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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결말의 조기 대선이 열리다

‘문재인 대 반문재인’ 구도 가능성 높아

반기문-안철수 연대 여부가 주요 변수
등록 2016-12-14 16:54 수정 2020-05-02 04:28
왼쪽부터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성남시장. 한겨레

왼쪽부터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성남시장. 한겨레

탄핵 이후 대선 정국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혼란이 될 가능성이 크다. 경우의 수가 많다. 새누리당 분당,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출마 여부 등에 따라 대선 정국은 크게 요동칠 것이다.

혼란 속에서도 현재 여론 지지도 1위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여전히 주도권을 쥘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다만 ‘문재인 대 반문재인’ 구도 속에 ‘반문재인’ 진영이 하나로 갈지 다자로 갈지는 여러 정계 개편 시나리오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관전 포인트 가운데 하나는, 이번 대선이 ‘선명성’ 싸움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중도 공략’ 전략이 될 것인지다. 2002년 대선에선 ‘아웃사이더’였던 당시 노무현 후보가 ‘선명성’을 내걸고 돌풍을 일으켜 당선됐다. 그러나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는 ‘개혁적 보수’를,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경제민주화’를 내거는 등 최근 두 차례 대선에선 중도층을 끌어모으는 전략을 펼친 후보가 집권에 성공했다.

예선엔 ‘선명성’, 본선엔 ‘중도 공략’

2017년 대선에선 조기 대선을 전제로 놓고 봤을 때 현재까지는 선명성 경쟁이 더 크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대체적 분석이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2017년 대선에서 본선 기간은 더 짧아지고 예선 기간은 길어질 것으로 예측된다. 예선은 같은 지지층을 놓고 그 안에서의 경쟁이라는 점에서 선명성 경쟁이 커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아직까지 이렇다 할 여권 후보가 없는 상황에서 야권 후보 간 경쟁은 누가 더 선명하냐의 구도로 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물론 선명성을 강조하던 후보가 본선 국면에서 어느 정도 전략을 수정하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야권 후보가 되려면 선명성으로 가는 게 맞을 것이다. 이재명 성남시장이 그런 전략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본선으로 갔을 때는 중간 지대를 유인하지 않으면 당선이 쉽지 않다. 그때는 지나치게 야당성, 선명성으로 가긴 어려울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탄핵 정국에선 선명성이 지지율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전 대표는 탄핵 정국에서 주도권을 놓지 않고 줄곧 대선 주자 지지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지지율이 크게 오르지 않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문 전 대표는 촛불집회가 시작되던 무렵, 박근혜 대통령의 ‘명예로운 퇴진’을 주장한 바 있다. 유력 경쟁자가 없는 상황에서 신중한 모습을 보임으로써 지지층을 더 넓히려는 전략이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모호하고 무딘 행보가 많은 야권 지지자들을 실망하게 만들었다는 지적도 있다.

이후 문 전 대표는 선명성을 부각하는 방식으로 전략을 수정했다. 11월29일 박근혜 대통령 3차 대국민담화 직후 그는 자신의 트위터에 “지금 박근혜 대통령이 해야 할 것은 임기 단축이 아니라 즉각 사임입니다. 퇴진운동과 탄핵을 흔들림 없이 함께 병행해 추진해나가겠습니다”라는 글을 올려 비판 수위를 높였다. 12월5일에도 “탄핵이 의결되면 딴말 말고 즉각 사임해야 한다”며 헌법재판소 결정까지 기다리지 말고 즉각 사퇴할 것을 촉구했다.

이런 입장은 더불어민주당 공식 입장에서도 한 발짝 앞서나간 것이다. 12월6일 우상호 민주당 원내대표는 “(박 대통령의) 퇴진 문제는 대통령 의사에 따르는 것 아니겠는가”라며 ‘탄핵 가결 이후 즉각 사퇴’라는 문 전 대표의 입장과 당의 입장이 서로 다르다고 밝혔다.

선명성 부각 이후 문 전 대표의 지지율은 조금씩 오르고 있다. 여론조사 업체 ‘리얼미터’가 12월8일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문 전 대표의 지지율은 전주보다 2.7%포인트 오른 23.5%로 1위를 유지했다. 리얼미터는 문 전 대표가 ‘박 대통령 탄핵 국민행동 돌입’ 선언 등을 통해 탄핵을 촉구하면서 영남권과 수도권, 20대와 40대가 결집해 지지율이 상승했다고 분석했다.

이재명, 안철수 · 박원순 지지율 흡수

탄핵 국면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은 대선 주자는 이재명 성남시장이다. 리얼미터 조사에서 이 시장의 지지율은 전주보다 1.9%포인트 오른 16.6%를 기록해 문 전 대표, 반 사무총장에 이어 3위를 지켰다. 12월8일 ‘리서치뷰’ 조사에선 탄핵 정국에서 가장 잘 대처한 대권 주자로 이재명 시장이 28.4%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이어 문재인 전 대표(14.6%), 반기문 사무총장(10.3%) 순서였다.

이재명 시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다크호스’로 평가받는다. 대선 주자 가운데 후발 주자이자 군소 주자였던 그는 ‘박근혜 게이트’ 이후 ‘기존 정치권의 모호함’에 대항해 선명성을 부각하며 차별화에 성공했다. 기존 정치권에 편입되지 않은 아웃사이더로서 국면마다 명쾌하고 강경한 메시지를 던질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의 가장 큰 수혜자라고도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사이다’라는 별명도 얻었다.

정치컨설팅 민의 박성민 대표는 “문재인을 포함한 야권의 공간에 심상정 등 정의당이 들어오지 않은 상태에서 진보의 빈 공간이 생겼는데 이 공간을 (이재명 시장이) 가져간 측면이 있다. 거기에 (기존 정치권에서) 아웃사이더라는 점이 겹쳐 선명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반면 이재명 시장 못지않게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날 선 비판을 했던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다. 안 전 대표는 최근 이재명 시장에게 대선 주자 지지율 3위를 내줬다. 그는 안정된 지지율을 갖고 있던 대선 주자 가운데 가장 먼저, 가장 강한 메시지를 던져왔다.

11월2일 개각 인선을 발표한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즉각 물러나라”고 외치며 강경 모드에 돌입한 것을 시작으로 문재인 전 대표가 ‘명예로운 퇴진’을 얘기하는 시점에도 지속적으로 ‘즉각 퇴진’을 주장하는 등 차별화를 꾀했다. 탄핵 국면에서는 당내에서 박지원 원내대표와 마찰을 빚으면서까지 ‘12월2일 탄핵’을 주장했다.

그럼에도 대선 주자 지지도에서 3위권 밖으로 밀려나 좀처럼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국민은 안철수에게 새 정치를 기대했지만 현시점에선 피로감을 느끼는 것 같다. 그동안 안철수와 박원순에게 가던 지지율이 이재명으로 갔다”고 했다.

제3당 대선 주자로서의 한계를 지적하는 분석도 나왔다. 박성민 대표의 지적이다. “제3당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2등을 해본 적이 없다. 안철수는 세가 약한 3당 후보라는 한계가 있다. 또 문재인과의 경쟁에선 ‘반기득권’ ‘반패권주의’를 주장하는데, 호남의 (대표적 기득권인) 박지원 원내대표 등과 함께하면서 ‘반기득권’ 얘기를 하는 건 모순이다. 이것이 안철수의 위기 요인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경우도 비슷하다. 박 시장은 11월2일 박근혜 대통령이 개각을 발표한 지 30분 만에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즉각 사퇴’를 주장하는 등 발 빠르게 움직였다. 그러나 리얼미터 조사에서 박 시장은 전주에 이어 지지율이 4.3%(5위)에 머무는 등 답보 상태에 빠져 있다. 문 전 대표보다 더 적극적으로 움직였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보였지만, 이재명 시장이 선명성을 독점하면서 옅게나마 유지하던 지지층마저 이 시장에게 뺏기는 결과로 나타났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가장 큰 변수, 반기문

대선 주자 가운데 가장 큰 변수로 떠오른 이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다. 반 총장은 ‘박근혜 게이트’ 이전까지 새누리당 친박계와 손잡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탄핵 국면을 겪으면서 지지율 2위인 반 총장이 정치적으로 큰 타격을 입은 친박과 정치적 연대를 할 이유가 없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와 관련해서는 제3지대론, 안철수 전 대표와의 연대론 등 여러 시나리오가 흘러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반 총장은 12월7일 이례적으로 성명을 내어 “최근 한국에서 일부 단체나 개인들이 마치 나를 대신해 국내 정치 문제에 대해 발언하거나 행동하고 있다는 주장들이 보도되고 있다. 어느 누구도 나를 대신해 발언하거나 행동한다고 주장할 수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내년 1월 중순 귀국 후 한국 시민으로서 어떻게 한국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 최선일지 의견을 청취하고 고려할 것”이라며 대선 출마 가능성은 여전히 열어뒀다.

반 총장의 대선 행보는 국회에서의 탄핵안 가결 이후 헌법재판소의 심판 결과에 따라서도 크게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일단 헌재가 예상보다 빠르게 탄핵을 결정할 경우 반 총장이 대선에 출마할 시간적 여유가 부족하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탄핵안이 가결되고 헌재에서 탄핵심판이 인용되면 그 순간부터 두 달 안에 대선이 치러진다. 그렇게 되면 반기문은 나오지 못한다. 대선은 민주당 내부에서 ‘힐러리’ 문재인 대 ‘트럼프’ 이재명의 싸움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헌재의 결정이 늦어지거나 기각될 경우, 반 총장이 보수의 거의 유일한 후보로 나설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에는 새누리당 분당 여부가 또 다른 변수로 작용한다. 새누리당 안에서는 탄핵안 가결 이후 분당 여부에 대해 통일된 의견이 나오지 않지만 대체적으로 분당을 피하긴 힘들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창렬 교수는 “탄핵 찬성표 220표를 기준으로 220표 이상으로 탄핵이 가결되면 친박이 탈당하거나 출당당한 뒤 비박계를 중심으로 당을 재건할 것이다. 220표 이하로 가결될 경우 반대로 당내에서 친박이 주도권을 행사하고 비박이 탈당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12월9일 국회에서는 탄핵이 234표로 가결됐다. 현재 상황으로 보면 친박이 이에 책임지고 탈당하거나 출당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친박계가 당에서 나오지 않고 버틸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비박계 의원실 관계자는 “탄핵안이 가결되더라도 친박 지도부는 박근혜 대통령을 마지막까지 지키겠다는 명분으로 죽어도 안 물러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비박계가 탈당해 중도보수 정당을 세우고 여기에 반기문 총장이 들어올 수 있다. 당 지지율이 올라가면 다른 의원들도 따라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안철수, 반기문과 연대할까

반 총장이 새누리당을 탈당한 중도보수 세력과 함께할 경우 안철수 전 대표와의 연대 여부도 변수로 작용한다. 안 전 대표는 12월6일 “새누리당과의 연대는 없다. 부패 세력과의 연대는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밝히며 새누리당 연대설을 일축했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탄핵 국면에선 어쩔 수 없이 새누리당과의 연대에 부정적으로 표현했겠지만, ‘박근혜 게이트’ 책임론에서 떨어져 있는 새누리당 비박계가 새로운 세력을 만들 경우 안 전 대표와 연대할 가능성이 여전히 높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윤희웅 센터장은 “현재로서는 비난받고 있는 새누리당과의 연대를 누구도 얘기할 수 없다. 그러나 이후 대선 경쟁 과정에서 안철수의 독자적 힘으로 역부족일 경우 새누리당을 이탈한 세력과의 연대 가능성은 없다고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박성민 대표도 “안철수의 기회 요인은 새누리당의 붕괴”라고 했다. 반기문 총장과 안철수 전 대표의 연대 여부에 따라 ‘문재인 대 반문재인’ 구도가 양자 구도가 될지, 다자 구도가 될지 결정될 것이다.

탄핵 이후 상황에 따라 비박계의 핵심인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이 대선 주자로 거론될 가능성도 있다. 유승민 의원은 리서치뷰 조사에서 지지율 3.7%로 대선 주자 가운데 6위를 차지했다. 지지율로 따지면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그러나 여권 안에서 반 총장을 제외하고 뚜렷한 차기 주자가 없다는 점은 유 의원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유 의원에게는 원조 친박이라는 ‘원죄’가 있지만, 그는 새누리당 안에서 가장 먼저 박근혜 정권과 거리두기를 해왔고 비박계의 탄핵 찬성 여론을 이끄는 등 현 정부와의 차별화에 ‘정당성’을 확보했다는 평가를 얻는다.

문제는 유 의원이 새누리당 안에서 아직까지 세력이 크지 않다는 점이다. 또 새누리당 분당 여부도 유 의원의 대선 출마에 주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 유 의원은 최근 탈당 여부에 대해 “당에 남아 당 개혁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견을 보인 바 있다. 탄핵이 234표로 가결된 상황에서 친박이 나가고 유 의원의 뜻대로 비박계를 중심으로 당이 재창당할 경우 당의 대선 주자로 부상할 수 있다. 그러나 비박계가 탈당할지 친박계가 탈당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윤희웅 센터장은 “새누리당의 분화 가능성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유승민은 현 정권의 책임론에서 비교적 자유롭다는 장점이 있지만, 짧은 기간에 보수 진영의 지지층을 확대하는 게 쉽지 않은 과제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해법’ 따라 인물도 달라진다

수많은 변수가 놓인 가운데 현재로서는 대선 정국을 쉽게 점칠 수 없다. 박성민 대표는 “탄핵 이후 질문이 많이 바뀔 것이다. 개혁 대상이 누구인가, 개혁 주체는 누구인가, 그 개혁으로 이루려는 목표가 무엇인가, 개혁 전략은 무엇인가, 어떤 한국을 만들려는가 등의 질문에 따라 탄핵 이후 전선이 새롭게 만들어질 것이다”라고 했다.

대선 주자들은 현재까지 탄핵소추안 가결에만 집중해왔을 뿐 탄핵 이후 상황에 대해 별다른 해법을 제시하지 못했다. 그러나 앞으로 이들이 탄핵 이후 국정 혼란을 수습할 ‘해법’으로 무엇을 내놓느냐에 따라 국면이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탄핵 이후 본격적인 조기 대선 경쟁이 시작됐을 때 이들은 ‘박근혜 게이트’를 어떻게 극복하고 ‘박근혜 이후’ 어떤 새로운 정치체제를 만들어낼지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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