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 상담 자료를 기초로 삼성SDI 감사 과정을 재구성했다. 이 기록은 감사 대상이 됐던 이들이 기억하는 ‘일방적’인 주장이다. 진술은 너무 끔찍해 차라리 상당 부분 과장이 섞여 있을 것이라 믿고 싶어질 정도다. _편집자 </font>
“입사 이후 지금까지 삼성 임직원 가이드라인을 위배한 것을 모두 쓰세요.” “지금까지 거래한 업체를 다 쓰세요.” “지금까지 거래한 업체에서 만난 사람들 이름을 다 쓰세요.”
<font size="4"><font color="#008ABD">감사 받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font></font>2016년 삼성SDI의 감사 대상이 됐던 임직원들이 공통적으로 받은 질문이다. 감사관이 먼저 이처럼 혹독한 감사를 받아야 하는 이유인 ‘비위 내용’을 말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감사 대상이 된 이들 대부분이 영문도 모른 채 좁은 감사실에서 입사 이후 자신이 잘못한 것이 무엇인지 머리를 싸매야 했다. 기억나지 않으면 기억이 날 때까지, 그래도 기억나지 않으면 만들어서라도 이야기하지 않으면 감사는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물론 이들에게 탈출구가 없진 않았다. 그것은 감사를 하는 이도, 받는 이도 뻔히 아는 길이었다. 사표였다.
삼성SDI 직원 A씨도 그랬다. 그는 3월 초 감사 통보를 받았다. 경기도 수원에 있는 삼성전자 소재단지로 감사를 받으러 오라고 했다. 건물에 도착해 감사 통보를 보내온 번호로 전화를 걸자 문이 열렸다. 자신보다 한참 젊어 보이는 감사관이 건물 안에 있던 10개의 감사실 중 한 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A씨의 질문에 감사관은 “알 필요 없다”고 대답했다.
A씨는 삼성SDI에서 20여 년을 근무했다. 그러나 감사실 안에서 20여 년 근속은 칭찬받을 일이 아니었다. 감사에서 트집 잡힐 일이 더 많아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는 “20년간 잘못한 것을 모두 적어라”는 주문을 받았다. 머리를 아무리 짜내도 당장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A씨는 “정말 생각나는 게 없다. 잘못한 게 있으면 징계위원회에 올려달라”고 말했다. A씨는 자신의 요청에 감사관이 “징계위는 쉽게 갈 줄 아냐. 이 면담은 반팔(여름)을 입어도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대답했다고 증언한다. 이어 감사관은 “(감사를) 이틀 받고 깨달은 사람이 있고 한 달 받고 깨달은 사람이 있는데, 한 달 받은 사람이 후회한다”고 말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뒷목 터질 것 같은 스트레스 받았다</font></font>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비슷한 감사가 이어졌다. 결국 감사 4일째 A씨는 “회사를 나가겠다”고 말했다. 족쇄는 그제야 풀렸다. 감사관은 “잠시만 기다리라”고 했다. 5분쯤 뒤 삼성SDI 수원사업장 인사팀이 사직서를 들고 내려왔다. 사직서를 쓰자 감사관은 “그동안 수고했다”고 말했다. A씨는 그렇게 회사를 떠났다. “한 달이면 끝난다는 희망이라도 있었으면 버텼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희망이 안 보였다.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수원 소재단지) 감사실에 6주 동안 감사를 진행한 사람도 있고, 4주를 한 사람도 있었다. 아는 사람 중에는 2주 하고 퇴사하고 4주 하고 퇴사한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직접 경험해보니 하루만 해도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었다.”
회사에서 30년 넘게 일한 B씨도 10개의 감사실 중 한 곳에 들어서야 했다. 역시 자신이 어떤 잘못을 했는지 모른 채였다. 감사관은 “회사 생활을 하면서 윤리 강령을 어긴 것이 있으면 다 쓰라”고 요구했다. B씨가 “없다”고 하자 감사관은 “법에는 공소시효가 있지만 감사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오래된 것까지 모두 쓰라”고 다시 지시했다.
아무리 고민해봐도 뾰족한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B씨는 “별다른 답변을 못하니까 감사관이 지금까지 거래한 업체를 다 쓰라고 했다”고 말했다. 고심 끝에 30년 동안 거래한 업체 이름을 20개 정도 썼다. 그랬더니 감사관은 한 업체를 찍으면서 “이 업체 임원이 술을 좋아하는 것으로 안다. 함께 식사하거나 술 마신 것을 다 써라”고 요구했다. B씨는 1년에 두세 번 점심시간에 국밥을 함께 먹고, 지금껏 두 번 정도 일식집에서 4만원가량의 저녁을 먹은 일밖에 기억나지 않았다. 감사관은 집요했다. 감사관은 “20년 거래를 했는데 저녁만 두 번 먹은 것이 말이 되냐. 술도 먹지 않았냐”고 채근하기 시작했다. B씨는 술을 마시지 못한다. 감사관은 “술을 안 먹는 건 안다. 하지만 남자지 않냐. 술은 안 먹어도 2차는 가지 않았냐”며 포기하지 않았다. B씨는 첫날 감사를 받고 뒷목이 터질 것 같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결국 다음날 바로 사직서를 냈다. B씨는 “그것이 회사가 원하는 일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가족 장례식 마친 다음날 감사 불려간 F씨 </font></font>또 다른 감사 대상자인 C씨도 건강이 안 좋아 술을 마시면 안 된다. 담배도 20년 전에 끊었다. 하지만 감사관은 “술자리 접대 등 향응을 제공받았다는 제보를 받았다”며 C씨를 추궁했다. C씨는 “감사관한테 나와 함께 술 먹었다는 사람을 제발 말해달라”고 했다. 돌아온 답은 “감사 프로세스상 말해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C씨는 “거래업체에서 향응을 제공받았다는 자백을 받아서 퇴직시키는 것이 감사의 목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감사 과정에서 사표를 쓰라는 회유가 있었다는 증언도 있다. D씨는 감사 과정에서 ‘당신 해고감이다’ ‘돌대가리 같다’라는 이야기를 엄청나게 들었다. 감사가 시작된 지 일주일 정도 지나자 회유가 시작됐다. D씨는 감사관에게 “해고당하면 불명예스럽다. 스스로 나가면 능력도 있으니 재취업하는 데 유리하다. 그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라는 말을 들었다. 며칠 고민하던 D씨는 결국 사표를 내고 말았다.
감사에서 문제 삼은 비위 행위 중에는 사소해 보이는 것이 부지기수였다. E씨의 경우 삼성 협력업체를 운영하는 형제간의 금전 거래가 문제가 됐다. E씨는 “해외에서 일하는 형에게 환전을 부탁한 것이었다. 내가 다 해서 5천원 정도 덜 준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회사 쪽은 이 일을 협력업체와의 부적절한 금전 거래로 몰고 갔다.
가족의 장례식을 마친 다음날 감사에 불려간 F씨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삼성SDI 사업장 대신 협력업체에 출장 가서 일하는 것이 주요 업무였다. 지리를 잘 몰라 출장 가야 할 협력업체에 숙소를 소개해달라고 한 것이 화근이었다. 물론 하루에 7만원인 숙박비는 F씨가 출장비로 냈다. 하지만 감사관은 “10만원 넘는 숙소인데 어떻게 7만원에 묵었냐”고 물었다. F씨는 “당연히 7만원인 줄 알고 지냈을 뿐이다. 호텔에도 전화해봤는데 그때 자료는 남아 있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감사관은 버티는 F씨에게 “협력업체에 숙소를 알아봐달라는 것만으로도 징계 대상”이라고 말했다.
F씨는 “징계 대상이 되면 징계를 하라”며 버티려다 포기했다. 약점이 잡힌 탓이었다. 그는 “내 업무 성격상 회사에 들어오면 별로 할 일이 없다. 그래서 인터넷 검색을 이것저것 했다”고 말했다. 감사관이 그동안 그가 회사에서 인터넷 검색을 한 내역을 다 뽑아와 ‘업무 태만’이라고 추궁했다. 감사관은 F씨에게 “몇 월 며칠에 뭘 검색했는지를 불러줄 테니 (반성 차원에서) 받아적든지, 그게 싫다면 결정할 것”을 요구했다. 그는 ‘결정’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언급하진 않았다. “하지만 뻔했다. 그래서 결국 사표를 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삼성SDI 쪽 “적법한 감사였다” </font></font>이같은 감사 대상자들의 증언에 대해 삼성SDI 쪽은 “인력 퇴출 목적의 감사가 없었던 것은 물론이고 비위 의심자에 대한 적법한 감사가 이뤄졌다”고 밝혔다. 삼성SDI 관계자는 에 “인력 퇴출이나 특정 목적을 가지고 테마를 잡아 감사한 적은 전혀 없다. 그러다 문제가 생기면 회사가 얼마나 많은 손실을 입겠나. 회사의 정상적 경영 활동 중 하나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물론 감사를 받은 당사자들은 억울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감사에 문제는 없었고 억압적으로 진행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2016년 이뤄진 감사는 특별한 감사가 아니었으며 상시적 경영 활동의 일환이라는 주장이다. 이 관계자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런 목적을 위해 감사는 계속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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