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엔 그들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위한 싸움을 전투가 아닌 축제로 규정하는 청년들. 즐겁게 노래하며 가늘고 긴 싸움을 이어나가겠다고 한다. 그 거리엔 교복 입고 피켓을 든 중고생들도 있다. 부패한 권력에 대한 분노와 저항을 거리에 쏟아낸다. 훼손된 민주주의를 다시 세우기 위해.
박지원(74)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노련한 조타수다. 4선을 하는 동안 세 번이나 비상대책위원장과 원내대표를 맡았다. 늘 비상 국면에선 키를 잡았던 셈이다. 국민의당은 비대위원장 임기를 12월 초로 한 달 더 연장하며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 정국 대응을 맡겼다.
‘협상의 달인’으로 불리는 그는 서서히 청와대를 향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국회가 총리를 추천하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제안을 “덫이자 꼼수”라고 일축한 박 위원장은 그간 하야 주장과는 거리를 둬왔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태도를 바꾸지 않자 11월10일엔 대통령 퇴진을 내걸고 거리 서명 운동에 동참했다.
박 위원장은 서둘지 않는 듯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은 절대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며 “하지만 우리는 빠져나갈 수 없도록 토끼몰이를 할 것”이라고 했다. 은 11월11일 국회 국민의당 원내대표실에서 박 위원장을 만나 정국 구상을 물었다. 그는 인터뷰 도중 ‘최순실 게이트’ 진상 규명을 위한 긴급 대정부 질의가 열린 본회의장을 드나들며 분주하게 상황을 체크했다.
“절대 스스로 자리 물러나지 않을 것”하야 주장과 거리를 두었다가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언급했는데, 강경 대응으로 수위를 높이는 건가.국민은 이번 사태를 보며 분노와 불안을 동시에 느낀다. 김대중 전 대통령 곁에서 외환위기 극복을 지켜본 나로서는 본능적으로 국가위기 관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전율처럼 흘렀다. 안철수 전 대표는 하야, 천정배 전 대표는 탄핵을 외치고, 나는 국민의 불안함을 달랠 대안을 제시하는 역할을 분담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11월8일 정세균 국회의장을 찾아 (일방적으로) 국회에 총리 추천을 넘기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뒤엔 안보·경제 불안을 부추겼다. 그래서 당 중앙위원회를 소집해 퇴진 운동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퇴진 운동을 어떻게 전개할 생각인가.퇴진은 박 대통령의 하야가 될 수도 있고 탄핵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우선 박 대통령의 새누리당 탈당을 요구한다. 대통령이 탈당하면 당정 협의의 고리가 끊긴다. 새누리당 내 친박 활동도 급속도로 저하돼 이정현 대표가 물러날 수밖에 없다. 동시에 새누리당 안 비박계의 활동 범위를 넓힐 수 있다. 박 대통령이 당적을 지닌 상태에서 비박계가 움직이면 배신자로 규정될 수밖에 없다.
탈당으로 박 대통령의 힘을 빼버리는 것이다. 그 뒤 대통령과 여야 3당 대표 회동을 해서 총리를 추대하면 된다. 추대된 총리는 최순실, 우병우 사단을 제거하고 조각 수준으로 내각을 꾸린다. 그 뒤 김현웅 법무장관과 김수남 검찰총장으로 하여금 철저히 수사하도록 한다. 그들을 통해 이이제이(以夷制夷)하는 것이다.
아울러 국회는 국정조사와 특검을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아직 이실직고하지 않은 파렴치한 무단 행위, 국정 난맥 사건이 사실로 드러나면 국민은 다시 분노할 것이다. 그때 하야나 탄핵을 추진한다. (국정 공백을 우려하는) 국민도 이미 총리와 내각이 있으니까 안심할 것이다. 이렇게 마지막으로 토끼몰이를 하자는 것이다.
“20년 만에 망령이 다시 살아났다”대통령과 여야 3당 회동에서 총리 추천이 가능할까.‘콘클라베’(외부와 격리된 채 교황을 선출할 때까지 계속하는 비밀회의) 식으로 뽑으면 된다. 한 사나흘 하면 국민과 언론이 ‘나라가 백척간두인데 최고 지도자들이 만나서 그것도 못하냐’고 비판 여론이 높아질 테고, 그럼 결론이 나오게 된다.
당장 야당이 탄핵에 나설 가능성은.지금 야당 의석을 다 합해야 160여 석이다. 탄핵 요건(국회 재적 의원 3분의 2 동의)에 30여 석이나 부족하다. 국민의당 안에서도 탄핵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탄핵이 되려면 최소한 40석 이상을 새누리당 안에서 확보해야 한다. 탄핵했다가 부결되면 면죄부만 주게 된다. 그래서 우선 박 대통령의 탈당을 주장하는 거다. 박 대통령이 탈당해야 새누리당 비박계가 배신에 대한 부담 없이 (탄핵에) 참여할 수 있다.
청와대는 2선 후퇴 의사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성격상 절대 그렇게 하지 않을 거다. 박 대통령의 기본 생각은 ‘대통령은 대통령이고 총리는 총리다’라는 것에 변함이 없다. 역대 대통령들은 어려움에 처하면 전환용으로 인사 교체 카드를 써왔다. 지금 박 대통령이 하는 것을 보라.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지금이 21세기인데 아버지 때처럼 재벌 팔목을 비틀어서 돈을 받는 게 어디 있느냐. 이건 노태우 정권 때 끝났다. 20년 만에 망령이 다시 살아났다. 토끼몰이식으로 숨통을 꽉 졸라야 한다.
박 대통령은 어떤 구상을 하고 있을까. 의외의 수를 택할 거란 설도 있는데.그럴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너무나 큰 민족적 비극을 초래할 수 있는. 그러나 이런 수는 미국이 수용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도 미국이 두려워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무슨 이야기인지 알 것이다.
위기에 몰린 보수는 어떤 돌파구를 모색할까.지금은 못하고 있다. 트럼프 당선을 계기로 안보·경제 불안을 부각시키는 정도다. 박 대통령 지지도가 5%로 떨어졌는데 지금도 좋아하는 세력이 있다. 다만 말을 못할 뿐이다. 박 대통령이 단군 이래 가장 추악한 대통령이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수는 어떤 경우에도 다시 집권하려 할 것이다. 새누리당을 해체하고 박 대통령을 배제하더라도 다른 세력을 모아 반격해올 것이다. 원체 큰 세력이고 일본 자민당처럼 60년을 집권해온 세력이다.
아직 중심 인물이 나타나진 않지만 보수언론도 있고. 가 거국중립내각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나. 결국 자기네 살려고 그런 것이다. 최재경 민정수석이 청와대에 들어가자 (기류가) 바뀌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1987년처럼 흥분하지 말고, 다 먹었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도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막후 조정”현재 청와대의 위기 수습은 누구 중심이라고 보는가.명확한 근거는 없지만 지금도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막후에서 조정한다고 본다. 김 전 실장은 국정과 헌정을 문란하게 만든 사람이다. 곧 경제 쪽 ‘부두목’도 드러날 것이다. 특정인을 거론하진 않겠다.
촛불시위가 성과를 거두려면.질서 있는 집회로 상대에게 구실을 주지 말아야 한다. 국민의당도 더불어민주당도 굉장히 조심한다. 일부에선 이를 비난할 수도 있다. 그러나 큰 방향으로 함께해야지 서로 분열하고 비난하면 안 된다.
성연철 기자 sychee@hani.co.kr서보미 기자spring@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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