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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환·전수안, 김명수의 개혁에 힘 실어주겠다

대법원장 제의 끝내 고사한 두 전직 대법관 인터뷰

“김명수 후보자가 우리보다 훨씬 나은 대법원장 적임자”
등록 2017-08-29 14:00 수정 2020-05-03 04:28
청와대가 다음 대법원장을 맡아달라고 제의했으나 끝내 고사한 박시환(왼쪽), 전수안 전 대법관. 두 사람은 “김명수 후보자가 우리보다 더 적임자”라고 입을 모았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청와대가 다음 대법원장을 맡아달라고 제의했으나 끝내 고사한 박시환(왼쪽), 전수안 전 대법관. 두 사람은 “김명수 후보자가 우리보다 더 적임자”라고 입을 모았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대법원장 후보로 지명된 김명수(58·사법연수원 15기) 춘천지방법원장은 ‘깜짝 카드’였다. 그동안 대법원장으로 거론된 후보 명단에 전혀 등장하지 않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실제 청와대가 대법원장으로 유력하게 생각한 카드는 박시환(64·사법연수원 12기), 전수안(65·사법연수원 8기) 전직 대법관이었다. 두 사람은 참여정부 때 김영란·김지형·이홍훈 대법관과 함께 ‘독수리 오남매’로 불렸다. ‘이용훈 코트’는 보수 일색이던 대법관들의 시선이 진보 또는 소수자 인권 등으로 넓어진 최초이자 마지막 시기였다.

대법관 퇴임 뒤에도 박시환·전수안 전 대법관은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았다. 박시환은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교수로, 전수안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이사장으로 돈과 권력을 멀리하며 살았다. 박시환은 소장 판사들이 사법 개혁을 집단 요구했던 ‘사법 파동’의 상징으로, 전수안은 양심적 병역거부·동성애 등 인권법 분야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후배 법관들의 존경과 신망을 받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둘 중 한 사람에게 사법 개혁의 큰 책무를 맡기고 싶어 했다. 하지만 둘 모두 제의를 완강히 거부했다. 대법관으로서 6년간 사법부 기득권 세력과 누구보다 치열하게 싸웠던 두 사람이기에 그만큼 상처도 컸다. 사석에서 농담처럼 “대법원이 있는 서초역 근처에도 가고 싶지 않다”고 말할 정도다. 그렇다고 사법부에 대한 애정이 식은 것은 아니다. 전수안 전 대법관은 8월23일 과 참여연대가 공동 주최한 ‘우리는 어떤 대법원장을 기대하는가’ 좌담회(표지이야기 <font color="#C21A1A">"지금 필요한 건 판사 독립" </font>참조) 맨 뒷자리에 앉아 2시간 내내 좌담회를 지켜봤다. 은 24일 박시환·전수안 전 대법관을 각각 1시간가량 전화로 인터뷰했다. 두 사람은 “이제 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게 부담스럽다”면서도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다”고 밝혔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김명수 후보자는 사령관 캐릭터” </font></font>김명수 대법원장 지명이 파격이라거나 뜻밖이란 반응이 많다.

전수안 박시환 전 대법관이나 나보다 나은 선택이다. 전직 대법관이 아니고 법원행정처도 안 거쳤다는 점이 단점보다는 장점이 될 거다. 가장 기대되는 점이기도 하다. 법원행정처 심의관부터 시작해 대법관이 되는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사람은 ‘발상의 전환’을 한다는 게 굉장히 어렵다. 김명수 후보자는 (대법관을 했던 우리보다) 무의식적으로 (몸과 마음에) 밴 관행에서 자유로울 것이다. 법원행정처 경험이 없어 법원 조직을 끌고 가기 어렵지 않겠느냐는 우려도 있겠지만, 법원은 일사불란하게 통제되거나 조직되지 않을수록 더 좋은 조직 아닌가.

박시환 나는 직설적이고 공격적인 돌격형 캐릭터인데, (법원 있을 때 옆에서 지켜본) 김명수 후보자는 사령관 캐릭터다. 성격이 차분하고 두루 이런저런 면을 침착하게 살핀다. 사법부에 대한 문제의식이나 개혁 방향에서 주관이 분명하면서도 그걸 합리적으로 종합할 수 있는 사람이다. 후배 판사들이 나한테 “역사의 임무를 어떻게 회피할 수 있냐”고 했는데, 나의 역사적 임무는 김명수 후보자를 위한 길을 깔아주는 것 아니었나 싶다.

우리법연구회, 국제인권법연구회 경력 등을 이유로 ‘코드 인사’라는 비판이 나오는데.

박시환 대통령이 대법원장을 임명하는 것은 헌법상의 권리다. 대통령이 자신과 철학을 같이하고 사법부의 이상을 구현할 사람을 대법원장으로 고르는 것은 헌법이 이미 예정한 요소다. 그걸 문제 삼으면 안 된다. 우리나라가 지향하는 자유민주국가에서 바람직한 사법부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 생각해보자. 권력, 여론, 사법부 내부로부터의 독립 3가지는 자유민주국가 체제에서도 강조하는 바다. 이러한 재판 독립을 가장 강화할 사람, 좋은 사법부를 만들 사람을 고른 것이다. 연구회는 좋은 재판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면서 사법권 독립, 재판 제도 등을 연구·검토하는 모임이다. 이것을 ‘좌’(左)라고 비판하는 건 자기모순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 ‘보수’로 기울어진 운동장 바로잡기 위해” </font></font>

전수안 정치인들이 사법부를 지지 또는 반대하는 기준은 ‘무엇이 재판하는 사람 또는 재판받는 사람에게 이로운가’여야 한다. 법관과 시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보다 자신들의 정치적 논리와 유불리에만 몰입한 정치인들의 발언은 참으로 난감하다. 재야나 법원 안에서 이 정도의 후보를 찾기 쉽지 않다. 이조차 반대한다면 그건 정치권의 억지다.

‘독수리 오남매’는 하나같이 대법원 내부에서의 싸움이 고통스러웠다고 말한다. 사법부 기득권을 상대로 한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의 개혁 역시 만만치 않아 보이는데.

박시환 그래서 법원 바깥에서 힘을 실어주는 게 중요하다. 하나의 도도한 흐름이 만들어져야 한다. 촛불집회만 하더라도 처음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까지 이어질 줄은 진짜 몰랐던 것 아니냐. ‘사법부가 드디어 바뀌는구나’ ‘변화하는 법원의 모습이 기대된다’ 이런 외부의 흐름이 만들어지면 (법원 내부 기득권의 반발은) 괜찮아질 것이다.

전수안 (개혁의) 목표와 취지,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 역시 중요하다. 과정 때문에 목표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개혁을 연착륙시키는 과정에서 법관, 직원 등 ‘법원 가족’을 다 아우르고 갔으면 한다. 누구도 상처받지 않도록. (대법관 임명 제청 때) 이른바 ‘보수’로 기울어졌다고 지적받는 운동장을 바로잡기 위해 자칫 ‘진보’ 쪽으로만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드는 우를 범해서도 안 된다. 물론 오랜 세월 보수 쪽으로만 기울어서 균형을 맞추려면 처음엔 진보 쪽으로 약간 기울어야 할 수도 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고법 부장판사 승진 폐지 등 우선 과제” </font></font>새 대법원장에게 바람이 있다면.

전수안 첫째, 너무 잘하려 하지 마시라. 지나치면 법관과 법원 직원들에게 과부하를 줄 수 있다. 둘째, 모든 걸 잘하려 하지 말고 선택과 집중을 해서 하나씩 해나가라. 구체적으로는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 폐지와 법원행정처 개편을 우선 해야 할 것이다. 좋은 재판을 하겠다는 법관들의 열정과 소명을 좌절시켜서는 안 된다. 셋째, 재판하는 사람을 존중하고 어렵게 여겨야 한다. 재판받는 사람에게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법원장은 직접 재판 당사자를 만나는 사람이 아니니 재판하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서 재판받는 사람에게도 행복을 베풀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넷째, 국민에게 고충을 솔직히 고백하고 협조를 구해야 한다. 현실적 여건으로 볼 때,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은 로망이다. 공정하면서 어느 정도 신속한 재판을 받으려면 1심 판사 증원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세금 등 국민의 부담이 필요하다고 솔직히 고백하고 호소해야 한다.

박시환 지금 사법부의 변화에 대한 국민의 열망이 크다. ‘독수리 오남매’는 (대법관 13명 가운데) 소수에 불과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시 이용훈 대법원장을 선택한 게 ‘그나마 나은 사람’을 앉힌 거라면, 이번에 문재인 대통령은 사법부를 확 바꿀 사람을 뽑아야 한다는 의지가 강했다. 이것은 국민의 뜻이기도 하다. 사법부의 수장이 바뀌면서 법원이 새로 자리잡아가야 한다는 시대적 흐름이나 욕구가 강하다. 김명수 후보자가 좋은 사법부를 만들어주리라 기대한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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