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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은 기적처럼 오지 않는다

등록 2018-04-24 17:02 수정 2020-05-03 04:28
4월27일 3차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는 판문점 남쪽 지역 평화의 집 외부를 4월18일 기자들이 둘러보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4월27일 3차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는 판문점 남쪽 지역 평화의 집 외부를 4월18일 기자들이 둘러보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00년 6월13일 오전 10시30분. 화창한 초여름 햇볕이 내리쬐는 평양 순안공항 활주로에 대한민국 공군1호기가 내려앉았다. 곧이어 비행기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이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었다. 그는 한동안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저 멀리 북녘 산하를 바라본 뒤, “만세”를 외치는 군중에게 손을 들어 답했다. 저만치 아래에서 김 대통령을 환영하며 박수 친 이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었다.

“반갑습니다.”

분단 반세기 만에 북을 찾은 남쪽 정상을 맞이한 김 위원장이 내놓은 첫마디였다. 둘은 단단히 손을 움켜쥐었다. 김 전 대통령은 당시 감동을 2010년 펴낸 에서 “북녘땅을 처음 밟았다. 무릎을 꿇고 그 땅에 입을 맞추고 싶었다”고 묘사했다.

두 정상은 이 만남의 성과를 6·15 공동선언이라는 역사적 문서에 담아냈다. 이 선언의 핵심은 ‘공존의 약속’이다. 남북은 서로가 주장하던 통일 방안인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했다. 김연철 통일연구원장은 저서 에 “6·15 선언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서로가 체제를 인정하고 공존하며, 공동번영을 위해 노력하기로 합의한 것”이라고 적었다.

그로부터 7년 뒤 남북은 다시 한번 손을 맞잡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2007년 10월 정상회담이었다. 이 정상회담의 최대 성과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약속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회담에서 “남북이 주도해 평화체제 협상을 시작하기로 했다는 것을 전세계에 공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고, 김정일 위원장은 “조선전쟁(6·25)에 관련 있는 3자나 4자들이 개성이나 금강산 같은 데서 전쟁이 끝나는 것을 공동으로 선포한다면 평화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기초가 마련될 수 있다”고 화답했다. 두 정상은 10·4 공동선언에 이 약속을 남북이 “현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나가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직접 관련된 정상들이 한반도 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가기로” 했다고 표현했다. 이 약속은 11년의 세월이 흐르도록 지켜지지 못했다.

한반도를 둘러싼 10여 년간의 지독한 우여곡절을 거쳐 2018년 4월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조선노동당 위원장이 세 번째 남북 정상회담에 나선다. 이 회담의 쟁점은 △11년 전 제대로 이행되지 못한 평화체제 구축 약속을 어떻게 진전시켜나갈지 △6번의 핵실험을 통해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북핵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한반도 비핵화를 어떻게 현실화할지) △개성공단 중단 등으로 타격을 입은 남북 교류 협력을 어떻게 활성화할지 등으로 모인다.

다행히 ‘우주의 기운’은 한반도로 모이는 중이다.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진전시킬 수 있는 구체적 방안에 대해 남북 당국 사이에 치열한 물밑 논의가 이뤄지는 것으로 보인다. 더 고무적인 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거쳐야 하는 필수 관문인 ‘종전’을 언급했다는 점이다. 그는 4월18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미-일 정상회담 머리발언에서 “남북이 종전 문제를 논의하고 있고 이를 축복한다”고 했고, 뒤이은 기자회견에서도 “우린 한반도 전체가 안정, 번영, 평화 속에서 함께 공존할 수 있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도 애초 우려했던 것보다 더 확고한 것으로 확인된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금까지 두 차례 비핵화 의지를 밝혔다. 김 위원장은 3월 초 북한을 방문한 정의용 수석 대북 특사(국가안보실장)에게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북의 체제 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고, 3월 말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한반도 비핵화가 김일성 주석, 김정일 위원장의 유훈임을 밝히며 “남한과 미국이 선의로 우리 노력에 화답해 안정의 분위기를 만들고 평화 실현을 위해 단계적·동기적 조처를 취한다면 한반도 비핵화 문제는 해결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자신의 복심인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지명자(현 중앙정보국장)를 북한에 보내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를 다시 한번 확인한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4월19일 청와대에서 열린 언론사 사장단과 만남에서 “북한은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며 관련 논쟁에 마침표를 찍었다. 북핵이라는 거대 장애물이 제거되면, 세 번째 이슈인 남북 교류 협력은 단번에 진척될 것이다.

은 역사적인 4·27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한반도연구회 공동기획 좌담회를 열였다. 이 좌담을 통해 남북 정상회담과 ‘5월 말~6월 초’로 예정된 북-미 정상회담 이후 펼쳐질 새로운 미래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었다. 또, 1993년 시작된 ‘북핵 25년사’를 정리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말했듯, 기적은 기적같이 오지 않는다. 평화를 향해 뼈를 깎는 노력을 기울인 이들 앞에, 일상처럼 슬며시 다가오는 것이다. Peace in Korea.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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