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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치고 소송해야 설치되는 승강기

교통약자 최다 이용 종로3가역에 40년 만에 승강기 놓인 이유…

장애인단체 “5개 역에 설치하라” 추가 공익소송
등록 2018-08-30 00:11 수정 2020-05-15 11:26
2018년 1월에 설치된 지하철 3호선 종로3가역 승강기. 서울교통공사 제공

2018년 1월에 설치된 지하철 3호선 종로3가역 승강기. 서울교통공사 제공

서울의 65살 이상 어르신들이 가장 많이 찾는 지하철역은 어디일까? 서울시가 65살 이상 서울 시민의 무임 교통카드 거래 내용을 분석해 8월18일 내놓은 ‘어르신 대중교통 이용 패턴’(3월4~10일 575만6258건 분석) 자료를 보면, 65살 이상 남성이 가장 많이 찾는 지하철역은 주변에 탑골공원이 있는 종로3가역으로 나타났다. 65살 이상 여성들은 재래시장, 청과물 도매시장 등이 가까운 청량리역에서 가장 많이 내렸다. 서울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65살 이상 시민은 하루 평균 83만 명인데 80%가 무료로 탈 수 있는 지하철을 이용했다.

장애인단체 손 들어준 법원

이들은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에서 규정하는 ‘교통약자’다. 하지만 1·3·5호선이 지나는 종로3가역의 경우 지하철역 입구에서 승강장까지 이동하는 엘리베이터(승강기)가 2014년(1호선)과 2018년(3호선)에야 설치됐다. 5호선 동선을 위한 승강기는 현재 설치가 가능한지 검토 중이다. 1호선 청량리역은 2020년 승강기가 설치될 예정이다. 그동안 휠체어를 쓰는 장애인은 종로3가역에서 환승하거나 역사 밖으로 나가기 위해 휠체어 리프트를 이용하고, 고령자들은 계단을 이용했다.

1974년 1호선 개통으로 문을 연 종로3가역(1985년 3호선 개통·1996년 5호선 개통)에 40여 년 만에 승강기가 설치된 계기는 무엇일까. 바로 장애인단체들이 공익소송을 제기한 결과였다. “역사 구조상 어렵다” “예산 부담이 크다”며 승강기 설치에 난색을 표하던 지하철 운영기관은 장애인 당사자나 관련 단체들이 소송을 제기하고 법원이 이들의 손을 들어준 뒤에야 움직였다.

종로3가역은 장애인들 사이에 악명 높은 역이었다. 휠체어나 전동스쿠터를 사용하는 장애인들이 환승하려면 휠체어 리프트를 3~5번 갈아타야 했다. 당연히 환승에 30~40분이 걸린다. 1·3호선 환승 계단은 공간이 좁아 장애인이 휠체어 리프트를 이용할 경우 비장애인들과 충돌할 위험도 있었다. 고장으로 휠체어 리프트가 계단을 오르내리던 중에 공중에서 멈추는 일도 잦았다. 언론 보도와 국가인권위원회의 자료를 보면 2000년 10월6일 최아무개(당시 42살)씨가 휠체어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다 계단 아래로 떨어져 머리를 다쳤고, 2003년 9월23일 역에서 매점을 운영하던 김아무개(당시 51살)씨도 지하 2층으로 내려가던 중 휠체어 리프트가 기울어 가벼운 부상을 입었다. 위험은 계속 있었지만 바뀌는 건 없었다.

신도림역 승강기 설치도 이끌어

변화는 2012년 12월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연구소) 등이 한 휠체어 이용 장애인과 함께 서울메트로(현 서울교통공사)를 상대로 “장애인용 승강기를 설치하라”는 공익소송을 제기하며 시작됐다. 당시 소송을 담당했던 김강원 연구소 학대피해장애인지원센터 실장은 “추락 사고가 계속 일어나서 여러 역을 검토했는데, 환승 노선이 많고 환승 동선이 복잡한 종로3가역을 대표로 선정했다. 당시 이용자에게 악명 높은 역이었다”고 설명했다. 소송을 2년 동안 했다. 김 실장은 “소송 초기 서울메트로는 자신들도 승강기 설치를 추진 중이나 역사 구조상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든다”고 했다 한다. 연구소 쪽은 “피고(서울메트로)가 운영하는 지하철 종로3가역을 이용할 때 승강기가 설치되지 않았거나 부실하게 설치됐기 때문에 출입하거나 환승할 때 고통을 겪고 있다”며 “환승 구간과 8·12번 출구에 승강기를 설치해야 한다”고 맞섰다.

결국 소송은 조정으로 끝났지만, 서울메트로가 소송 과정에서 승강기 설치가 가능하다는 용역 결과를 제출하고 승강기 설치 공사를 시작하는 전향적인 변화를 이끌어냈다. 서울중앙지법은 2014년 7월4일 “종로3가역 12번 출구에 장애인용 승강기를 설치하고, 2016년 12월31일까지 8번 출구에 승강기를 설치하도록 노력하라. 1·3호선 환승 통로에 설치할 특수형 승강기를 연구·개발하라”는 내용의 조정 결정을 내렸다. 승강기 설치 과정을 연구소에 통보하고 서울메트로 누리집에 게시하라는 결정도 함께였다. 연구소의 요구사항 대부분이 수용된 것이다.

연구소는 2013년 6월에도 “지하철 2호선 신도림역에 승강기를 설치하라”는 법원의 조정 결정을 이끌어냈다. 김 실장은 “(조정 대신) 판결로 갈 경우 우리 손을 들어줄지 확실하지 않았다. 최선의 결과라고 생각한다”면서도 “당시 전국적으로 지하철역을 모니터링해서 다른 역도 개선을 이끌어냈다면 신길역 사고를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소송을 제기하니 지하철 운영기관이 성의를 보였잖아요. 이런 사고들은 결국 예방할 수 있었다는 것인데….”

2017년 10월20일 지하철 1·5호선 신길역 장애인 추락 사고를 계기로 공익소송은 다시 시작됐다. 휠체어 이용 장애인 5명과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은 지난 5월 서울교통공사를 상대로 “서울 지하철 역사 5곳에 승강기를 설치하라”는 내용의 차별구제 소송을 제기했고, 재판은 9월부터 시작될 예정이다.

예산 탓하다 소송 시작되면 설치

이들이 승강기 설치를 요구하는 5곳은 2·5호선 영등포구청역 환승 통로, 지하철 3·4호선 충무로역 환승 구간, 지하철 1·5호선 신길역 환승 구간, 지하철 6호선 디지털미디어시티역 이동 구간, 지하철 6호선 구산역 이동 구간 등이다. 모두 계단 경사가 가팔라 휠체어 리프트가 추락하면 장애인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곳으로, 휠체어 이용 장애인들이 그동안 “위험하다”고 호소한 역들이다. 소송대리인을 맡은 이태영 사단법인 두루 변호사는 “과거 종로3가역 소송 때도 (서울메트로가) 예산이 없다고 하다가 소송이 시작되자 승강기를 설치했다”며 “이번에는 조정을 하지 않고 ‘휠체어 리프트는 정당한 편의시설이 아니므로 철거해야 한다’는 법원의 판결을 받아낼 것”이라고 했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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