도입의 원칙과 취지는 좋았으나 3년 사이 (부동산 가격이) 가파르게 올랐고 1가구 1주택 보유자들이 선의의 피해자가 됐다. 1가구 1주택 장기 보유자의 경우 종부세 부담을 줄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표를 의식한 것이었다.

결국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당선되며 ‘종부세 무력화 프로젝트’는 착착 진행됐다. 2008년 9월 이명박 정부는 대규모 감세안으로 평가받는 ‘9·1 세제개편안’을 발표하며 종부세 과표(세금을 부과할 때 기준이 되는 부동산의 가격) 적용률을 전년도 수준인 공시가격의 80%로 동결하고, 세 부담 상한선을 300%에서 150%로 낮추며 종부세를 완화하겠다는 신호를 시장에 보냈다.

세금폭탄 없앤다 공언

본격적으로 칼을 빼든 건 같은 해 9월23일이었다. 기획재정부(기재부)는 주택분 종부세 과세기준을 공시가격 6억원 초과에서 9억원 초과로 높여 종부세 납부 대상을 줄이는 종부세 개편안을 발표한다. 당시 1~3%이던 세율은 0.5~1%로 줄였다. 1가구 1주택 장기 보유자와 고령층에 대한 세액 감면도 담겼다. 종부세 과세표준 산정 방식을 기존 공시가격에서 ‘공정시장가액’이라는 개념으로 바꿔 종부세 부담을 낮추기도 했다. 공정시장가액은 공시가격의 80% 수준에서 대통령령으로 ±20%를 탄력적으로 적용하는 방식인데, 납세자들의 세 부담이 급격히 커진다고 판단되면 법 개정 절차를 밟지 않고 세금을 낮출 수 있다. 그 반대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이를 도입한 것은 사실상 종부세 납부 대상자들의 부담을 줄이려는 취지였다. 여당인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국민 정서를 고려해 반대 의견이 있었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이 강만수 전 장관에게 직접 “관철시켜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헌법재판소의 종부세 위헌 결정을 앞두고 강 전 장관의 보폭은 더욱 빨라졌다. 2008년 8월까지 종부세의 정당성을 담은 의견을 헌재에 제출했던 기재부는 10월 기존 의견을 철회하고 “종부세는 자유시장경제 원칙에 따라 사유재산을 보장하고 경제 활성화를 도모하려는 정부의 정책 방향에 배치되는 제도”라며 180도 다른 의견서를 새로 제출했다. 강 전 장관은 11월6일 대정부질문에서 “13일 선고되는 헌재 결정을 어떻게 예상하느냐”는 최경환 한나라당의 질문에 “헌재와 접촉했는데 확실히 전망할 수 없지만 일부 위헌 결정이 나올 것으로 본다”고 ‘당당하게’ 답하기도 했다.

결국 헌재는 강 전 장관의 ‘예언’대로 그해 11월13일 종부세의 세대별 합산 과세 조항에 위헌 결정을, 1가구 1주택 보유자에게 일률적으로 세금을 물리는 것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부동산 과다 소유와 투기 수요 억제, 지방재정 기여, 주거생활 안정 등 종부세의 입법 취지를 인정하면서도 종부세의 핵심 조항에 사형선고를 내렸다. 세대 합산 조항의 경우 공시가격 12억원짜리 집 한 채를 소유한 부부가 공동명의로 돌릴 경우 각각 6억원짜리 집을 가진 것으로 바뀌어 종부세 납부를 피할 수 있다. 헌재는 이에 대해 “가족 사이의 증여는 국민의 권리이고 이를 모두 조세회피로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결국 과세 대상자 80%가 종부세를 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정부의 개편안과 헌재의 결정을 대부분 반영한 종부세법 개정안은 2008년 12월12일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이듬해인 2009년 종부세 대상자와 세액은 반 토막이 났다. 단계적으로 실효세율을 1%로 올리고 과표기준을 공시가격의 100%로 올리려던 참여정부의 ‘종부세 로드맵’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강만수 전 장관, 헌재, 한나라당 등이 똘똘 뭉쳐 종부세 죽이기에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은 부동산 문제는 시장에 맡기고 공급을 확대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그 가치를 신봉하는 이들 대부분이 종부세 대상자인 게 눈에 띈다. 옛 진보신당이 2008년 9월 정부의 종부세 개편안이 나온 뒤 차관급 이상 정부 고위 공직자 51명을 분석한 자료를 보면, 39명이 주택분 종부세 대상자인데 정부의 개편안에 따라 33명이 감면받고 6명이 면제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대 감면 혜택을 받는 인사는 이명박 전 대통령인데 당시 2327만원(62%)의 감면 혜택(고령자 세액공제는 적용하지 않은 수치)을 받는 것으로 분석됐다. 강만수 전 장관은 1339만원(69%)의 감면 혜택을 받을 것으로 예상됐다. 고위 공직자 1인당 당시 내던 종부세의 73%인 769만원을 감면받는 것으로 집계됐다. 국회의원은 299명의 절반인 150명이 종부세 대상인데 1인당 682만원을 감면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이명박 정부를 향해 제기됐던 ‘강부자’(강남 땅부자) 정권이라는 비판이 무색하지 않았다. 진보신당은 “수혜자 상당수가 종부세 감세안을 입안하고 심의하는 고위 공직자와 국회의원이라는 점에서 부자 정부의 자기 몫 챙기기”라고 비판했다.

헌법 재판관 재산공개는 왜 누락됐을까
2008년 9월25일 국회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이 종부세 개편안 토론을 위해 의원총회를 열었다. 한겨레 강창광 기자

2008년 9월25일 국회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이 종부세 개편안 토론을 위해 의원총회를 열었다. 한겨레 강창광 기자

헌재의 결정을 앞두고 2008년 10월 진행된 국회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헌재 재판관 9명 가운데 7명이 종부세 대상자였는데, 80만~2100만원의 주택분 종부세 감면 혜택을 보는 것으로 분석되기도 했다. 헌재 재판관들의 재산이 공개된 2008년 공보를 확인해보니 관련 부분이 누락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이 이를 헌재에 문의하자 “착오인 것 같다. 누구의 실수인지 알 수 없다”고 밝혔고 바로 관련 정보가 복구됐다.

이들에게 종부세는 자신의 핵심 지지층의 이해관계를 외면할 수 없는 민감한 문제이기도 했다. 참여정부에서 국민경제비서관 등을 맡아 종부세 도입을 주도했던 김수현 청와대 사회수석은 교수로 일하던 2011년 라는 책을 냈다. 그는 책에서 종부세 논란을 회고하며 “결국 부동산 세금은 매우 정치적인 문제이다. 바람직한 방향은 있지만 정치적으로 실행 가능한 정책을 찾기는 쉽지 않다. 세금은 (중략) 계층 차별적인 정책 목적을 포함하고 있다. (중략) 모두가 동의하고 흔쾌히 부담하려고 하는 세금 정책은 불가능하다”고 썼다.

이명박 정부가 종부세 개편안을 발표한 2008년 9월23일 열린 한나라당 의원총회는 이런 갈등 구조를 가감 없이 드러낸다. 정부의 종부세 무력화 시도에 서울 강남을 지역구로 둔 의원들은 찬성했지만, 비강남권 의원들은 “국민들의 목소리를 외면하면 안 된다”고 반대했다. 지금 자유한국당의 원내대표를 맡은 김성태 의원(서울 강서구을)은 “2%(지지) 정당에서 1% 정당이 되는 게 그렇게 좋으냐. 120만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등에게 허탈감을 줄 가능성이 높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참여정부 초대 정책실장을 지내며 종부세 정책 설계를 주도했던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는 과 한 통화에서 종부세 무력화에 대해 “종부세를 강화하면 부자들, 강자들, 특권층이 저항하니 겁이 나는 것이다. 기득권층 눈치를 보는 정부나 정당에 책임이 있다”고 꼬집었다.

결국 이명박 정부를 이어받은 박근혜 정부에서 종부세는 부동산 규제 완화 정책과 함께 유명무실해졌다. 그사이 부동산 양극화는 심화됐다. 국회 기획재정위 김경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국세청에서 받은 ‘종합부동산세(종부세) 결정 현황(2012~2016)’ 자료를 분석한 결과 “박근혜 정부 4년간 종합부동산세 대상 개인의 보유 주택 수가 약 40만 가구 늘어났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는 집값이 고공행진하던 9월13일 ‘주택시장 안정대책’(9·13 대책)을 발표하며 종부세 강화 방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한나라당을 이어받은 자유한국당은 종부세 인상 방안을 “중산층 세금폭탄”이라며 반대하고, 보수 언론은 “강남 아파트에 사는 소득 없는 노인” 얘기를 또다시 꺼내들었다.

고위 관료가 종부세 이해당사자

연말 국회에서 종부세법 개정안 처리를 두고 진통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10월2일 “청와대·행정부처(1급 공무원 이상) 등 총 639명의 재산 변동을 관보를 통해 분석한 결과 정부 고위 공무원 3명 중 1명은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에 주택을 갖고 있고, 전국에 ‘2주택 이상’을 보유한 비율은 47%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심 의원은 “부동산 관련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고위 공직자들이 집값 폭등으로 먼저 이익을 보는 구조다. 정부가 아무리 부동산 대책을 발표해도 신뢰가 가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라고 꼬집었다.

여당과 야당만 바뀌었을 뿐 10년 전 상황을 연상케 한다. 2018년 종부세는 어떤 운명을 겪게 될까.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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