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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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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 키즈존

경기도 시흥의 브런치 레스토랑·이화여대 앞 베이글 카페

엄마와 아이를 배제하지 않고 ‘공존’하거나 ‘배려’하는 공간도
등록 2017-08-22 17:33 수정 2020-05-03 04:28
경기도 시흥시 월곶동에 있는 브런치 레스토랑 ‘바오스앤밥스’는 ‘예스 키즈존’을 표방한다. 엄마와 아이,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꿈꾸는 소셜벤처 ‘빌드’가 설립한 이곳에선 매주 수요일 오전 ‘월곶맘’ 모임이 열린다. ‘월곶맘’ 회원들과 우영승 ‘빌드’ 대표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경기도 시흥시 월곶동에 있는 브런치 레스토랑 ‘바오스앤밥스’는 ‘예스 키즈존’을 표방한다. 엄마와 아이,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꿈꾸는 소셜벤처 ‘빌드’가 설립한 이곳에선 매주 수요일 오전 ‘월곶맘’ 모임이 열린다. ‘월곶맘’ 회원들과 우영승 ‘빌드’ 대표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경기도 시흥시 월곶포구 인근은 ‘불편한 동거’ 중이다. 바다 가까이 해안도로에는 횟집이 줄줄이 늘어서 있고, 그 뒤는 모텔 골목이다. 1996년 갯벌을 매립해 테마파크 관광지를 조성했지만, 개발사업은 원활치 않았다. 남은 땅에는 아파트 단지와 초등학교, 상가 건물이 들어섰다. 장사가 되지 않는 가게와 모텔은 텅텅 비어갔다. 주거지와 관광지가 어색한 모습으로 공존했다.

육아·비육아 공존하는 레스토랑

그 해안도로의 한 건물 4층에는 아주 특별한 브런치 레스토랑이 있다. 횟집, 노래방, 민물장어, 칼국수 간판이 어지러운 건물 꼭대기에 위치한 ‘바오스앤밥스’라는 세련된 브런치 레스토랑이다. 그냥 레스토랑과는 어딘가 다르다. 낮에는 따듯한 햇살이, 밤에는 찬란한 불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통유리창,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멋진 경관 때문은 아니다. 레스토랑에 들어서면 인디언텐트, 흔들목마, 인형 등이 가득 찬 놀이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놀이공간 뒤편에는 수유실도 있다. 출입문 바로 옆엔 아이들이 마구 뒹굴어도 좋을 푹신한 쿠션이 널찍하게 놓여 있다.

요즘 유행하는 키즈카페일까? 아니다. 엄마와 아이들이 많이 찾는 키즈카페에는 일반 손님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그런데 이곳은 다르다. 8월16일 낮, 점심시간이 되자 식탁보가 곱게 깔린 테이블이 하나둘 손님들로 들어차기 시작했다. 테이블 6곳 가운데 3곳이 아이를 동반한 손님이고, 나머지 절반은 바다를 바라보며 우아하게 식사하러 온 남녀 커플, 직장인 무리 등이다.

‘불편한 공존’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키즈카페는 갈 곳 없는 엄마와 아이들을 특정 울타리 안에 가두는 배제와 분리의 공간이다. 그래서 엄마들은 키즈카페에 있을 때 왠지 모를 불편함을 느끼곤 한다. 놀잇감이 넘쳐서 아이들은 노느라 바쁘지만, 엄마는 아이에게서 눈을 뗄 수 없다. 이름만 카페일 뿐, 우아하게 식사하거나 여유롭게 커피를 마실 여유가 허락되지 않는다. 이곳을 찾은 엄마와 아이들의 얼굴은 편안해 보였다.

바오스앤밥스라는 공간의 태생에 비결이 숨어 있다. 지역 재생과 커뮤니티 사업을 목적으로 설립된 소셜벤처 ‘빌드’는 2016년 12월 ‘엄마와 아이가 편하게 찾을 수 있는 브런치 레스토랑’을 만들었다. 4년간 비어 있던 90평 크기의 낡은 사무실을 직접 개조해 꾸몄다.

“월곶동 인구 1만7천 명 가운데 절반이 초등학생 이하 자녀를 둔 젊은 부부예요. 그런데 정작 지역주민들이 갈 공간은 없다는 점에 주목했어요. ‘노키즈존’이 늘어나면 엄마와 아이들은 갈 곳이 점점 없어지잖아요. 그렇다고 ‘예스 키즈존’이 엄마와 아이들만 오는 곳이 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죠. 엄마와 아이를 분리하지 않고 공존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우영승 ‘빌드’ 대표의 설명이다.

26살의 젊은 대표는 사회를 이롭게 하는 가치경영에 관심이 많다. 그는 대학 시절 사회적기업 연합동아리 대표를 맡았고, 소셜벤처 인큐베이터인 ‘언더독스’를 창업했다. 2014년에는 시흥시 정책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월곶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저도 언젠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키울 거잖아요.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가 뭘까? 삶이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지역에 커뮤니티를 만드는 비즈니스, 여성의 삶에 가치를 더해주는 일이었어요.”

지역 커뮤니티 사랑방 역할

이 레스토랑은 단순한 소비공간과도 다르다. 이날 레스토랑의 첫 손님은 아이들을 데려온 ‘월곶맘’ 4명이었다. 빌드 직원 2명도 함께했다. 직원 1명도 월곶동에 거주하는 아이 엄마다. 시흥시에서 진행한 ‘멋진 엄마, 잘 노는 아이’ 행사를 통해 만난 동네 엄마들은 ‘월곶맘’ 커뮤니티를 꾸려 매주 수요일 오전 이곳에 모인다. 빌드는 엄마들이 자아를 찾을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커피와 함께 공짜로 제공한다.

“친정 가족이랑 연말에 식사하러 처음 와봤어요. 아이들이 엄청 시끄럽게 하는데도 직원들이 오히려 아이를 놀이공간으로 데려가 놀아주더라고요.” 전효선(32)씨는 그 후 단골손님이 됐고 ‘월곶맘’ 모임에도 참여했다. 박이나(35)씨는 식당에서 ‘맘충’ 취급을 받은 적이 있다. 죽을 포장해가려고 줄 서서 기다리다 유모차에 앉은 아이가 심하게 울자, 옆에 있던 손님이 짜증을 냈다. “유모차 밀고 어디 갈 때마다 눈치 보게 되더라고요. 여기선 눈치를 안 봐서 좋아요. 결혼기념일 등 기분 좋은 날이면 남편이 먼저 여기 오자고 해요.”

엄마와 아이 모두가 행복한 공간을 위한 빌드의 실험은 계속된다. 9월 말, 바로 옆건물에 새로 오픈할 ‘북&플라워카페’는 엄마들이 커피 한잔 마시며 책을 볼 수 있고 스스로에게 꽃을 선물할 수 있는 ‘작은 사치’를 누리는 공간으로 꾸밀 예정이다. 엄마가 책을 읽는 동안 아이들이 따로 머물 공간도 설계 중이다.

공존은 사소하지만 작은 데서부터 출발한다.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앞 베이글 카페 ‘마더린러’의 배려도 그렇다. 마더린러 출입문 옆에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마더린러는 임산부 및 3살 이하의 유아 동반자 고객님을 우선적으로 도와드리고자 합니다. 바로 카운터로 오시면 도와드리겠습니다. 고객님들의 너그러운 양해 부탁드립니다.”

“임산부·유아 먼저”
임산부와 3살 이하 유아 동반자 고객을 우대해 서비스하는 서울 이화여대 앞 ‘마더린러’의 정정자 사장.

임산부와 3살 이하 유아 동반자 고객을 우대해 서비스하는 서울 이화여대 앞 ‘마더린러’의 정정자 사장.

저온 숙성한 베이글을 화덕으로 굽는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가게 앞에 줄이 길게 늘어섰다. 가게엔 작은 테이블이 3개뿐이라 포장 손님이 많은 탓이다. “땡볕이거나 추운데 아이들이 오래 줄 서 있다가 보채고 우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편치 않더라고요.” 미국에서 13년 넘게 베이글 가게를 운영하다 한국에도 가게를 차린 정정자(60) 사장은 미국에서는 한 번도 노키즈존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바오스앤밥스 벽에는 다음과 같은 안내문이 붙어 있다. “바오스앤밥스는 ‘예스 키즈 존’(Yes! Kids Zone)입니다. 가족과 함께 행복해하는 아이들의 밝은 모습을 따뜻한 시선으로 너그러이 바라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더불어 ‘예스 투게더 존’(Yes! Together Zone)입니다. 다른 분들도 함께 즐거운 공간이 될 수 있도록 아이들에 대한 부모님의 많은 관심과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공존은 결코 불편하지만도, 불가능하지만도 않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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