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29일 토요일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파문이 커진 뒤 첫 대규모 집회가 열린 날이다. 정보기술(IT) 신생 벤처기업 ‘피스컬노트’ 한국 지사장 강윤모씨는 재택근무를 하며 스마트폰으로 페이스북 촛불집회 라이브 중계를 틀었다. 어느 순간 포털 실시간 검색어에서 ‘살수차’를 발견했다. 급히 기사를 찾아봤다. 경찰이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 살수차를 배치했다는 속보였다. “언제까지 이렇게 많은 시민이 거리에서 위험한 외침을 해야 할까? 저들의 의견을 대신할 국회의원들은 어디에 있나?”
대통령 탄핵 절차를 검색하며 탄핵 주체가 국회의원이라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촛불 시민이 자신의 지역구 국회의원에게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되, 더 안전하고 효율적인 방법으로 전달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촛불 중계를 시청 중인 이용자 가운데 ‘페친’(페이스북 친구)을 찾아봤다. 개발자 로빈과 알렉스가 눈에 들어왔다. 메시지를 보냈다. “내일 만나.” 10월30일 서울 강남구 구글 캠퍼스에서 첫 회의가 열렸다. 시민이 국회의원에게 탄핵 청원 메시지를 보내도록 도운 ‘박근핵닷컴’(parkgeunhack.com)의 시작이었다.
12월1일 ‘박근핵닷컴’ 개시 하루 만에 3사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했다. 국회가 탄핵소추안 처리를 일주일 앞둔 시점이었다. 탄핵소추안 가결 직전까지 ‘박근핵닷컴’을 통한 탄핵 청원 메시지가 93만여 건 발송됐다. 방문자는 319만여 명에 달했다. 의원들의 찬성·반대 회신 응답을 실시간 공개했다. 12월9일 국회 본회의 시작 4시간 전 ‘찬성’으로 회신한 당시 새누리당 의원도 있었다.
3월9일 구글 캠퍼스에서 만난 강윤모씨는 ‘포스트 박근핵닷컴’ 준비로 여념이 없었다. ‘박근핵닷컴’이 서로 다른 IT 업체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의기투합한 프로젝트성 기획이라면, 대선 관련 서비스인 ‘누드대통령’(https://nudepresident.com/)은 자신이 속한 피스컬노트의 이름을 내걸었다. 이용자가 ‘블라인드 테스트’ 형식으로 분야별·쟁점별 입장을 선택하면 각 대선 후보와의 매칭 비율을 측정해 알려준다. 후보별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기능도 있다. 투명한 정책 선거가 이뤄지길 돕자는 취지다. “‘탄핵안 가결’이라는 명확한 요구가 있었던 때와 달리, 지금은 유권자들이 어떤 게 가장 중요한 요구인지 알고 나서 이를 후보에게 전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대통령을 ‘잘’ 뽑고 싶은데 당최 누굴 찍어야 할지 모르겠는 분들이 꼭 이용하면 좋겠다.”
강씨가 맨처음 정치 관련 서비스를 만든 건 2014년 지방선거 때였다. 유권자에게 출마 후보와 공약 정보 등을 제공하는 ‘우리동네후보’다. 강씨는 2015년 다른 스타트업 피스컬노트에 ‘우리동네후보’ 인수를 제안했고 성사됐다. 피스컬노트는 인공지능(AI) 기술을 이용해 미국 각 주·연방·시의회 의원들의 입법 활동, 성향 데이터를 수집하고 특정 법률이나 정책이 통과될 가능성을 예측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2013년 버락 오바마 대선 캠프 출신 팀 황이 만들었다.
“‘우리동네후보’를 운영하면서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다. 발전 방안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피스컬노트를 알게 됐고 해당 기술을 한국 정치 데이터와 연결해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하는 서비스를 만들고 싶었다.”
‘박근핵닷컴’은 한국판 피스컬노트를 만드는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진행한 작업. ‘누드대통령’도 ‘박근핵 이후’까지 책임지려는 취지에서 시작했다. “‘박근핵닷컴’을 통해 유권자가 눈에 불을 켜고 국회의원을 감시하며 압박하니 의원들의 보팅(voting) 액션 데이터가 나온다는 걸 알게 됐다. ‘그들만의 선거’가 아니라 유권자들이 진짜 힘을 발휘하는 선거가 되는 데 기여하고 싶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http://bit.ly/2neDMO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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