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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이 죽어야 뭐라도 바뀌는 나라

등록 2018-08-29 03:05 수정 2020-05-15 11:26
8월21일 오후 시청역 지하철 1호선 안에서 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이 시민들에게 지하철 장애인 휠체어 리프트 철거와 승강기 설치의 필요성을 호소하고 있다. 김진수 기자

8월21일 오후 시청역 지하철 1호선 안에서 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이 시민들에게 지하철 장애인 휠체어 리프트 철거와 승강기 설치의 필요성을 호소하고 있다. 김진수 기자

“집에서 시설에서 조용히 갇혀 지내던 장애인들의 목소리가 한꺼번에 터져나온 건 2001년 1월22일 오이도역에서 발생한 휠체어 리프트 추락사고로 한 장애인이 목숨을 잃은 후였습니다. 장애인들이 일제히 거리로 쏟아져나와 장애인의 이동할 권리를 외쳤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장애인들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지만 우리에겐 목숨을 건 투쟁이었습니다. 우리의 투쟁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2004년 말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이 제정돼서 장애인이 이동할 권리를 보장받은 것입니다. 서울시에서 지하철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있고 저상버스도 시범 운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갈 수 없는 지하철역이 더 많고 우리가 탈 수 없는 버스가 훨씬 더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직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2000년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가수 클론의 멤버 강원래씨가 2005년 클론 5집 앨범 《빅토리》(Victory)에서 발표한 <지금도…>라는 곡의 노랫말이다. 노래가 나온 뒤 10년 넘게 지났지만, 장애인들이 평범한 일상을 위해 목숨을 거는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2017년 10월20일 오전 베트남전 상이군인인 고 한경덕씨는 보훈병원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신길역 1호선에서 5호선으로 갈아타려는 그에게 가파른 계단이 나타났다. 그는 장애인 휠체어 리프트를 이용하기 위해 역무원을 부르는 호출 버튼을 누르려다 계단으로 추락했다. 한씨는 98일 동안 의식을 찾지 못하다 2018년 1월25일 70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올해 6월 초 한씨가 누르려던 버튼은 계단에서 1m쯤 떨어진 곳에 새로 설치됐다. 장애인이 죽어야 뭐라도 바뀌는 역사가 다시 반복됐다. 장애인들이 다시 거리로 나왔다. 이동할 권리를 위해. 클론의 5집 앨범에 실린 노래 <소외된 외침>에서 강원래씨가 외치던 절규는 2018년 다시 재생된다. “이대로 우린 살 수 없소. 이대로 난 이렇게 난!”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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