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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창업이 대학 멍들게 해”

‘특허 빼돌리기’ 조사한 유신재 서강대 총무처장 인터뷰

“대학이 투자자산으로 특허 보유해야”
등록 2018-10-13 17:53 수정 2020-05-03 04:29
유신재 서강대 총무처장은 이공계 박사 출신이자 예수회 신부로, ‘특허 빼돌리기’ 의혹을 조사 중이다. 박승화 기자

유신재 서강대 총무처장은 이공계 박사 출신이자 예수회 신부로, ‘특허 빼돌리기’ 의혹을 조사 중이다. 박승화 기자

“정부가 교수의 창업을 장려하는 동안 대학은 멍들었어요.”

유신재 서강대 총무처장(예수회 신부)이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서강대 총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감사 및 조사결과 후속조치를 위한 특별위원회’의 위원이다. 서강대는 2017년 3월 산학협력단과 기술지주회사 등을 특별 외부감사 하는 과정에서 교직원들이 서강대에 재산상 피해를 입힌 정황을 발견하고 지난 9월 검찰에 고발했다.

2017년 4월 발족한 특별위원회는 서강대 기술지주회사의 첫 번째 자회사가 소속 교수와 그 친인척이 최대주주인 A회사로 헐값에 매각된 의혹, 국가연구비 지원을 받아 개발된 특허들이 가치평가와 승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A회사에 저가 이전된 의혹, 서강대에 소유권이 있어야 할 특허를 A회사가 출원한 의혹 등을 조사하고 있다.

은 유 처장을 만나 ‘교수 창업’의 어두운 면에 대해 들었다. 정부는 그동안 ‘실험실 창업’을 꾸준히 지원해왔다. 연구자가 대학이나 정부출연연구기관이 가진 신기술을 바탕으로 창업하도록 장려한 것이다. 대학에선 원천기술을 가진 이공계 교수가 직접 회사를 만드는 형태로 발전했다. 첨단기술이 실험실 안에만 머물지 않고 시장으로 나와 경제적 가치와 일자리를 창출하게끔 하는 긍정적 효과도 있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공공성 파괴 부작용 불거진 것</font></font>

다만 유 처장은 교수 창업이 긍정적 효과 못지않게 상당한 부작용을 불러일으켰다고 말했다. 특히 ‘공공성 파괴’를 꼽았다. 대학의 재산인 특허를 교수들이 헐값에 빼가는 일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는 교수 창업 외에 다른 대안이 필요하며, 한국 대학들의 특허 관리 시스템이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교수(발명자)가 최대주주인 회사와 계약할 때는 제3자에게 특허의 기술가치평가를 맡기는 등 엄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터뷰는 10월9일 서강대에서 했다.

서강대에서 벌어진 사건을 취재하면서 데자뷔(처음 겪은 상황이 경험한 일처럼 느껴지는 것)를 느꼈다. 얼마 전 이 보도한 <font color="#C21A1A">‘크리스퍼 특허 빼돌리기’</font> 사건과 많은 면에서 비슷했다. 구조적 문제가 있다고 보나.

대학들이 다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다. 다른 대학 산학협력단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특허에 대한 가치평가를 제대로 하고 계약서를 쓰는 곳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몇몇 관계자가 마음만 먹으면 헐값 매각을 할 수 있다고 판단된다.

왜 ‘특허 빼돌리기’가 벌어지는 것일까.

일종의 성장통이라고 본다. 돈이 되는 좋은 연구가 나오지만, 한국 대학의 특허 관리 시스템이 이를 못 따라가고 있다. 교수가 국가연구개발비를 받아 특허를 내면 그 소유권이 대학(산학협력단)으로 오는데, 대학은 그 특허의 가치를 자체적으로 평가할 능력이 부족하다. 그래서 해당 기술을 가장 잘 아는 발명자 교수에게 많이 의존한다. 그 교수가 특허를 사가려는 회사의 대표일 경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특허 가치평가, 제3자에게 맡겨야</font></font>특허를 사는 사람이야 당연히 싸게 사고 싶은 것 아닌가.

그렇다. 이해가 충돌하는 상황이다. 발명자 교수로서는 특허 가격을 낮춰 부를수록 이득이 된다. 그래서 특허의 가치를 평가절하할 동기부여가 된다. 서강대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교수가 부르는 게 값’인 상황을 없애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대학이 ‘교수 창업 기업’과 특허 계약을 할 때는 외부 특허가치 평가기관 등 제3자에게 기술평가를 맡겨야 한다. 특허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의뢰비가 많이 들어 기술평가를 자주 맡길 수 없다면, 국가연구비가 수백억원 들어간 연구나 앞에서 말한 이해 충돌 상황인 경우 선별적으로 맡길 수 있다. 특허를 사가려는 회사에 기술평가료 일부를 부담하게끔 하는 방법도 있다.

가치평가 시점도 중요하지 않나. 김진수 전 서울대 교수의 크리스퍼 특허의 경우, 가출원 상태에서 툴젠에 팔렸다.

특허 등록 전인데 어떻게 가치평가를 했나. 출원하자마자 특허를 팔면 헐값에 넘어갈 수밖에 없다. 특허가 특허청에 ‘등록’되면 상용화가 가능하다는 뜻이므로, 그때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 한다. 특허의 가치는 계속 변하므로 대학은 특허를 무조건 팔아넘길 게 아니라, 기업에 사용권을 빌려주고 거기서 생긴 매출의 일부를 받아야 한다. 특허가 학교에 남아 있고, 그게 자산으로 쌓여야 한다.

대학이 특허를 제대로 활용 못하니, 발명자 교수가 직접 창업해서 특허를 실용화하는 게 낫다는 지적도 있다.

그 문제는 교수 창업이 아니라 다른 대안으로 풀어야 한다. 굳이 발명자가 직접 사업할 필요가 없다. 다른 사람이 그 특허로 사업해도 된다. 이스라엘 와이즈만연구소가 좋은 사례다. 거기선 투자전문회사가 연구소의 특허를 상용화해 엄청난 수익을 거둔다. 수익은 연구자와 연구기관, 투자회사가 나눠 갖는다. 그럼 연구자는 계속 연구하며 돈을 벌 수 있다. 한국에도 대학과 연구기관이 보유한 특허로 창업을 돕는 투자전문회사가 많이 필요하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창업하면 연구보다 사업에 더 신경</font></font>특허 내용을 가장 잘 아는 연구자가 창업하면 더 좋지 않을까.

연구와 교육, 사업을 동시에 잘할 수 있는 사람은 슈퍼맨이다. 하나 잘하기도 힘들다. 교수가 창업하면 연구와 교육보다 사업에 더 많은 신경을 쓰게 된다. 그럼 연구는 누가 하나. 사업 역시 사업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

서강대 쪽은 A회사의 ‘특허 빼돌리기’로 최소 200억원 이상의 손실을 입었다고 본다. 만약 이 비용이 서강대로 돌아온다면 어디에 사용할 것인지.

주로 연구지원비로 쓰일 것이다. 교수들이 논문을 많이 봐야 하는데, 학술데이터베이스(DB) 구독료가 급격하게 오르고 있다. 이런 비용이나 시설개선비, 연구원들의 장학금, 그리고 직원들의 처우 개선에 쓰일 수 있다. 연구 진흥을 위해 공익적 목적으로 쓰일 돈이다. 이번 사건이 특허 소유권과 관련해 우리 사회 연구자들의 의식이 개선되는 전환점이 됐으면 좋겠다. 간혹 본인이 개발한 특허니 본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연구자가 있다. 학교에 있으면서 많은 혜택을 누리고, 대학원생들의 도움을 받았으면서도 공동체 의식이 부족해서인지 그런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국가연구개발비 역시 연구자가 속한 연구기관을 염두에 두고 지원한 것이므로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국가가 지원한 보조금이다. 대학이 특허로 돈을 벌어서 그 돈을 다시 연구에 투자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변지민 기자 d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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