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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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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달팽이들 느리지만 포기는 없다

‘유스하우징’부터 ‘역세권 2030 청년주택’까지…

네 장면으로 보는 청년 주택정책 변천사
등록 2018-05-09 21:06 수정 2020-05-03 04:28
민달팽이유니온 등이 행복주택 축소를 막기 위해 2013년 12월16일 서울 양천구 목동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가운데 목도리 두른 남성이 이한솔씨. 민달팽이유니온 제공

민달팽이유니온 등이 행복주택 축소를 막기 위해 2013년 12월16일 서울 양천구 목동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가운데 목도리 두른 남성이 이한솔씨. 민달팽이유니온 제공

‘청년들, 얼마나 힘들게 살고 있나요?’

이 질문의 대답은 통계 몇 개로 대신할 수 있다. 최저주거기준 미달, 지하와 옥탑·고시원 같은 주택 이외의 거처, 소득의 30% 이상을 주거비로 지출하는 월세 임차인을 ‘주거빈곤’으로 분류한다. 민달팽이유니온(민유)과 한국도시연구소가 함께 조사해 2014년 3월 발표한 주거실태 조사에 따르면, 서울의 만 19~34살 1인 청년가구의 36%가 주거빈곤 상태다. 지역 역시 서울보다는 조금 낮지만 대부분 30%를 넘는다. 혼자 사는 청년 세 명 중 한 명이 계층상 주거빈곤으로 분류되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다른 세대는 어떨까? 주거빈곤 비율이 20% 안팎인 노년층을 제외한 다른 세대는 10%를 채 넘지 않는다. 주거 취약 계층이 세대별로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 것이다. ‘월소득 대비 주택임대료 비율’(RIR)도 서울 거주 청년층은 무려 40%에 이른다. 서울의 작은 단칸방 임대료가 월 60만원 수준이니, 소득의 4할을 주거비로 쓴다는 사실이 그리 놀랍지도 않다.

미국과 네덜란드를 비롯한 서구 선진국가는 RIR가 25%만 넘어가도 주거 지원 정책 대상으로 분류하고 다방면으로 지원책을 마련한다. RIR 25%가 삶을 심각하게 위협한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언제라도 취약해질 수 있는 세입자의 특성을 고려해 독일이나 프랑스 등의 국가는 세입자 협회를 강하게 구성하고, 주된 세입자층인 청년들을 위해 다양한 주거 지원 정책을 마련하고 있다. 또한 가구마다 적정 임대료를 제한해서 임대인이 과도하게 임대료 이윤을 갖지 못하도록 한다. 대통령 개헌의 ‘토지공개념’ 논쟁에서도 볼 수 있듯, 우리나라에서 유사한 정책을 펼쳤다면 당장 사회주의국가로 떠나라는 소리를 들었을지 모른다.

장면 1. 청년주택 정책, 무에서 유를 창조하다

청년 주거 문제가 더욱 악화됐던 이유는 부동산 투기 중심의 주거 정책 패러다임 때문이다. 공공임대주택이 5% 남짓이라 민간임대시장에 거의 영향을 줄 수 없다. 여기에 4인 가구와 투기 중심의 부동산 정책은 1~2인 가구이면서 민간임대시장에서 살아야 하는 청년층을 대책 없이 방치했다. 참다못한 청년들이 민유 같은 단체를 만들어 주거 문제 좀 해결해보자고 외쳤다. 이슈화에는 성공했지만 ‘맨땅에 헤딩’하듯 없는 정책을 새롭게 만들어 개선해나갔다.

초기에는 정치권에서 ‘유스하우징’ 등 청년임대주택을 공급했지만, 몇백 가구에 그쳐 생색내기로 끝났다. 2012년부터 ‘LH전세임대주택제도’가 추진됐다. 대학생들의 주거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보증금 100만~200만원, 월임대료 7만~18만원 수준의 전세임대주택을 공급하는 정책이다. 1만 가구 넘는 대규모 지원으로 청년들의 주거비 부담 완화에 긍정적 기여도 했다. 신청 시기, 전세 매물 부족과 전셋값 폭등 야기, 어려운 계약 과정 등 초기부터 논란이 많았으나 관련 단체와 청년이 많은 논의 과정을 거쳐 지금은 안정적 단계에 이르렀다고 평가받는다.

장면 2. 청년과 주민, 갈등 관계로

행복주택·공공기숙사라는 대규모 임대주택이 공급되면서 주민과 청년의 갈등이 깊어졌다. 행복주택은 대학생, 신혼부부, 사회초년생을 위해 직장과 학교가 가까운 곳에 짓는 도심형 임대아파트다. 박근혜 정부의 청년임대주택 대표 정책으로 꼽힌다. 교통 편의성과 접근성 등이 장점으로 평가받지만, 주변 시세를 따르다보니 임대료가 비싼 경우가 종종 발생했다. 입주 기준, 지역주민 반대 등도 논란이 되고 있다. 서울 양천구 목동 행복주택을 추진할 때는, 이 지역 주민 커뮤니티에서 민유를 무려 ‘경계 및 위험 단체’에 포함시키기도 했다. 결국 사업은 백지화됐다.

공공기숙사는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 관계 기관이 국가 재원인 공공기금(국민주택기금, 사학진흥기금)을 지원해 세운 기숙사다. 주로 대학가 인근 지역에 신축됐다. 2012년 계획을 세우고, 2014년 본격적으로 입주를 했다. 공공임대주택 공급 효과를 가져오고 대학 민간투자 기숙사보다 비용이 상당히 저렴하지만, 건축비 전가로 인한 비용 상승과 교통편이 좋지 못하다는 단점이 지적됐다. 서울 광진구 구의동 공공기숙사 공청회에서는 주민들이 ‘문란과 퇴폐’라는 주제로 청년들을 모욕하기도 했다. 구의동 사업도 결국 없던 일이 됐다.

초기엔 공공사업 중심으로 반대가 일었으나, 차츰 대학 내 기숙사 문제로까지 반발이 확산됐다. 연세대, 이화여대, 고려대, 한양대, 경희대 등 지역의 임대업자들은 대학이 지으려는 기숙사까지 무산시키기 위해 싸웠다. 몇 년이 지나도록 기숙사 소식이 요원한 대학이 많은 상황이다.

장면 3. 투기, 주거권을 압도하다

한동안 잠잠하던 주민-청년 갈등은 2016년 서울시의 ‘역세권 2030 청년주택’으로 다시 불붙었다. 부지가 선정된 지역 대부분에서 반대시위가 벌어졌다. 서울 영등포구와 강동구에서는 강력한 조직적 움직임이 벌어지며 지역 여론을 뒤흔들었다.

지역주민이 청년임대주택을 반대하며 내세우는 논리는 슬럼화, 집값 폭락, 퇴폐적 문화 확산 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미 공공기숙사와 행복주택이 들어선 지역에서 해당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다. 반대하는 주민도 이를 잘 안다. 결국 강동구와 영등포구의 반대 주민들은 기존 입장을 뒤집어 “청년들에게 무의미한 기업형 임대아파트 반대”라는 주장으로 선회했다. ‘기업형 임대아파트’는 민유 같은 단체가 ‘뉴스테이’ 정책을 비판할 때 쓴 용어인데, 어느새 임대주택 반대 주민들이 쓰고 있다. 기존 논리는 반대를 위한 반대였을 뿐이고, 결국 알짜배기 땅에 개발 이익을 환수할 수 있는 ‘돈 되는’ 시설을 짓기 위해 임대주택을 반대한다고 볼 수 있다. 청년임대주택 논란은 과한 투기심이 누군가의 주거권을 부정하며 우리 공동체에서 당당히 외쳐지는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장면 4. 민달팽이를 위한 해피엔딩

글을 쓰는 지금 시각 기준(5월3일)으로 12시간 뒤, 나와 민달팽이 친구들은 임대주택 신축을 반대하는 주민들을 설득하러 영등포에 간다. 새삼스럽지는 않다. 민유 활동을 처음 시작했던 8년 전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임대주택 계획이 발표되면 현장에서 온갖 모욕을 받으며 반대하는 사람들을 상대해왔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직 살아갈 날이 많은 청년들은 나름 재미있게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덧붙이면, 민유에 청년임대주택은 기숙사와 행복주택 등 임대료를 내며 따뜻한 보금자리 구실을 하는 모든 집을 포함하는 단어다.

백지화된 청년임대주택 사업이 많지만 연세대, 경희대, 이화여대 등 반대 임대업자들을 설득해 신축된 기숙사도 많다. 서울시는 ‘청년주거 기본조례’를 제정해 직간접적으로 청년주거권을 보장하려는 정책을 개발해 집행하고 있다. 정부도 대선 기간에 민유가 제안한 ‘주거정책 7대 개혁과제’를 수용하고 ‘주거복지 로드맵’에 반영해 정책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와 서울도시주택공사(SH)는 다양한 방식으로 공공임대주택과 사회주택을 공급했고 청년주거 상담, 보증금·전세 대출, 주거 바우처 등 정책 대상에서 배제됐던 청년들에게 작은 손길을 내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민달팽이 청년들은 지역을 찾아가 사용자제작콘텐츠(UCC), 파티, 간담회 등을 기획하며 주민들을 설득했다. 당사자인 청년들이 모여 토론하며 정책도 개발했다. 싸울 땐 제대로 한판 벌이고, 웃길 땐 신나게 웃기고, 설득할 땐 진정성 있게 설득하며, 질기고 질긴 싸움을 끈기 있게 해나간 결과물이 하나둘 나오고 있다. ‘역세권 2030 청년주택’도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더불어 언젠가는 집이 돈벌이 수단이기 전에 사람이 살아가는 따뜻한 보금자리로 존중받는 사회를 이루어낼 것이다.

이한솔 민달팽이유니온 사무처장

옥에 티


‘역세권 2030 청년주택’ 마냥 좋은 건 아니다?


민간사업자에게 20% 이상 수익을 남긴 공공사업이 있다. 바로 ‘뉴스테이’다. 뉴스테이는 의무 임대 기간인 최소 8년 동안 상승률이 5% 이하인 임대료를 내며 살 수 있는 기업형 임대주택이다. 공공 재원을 쓰지 않고도 임대주택을 공급할 수 있다는 취지로 진행했던 사업이지만, 민간사업자에게 과도한 수익을 안겨주었다. 주변 시세와 비교해 90% 이상의 임대료가 책정되다보니, 임
대업자 배만 불린 사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역세권 2030 청년주택’도 뉴스테이 형식에서 공공성만 조금 가미된 정책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 8년 뒤 분양 전환이라든지, 전체 공급량의 70% 이상이 고가의 민간임대가구라는 형식은 지금의 역세권 청년주택을 쉽게 찬성할 수 없는 이유가 된다. 서울시에서 분양 전환 시점을 20년으로 연장하는 등 공공성을 확보해나간다고 하지만, 아직은 곧이곧대로 믿기 어렵다. 현재 공급량의 절반 이상을 공공이 소유해서 임대하고 분양 전환 시점의 연장을 보장한다면, 그때는 청년들도 두 손 들고 환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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