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석이 엄마·아빠는 연이틀 국회를 찾았다. 하루는 세월호 특별법 개정 필요성을 논의하는 토론회에 참석하러, 하루는 국회 앞에서 팻말 시위를 하러 서울 여의도동에 발걸음했다. 5월4일 국회 정문 앞에서 부부가 나란히 들고 서 있는 “세월호 인양 후 특별조사위원회 선체 정밀조사, 특별법 개정으로 보장되어야 합니다”라고 쓰인 팻말은 거센 바람에 부르르 떨렸다. 이날 서울에는 최대순간풍속 초속 18m의 돌풍이 몰아쳤다. 엄마·아빠의 마음에도 바람이 불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세월호 특별법 앙금 가시지 않았지만</font></font>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에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서울지부가 학생들이 쓴 엽서 3만5천 개를 세월호 유가족에게 건넸다. 유가족 대표로 엽서를 받은 영석이 엄마 권미화(42)씨는 어른이 되지 못한 채 하늘나라로 가서 “평생 어린이”인 아들 생각에 눈물을 흘렸다.
유달리 아들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그날 오후, 국회 앞에서 현장체험학습을 나온 고등학교 1학년 남학생들을 만난 엄마는 아이들에게 살갑게 말을 붙였다. “아들, 시험은 잘 봤니?” “바지 사이즈 몇 입니? 살 좀 쪄야겠다.” 또래 아이들을 보니 엄마는 영석이 생각이 더 간절해진 모양이다. “우리 아들은 똥똥해서 스키니 한 번도 못 입어봤는데….”
엄마·아빠는 국회가 싫다. 2014년 국회 본청 앞에서 ‘수사권·기소권 없는 세월호 특별법’ 여야 합의에 항의하며 수십 일 동안 노숙농성을 할 때의 기억이 떠올라서다. 국회 정문으로는 들어갈 수 없어 국회도서관에 가는 척, 결혼식 가는 척하며 국회를 겨우 드나들었다. 영석이 아빠 오병환(44)씨는 국회 농성 도중 몸이 안 좋아 병원에 실려가기까지 했다. 폐에 반점이 있다고 의사는 말했다. 오씨는 치료를 받지 않는다. “병원 다니고 건강 챙기는 게 아들한테 미안해서”다.
세월호 침몰 이후 닷새 만에 뭍으로 올라온 아들은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손톱 열 개가 온통 시퍼렇게 멍들어 있었다. 아들의 그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내 고통쯤이야 대수롭지 않다. “오랜만에 국회에 (토론회 참석하러) 들어갔는데 눈물이 납디다. 지금까지도 변한 게 없어서….” 엄마 권씨는 국회에서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조사활동 기간을 축소해서 해석하려는 움직임이 영 못마땅하다.
국회가 싫은데도, 엄마·아빠는 박주민 변호사를 그 국회로 들여보내기 위해 발벗고 나섰다. 엄마 권씨는 아침 일찍 나와 사무실 청소를 도맡고, 하루 종일 서울 은평갑 유권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기호 2번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후보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아빠 오씨는 투표 독려 운동을 하려고 인형탈을 쓰고 춤을 췄다. 온몸이 땀에 흠뻑 젖도록 엉덩이를 흔들었다. “아들이 떠난 뒤로 모르는 사람을 만나 웃는 것도 꺼려진다”는 사람이 인형탈을 쓰고 하루 종일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전남 진도군 조도면 동거차도에서 세월호 인양 작업을 감시하다가 안산으로 올라오자마자 은평으로 달려와, 모텔과 사우나, 찜질방을 전전하며 여드레 남짓 박주민 선거운동캠프에서 자원봉사를 했다.
“난 여당도, 야당도 별로 안 좋아한다. 말로만 다 해줄 것처럼 해놓고는….” 오씨는 세월호 특별법 때 정치인한테 쌓인 앙금이 아직 가시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 박주민 변호사가 당선되면 적어도 야당 의원들한테 (세월호) 얘기는 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동원해서 당선시키고 싶었다.”
묵묵히 몸으로 하는 일이라면 누구보다 자신 있었다. 인형탈을 뒤집어쓰게 된 이유다. 투표해달라고 젊은 층에 호소하고 싶었다. 영석이가 살아 있다면 올해 국회의원선거(총선) 때 첫 투표를 했을 게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1명 이상의 세월호 국회의원 </font></font>박주민도 오씨처럼 지난 2년간 유가족 곁을 묵묵히 지켰다. ‘유가족 법률대리인’이라는 직함 그 이상이었다. “고마운 사람.” “배운 티 내지 않고 어떻게 하면 우리를 아프게 하지 않을까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굳이 유가족들도 그렇게 적극 나서 선거를 돕지 않았을 테다.
서울 종로구 청운동 주민센터 앞, 여의도 국회, 광화문 농성장, 경기도 안산… 유가족이 아스팔트에 주저앉아 농성하는 현장에는 항상 구부정한 어깨에 노트북 가방을 멘 박주민 변호사가 초췌한 모습으로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세월호 참사 직후 유가족들 앞에서 마이크를 들고 목소리를 높이다가 권력을 좇아간 사람도 있다. 박주민 변호사도 세월호를 발판 삼아 국회에 입성했다는 손가락질을 받을 법한 상황이었다. 국회의원, 그것도 세월호 특별법에 합의해준 더불어민주당 후보였으니까.
그러나 유가족 중 누구도 그를 비난하지 않았다. 오히려 권씨는 “사람 하나는 우리가 보증할 수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쉽게 포기하지 않을 사람”이라고 말했다. 투표일 20여 일 전에야 뒤늦게 공천받았을 때 박주민 변호사만큼 마음 졸인 것도 유가족들이었다. 그래도 권씨는 “(하늘에 있는) 아이들이 도와준다고 생각해서 진다는 생각은 안 했”단다.
엄마·아빠는 “국가폭력에 시달리는 경험”을 하면서 “좋은 정치인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하게 느꼈다. 엄마 권씨는 지난 대통령선거 때 박근혜 후보를 찍었다. “전~혀~ 정치에 관심 없었”고 “노후에 여성들이 편하게 살 수 있도록 복지정책을 펴줄 것”이라고 믿어서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엄마는 이제 “정치에 관심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국민들이 믿고 뽑아준 국회의원들이, 대통령이 세월호 빨리 인양하고 미수습 희생자가 없도록 해줘야 하는 게 당연하지 않나요?”
엄마·아빠가 “믿는” 박주민 변호사는 4·13 총선에서 당선되자마자 다음날 새벽 안산 합동분향소를 가장 먼저 찾았다. 단원고 엄마들은 박 변호사를 따뜻하게 안아줬다. 300명 중에서 단 1명 ‘세월호 국회의원’이 생긴다고 해서 뭐가 크게 달라질까 싶은 마음은 없을까?
“어쨌든 세월호 특조위, 특검을 말할 수 있는 힘이 생겼잖아요. 만약 여당이 이겼다면 세월호 특조위는 힘들죠. (이제) 충분히 싸울 수 있다고 봐요. 또 박주민 혼자가 아니에요. 세월호에 가슴 아파하는 다른 의원들도 있어요. 그분들이 제대로 한다면 19대 국회와는 달라질 거라고 믿어요. 조금은 힘이 나요. 조금은 ‘이길 수 있다’는 기대가 생겼어요.”
오씨는 오히려 은평을 걱정한다. 박주민 당선자가 세월호‘만’ 집중할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은평 발전에도 힘써야죠. 은평에 처음 갔더니 꼭 안산 같더라고요. 개천도 있고, 서울특별시에 있지만 지역 발전도 잘 안 돼 있고.”
<font size="4"><font color="#008ABD">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나라 </font></font>긴 연휴를 앞두고 아이들이 무리지어 광화문이며 여의도를 재잘대며 뛰어다녔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바람을 타고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팻말을 든 엄마 권씨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속삭이듯 말했다. 구름에도, 바람에도 보이는 아들을 향해. “이 많은 아이들의 미래까지 삼켰으면 국가가 반성해야죠.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해야죠.” 엄마·아빠는 박주민이 그 약속을 지켜주리라 믿는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카카오톡에서 을 선물하세요 :) <font color="#C21A1A">▶ 바로가기</font> (모바일에서만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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