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촌이 뿔났어. 미안해. 지난봄 윤동주의 시를 읽어주었더랬지(제1110호 ‘너무 웅크리지마, 시가 있잖아’). 너에게 자상한 말투로. 그런데 오늘은 그렇게 못할 것 같아. ‘이상한 사람들’ 때문에 삼촌이 뿔이 좀 났어. 그리고 어려운 말을 많이 해야 할 것 같아. 그래도 너무 겁먹지는 마. 네가 삼촌 나이쯤 될 때, 지금보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들려고 어른들이 애쓰는 거거든.
준비됐니? 오호, 책상 밑에 숨겨둔 과자가 있는 것 같은데?
① 탄핵은 뭐고, 소추는 또 뭐예요?
서울 여의도에 있는 국회로 가볼까? 우리나라 국회의원은 300명이야. 정당이라는 것도 있어. 짝꿍 같은 거야. 너한테도 친한 친구들이 있지만, 반대로 서먹서먹하거나 미워하는 아이들도 있지? 어른들도 똑같아. 가까운 사람들이 끼리끼리 모여서 만든 게 정당이거든.
그런데 정당에는 여당과 야당이 있어. 음, 이건 좀 어려울지 모르겠는데…. 한자 ‘여’(與)는 참여한다는 뜻이 있어. 어디에 참여하냐고?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일을 함께 한다는 거야. 그래서 여당이라고 불러. 지금 여당은 ‘새누리’라는 이름을 쓰고 있지.
그럼 여당의 반대는 뭐냐고? 야당이야. ‘야’(野)는 풀밭인데, 변두리라는 뜻도 있어. 여당이 정부 일을 하면 야당은 뭐를 하냐고? 야당은 앞으로 여당이 되려고 꿈꾸는 사람들이야. 그러니까 여당과는 사이가 자주 안 좋아. 네가 반장인데, 반장선거에서 떨어졌던 친구가 호시탐탐(호랑이가 먹이를 잡으려고 눈을 부릅뜨는 것) 네 자리를 노리고 있으면 어떨까? 그런 거야. 그래서 자주 싸워. 요즘은 뜸하지만, 예전에는 멱살도 잡고 자기들 이름 적은 명패도 집어던지고 그랬어.
근데, 탄핵이나 소추라는 말은 언제 설명할 거냐고? 음… 과자 하나 먹으면서 궁리를 해볼까? 생각만 해도 입이 텁텁하네.
대통령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사람인데, 그 사람을 누군가가 쫓아낸다는 게 이상하지 않니? 왜 그런 제도를 만들었을까? 이유가 있어.
제일 높은 자리에 있으니까, 다른 사람들이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시키는 일이 없을 것 아니겠니? 사람은 흔히 자기가 앉은 자리가 세상의 전부인 줄 착각하는 경우가 많거든. 특히 대통령은 엄청나게 중요한 자리인데, 아무도 자기를 혼내거나 꾸짖는 사람이 없으니, 오히려 더 실수하기 쉬워.
그래서 제도를 만들어놓은 거야. 대통령이 정말 큰 잘못을 저지르면 국회의원들이 대통령을 꾸짖고 자리에서 물러나게 만들었지.
대통령 꾸짖고 벌주는 일 ‘탄핵’국회의원들이 대통령 물러나라고 하면 그래야 하냐고? 그건 아니야. 대통령은 그만큼 중요한 자리여서, 반드시 거쳐야 할 일을 하나 더 만들어두었어. ‘헌법재판소’라는 데서 한 번 더 생각해보도록 했지. 신중하라는 뜻이야.
자, 이야기 모두 했다. 응? 탄핵이나 소추라는 말은 꺼내지도 않았다고? 지금까지 삼촌이 한 말에 큰 뜻이 다 들어 있어. 이제 요점 정리!
탄핵. 탄(彈), 핵(劾). 두 글자 모두 꾸짖는다는 뜻이야. 누가 누구를? 국회의원들이 대통령을. 물론 국회의원들은 우리들의 마음을 따라서 하는 거지(모든 경우에 그런 건 아니지만…).
소추(訴追). 하, 이건 더 어려운 말인데. 두 가지 뜻이 있어. 남의 물건을 함부로 훔치면 벌을 받지? 벌 받아야 한다고 법원에 요청하는 걸 소추라고 해.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이 검사야. 다른 뜻으로는, 대통령이나 장관처럼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큰 잘못을 저지르면 꾸짖고 자리에서 쫓아내야 할 경우가 있잖아? 그걸 뭐라고 한다고 했지? 벌써 까먹은 건 아니지? 좀 전에 얘기한 탄핵이야. 탄핵하는 걸 소추라고 해.
이번에는 대통령의 잘못을 꾸짖고 자리에서 물러나라고 국회의원 171명이 요청했어. 어떠한 이유로 탄핵을 한다고 종이에 적었겠지? 그걸 ‘탄핵소추안’이라고 해. 이제 박근혜 대통령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설명해줄게. 휴, 삼촌도 머리가 아프다.
② 대통령이 그렇게 큰 죄를 지었어요?‘탄핵소추안’ 문서는 A4 종이로 44장이야. 글자 수로는 3만4천 자가 넘어. 낱말 수로도 7400개 이상이야. 괄호 안에 쓴 한자도 15자나 돼. 중요한 문서니까 국회의원들이 더 정성껏 꼼꼼하게 적었겠지? 그래서 이렇게 길고 어려운 말이 많은 거야. 이제 하나하나 따져보자, 대통령의 죄를.
먼저 대통령은 헌법을 지키지 않았어. 헌법은 법 중의 법이고, 법 위의 법이야. 아빠(엄마)가 ‘아버지(어머니) 말씀은 법이야!’라고 소리칠 때, 그 법은 헌법과 같은 뜻이야. 으뜸가는 법이라는 거지. 그런데 그걸 한두 개도 아니고 참 많이도 어겼다는 거야.
첫째, 대통령은 자기랑 친한 네 살 아래 동생 최순실, 또 최순실이랑 친한 사람들에게 나라의 큰일을 자기들 원하는 대로 하도록 했어. 높은 자리의 공무원에 누구를 앉힐 건지도 자주 그들에게 맡겼어. 삼성·SK·롯데·한화 같은 커다란 기업들한테 돈을 달라고도 했어. 미르니 K스포츠니 하는 재단을 만든다면서. 대통령이 사는 청와대 직원(안종범 정책조정수석비서관)한테 시켜서. 무엇 때문에? 대통령 친구인 최순실이나 최순실의 친구들을 위해서. 받은 돈이 수백억원이래.
이게 왜 문제냐고? 이 사람들은 대개 나랏일을 하지도 않는데다가, 웬만한 사람들은 누구인지도 모르거든. 그런데 나랏일에 힘자랑을 했어. 그걸 ‘비선 실세’라고 해. 이건 심각한 문제야. 대통령은 헌법을 지키고 우리의 자유나 삶을 더 낫게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사람이거든. 그런데 이런 일은 아예 팽개쳤다는 거야. (그래서 국민주권주의와 대의민주주의를 훼손하고, 법치국가의 원칙을 파괴했으며, 헌법 수호와 준수 의무를 위반했다고 탄핵소추안에 적혀 있어)
둘째, 대통령은 최순실과 친한 사람들을 공무원에 임명했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최순실과 가까운 차은택이라는 사람의 대학교 지도교수였어.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은 아예 최순실이 추천했고. 이 차관은 그랜드코리아레저(GKL)라는, 뭔 뜻인지 알 수도 없는 이름의 회사에 최순실씨가 끼어들어 돈을 벌도록 했어.
뿔나게 하는 일은 더 있지. 최순실의 딸 정유라가 승마를 했는데, 2013년 한 대회에서 우승을 못하자 심판들을 조사하고, 문화체육관광부를 시켜서 샅샅이 문제점을 캐도록 했어. 근데 그 일을 한 공무원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봐. “나쁜 사람”이라며 자리에서 쫓아내기까지 했어. 그래도 분이 안 풀렸는지, 아예 장관까지 갈아치웠거든.
공무원은 헌법에서 자리를 지켜주도록 했는데 이걸 무시한 거야. 나랏돈을 쓸 때는 공평하게 써야 하는데 이것도 안 지켰어. (직업공무원 제도를 침해하고, 공무원 임면권을 남용했으며, 평등 원칙을 위반했다고 탄핵소추안에 적혀 있어)
세월호 승객들 나 몰라라 한 대통령셋째, 대통령은 최순실과 엇비슷한 노릇을 한 정윤회(최순실의 전남편)라는 사람이 문제가 많다는 걸 한 신문에서 보도하자 신문사 사장까지 쫓아냈어. 2014년 11~12월 일이야.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도와주는 우병우(민정수석비서관), 김상률(교육문화수석비서관), 신성호(홍보특보)라는 사람들이 그 일에 앞장섰어. 왜 그랬냐고? 대통령이 시킨 거니까. 그리고 김기춘(비서실장)이라는 사람도 정윤회가 만든 ‘문건’(공적인 문서)이 청와대 밖으로 나간 사건을 제대로 조사해야 했는데 서둘러 끝내라고 지시했어. 다 한통속인 거지. (언론의 자유와 직업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탄핵소추안에 적혀 있어)
넷째, 이건 차마 너한테 말하고 싶지 않은데…. 삼촌이 슬픈 마음으로 말한다. 네가 어른이 된 세상에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기를 바란다.
2014년 4월16일 ‘세월호’라는 여객선이 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했어. 무려 476명이 탄 배야. 295명이 숨졌어. 2년 8개월이 지났는데, 아직도 9명은 바닷속에 가라앉아 찾지 못하고 있어. 너무나 끔찍한 일이어서 ‘참사’라고 부르는데, 그 말로도 모자랄 지경이야.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니.
그런데 대통령은 배가 가라앉던 시간에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았어. 잤나? 머리 손질을 했나? 이상한 이름의 주사를 맞고 있었나? 아니면, 아예 관심 밖이었나? 청와대에서는 대통령한테 문서로 보고했고, 대통령은 전화로 구조를 지시했다는데, 제대로 된 구조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거든. 무려 7시간이 지나고 오후 5시15분쯤 돼서야 얼굴을 내보인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어. “구명조끼를 학생들은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
이 사고로 특히 수학여행을 간 고등학생이 많이 희생됐어. 가족들은 억장이 무너졌어. 박근혜 대통령은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제대로 된 일을 해야 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거든. 그런데 전혀 그러지를 않았던 거야. 이보다 큰 죄가 있을까 싶어. (국민의 생명권을 보호할 의무를 위반했다고 탄핵소추안에 적혀 있어)
③ 대통령이 지은 죄가 더 있다고요?지금까지 얘기한 건 헌법을 어긴 거야. 이제 헌법 아래에 있는 법률을 지키지 않은 걸 설명해줄게. 대통령이 지은 죄가 하도 많다보니, 삼촌도 참 힘들다. 생도라지 씹은 것처럼 입이 쓰다.
미르재단이라는 게 있어. ‘미르’는 ‘용’이라는 뜻의 옛말이야. 이름은 그럴듯하지. 이름만 그럴듯해. 실제로는 커다란 기업들한테 받은 뇌물 수백억원으로 만든 거거든. 대통령과 그 친구들 수법이 참 치사해. 너도 치사한 친구들 싫어하지?
대통령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잖아. 중요한 나랏일은 다 대통령이 챙기거든.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나랏일일수록 더 공평하게 일해야 돼. 그러지 않으면 나라꼴이 엉망이 되니까. 그런데 대통령은 이랬어. 미르재단을 만든답시고 커다란 기업들(10대 그룹 중심)한테 돈을 내라고 한 거야. 2015년 7월 있었던 일이지. 너도 몇 사람은 이름을 알지 모를 ‘회장님’들이 줄줄이 대통령을 만났어.
물론 회장님들이 무조건 돈을 뜯긴 건 아니야. 자기들도 얻을 게 있었거든. 삼성은 두 회사(삼성물산·제일모직)를 합치려고 하는데, 정부에서 도와주지 않으면 어려웠어. 롯데나 SK는 자기들이 운영하던 면세점 허가가 취소되어서 다시 허가를 받고 싶어 했어. 이런 식으로 기업들한테 긁어모은 돈이 486억원이야. 삼촌은 죽을 때까지 구경도 못할 돈이지. K스포츠재단이란 걸 만들 때도 비슷한 방법을 썼어. 그래서 288억원을 모았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의 뇌물죄, 형법의 직권남용과 강요죄에 해당한다고 탄핵소추안에 적혀 있어)
기업들한테 수백억원 내라고도 했어이런 경우도 있어. 최순실의 딸 이름이 정유라잖아. 최순실이랑 친한 사람(같은 초등학교 학부형)의 남편이 케이디코퍼레이션이라는 부품회사를 하고 있었대. 최순실이 자기랑 매우 가까운 청와대 직원(정호성 부속비서관)을 통해 대통령한테 이 회사를 도와달라고 부탁한 거야. 그랬더니 대통령이 현대자동차에서 이 회사 부품을 쓰도록 몰아간 거지.
현대자동차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자동차 회사인데, 아무 업체랑 함부로 거래를 하지 않거든. 그야말로 대통령이 뒤를 봐준 거야. 이후에 최순실은 이 회사한테서 1천만원 넘는 고급 가방을 비롯해 수천만원을 받았대. 이런 걸 ‘뇌물’이라고 불러. 아주 나쁜 거야.
최순실은 플레이그라운드라는 광고제작사를 만들었는데, 마찬가지로 대통령을 이용해서 9억원 넘는 이익을 봤어. 포스코라고 하는 큰 기업에는 스포츠단을 만들도록 해서 역시 자기 회사(더블루케이)에 일감을 맡기도록 했지. 이 모든 게 대통령의 도움 없이 불가능한 일이거든. (형법의 직권남용과 강요죄에 해당한다고 탄핵소추안에 적혀 있어)
심지어 대통령은 정호성(아까 말했던 청와대 직원)을 통해 최순실에게 나라의 중요한 문서를 모두 47차례 보내주기까지 했어. 2013년 1월부터 지난 4월까지 그랬다는 거야. (형법의 공무상 비밀 누설죄에 해당한다고 탄핵소추안에 적혀 있어)
④ 결국 대통령을 자리에서 쫓아내야 한다는 거죠?손발이 저린 것 같지 않니? 너무 어려운 얘기를 길게 했네. 자, 두 팔 두 다리 쭉 펴고….
국회의원들은 대통령의 이런 잘못이 너무 크다는 거야. ‘법 중의 법, 법 위의 법’ 헌법을 어기고 법률을 무시했다고 생각해. 그래서 대통령을 ‘파면’해야 한다는 거야. 파면은 공무원이 큰 잘못을 저질렀으니 그 자리에서 쫓아내는 것은 물론, 이후에 받게 되는 여러 혜택도 안 주겠다는 거거든. 가장 큰 벌이야. 국회의원들은 그걸 이렇게 표현했어. 좀 어렵지만, 있는 그대로 읽어볼까?
“박 대통령의 이러한 행위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협하고 국민주권주의, 대의민주주의, 법치국가원리, 직업공무원제 및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여 우리 헌법의 기본원칙에 대한 적극적인 위반 행위에 해당하는바, 박 대통령의 파면이 필요할 정도로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중대한 법 위반에 해당한다. (…) 이 탄핵소추로서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이 나라의 주인이며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국민의 의사와 신임을 배반하는 권한 행사는 결코 용납되지 않는다는 준엄한 헌법 원칙을 재확인하게 될 것이다.”
대통령보다 더 높은 사람은 누구?이 글을 쓰고 있는 12월9일 오후 4시10분,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의결됐어. 국회의원 300명 가운데 200명 이상 찬성해야 하는데, 234명이 찬성표를 던졌어. 텔레비전을 보던 안수찬 편집장이, 찬성표 맞히기 내기에서 자기가 1등 했다는 이유가 있기는 하지만, 제일 크게 소리를 질렀어. 삼촌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표정도 순간 환해지고 손뼉을 치거나 했어. 그걸 ‘민심’이라고 해.
이제 너도 어렴풋이 알겠지? 대통령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 아니었던 거야. 대통령 위에는 너와 네 엄마, 아빠, 그리고 삼촌과 같은 시민들이 있는 거야. 시민들의 마음, 바로 민심이 있는 거야.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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