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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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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기 민주정부의 100일, 개혁 과제 선정하라”

참여정부 초대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낸 문희상 의원

“국민 통합과 국가 경영 능력을 보여줘라, 유능하게”
등록 2017-05-18 14:58 수정 2020-05-03 04:28

“제3기 개혁정부는 정의라는 시대정신을 실현해야 한다. 그러려면 유능해야 한다. 국민 통합과 국가 경영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문희상(72)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감회가 남다른 듯했다. 5월10일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국립현충원 참배를 마치고 인터뷰를 위해 서울 여의도동 국회의원회관 사무실에 들어서며 “만감이 교차하는 것 같다. 처음 문재인 대통령을 만났을 때도 생각이 나고…”라며 말했다.

문 의원은 참여정부 초대 대통령비서실장과 국민의 정부 초대 정무수석,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을 지낸 여권의 ‘현역 원로’다. 그는 “문재인 정부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출범 100일 안에 할 수 있는 개혁 과제를 고른 다음, 1년 안에 이를 완수해야 한다. 그 뒤부턴 동력이 떨어진다”고 강조했다. 한국 사회의 ‘시대적 과제’로 떠오른 국가정보원 개혁에 대해선 “잘 정제된 칼을 흉기로 써선 안 된다”며 △국내 정치 관여 금지 △도청 △고문 금지 등 ‘3무 원칙’을 엄격히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이 ‘휴머니스트’라고 부른 사람”

문재인 정부 출범을 보며 어떤 생각이 드는가.

어느 때보다 기쁘다. 진보가 10년, 보수가 10년 집권한 뒤 다시 진보가 집권했다. 이 모습이 민주주의 정착 단계와 같아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세 차례 민주개혁 정부 출범을 지켜봤다. 1기는 김대중 대통령의 수평적 정권 교체였고, 2기는 노무현 민주개혁 정부였다. 개혁과 혁신을 내세운다는 점에서 문재인 정부는 3기 개혁정부다.

이번 대선은 촛불 대선이기도 했다.

촛불 민심의 핵심은 ‘새로운 세상 한번 만들어보라’는 것이다. 보수세력을 포함한 박정희 전 대통령 이후 현대사 적폐를 청산하라는 데 민심의 초점이 맞춰졌다고 본다. 그럼 새 세상 앞에 뭘 내세워야 할까. 빈부 격차 해소, 경제민주화, 삶의 질 향상 등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 중심에 있는 시대정신의 요체는 정의다. 정의는 원칙과 상식이 통하고 골고루 잘살고 반칙과 예외, 특권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문재인은 어떤 사람인가.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서 ‘굉장히 휴머니스트다, 온유하고 합리적인 성품을 지녔다’는 말을 들었다. 문재인을 참여정부 첫 민정수석비서관으로 임명할 때 나는 ‘안 된다’고 했다. 개혁정부의 첫 민정수석은 담대한 결기가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엔 백면서생 같다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절대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

참여정부 초 내 매제가 초대 경찰청장 후보에 올랐다. 서열에서나 점수에서나 1등이었다. 그런데 당시 문 수석이 대통령과 내 앞에서 눈을 똑바로 뜨고 그러는 것이다. “다른 건 다 1등인데 딱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안 된다. 비서실장 매제를 힘있는 기구의 장을 시키는 게 온전한 인사인가.” 무척 서운했다. 그래도 속으론 “노 전 대통령이 이 친구를 민정수석으로 잘 뽑았구나” 싶었다. 문 대통령 별명이 고구마인데, 답답하다는 뜻도 있지만 강직하다는 말도 된다.

문재인의 ‘깡’, 이른바 권력의지를 본 장면도 하나 소개하겠다. 2015년 2월 새정치민주연합 전당대회를 앞두고 바로 이 방에서 문재인, 박지원, 정세균, 나 이렇게 네 명이 만났다. 출마를 하지 말자고 한 합의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그런데 느닷없이 박지원씨가 당대표에 나가겠다고 하더라고. 그때 문재인 대통령이 “출마하지 않기로 한 박지원 의원이 나간다면 내가 나서 대결하겠다”고 했다. 그러고는 전당대회에서 박지원을 반개혁으로 규정하고 옹골차게 싸워 이겼다. 흔히 문 대통령이 권력의지가 부족하다고들 하는데 나는 그때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하는 문재인을 봤다. 물론 그 뒤로 호남 쪽에서 계속 고전하며 애먹기도 했다.

“최우선 과제는 정치 개혁 분야 개헌”

참여정부 첫 비서실장을 지낸 경험으로 새 정부가 초기에 반드시 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취임 뒤 100일까지가 중요하다. 그 기간에 정부조직법을 모두 마무리하고 핵심 정책 공약을 추려내야 한다. 모든 정책 공약을 다 하려는 건 어리석다. 일자리 등 시급한 개혁 과제를 10개 정도로 압축해 선정하고 이행 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리고 1년 안에 이를 끝내야 한다. 1년만 지나도 동력이 떨어져서 못한다.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은 취임 100일 안에 핵심 법률안 112개를 정리했다. 그리고 뭐니 뭐니 해도 인사가 만사다. 초기 시간은 인사의 시간이다. 첫 내각과 청와대 구성이 중요하다. 이걸 잘못하면 인사가 ‘망사’가 된다.

이낙연 총리 후보자와 임종석 비서실장이 임명됐는데.

첫 인사로는 무난해 보인다. 상징성과 보완성이 있다. 노무현 정부 때 첫 인사는 자체적으로도 ‘너무 뾰족하다’고 했는데 고건 총리와 내가 들어가면서 보완이 됐다. 이낙연 총리 후보자의 경우 지역적 탕평 인사라는 측면이 있다.

참모는 어떤 구실을 해야 하나.

비서실장이나 수석은 십중팔구 내시가 되기 쉽다. 전 정부에서 ‘십상시’니 ‘(문고리) 3인방’이니 하는 말도 그래서 나온 것이다. 모든 대통령이 3년차가 되면 자기가 완벽히 최고라고 여긴다. 검찰, 국정원, 경찰을 비롯한 모든 정보가 대통령에게 보고된다. 모든 정보를 독점하는 것이다. 진짜 참모 노릇을 하려면 시도 때도 없이 ‘아니요’라고 해야 한다. 대통령이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자극하고 일러줘야 한다. 심기를 적절히 관리하는 범위에서 가능한 다른 안도 있다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

새 정부 출범 100일 이내로 가장 먼저 해야 할 문재인 대통령의 과제는 무엇이 있는가.

국민의 반대가 없고 여야 합의가 되는 기본적 혁신, 개혁 과제를 해야 한다. 제일 큰 것으로 정치 개혁 분야의 개헌이 있다.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 때문에 탄핵 사태에 이르게 됐다는 여야의 공감이 있다. 국회가 개헌 논의를 할 수 있도록 대통령이 맡겨두면 된다. 둘째로는 검찰과 경찰, 국정원, 국세청에 대대적 개혁을 해야 한다. 권위주의적 행태를 앞서서 하는 조직을 개혁해야 한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를 신설하고 수사권을 경찰에 떼어줘 검찰을 견제해야 한다. 셋째로는 재벌, 재정, 경제 개혁에 바로 들어가야 한다. 법인세와 상법을 개정해야 한다. 그리고 언론 개혁도 해야지. 대통령이 의지만 있다면 될 일이다. 외교·통일·안보·남북 문제 등에선 이전 정부와 다른 근본적 개혁이 있어야 한다. 햇볕정책을 바로 원상회복하긴 어렵겠지만 기본적으로 그쪽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지금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무시, 홀시당하고 장기판의 졸만도 못한 한국 외교를 만든 사람들 중에 책임질 사람은 책임지게 해야 한다. 일자리 문제 역시 해결해야 한다. 오죽하면 정부가 재정 투입으로 고용을 끌어올릴 방법을 생각했겠나.

“잘 정제된 칼을 흉기로 써선 안 된다”

국정원 기조실장을 했는데, 국정원 개혁은 어떻게 해야 할까.

국정원 개혁에선 너무 나아간 게 아닌가 한다. 국정원을 해외·대북 부문만 살리고 국내 정보 부문은 없애겠다고 했는데… 대북정보를 파악하려면 국내 정보 파악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

국민의 정부 때 이미 정치 관여, 고문, 도청 금지라는 국정원 ‘3무 원칙’이 있었다. 국정원은 당연히 국내 정치에 관여하지 말아야 하는데, 원세훈 전 국정원장 시절에 개입을 했잖은가. 지금도 시도 때도 없이 민간인 사찰 이야기가 나오고. 그건 잘못됐고 막아야 한다. 대통령과 국정원장이 의지를 갖고 목숨 걸고 지켜야 한다. 지금 제도가 미비해서 잘못된 관행을 못 고치는 게 아니다. 국정원은 잘 정제된 칼이다. 요리사 칼로는 좋은데 이걸 흉기로 쓰는 사람이 문제인 것이다. 그렇다고 이 칼을 무딘 칼로 만드는 것은 안 된다. 지금 세계는 고급 정보를 지니려 정보 전쟁을 벌이고 있다. 우리도 독려할 필요가 있다. 이것마저 막으려 한다면 목욕물 버리려다 아이까지 버리는 꼴이 된다.

적폐 청산은 어떻게 해야 할까. 보수 쪽에선 반감을 드러내는데.

적폐 청산은 시대정신이다. 지금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잘못이 진행 중이지 않은가. 화합·통합이라는 이름으로 뭘 하자는 것은 절차상 맞지 않다. 진실을 밝혀야 진정한 반성과 용서가 따르게 된다. 그게 수순이다. 정치적 보복이나 인적 청산 등 혁명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순리대로 위법적이고 위헌적인 것은 분명히 선을 긋고 넘어가자는 것이지. 어물어물 통합과 용서로 덮으면 또 재발된다. 이런 절차를 보복이라 하는 것은 엄살이고 순서에 맞지도 않다.

“박근혜 전 대통령처럼만 하지 않으면 된다”

여소야대 국면에서 새 정부의 대야 관계는 어떻게 해야 할까.

5당 체제는 신이 한국 정치를 한번 업그레이드하려는 배려 같다. 협치·연정·연대·상생이 뭔지, 왜 공멸 정치는 안 되는지 스스로 학습하게 돼 있다. 경기도가 세계 최초로 부지사를 야당 몫으로 줬다. 과거 DJP 연대 때도 김종필 전 총리가 경제 부처를 도맡았고 통일·외교·안보·국방 등 비경제 부분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맡았다. 물론 2년여 만에 깨지긴 했지만. 이것처럼 협치의 기본 틀을 만드는 새로운 실험을 해야 한다. 그게 안 되면 총리 인준도, 내각 임명도 못한다. 이런 사태가 계속되면 공멸의 정치가 되는 것이다. 야당도 비판은 하되 도와줄 것은 도와줘야 한다.

제일 중요한 것은 대통령의 의지다. 대통령은 스스로 ‘머슴이다’라고 생각해야 한다. 주인은 국민이고, 따라서 국민의 대표 격인 국회를 주인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여당을 자기 시녀나 거수기 정도로 알고 자기 뜻을 따르지 않는다고 배신자라고 하는 대통령 아래서는 국회가 활성화할 수 없다. 야당을 발목 잡는 세력 정도로 생각하는 대통령도 곤란하다. 대통령은 여야를 막론하고 국회를 정치 파트너로 생각하고 의원 한명 한명 설득하고 상의하겠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민주적 소양이 있다. 간추리면 박근혜 전 대통령처럼만 하지 않으면 된다. 반면교사로 삼으면 된다.

새 정부에 꼭 당부하고 싶은 바는.

새 정부는 직전 정부가 탄핵돼 생긴 정부다. 탄핵 이유는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을 위반해 위임된 권한을 사적으로 이용했기 때문이다. 새 정부의 가장 기본은 위법행위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능하면 안 된다. 유능하게 국민 통합과 국가 경영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성연철 기자 sychee@hani.co.kr
사진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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