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엄마아빠는 왜 행복주택이 싫었어?

전 재산 아파트 한 채인 부모는 무임승차 같아서 거부감

집 없고 자산 없고 독립하고픈 딸은 청년임대가 동아줄
등록 2018-05-09 20:47 수정 2020-05-03 04:28
불안함, 불공정함, 부당함. 임동필(56)·이영조(54) 부부가 2013년 자신의 집 앞에 행복주택이 들어선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느꼈던 감정이다. 행복주택은 대학생, 사회초년생, 신혼부부를 위해 역세권에 마련하는 저렴한 공공임대주택이다. 당시 정부가 선정한 터 주변 주민들의 반대가 극심했는데, 부부가 사는 서울 양천구 목동 지역이 대표적이다. 부부의 바람대로 결국 목동 행복주택은 무산됐다.
인생은 아이러니. 두 사람의 딸인 임한결(26)씨는 현재 ‘결사반대’ 피켓 반대편에서 지역주민들을 바라보고 있다. 집 없는 젊은이로서 말이다. 그는 청년정당 ‘우리미래’의 청년정책국장이다. 주민 반대로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청년임대주택(행복주택)이 무산될 위기에 빠지자 4월21일부터 당원들과 천막농성을 하고 있다.
[%%IMAGE1%%]행복주택 소식에 덜컥 불안해져

청년임대주택은 계층 갈등뿐 아니라 세대 갈등의 소재기도 하다. 터 주변의 아파트 주인과 임대업자, 상가 주인 상당수는 노년·장년층이다. 그 반대편에 자식뻘의 집 없는 청년들이 있다. 이해 충돌이 한 가족 안에 담기는 상황도 있다. 임한결씨의 엄마와 아빠는 왜 행복주택을 반대했을까. 이 갈등을 도대체 어떻게 풀어야 할까. 5월2일 세 명이 함께 사는 목동아파트를 방문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부부에게 ‘집’은 30년 세월이 쌓은 성취다. 전남 강진과 영광이 고향인 두 사람은 부모에게 물려받은 돈이 한 푼도 없다. 결혼하고 14년간 서울 외곽에서 전세살이를 전전했다. 2003년 처음 목동으로 들어왔고 20년간 소득의 70%를 아파트 융자 갚는 데 썼다. 지금도 남편의 사업 빚을 뺀 모든 자산이 아파트 한 채에 묶여 있다.

둘은 치열하고 검소하게 살았다. 보험업종 대기업에 다닌 남편은 아침 7시에 가장 먼저 출근해 다른 직원을 맞았다. 밤 10시 이전에 퇴근한 적이 거의 없다. 물론 주말은 없었다. 평사원으로 시작해 사장까지 올랐다. 아내는 집에 오지 않는 남편 대신 시어머니와 함께 아이 둘을 키우며 교사로 일했다. 책장은 동네에서 버려진 걸 주워왔고 찻주전자는 ‘아름다운 가게’에서 중고로 사왔다. 환경보호를 위해 화장실 물을 아끼려고 지금도 요강을 쓰고 있다.

부부는 진보적인 성향이다. 고등학교 때 광주에서 5·18 민주화운동을 겪었다. 그때의 공포를 생생히 기억한다. 전남대로 진학해선 시위대 끝자락에 간혹 섰다. 적극적으로 운동에 나선 사람들에게 부채감을 느끼고 있다. 신문은 를 창간 때부터 약 15년간 읽었다. 이영조씨는 한때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조합원이기도 했다.

임씨 부부가 살아온 배경은 이들이 행복주택에 부정적이었던 이유와도 관련 있다. 2013년 이들이 살던 목동아파트 1단지에서 1km쯤 떨어진 곳이 행복주택 시범지구로 선정됐다. 최고급 아파트단지인 목동 하이페리온과 현대백화점, 목동야구장으로 둘러싸인 유수지로, 목동에서도 가장 붐비고 알짜배기인 땅이었다.

임동필씨는 덜컥 불안한 마음부터 들었다. ‘저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불확실함에 대한 걱정이었다. 곧 불안을 정당화할 논리적 근거를 찾게 됐다. 주민들의 입과 언론을 통해 교통난, 집값 하락, 교육 환경 악화, 슬럼화 우려 등이 쏟아졌다. 양가적 감정이 들었다. ‘그래도 같이 살아야 하지 않나’ 하는 마음이 드는 한편, 솔직히 집값도 걱정됐다.

노력해서 집값 오른 거 아니잖아

이영조씨는 불공정하다고 느꼈다. 자신들은 오랜 기간 애써서 경제적 안정을 찾은 건데, 행복주택은 갑자기 뚝 떨어진 느낌이었다. 노력 없이 받는 특혜 같았다. 그는 당시 주민들의 반대가 ‘님비 현상’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충분한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정책을 밀어붙인 박근혜 정부 탓에 생긴 문제였다고 판단한다. 표를 위한 정책이고 주민을 무시한다고 느꼈다. 적극적인 반대운동에 나서진 않았지만 행복주택이 무산됐을 때 안도했다.

딸인 임한결씨도 2013년에는 부모와 비슷하게 느꼈다. 그런데 청년정치를 하면서 생각이 조금씩 바뀌었다. 고시원에 사는 친구들을 직접 만나고 고민을 들으며 청년임대주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그 자신도 집 없고 자산 없고 독립하고 싶은 20대였다.

딸은 부모처럼 ‘불안함, 불공정함, 부당함’을 느끼는 당산동 주민들을 날마다 농성장에서 마주한다. 주민들이 느끼는 위협감도 십분 이해한다. 이들을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늘 고민이다. 행복주택에 부정적이었던 엄마 이영조씨와도 종종 고민을 나눈다.

엄마 주민들에게 무슨 두려움이 있는지 알아봐야 해. 우범지대가 될까봐 걱정하면 그걸 해소해주는 쪽으로 정책을 짜야지.

주민들이 지나친 권리를 주장한다는 생각도 들어. 공공성을 띤 지하철 환승역이 들어서면서 집값이 올랐는데, 그걸 사회에 환원하지 않잖아. 그렇게 국가 세금으로 이득을 본 주민들이 청년임대주택이 들어서는 걸 반대하는 게 맞을까.

엄마 권리보다는 두려움에 가깝다고 봐. 거기 입주할 청년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면 좋을텐데. 청년들의 대표가 있고, 주민들의 대표가 있고, 만나서 걱정하는 바를 이야기하고, 대안을 마련하고.

그것도 여유가 필요한 건데, 청년들은 너무 바쁘게 살아서 여유가 없어.

엄마 간절한 쪽에서 설득해야 해. 안 그러면 서로 상처만 생기고 거기 들어가서도 행복하지 않잖아.

요즘 영등포에서 농성하면서 계속 목소리를 내잖아. 지나가던 주민이 듣고 ‘내가 오해했다’며 찾아온 일도 있어.

엄마 사실 신뢰만 있다면 젊은 사람들이 옆에 사는 걸 누가 싫어하겠어. 활력이 생기는데. 어쨌든 만나야 해. 그렇게 성공 사례가 나와야지.

아빠도 변하기 시작했다

임한결씨는 어쩌면 ‘논리보다 태도가 중요한 게 아닌가’ 생각도 한다. 지난 10여 일간 주민들이 삿대질을 해도 웃으며 답했고, 비를 쫄딱 맞으면서도 천막에서 밤낮으로 버텼고, 농성장 주변을 깨끗이 청소했다. 이런 모습을 지켜본 주민들의 목소리가 조금 부드러워졌다고 느꼈다. 응원의 손길도 늘었다.

주민 설득은 아직 멀었지만 최소한 부모는 설득한 것 같았다. 아빠 임동필씨는 딸이 청년임대주택 문제에 뛰어든 뒤, 바쁜 시선을 잠시 돌렸다. 회사 동료의 자녀들도 고시원에 산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만약 목동에 청년임대주택이 다시 들어온다면? 임동필씨는 답했다. “관심 갖고 장단점을 들여다볼 것 같아. 행복주택처럼 거부감부터 들진 않겠지.”

변지민 기자 dr@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독자  퍼스트  언론,    정기구독으로  응원하기!


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http://bit.ly/1HZ0DmD
카톡 선물하기▶ http://bit.ly/1UELpok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