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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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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의 법정에 세운 ‘제왕적 대법원장’

양승태의 6년, 판사 블랙리스트에 관료화ㆍ눈치 재판 문제 곪을 대로 곪아

재판 독립과 사법 개혁 시대적 요구에 김명수 춘천지방법원장 후보자로 부상
등록 2017-08-29 14:23 수정 2020-05-03 04:28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댓글,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박정희 정권 긴급조치 피해자들에게 국가 배상, 통상임금,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2011~2017년 ‘양승태 코트’에서 대법원이 판결한 주요 사건들이다. 대법원장이 누구인지는 생각보다 훨씬 더 우리 삶과 맞닿아 있다. 대법원 판결은 하급심에 영향을 미치고, 대법원장이 승진이나 근무평정으로 판사들을 강하게 통제하면 판사들은 국민이 아닌 사법권력의 눈치를 보게 돼 공정한 재판이 어려워진다.
문재인 대통령이 8월21일 김명수 춘천지방법원장을 신임 대법원장 후보자로 지명했다. 은 ‘제왕적 대법원장 체제’로 비판받는 양승태 코트의 문제점과 새 대법원장 앞에 놓인 사법 개혁의 과제를 짚어봤다. 전·현직 판사 12명을 인터뷰했고, 1·2차 전국법관대표회의 회의록, 대법원의 진상조사 보고서, 논란이 된 국제인권법연구회의 ‘법관인사제도 모색’ 학술대회 자료집, 지난 6~7월 법원 개혁을 주제로 열렸던 각종 토론회 자료 등을 꼼꼼히 살폈다. 참여연대와 공동으로 ‘우리는 어떤 대법원장을 기대하는가-양승태 대법원 평가와 차기 대법원 과제 모색’ 좌담회를 주최하고, 청와대가 대법원장 후보로 유력하게 검토했으나 끝내 고사한 박시환·전수안 전 대법관의 이야기도 들었다. 이 해마다 심사하는 ‘올해의 판결’을 통해 양승태 코트 4년(2013~2016년)도 돌아봤다. _편집자
신임 대법원장 후보로 김명수 춘천지방법원장이 지명된 것은 양승태 대법원장의 ‘제왕적 체제’ 때문이기도 하다. 전국법관대표회의 모습. 공동취재사진

신임 대법원장 후보로 김명수 춘천지방법원장이 지명된 것은 양승태 대법원장의 ‘제왕적 체제’ 때문이기도 하다. 전국법관대표회의 모습. 공동취재사진

2017년 2월14일 오후 4시30분 서울 서초동. 추위도 누그러든 포근한 밸런타인데이였다. 대법원 길 건너편 서울중앙지법은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재청구한 일로, 강 건너 종로 헌법재판소에선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심판 13차 공개변론으로 분주한 날이었다. 이아무개 판사가 이규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고등법원 부장판사)의 사무실을 찾았다. 닷새 전에 대법원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심의관으로 발령받은 이 판사가 인사를 위해 들른 자리였다. 이 판사는 법원 내 연구모임 ‘국제인권법연구회’(인권법연구회)의 기획팀장이다. 이규진 상임위원은 2015~2016년 인권법연구회 회장을 지냈었다. 이규진 상임위원의 발언은 뜻밖에도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기획조정실 컴퓨터에 보면 비밀번호가 걸려 있는 파일들이 있어요. 이 판사가 어차피 비밀번호를 다 풀 거 아니에요? 그러면 거기에 판사들 뒷조사한 파일들이 나올 텐데 놀라지 마요.”

인권법연구회 탄압 의혹

이규진 상임위원은 이 판사에게 “좋은 취지로 한 거니까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말라”고 말했다. 이른바 ‘판사 블랙리스트’가 있다는 이야기였다. 충격받은 이 판사는 밤새 잠들지 못하고 뒤척였다. 다음날 오전 이 상임위원이 이 판사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인권법연구회가 법원행정처에 반발하는데, 이에 반박하는 논리를 전파하라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다.

인권법연구회는 당시 법원의 ‘시한폭탄’ 같은 존재였다. 2월13일 법원행정처는 연구모임에 중복 가입한 판사들에게 “3월5일까지 하나만 남기고 나머지는 탈퇴하라”고 공지했다. 인권법연구회는 등록 회원이 500명 가까이 되는 최대 연구모임이다. 전국 법관이 3천 명이니, 넷 중 하나는 인권법연구회 회원인 셈이다. 대법원이 내세운 표면적 이유는 예산 배분의 형평성이다. 그러나 속내는 다른 데 있었다. 인권법연구회는 ‘제왕적 대법원장 체제’와 법관 인사제도의 문제점 등을 발표하는 학술대회를 준비 중이었다. 2월9일 전국 법관에게 설문조사 전자우편을 보냈다. ‘대법원장 등 사법행정권자의 정책에 반하는 의사표현을 한 법관은 보직, 인사평정 등에 불이익을 받을 우려가 있냐’ 등 민감한 질문들이 담겼다. 인권법연구회 ‘탄압’을 위해 중복 가입 해소 핑계를 댄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나를 왕당파로 만들려고 법원행정처로 불렀나.’ 이 판사는 자괴감에 시달렸다. 법원행정처는 판사들에게 요직으로 가는 첫 관문으로 여겨진다. 법원행정처 심의관을 거쳐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부, 고등법원 부장판사, 법원행정처 차장, 대법관으로 이어지는 탄탄대로가 열린다. 전국 법원의 사법행정 사무를 관리·감독하는 법원행정처는 대법원장의 직할부대나 다름없다. 이 판사는 2월16일 출근하자마자 사직서를 제출했다.

사소해 보이지만 결정적인 하나의 사건이 때로 역사를 만든다. 이 판사가 겪은 사흘의 시간이 그랬다. ‘양승태 체제’ 6년간 곪을 대로 곪았던 상처가 터져나오는 계기가 됐다. 이 판사에게 내려진 부당한 지시와 인권법연구회 탄압 의혹을 밝히라는 일선 판사들의 목소리가 3월부터 법원 내부게시판 ‘코트넷’에 쏟아졌다. 전국 법원마다 판사회의가 열렸다. ‘탄압’을 주도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은 직무에서 배제됐다. 대법원은 이인복 전 대법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렸다.

역사의 마중물 된 판사들의 항명
사법 관료화의 정점을 찍었다고 평가받는 양승태 대법원장(왼쪽).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오른쪽)는 ‘제왕적’이 아닌 ‘민주적’ 대법원장이라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 수 있을까. 연합뉴스

사법 관료화의 정점을 찍었다고 평가받는 양승태 대법원장(왼쪽).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오른쪽)는 ‘제왕적’이 아닌 ‘민주적’ 대법원장이라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 수 있을까. 연합뉴스

하지만 한 달여 조사 끝에 4월 위원회가 내놓은 결론은 이상했다. 이규진 상임위원이 인권법연구회 학술행사를 연기하거나 축소하라고 압박한 사실은 인정하고, 법원행정처 연구모임 중복 가입 해소 공지가 “사법행정권 남용에 해당한다”고 판정하면서도 ‘꼬리 자르기’를 했다. “비밀번호 파일 이야기를 한 적 없고 전혀 모르는 사실”이라는 이 상임위원의 해명은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졌다.

판사는 재판에서 실체적 진실이 무엇인지 판단하는 존재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의혹만 남고 진실은 사라졌다. 이규진 상임위원이 작성했다는 ‘학술대회 연기·축소를 위한 대책 문건’이 ‘블랙리스트’로 둔갑했고, 이 판사의 컴퓨터 하드디스크는 들여다보지도 않았다. 대법원은 이규진 상임위원에게 ‘감봉 4개월’의 징계를 내리고 임종헌 차장을 사임시키는 선에서 서둘러 문제를 덮으려 했다. 전국 판사 99명은 6월19일과 7월24일 1차·2차 전국법관대표회의를 열어 이번 사건의 재조사와 양승태 대법원장 면담, 컴퓨터 하드디스크 보존 등을 요구했다. 그러나 양승태 대법원장은 지금까지 묵묵부답이다. 급기야 수도권 법원의 한 판사는 ‘블랙리스트 의혹 재조사’를 요구하며 8월10일부터 13일간 물과 소금, 효소만 먹는 금식 투쟁을 했다.

양승태 대법원장의 임기는 9월24일 끝난다. 일선 판사들의 항명은 결과적으로 역사의 마중물이 됐다. 촛불집회부터 시작된 ‘적폐 청산’이라는 시대적 요청을 사법부도 피해갈 수는 없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는 사법부 개혁을 1순위에 놓고 신임 대법원장 후보를 물색했다. 문 대통령은 김명수 춘천지방법원장을 양승태 대법원장 후임으로 지명했다. ‘파격’ ‘코드 인사’ ‘정권의 사법부 장악’이라는 정치권의 비판이 이어졌다. 정말 그럴까.

은 ‘양승태 코트’(양승태 대법원장 재임기간)에서 판사로 근무한 전·현직 판사 12명과의 인터뷰를 통해 대법원장직이 양승태에서 김명수로 넘어갈 수밖에 없던 필연의 과정을 되돌아봤다. 양승태 체제의 문제점과 극복 방안, 새 대법원장에게 바라는 점을 직접 묻고 들었다. 신분상의 불이익을 염려해 판사들의 이름은 모두 익명으로 적는다.

“그동안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가 너무 권위적이고 법관들의 목소리가 잘 전달되지 않는다는 불만은 있었지만, 이 판사 문제나 인권법연구회 건이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는 안 됐을 거다. 평소 관심 없어하던 판사들까지 ‘너무 심하다’고 생각했다.” 전국법관대표회의에 참석하는 A판사는 인권법연구회 소속은 아니지만 ‘대법원장 퇴진’ 목소리까지 나온 근본적 원인은 대법원장 본인에게 있다고 본다.

밖으론 ‘소통’ 선언, 내부에선 ‘불통’

지방법원에 근무하는 B판사는 양승태 대법원장뿐만 아니라 법원행정처를 지목했다. “우연과 필연이 겹쳤다. 일선 판사들의 재판과 연구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았던 행정처의 태도가 문제의 근원이다. 인권법연구회 학술대회만 하더라도 행정처의 과잉 대응이다. 임종헌 차장은 어느 시점부터 재판보다 행정을 더 많이 하다보니 행정처 권한을 독점하고 ‘귀족’처럼 군림하려 했다.” C판사는 “(이번 사태로 드러난) 사법행정권 남용은 ‘회전문’처럼 특정 인물을 돌려막기한 인사 실패의 결과물”이라고 꼬집었다. “임종헌 차장에게 5년간 행정처 실·차장을 시키면서 견제되지 않는 힘을 실어준 탓”이 문제의 원인이니 “그 책임은 대법원장에게 있다”는 것이다. 법원행정처 차장은 대법관으로 직진하는 통로다. 1970년 이후 임명된 판사 출신 대법관 81명 가운데 법원행정처 차장 출신이 21명에 이른다. 법원행정처는 국회나 정부 부처를 상대하는 대외 창구이기도 하다. ‘이용훈 코트’ 때 법원행정처장을 비(非)대법관으로 임명했다가 2년 만에 다시 대법관이 겸직하도록 바꾼 이유 가운데 하나는 국회를 상대로 발언력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2011년 9월27일 취임사에서 “법원 업무가 행해지는 모든 현장에서 국민과 끊임없이 소통하면서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입시다”라고 말했다.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하던 대법원장은 정작 법원 내부에선 ‘불통’이었다. “판사들이 상고법원 추진 소식을 언론을 보고 알았으니 할 말 다 한 거죠. 상고법원을 추진할 수는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그 과정이 너무 정치적이었습니다. 판사들을 동원해 국회의원들한테 줄 대고….” D부장판사는 법원행정처에서 국회의원들과 친분을 쌓은 판사들이 대법관이 되어 다시 (재판 등의 업무에서) 청탁받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라도 법원행정처의 권한을 줄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양승태 체제의 정치 편향성은 처음부터 뚜렷했다. 2012년 ‘가카 빅엿’ 발언을 개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올린 서기호 판사가 법관 재임용 심사에서 근무평정 하위 2%라는 이유로 탈락됐다. 이어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에 무죄를 선고하는 등 소신 판결로 유명했던 이정렬 부장판사가 재판 합의 내용을 공개했다는 이유로 정직 6개월의 중징계를 받았다. 2014년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것에 ‘지록위마’라는 비판글을 ‘코트넷’에 올린 김동진 부장판사도 정직 2개월에 처해졌다. 이후 판사들은 입을 닫았다.

소신 판결, 용기가 필요했다

박근혜 정권 당시 청와대 내부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고 김영한 전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의 업무일지에는 ‘보수·진보 갈등 관련 판결시 진보 쪽에 유리하게 선고하는 관행 문제’ 등의 표현이 적혀 있다. 이를 통해 국정원이 법관들을 상대로 사상 검증을 시도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졌다. 판사들 사이에선 사법부의 독립, 재판의 독립이 침해받고 있다는 절박한 위기감이 싹텄다. 양승태 체제는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 근무평정 등 인사권을 ‘채찍과 당근’ 삼아 판사들의 목줄을 더 강하게 죄었다. 인권법연구회의 설문조사에 응답한 판사 502명 가운데 443명(88.3%)이 “대법원장 등 사법행정권자의 정책에 반하는 의사표현을 한 법관이 보직, 근무평정, 사무 분담 등에 불이익을 받을 우려가 있다”는 문항에 공감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민주정부 이전으로 돌아가 관료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변화를 기대할 수 없는 법원에서 싹을 틔우기에는 너무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장판사를 그만두고 나온 E변호사의 말이다. 인사만이 아니다. 하급심에서 소신 판결을 내놓는 일도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다. “(양승태 체제가) 판사들이 실제 의견 자체를 말하기 꺼리는 법원을 만들었다. 판사들끼리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판결 쓰면 앞으로 형사재판 못한다’ ‘(대법원 판례와 배치되는) 긴급조치 피해자에게 국가가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고 판결하면 주요 보직 못할 거다’라는 농담을 한다.” 이를 F판사는 판사들이 ‘순치’됐다고 표현했다. 그런 가운데 올해 들어서만 29건의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판결이 내려지는 등 하급심 판사들은 ‘이유 있는 저항’을 이어왔다. 인권법연구회 등 특정 연구모임이 이런 저항을 주도한다는 시선에 대해 G부장판사는 “일선 판사들은 공부하고 연구하면서 자기 생각과 소신대로 판결할 뿐인데 왜 대법원 판결을 안 따랐냐고 비판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꼬집었다.

‘출·포·판’이란 출세를 포기한 판사를 뜻하는 판사들의 은어다.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도 그런 비주류였다. 판사 생활 31년간 오로지 재판만 해왔다. 법원행정처 근무 경험이 없다. 그렇다고 실력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민사법에 정통해 민사 사건을 다루는 대법원 재판연구관 가운데 ‘조장’을 맡기도 했다. 하지만 이른바 대법관 승진 코스로 여겨지는 요직에서 일한 적은 없다.

김명수 후보자가 서울고법 행정10부 재판장으로 2015년 11월 내린 ‘전교조 법외노조 효력정지 가처분 사건’ 인용 결정을 두고 당시 ‘올해의 판결’ 심사위원들은 “출세를 포기하겠다는 선언에 가까운 용기 있는 결정”이라고 입을 모았다. 비록 본안소송 선고 이전까지만 법외노조 처분의 효력을 정지한다고 유예한 결정이긴 했다. 그러나 대법원이 ‘전교조는 법외노조’라고 파기환송해 내려온 사건인 만큼 판사의 인간적 고뇌가 느껴진다는 이유였다. 김 후보자는 이 밖에도 삼성에버랜드가 노동조합 부지회장을 부당 해고했다고 인정하는 판결 등을 내렸다.

“관료화된 과거의 사법부, 구시대성이 문제”
서울 서초동의 대법원 전경.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는 당당한 사법부는 시대적 요구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서울 서초동의 대법원 전경.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는 당당한 사법부는 시대적 요구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야당과 보수단체 등에선 김명수 후보자 지명을 두고 ‘파격 인사’라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반발한다. 양승태 대법원장(사법연수원 2기)보다 사법연수원 기수가 13단계나 아래이고, 대법관 13명 가운데 9명이 선배라서 안 된다는 논리다. 김명수 후보자는 58살이다. “얼마 전 법원행정처장으로 임명된 김소영 대법관이 52살이다. 그건 파격 아니었나. 신임 대법원장한테 대법관 제청도, 법원행정처도 마음대로 하면 안 된다는 표현을 에둘러 하면서 길들이려는 거다.” H부장판사는 야당의 반발에 수긍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대부분의 판사들은 김명수 후보자가 우리법연구회 회장(2005년), 인권법연구회 초대 회장이기 때문에 ‘코드 인사’라는 비판도 부당하다고 입을 모았다. “우리법이나 인권법 모두 더 좋은 재판을 위해 공부하는 연구모임일 뿐이다. 우리법 출신 판사 몇몇이 법원행정처에 들어갔던 ‘이용훈 코트’ 때도 우리법은 여러 문제점에 대해 반대 목소리를 냈다.” 두 연구회에 모두 몸담았던 판사 출신 I변호사는 “김명수 후보자가 인권법연구회 초대 회장을 맡았던 것도 고등법원 부장판사급에서 연구회 회장을 맡는 게 관행이라 후배들이 부탁해서였다”고 말했다.

인권법연구회가 우리법연구회의 ‘후신’이라는 언론 보도도 적절치 않다는 의견이 많았다. “인권법연구회는 회원이 500명에 이르는데다, 회원 추천을 받아 폐쇄적으로 가입시켰던 우리법과는 달리 개방적인 조직이다.” 과거 우리법에 몸담았다가 탈회한 J부장판사의 설명이다. 실제 인권법연구회가 관심을 두는 주제는 재판 독립, 법관 인사 제도 같은 사법행정의 문제뿐만 아니라 난민, 양심적 병역거부, 표현의 자유 등 폭이 넓다. 이번에 문제된 이규진 상임위원이나, 원세훈 전 국정원장 선거법 무죄판결을 썼던 이범균 부장판사도 인권법연구회 회원이었다. “인권법연구회는 진보·보수 가리지 않고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국제인권법 규약에 있는 법관의 독립 문제나 인권 논의는 세계화된 흐름인데, 여기에 자꾸 정치적 색칠을 하는 건 옳지 않다.”(K부장판사)

그렇다면 김명수 후보자는 ‘제왕적’ 대법원장이 아닌 ‘민주적’ 대법원장이 될 수 있을까. 최근 판사를 그만둔 L변호사는 “양승태 대법원장 개인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관료화된 과거의 사법부가 ‘재판 독립’을 원하는 판사들을 통제하려 한 구시대성이 문제”라고 말했다. 양승태에서 김명수로 ‘제왕’이 바뀌어서는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의미다.

“국민이 바라는 건 권력에 당당한 사법부”

김명수 후보자는 춘천지법원장 시절 민형사 사건 재판부 구성 등을 어떻게 할지 결정하는 사무 분담을 판사들끼리 직접 토론해 정하게 했다고 한다. 민주적 법원 운영을 실험한 셈이다. “지금 판사들의 요구는 사법 관료화를 막아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국민을 바라보는 공정한 재판을 하게 해달라는 것이다. 새 대법원장이 내놓을 가장 큰 메시지는 결국 국민과 함께하는 정의로운 법원을 만드는 것이다.”(M부장판사) “긴급조치, 통상임금 판결 등 양승태 코트는 자꾸 권력자의 눈치를 보고 하급심 판결에는 눈을 흘겼다. 국민이 바라는 건 권력에 당당한 사법부다. 사법이 민주주의의 후퇴를 막아주고, 시민들이 사법 독립을 보호해줘야 한다.”(H부장판사)

양승태라는 ‘제왕적 대법원장 체제’로 인해 재판 독립과 사법 개혁을 중시하는 대법원장이 필요하다는 시대적 요구가 더 거세졌다. 그렇게 김명수라는 새로운 인물이 역사의 전면에 불려나왔다. 이제 사법 역사의 새 페이지는 어떻게 쓰일까.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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