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기업부터 메르스(MERS)까지, 지난 1년 ‘고통의 연대기’를 살폈다. 슬픔·고통을 천착해온 철학자 김상봉을 만났다. 그는 “우리들이 참된 주체가 되어 만나야 한다. 만나서 길을 같이 찾고 같이 생각하고 형성해야 한다. 연대는 책에서 나온다”고 했다. 고통의 현장으로 달려가 마음을 어루만지는 상담심리사들을 찾았다. 고통 속에서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도 새겨보았다.
전남 진도군 동거차도 앞 ‘세월호의 바다’. 보이는 고통, 안 보이는 전망의 시대. 스크럼을 짠 파도가 바위섬에 부딪친다.
취재 전진식·박승화·박수진 기자, 편집 신소윤 기자, 디자인 장광석
책은 고통의 사각형. 쓰는 이와 읽는 이가 그 네모 광장에서 만난다. 고통의 만남이다. ‘공감의 비평가’ 김현(1942~90)을 사례로 당긴다. 그는 읽는 것이 삶의 통짜였다. 김현은 일찍 떠났다. 그는 최인훈 소설 을 비평하면서 이렇게 적었다.
“책읽기는 결핍의 충족이며, 행복에의 약속이다. 결핍을 결핍으로 못 느끼게 하고 불행을 불행으로 못 느끼게 하는 책은 그런 의미에서 좋은 책이 아니다. (…) 책읽기는 결핍이나 불행의 몸짓을 연습하는 움직임이 아니라, 자기가 책을 통해 불행이나 결핍이 되어, 충족이나 행복을 싸워 얻게 하는 움직임이다. 그런 의미에서 책읽기는 매우 고통스러운 작업이다. 책읽기가 고통스러운 것은 책읽기처럼 세계를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책읽기의 괴로움’, 문학과지성사 펴냄, 1992)
지구를 한 바퀴 돌고도 남을 만큼 인류는 고통의 책들을 양산해왔다. 그것은 그만큼, 아니 그보다 더 세계가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책읽기는 그것의 부분집합일 뿐이다.
시집을 중심으로 독자들에게 책 10권을 소개한다. 시는 언어의 첨병이며, 본질에서 자유이기 때문이다. “오 자유여/ 봉기의 창끝에서 빛나는 별이여”(‘자유를 위하여’, 창비 펴냄, 2004)라고 노래한 시인 김남주는 첨병 중의 첨병이었다. 고통의 부름과 응답, 그리고 동행은 그의 시 뿌리다.
“사랑은/ 가을을 끝낸 들녘에 서서/ 사과 하나 둘로 쪼개/ 나눠 가질 줄 안다/ 너와 나와 우리가/ 한 별을 우러러보며.”(‘사랑은’)
“네가 넘어지면 내가 가서 일으켜주고/ 내가 넘어지면 네가 와서 일으켜주고/ 가시밭길 험한 길 누군가는 가야 할 길/ 에헤라 가다 못 가면 쉬었다 가자/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슬픔이 기쁨에게박정희 유신이 끝장나던 1979년 봄. 정호승 시인은 첫 시집을 냈다. (창비 펴냄). 고통의 격발은 늘 슬픔의 몫이다.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 주겠다./ (…)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가 다시 얼어죽을 때/ 가마니 한 장조차 덮어 주지 않은/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길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슬픔이 기쁨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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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시학으로는 가장 대중적이다. “오직 눈물의 향기만 어루만지”는 것은 아닌가 무력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리운 미친년 간다./ 햇빛 속을 낫질하며 간다./ 쫓는 놈의 그림자는 밟고 밟으며/ 들풀 따다 총칼 대신 나눠주며 간다”(‘유관순 1’)는 앞의 작품과 사뭇 다르다. 슬픔 또는 한이 수동에 머물지 않고 능동으로 나아가는 뿌리라는 점에서 “그의 비애나 한은 눈물이 아니라 칼”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김상봉의 철학 체계에서도 그렇거니와, 슬픔·눈물은 두 주먹 쥐고 일어서는 ‘봉기’의 단초가 되기 때문이다.
정호승이 한국 현대사 암흑기의 심연에서 시를 두레박질했다면, 김선우 시집 (문학과지성사 펴냄, 2016)은 지금-여기를 날카롭게 위무하는 진혼가다. 몇몇 시는 분명 2014년 4월 ‘그날의 사건’을 은밀히 지칭한다. 진혼가로서 시가 혼을 위무하는 대상은, 우리도 비통하게 알고 있는바, 최근 몇 년 새 억울을 떠안고 떠나간 이들이다.
지옥에서 보낸 두 철“보았네// 보았으나//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보다,의 지옥// 인간의 땅”(‘지옥에서 보낸 두 철’)
“불씨 한 줌을 꼭 쥐고 바닷속으로 내려갔다/ 차마 입을 열 수 없는 슬픈 노래가// 바다거품처럼 떠돌았다/ 차가운 배 안에 불을 묻었다// (…) 차갑게 언 아이들이 물속으로부터 떠올랐다”(‘그해 봄 처음으로 神(신)을 불렀다 1’)
“흐린 펜으로 봄의 목록을 적어갑니다/ 지금 이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 ;// 기운을 차릴 것/ 기억할 것/ 노트를 마련할 것/ 증언할 것/ 눈앞의 아이들을 위해 작은 풀잎 창이라도 매일 닦을 것”(‘그해 봄 처음으로 神(신)을 불렀다 2’)
시인은 저마다 개별성으로 시를 쓴다. 창, 칼, 총… 같은 낱말이 저항시의 본질은 아니다. 우선 침묵하지 않고 발언하는 것. 고통의 연대보증인이 되는 것.
“‘이렇게 살겠다’, ‘이것이 진짜 삶이다’라는 무언가를 드러내야만 한다. 시인이 해야만 하는 일이다.” “1970년대, 1980년대 같은 피투성이 잔치는 끝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현실을 노래할 방법을 알아야만 할 것이다.” “지금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 지금 이 상황 속에서 소외되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노래해야만 한다.” “시대가 변하고 세상이 바뀌었다 하더라도 이 사회에 소외되고 상처 입은 사람들이 존재하는 이상, 시인의 일은 끝나지 않는다. 지금 이 시대가 시인들에게 새로운 노래를 요구하고 있다.”(서경식, 현암사 펴냄, 2015)
나날이 ‘지옥에서 보낸 한 철’ 같은 이들을 내버려두고, 그런 현실을 고통스럽게 개선하지 않는 한, 어떤 미학도 아름다울 수 없다.
피와 밥 곁에 수류탄“괴로움/ 외로움/ 그리움/ 내 청춘의 영원한 트라이앵글”의 시인 최승자. 질병과 아픔을 혹독하게 시로 밀어붙이는 데서 그만큼 치열한 이도 많지 않다. 호미로 밭을 찍듯, 그의 시는 언어로 비언어의 세계를 충격한다. 일상의 쾌락에 몽롱한 이들의 머리를 망치로 때리는 격. 최근 출간한 여덟 번째 시집 문학과지성사 펴냄)에서도 그의 망치는 ‘시적 둔기’다.
“나의 생존 증명서는 詩(시)였고/ 詩(시) 이전에 절대 고독이었다/ 고독이 없었더라면 나는 살 수 없었을 것이다// 세계 전체가 한 병동이다// 꽃들이 하릴없이 살아 있다/ 사람들이 하릴없이 살아 있다”(‘나의 생존 증명서는’)
“아침이 밝아오니/ 살아야 할 또 하루가 시큰거린다/ “나는 살아 있다”라는 농담/ 수억 년 해묵은 농담”(‘아침이 밝아오니’)
“누구에게나 모국어는 슬픔의 제사상”(‘모국어’)
시인 자신도 시집에 적은바, 시가 ‘한 판 넋두리’에 머문다면 시는 참된 황망이 아닌 거짓 황홀에 머물고 말 것이다. 철학자 김상봉이 경계한 것이 바로 자기고립이다. 고립의 섬에 다리를 놓아 만남의 숲으로 가야 한다. 김상봉이 본 ‘만남의 절대 공동체’. 바로 ‘한국사의 울돌목’이라 할 5·18 광주. 그것을 서술하는 끝자락은 논문이 아니라 한 편의 시학으로도 읽힌다.
“고통을 나눈다는 것은 고통을 같이 부정한다는 것, 다시 말해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같이 행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고통의 원인이 외부의 적대적 타자인 한에서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같이 행위한다는 것은 같이 싸운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한에서 사랑은 같이 아파하는 것뿐만 아니라 같이 싸우는 것, 자기의 전 존재를 걸고 같이 위험에 맞서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피와 밥 곁에 수류탄이 놓일 때, 사랑의 성찬은 완성되는 것이다.”(‘그들의 나라에서 우리 모두의 나라로’, 도서출판 길 펴냄, 2008)
많이 묵고 가이소피와 수류탄 이전에 밥이 있을 것이다. ‘가난=고통’이라는 등식이 인류사 몇천 년을 버티고 있다. 고통의 지근거리에 가난한 밥이 있다. 고통의 밥은 아직도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박목월의 시에서 밥과 고통은 효의 마음과 분위기에 녹아들어 더 애틋하게 다가온다.
“아베요 아베요/ 내 눈이 티눈인 걸/ 아베도 알지러요./ 등잔불도 없는 제삿상에/ 축문이 당한기요./ 눌러 눌러/ 소금에 밥이나마 많이 묵고 가이소./ 윤사월 보리고개/ 아베도 알지러요./ 간고등어 한손이믄/ 아베 소원 풀어드리련만/ 저승길 배고플라요/ 소금에 밥이나마 많이 묵고 묵고 가이소// 여보게 萬術(만술) 아비/ 니 정성이 엄첩다/ 이승 저승 다 다녀도/ 인정보다 귀한 것 있을락꼬./ 亡靈(망령)도 應感(응감)하여, 되돌아가는 저승길에/ 니 정성 느껴느껴 세상에는 굵은 밤이슬이 온다.”(‘만술 아비의 축문’, 민음사, 2003)
밥은 똥이 된다. 한국문학에서 가장 인상적인 똥은 (문학과지성사 펴냄, 2000)에서 읽힌다. 5·18을 소재로 시인 황지우가 쓴 희곡. 해설을 쓴 문학비평가 정과리의 부끄러움처럼, ‘오월 광주의 죽음’ 명단에서 “소위, 양심이 직업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5월18일 아침 광주 광천동 빈민가. 시민군 기획실장을 맡게 될 허인호가 먼저 부르고 아이들이 받는 노래. 똥과 희망 차별 없이 뭉개져 있다. ‘똥바다’는 무엇을 은유하는가.
“광천동 아침 똥바다, 아그들이랑 빗자루 들고/ 우리, 세상의 가장 낮은 나라, 노 저어 가지요./ 이 길 다 쓸면 저 검은 광천, 흰 극락강 되겠죠./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을 좋아하지 못해요./ 누구보다도 자기가 자기를 무시하죠. 광천(光川) 똥바다!/ 제자리에 똥 싸놓고 뭉개고 앉은 삶이라니까요./ 아그들아, 똥은 싸는 것이 아니라 누는 거예요오.”
“아녜요. 우리는 똥을 암데나 갈겨부러요. 빠방, 빠방, 빠방,/ 푸뎅, 푸뎅, 푸뎅, 빠바바바바방! 빠바바바바방!/ 아하, 아하, 아하. (웃음소리) 알았어요. 똥을 치울게요./ 똥을 치우자, 똥을 치워, 광천동에 똥 치워! (반복)/ 변소 짓고, 지붕 고치고, 문짝에 페인트칠 하고./ 해바라기 심고, 나팔꽃 심고./ 이른 아침 창 앞에서 처음으로 욕이 아닌 내 이름 듣고/ 우리는 와 하고 당신한테 달려가지요.”
도대체 왜! 왜!다시, 책은 ‘고통의 축제’다, 결석할 수 없는. 그러나 책 밖에는 고통의 현실이 엄연하다. 책장을 덮고 일어나, 사람들과 만나야 하는 이유다. 그리고 물어야 한다, 왜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은 고통하는가라고. 왜 세상이 고통으로 가득하냐고.
“우리가 바라는 것은 단지 최소한 우리가 왜! 그 형제복지원에 들어가 있어야 했는지 그 이유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단지 가난해서? 단지 몸이 불편해서? 단지 나이가 어리고 길을 잃어버린 아이라서? 도대체 왜! 왜! 우리가 무엇 때문에 형제복지원에 갇혀야 했던 것입니까.”(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구술기록집, 오월의봄 펴냄, 2015)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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