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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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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 파산기업이 돼버린 거여”

4대강사업으로 농토 모조리 빼앗긴 전북 익산 성당포구마을…

450년 대대로 살아온 안상일씨 “하굿둑·보 수문 열어야”
등록 2017-03-22 18:48 수정 2020-05-03 04:28
이렇게 취재했습니다
물은 만물의 근원이다. 이명박 정부가 강행한 4대강사업은 물의 뿌리를 파헤치고 뒤집어놓았다. 강 자체가 생명의 전체였던 수중생물들이 직격탄을 맞았고, 강에 의지해 삶을 일구던 농민들이 쫓겨났다. 한반도에서 인간이 자연에 가한 최대의 폭력이 아닐 수 없다. 해마다 강에는 ‘녹조라테’가 가득하고, 호수에서나 발견되던 큰빗이끼벌레가 창궐하고, 국민 세금으로 조성한 ‘친수공간’은 방치된 채 풀숲으로 변하고 있다.
은 독자에게 파괴된 자연의 실상을 전하고 회복의 대안을 전하려고 했다. 4대강사업 당시 한강·낙동강·금강·영산강에서 정부의 폭압적인 삽날에 맞서 투쟁한 활동가들을 처음 한자리에 불러모았다. 각자의 자리에서 바쁘게 활동하는 이들이어서, 시간과 장소를 맞추는 게 수월하지는 않았지만 이들 모두 의 기획 취지에 공감해주었다. 4대강 유역 곳곳을 다니며 생명 파괴의 현장을 카메라에 담아온 박용훈 사진가를 만나 우리가 되찾아야 할 자연이 무엇인지 되새길 수 있는 사진들을 부탁해 싣는다.
금강하굿둑 공사와 4대강사업, 두 차례 국가에 의해 강을 빼앗긴 전북 익산 성당포구마을 안상일씨의 사연을 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스스로 “마을이 파산기업”이 되었다고 하지만, 이들은 주저앉지 않고 마을을 되살리고 있다. 촛불 민심의 주체적 역량이 비열한 구체제의 상징을 몰아냈듯, 국가권력과 독립적으로 시민의 의지가 소중하다는 점을 드러내고자 했다.
아직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았지만 짧게나마 주요 대선 후보들의 4대강사업 공약도 점검했다. 은 환경단체들과 더불어 4대강사업의 폐해 극복과 대안 마련을 위해 지속적으로 추적 보도할 참이다.
취재 전진식 기자, 편집 송채경화 기자, 디자인 장광석
환경운동연합이 꼽은 4대강사업S(스페셜)급 찬동 인사들(사업 당시 직함). 사진 왼쪽부터 차례로 이명박 전 대통령, 권도엽 국토해양부 장관, 차윤정 4대강살리기추진본부 환경부본부장,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 심명필 4대강살리기추진본부장, 김건호 한국수자원공사 사장, 박재광 미국 위스콘신대 교수, 이만의 환경부 장관, 박석순 국립환경과학원장, 이재오 한나라당 의원.

환경운동연합이 꼽은 4대강사업S(스페셜)급 찬동 인사들(사업 당시 직함). 사진 왼쪽부터 차례로 이명박 전 대통령, 권도엽 국토해양부 장관, 차윤정 4대강살리기추진본부 환경부본부장,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 심명필 4대강살리기추진본부장, 김건호 한국수자원공사 사장, 박재광 미국 위스콘신대 교수, 이만의 환경부 장관, 박석순 국립환경과학원장, 이재오 한나라당 의원.

3월8일 전북 익산시 성당면 성당포구마을에서 만난 안상일(64)씨. 마을 앞으로 금강이 초원처럼 흐른다. 자전거길로도 쓰는 제방 양쪽의 바람개비가 강바람에 연신 돌아간다. 마을에서 금강하굿둑까지는 100리길. 안씨의 조상들은 이곳에서 450년을 터 잡고 살아왔다. 순흥 안씨 참판공파 11대손인 안씨가 지금 사는 집터만 해도 350년 된 자리다. 세태에 맞춰 기와를 헐어내고 양옥으로 집을 새로 지었고 30년간 객지에서 건설업을 했지만, 주민등록을 옮겨본 적이 없다고 했다. “살면서 이삿짐을 한 번도 싸본 적이 없어.”

조선 최대 조창이 있던 마을

안씨는 물론 이 마을 토박이 주민들에게 강은 삶 자체였다. 안씨가 어릴 적만 해도 마을 앞으로 어선이 숱하게 다녔다. 한때 충남 강경이나 전북 군산보다 배가 더 많이 드나들기도 했다. 배들이 우르르 들어오던 여름철에는 근동의 주민들이 생선을 엮고 생선포와 소금 가마니를 나르는 일로 먹고살 만큼 물산이 넘쳤다. 당대의 판소리 명창 임방울이 몇 달씩 머물며 공연을 할 정도로 번창한 곳이었다.

이런 내력은 조선조로 거슬러 올라간다. 성당포구의 성당창(현종 3년, 1662년 설치)은 당시 9개 조창 가운데 제일 컸던 곳이라고 한다. 왜구의 침탈을 막기 위해 바닷가를 피해 금강변에 새로 만든 조창이었다. 삼남(충청·전라·경상)의 세곡은 성당창을 거쳐 한양 광흥창에 이르렀다. 구한말 성당창을 책임졌던 마지막 관리가 명성황후의 친척 민겸호였다고 안씨는 설명했다. “1980년대만 해도 이 작은 마을에 집이 100가구가 넘었어. 지금은 50가구 정도밖에 안 돼. 빈집이 10가구 정도니까 실제 사람 사는 집은 마흔네댓 가구여.”

강에 기대어 살던 마을은 1980년대 후반 국가에 의해 된바람을 맞았다. 금강 하구를 막아 교통로와 농업용수를 확보한다는 명분으로 금강하굿둑 공사가 시작됐다. 장마철 큰비가 내리면 하굿둑 때문에 물이 휘돌았다. 바다로 강물이 제때 빠지지를 못하는 까닭에 하굿둑이 생긴 뒤 세 차례나 커다란 물난리를 겪었다. 안씨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하굿둑이 완공된 건 1990년이지만, 1989년 말에 물길을 막았어. 하굿둑 있기 전에는 물이 들어왔다 나왔다 했지. 바닷물이 여기까지 밀고 들어왔어. 날이 한두 달 가물면 짠물까지 밀고 들어왔지. 박대도 여기서 잡았어. 민물장어가 많았지. 그물을 치면 사오십 킬로그램씩 잡고 그랬어. 황복이나 웅어도. 하굿둑으로 막혀서 지금은 못 올라와. 옛날 같으면 웅어가 한 일주일 있으면 올라오기 시작하는 철이여. 황복은 보리 모가지 나올 때쯤 올라왔고. 고기 잡는 사람이 많이 있었지. 실뱀장어도 많이 잡았고. 마을 사람들이 거의 다 잡았지. 내가 어릴 땐 마을에서 안강망을 쓰는 큰 배도 많이 부렸어. 하굿둑에 어도(물고기가 드나들도록 만든 통로)라고 해놨는데 그렇게 많이 올라오들 못하는가보더라고.”

하굿둑 막아 물고기 사라져

하굿둑으로 물길이 가로막히기 전부터 마을 주민들은 금강 주변 하천부지에 부지런히 농사를 지었다. 하중도(강 가운데 퇴적물이 쌓여 생긴 섬)에도 배를 타고 들어가 갈대밭을 걷어내고 농지를 개간했다. 수리시설조차 변변한 게 없었던 때에 안씨의 아버지 적부터 주민들은 논을 만들고 밭을 일구어 농사를 수십 년 지었다.

안씨 또한 1970년대 후반 배에 포클레인을 싣고 하중도에 들어가 농지를 직접 개간했다. 그렇게 하천부지와 하중도에 일군 논밭이 72만 평에 이르렀다. 서울 여의도 면적과 엇비슷한 넓이다. 쌀의 품질이 뛰어나서 서울 태릉선수촌에 납품을 많이 했다고 한다. 1년에 8천 가마니를 생산할 만큼 벼농사를 많이 지었다. 연봉 5천만원 받는 월급쟁이 정도의 수익은 너끈히 올렸고 서너 가구는 1억원 넘는 돈을 벌기도 했다.


<i>"이재오가 농지 반절은 생태공원으로 하고, 나머지 반절은 농경지로 살려준다고 했어. 근데 나중에 '윗선 때문에 안된다' 고 하더라구요
</i>

하지만 국가는 마을을 가만두지 않았다. 2009년 시작된 4대강사업으로 주민들은 피땀으로 일군 농지를 모두 정부에 수용당했다. 성당포구마을에서도 서른 농가가 하루아침에 논을 모두 빼앗겨버렸다. 1m²당 2천원 조금 넘게 쳐준 농업손실보상금은 가구당 평균 7천만~8천만원 수준이었다. 인근에 농지를 사서 농사를 짓기에는 터무니없이 적은 돈이었다. 마을을 떠나는 농가가 늘어났다. “정부가 농민들에게 먹고 죽으라고 술값 준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울화통이 터지는 농민들의 한탄이다.

국가와 싸움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안씨는 금강하굿둑 공사 당시 반대 주민 600여 명을 이끌고 서울에 가기도 했다. “1989년 김대중 평화민주당(평민당) 총재를 한 시간 반 동안 독대를 했어. 한광옥(현 대통령비서실장)이 총재 특보를 할 때여. 하굿둑 못 막게 데모하러 간 거지. 그때도 말하자면 여소야대였거든. 여의도 평민당사 강당에서 잠까지 자고 그랬어. 하굿둑 닫지 말라고, 우리 금강에서 물고기 잡아먹고 사는 사람들 다 죽는다고. 김대중 총재가 그러더만. ‘넓은 안목으로 보니까 여기는 이거 해야 한다고, 농업용수 확보도 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4대강사업 때는 이재오 당시 특임장관이 성당포구 마을을 여러 차례 다녀갔다고 한다. 반대 주민들을 설득하기 위해서였다. “이재오가 농지 반절은 생태공원으로 하고, 나머지 반절은 농경지로 살려준다고 했어. 근데 나중에 ‘자기 윗선 때문에 안 된다’고 하더라고. 이재오 윗선이 누구겠어. 이명박이지. 그때 이재오가 나하고 각서도 썼어. 논농사 짓는 거만 포기하면 요구사항 다 해주겠다고. 그때 논이 없어져서 주민들이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가 말도 못허지. ‘서울 사람들은 농사 하나 안 지어도 부자 많다고, 이 동네는 관광만 개발하면 잘살 수 있다’고 이재오가 그러대. 사오십 농가가 벌어먹고 살 일거리가 나오나. 안 되는 말이야.”

농토 절반 남겨준다는 거짓말
3월8일 전북 익산시 성당면 성당포구마을에서 안상일씨가 마을 유래를 설명하고 있다.

3월8일 전북 익산시 성당면 성당포구마을에서 안상일씨가 마을 유래를 설명하고 있다.

정부의 약속은 거짓으로 끝났다. 하천부지 농지 72만 평 가운데 30만 평이 생태공원, 40여만 평은 거대한 억새밭으로 변해버렸다. 친수공간을 만든다면서 정부가 전국 4대강 유역에서 벌인 사업이었다. 바이오연료 생산을 목적으로 한다던 억새밭은 외래종을 심은 탓에 발육도 제대로 안 되는데다 관리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사실상 방치된 상태다. 안씨는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퇴적된 삼각주여서 농약이나 비료 적게 줘도 농사가 잘되던 땅이었는데….”

4대강사업 뒤 성당포구마을은 “노인 양반들만 사는 마을”이 돼버렸다. 몇몇 농가를 빼면 농사를 짓는 주민도 없다. 밭농사나 겨우 조금씩 부칠 뿐이다. 안씨는 말했다. “4대강사업, 권력에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어. 근데 하천부지에서 논만 해도 40만 평이 없어졌어. 금강이 아니라 ‘금강호’여. 담수호가 돼버렸잖아.”

안씨와 주민들은 그대로 주저앉지 않았다. 국가가 농토를 빼앗았지만, 주민들은 스스로 살길을 찾았다. 우연찮게도 기회는 참여정부 때에 있었다. 성당포구마을은 2006년 농촌진흥청의 전통테마마을에 들었다. 전국에서 선정된 지역이 성당포구마을을 포함해 4곳이었다. 수령이 500년을 훌쩍 넘는 느티나무와 은행나무가 있다는 점도 큰 자산이었다. 2006~2007년 2억원을 지원받아 마을회관도 새로 짓고 농촌 체험객을 맞았다. 비록 금강하굿둑과 4대강사업으로 훼손됐다고 하지만, 강변의 수려한 풍광은 도시민들을 끌어들이기에 충분했다.

2014년에는 농림축산식품부가 지정하는 ‘으뜸촌’ 마을이 되었다. 400개 넘는 농촌체험휴양마을 가운데 엄격한 심사를 거쳐 경관·서비스, 체험, 숙박, 음식 모두 1등급을 받아야 선정되는 마을이다. 2년마다 재심사를 받는데, 지난해에도 다시 으뜸촌에 들었다. 현재 전국에서 으뜸촌 마을은 28곳이다. 안씨는 마을에서 운영하는 금강체험관 위원장을 맡고 있다. 2012년 7월 문을 연 금강체험관은 마을 42곳 농가에서 공동출자해 설립했다. 숙박시설을 갖추고 성당포구 기행과 금강 생태탐방, 전통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4년 남짓 운영하면서 한 번도 적자를 보지 않았고 지난해에는 수익 6천만원을 올렸다. 해마다 1만 명 넘는 체험객이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강을 빼앗긴 주민들이 땀으로 이룬 성과다.

주민들 스스로 체험마을 가꿔

안씨를 비롯한 성당포구마을 주민들에게 강은 삶의 터전이었다. 금강하굿둑으로 뱃길이 막혔고, 4대강사업으로 농지가 사라졌다. 그러나 안씨는 아직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다. 그는 정색하고 말했다.

“어차피 논밭은 저렇게 됐지만 우리 마을은 강이 있어서 그래도 유지가 되는 거여. 새 정부가 들어서면 4대강사업을 재정비를 했으면 합니다. 왜 그런고 하니, 이명박 정부가 많이 몰랐던 거여. 4대강 하천부지에서 채소가 전국 생산량의 30%가 났는데 그것도 모르고 싹 걷어치운 거여. 그때 채솟값이 엄청 올랐거든. 세계시장을 자동차, IT(정보기술) 산업이 선도한다고 해도 먹거리 규모가 네댓 배 더 큰 걸로 알아. 나는 옛날 미국에서 보낸 옥수수·밀가루 먹고 큰 세대여. 그 끈이 맺어져서 지금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난리가 나고 그러는데, 하굿둑 열고 금강의 보들도 수문을 열어서 고기가 올라오게 만들어야 해.”

전국에서 4대강사업으로 사라진 하천 주변 경작지는 3200만 평에 이른다. 여의도 면적의 40배 넓이다. 안상일씨는 말했다. “시골은 농사를 지어 먹고살아야 하는 데여. 그런데 우리 마을도 기업으로 치면 ‘파산기업’이 돼버린 거여.”

익산=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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