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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보수화, 필연이 아니다

‘연령 효과’ 분석한 <표심의 역습> <사람들은 왜 진보는…> 등이 말하는 한국적 이유…성공한 기억 폄훼, 탈권위 반감, 개신교 효과 등 사회적 이유 작동해
등록 2016-03-29 22:25 수정 2020-05-03 04:28
<font color="#006699">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6월 당 워크숍에서 소속 국회의원들에게 ‘2016 무엇으로 승리할 것인가’란 보고서를 나눠주었다. 당 정책연구소인 민주정책연구원이 만든 ‘제20대 총선 전망 보고서’였다.
보고서의 핵심은 “(2016년 총선을) 세대 전쟁으로 치르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보고서는 ‘20~40대의 지지를 최대화하고, 장·노년층의 제1야당 호감도를 높이는 우호화 전략을 짜야 한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야당의 이런 고민은 인구 구성에서 고령층의 비중이 늘어난 데다, 이들의 지지 성향이 새누리당 쪽에 쏠린 현실에서 기인한다.
<font size="4">총선 975만여 명의 파워</font>
최근 가장 큰 선거였던 2014년 지방선거에서 연령대별 유권자 비율을 보면, 60살 이상이 전체 연령대에서 21.9%를 차지했다. 20대(16%), 30대(19.1%), 40대(21.6%), 50대(19.7%)의 비중을 웃돌았다. 이번 총선에서 60살 이상 유권자는 약 975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은 투표율도 높다. 60살 이상 유권자는 2002년 대통령선거부터 2014년 지방선거까지 주요 9개 선거에서 최소 65% 이상의 투표율을 나타냈다. 주목할 것은 60살 이상 노년층이 전체 유권자에서 차지하는 비율보다 실제 투표자 수에서 노년층이 차지하는 비중이 갈수록 커진다는 점이다. 노년층의 투표율이 높고, 이에 비해 청년층의 투표율이 낮기 때문이다. 노년층이 전체 유권자에서 차지하는 비율보다 더 큰 비중으로 실제 투표에서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뜻이다.
특히 정치권에서 노년층에 촉각을 세우는 것은 이들의 정치 성향 때문이다.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이 발표한 2016년 3월 마지막주 정기조사를 보면, 60살 이상 응답자의 62%가 새누리당을 지지했다. 이들의 65%는 ‘박근혜 대통령이 직무 수행을 잘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여당은 이들의 지지를 더욱 견고하게 붙잡을 방법을, 야당은 노년층의 호감도를 자신들 쪽으로 끌어당길 전략을 짤 수밖에 없다.
총선을 앞두고 <font color="#C21A1A">‘청년의 투표와 정치 참여’</font>(제1104호 특집1 참조)에 대해 살폈던 은 노년층의 투표 심리를 이번호 표지이야기로 택해 집중적으로 들여다보았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실제 투표한 사람들 중 60살 이상 비율이 27.1%에 달할 만큼 이들이 선거 판세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졌기 때문이다.
<font size="4">청년이 노년을 만나다</font>
기성 언론이 제대로 조명하지 않는 ‘구석 정치’를 직접 보도한다는 목표로 구성된 청년들의 독립미디어 은 60살 이상 노인 75명을 수도권 일대에서 만났다. 청년의 눈으로 노년층의 투표 심리를 살폈다.
이들의 취재에 더해, 노년층의 정치 성향을 분석(뉴스 북리뷰)하면서, 종합편성채널(종편)이 노년층의 정치적 의사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도 함께 짚었다.</font>
노년층이 보수정당에 더 많은 지지를 보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2012년 대선 투표를 하기 위해 유권자들이 긴 줄을 서 있다. 한겨레 김봉규 기자

노년층이 보수정당에 더 많은 지지를 보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2012년 대선 투표를 하기 위해 유권자들이 긴 줄을 서 있다. 한겨레 김봉규 기자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은 총선을 한 달 앞둔 3월15~17일의 조사 결과, 60대 이상 노년층의 정당 지지도는 새누리당 64%, 더불어민주당 8%, 국민의당 7%, 정의당 1%, 지지 정당 없음이 20%였다고 발표했다(표본오차 95%, 신뢰수준±3.1). 노년층의 보수정권 지지율이 압도적이라는 사실이 다시 한번 확인된 것이다.

노년층은 보수세력의 어떤 정치적 구호에 매력을 느끼는 걸까. 노년층은 어떤 정치적 신념으로 진보에서 보수로 돌아서고, 혹은 더 강경한 보수층이 되어가는 걸까. 보수를 연구한 참고 서적을 중심으로 고령화할수록 왜 보수 색채가 짙어지는지 짚어봤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소외감 극복하려는 현상”</font></font>

교보문고 정치·사회 분야 북마스터의 도움을 받아 몇 권의 책을 추리고, 이들 책의 참고 자료가 된 서적을 찾아 리스트를 정리했다. 추천 도서로는 (이현우 외 지음), (장신기 지음), (조지 레이코프 지음)가 있었다.

앞의 두 권은 현재 국내 상황을 이해하기 적합했고, 의 경우 ‘노년층의 정치’에 적확한 테마는 아니지만, 왜 약자와 소수자가 보수의 프레임에 포섭되는지에 대한 이해가 가능했다. 미국 캔자스 지역의 우경화를 중심 사례로 쓴 (토마스 프랭크 지음)도 같은 맥락에서 읽을 수 있었다. 넓은 틀에서 보수를 이해하자면 (코리 로빈 지음)도 목록에 올릴 수 있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의 사례가 주요해 현재 국내 상황에 적용해 겹쳐 읽기는 어려웠다. 이들 가운데 총선을 앞둔 현재 시점에 가장 부합한 등 두 권을 중심으로 살펴봤다.

나이가 들수록 가치관이 보수화하는 경향을 ‘연령 효과’라고 한다. 노년층의 보수화 경향을 대표적으로 설명하는 이론이다. 에 실린 논문 ‘60대 한국인의 심리적 특성’(한민·이훈진·최인철·김범준, 2013)에 따르면, 연령 증가에 따라 규범지향적 성향과 지배성이 증가한다. 나이가 들수록 다른 연령층에 비해 기대수명이 적어 이미 이룬 것을 지키려 하고, 자신의 삶에 최적화된 선에 만족하는 경향성을 보인다는 것이다. 신체적·정신적 대응 능력이 약해짐에 따른 방어기제가 작용해 익숙한 대상을 고수하려는 성향을 보인다는 설명도 있다. 이러한 정서적 보수화가 정치적 보수화로 이어진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연령 효과에 더해 여러 복합적 이유가 모여 노년층의 보수화라는 퍼즐판을 완성한다. 를 쓴 사회학자 장신기씨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노년층의 보수화는 생애주기에 따른 필연적인 효과라기보다 급격한 사회변동 과정에서 형성된 복합적 소외감을 극복하기 위해 나타난 명백한 사회적 현상이다.”

이 책은 진보 성향에서 보수로 돌아선 평범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한국 사회의 보수화 경향을 분석한다. 이 책에서 꼽은 노년층 보수화의 이유는 다음과 같다. △진보세력의 청년층을 중심으로 한 선거 전략 △전통을 사회 통합의 자원으로 활용하려는 세대정치 △자신이 믿는 종교에서 설파하는 가치와 윤리 등이 그것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노인의 기억은 청년의 생각과 다르다</font></font>

저자는 시민사회 안에 형성되는 보수화의 새로운 경로를 주목했다. 노년층은 진보세력이 선거 때마다 젊은 층의 투표 참여를 피력하고, 과거를 타파해야 할 무엇으로 설정하는 데 강력한 불만을 표출했다.

한 예로 70대 김민철씨는 이렇게 말한다. “없는 것도 서러운데 노인들은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아 표가 안 된다고 그렇게 차별하면 됩니까?” 같은 세대인 강유미씨도 말을 얹는다. “민주당은 허구한 날 젊은 층만 찾잖아.” 진보정당에 느끼는 상대적 소외감이 1번을 찍는 경향성을 만든다는 것이다.

과거사에 부정적 입장을 지닌 진보세력의 태도가 자신들의 역사 전체를 부정한다는 인식도 보인다고 했다. 진보세력은 독재정권 당시를 ‘어두웠던 그 시절’로 기억하지만, 상당수 노년층은 그때를 “발전과 성장, 그리고 절대 빈곤 퇴치와 같은 긍정적인 시기로 기억”한다는 것이다.

<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50%" align="right"><tr><td height="22px"></td></tr><tr><td bgcolor="#ffffff" style="padding: 4px;"><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 bgcolor="#ffffff"><tr><td class="news_text02" style="padding:10px">
<font size="4"><i><font color="#991900">진보세력은 독재정권 당시를 ‘어두웠던 그 시절’로 기억하지만, 상당수 노년층은 그때를 “발전과 성장, 그리고 절대 빈곤 퇴치와 같은 긍정적인 시기로 기억”한다.</font></i></font>
</td></tr></table></td></tr><tr><td height="23px"></td></tr></table>

노년층은 진보세력의 과거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개인 역사의 자긍심을 훼손한다고 분노한다. 진보에서 보수로 돌아선 이들 노년층은 독재의 역사와 개인의 역사를 일부 분리해 그 시절을 기억하고 있다.

은 유신이 만든 ‘콘크리트 지지층’을 주목한다. 어떤 경우에도 현 정권에 변하지 않는 충성도를 보이는 강력한 지지층이다. 1972년부터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한 1979년까지 청소년기를 보내며 정치·사회 의식을 다진 세대가 이들에 속한다. 저자들은 2016년 기준 57~66살에 속하는 이들을 유신체제 세대라고 일컬었다.

20대 초반에 강력한 독재를 경험한 세대라면 거기에 대한 반발로 자유화를 갈구할 것이라 예측하기 쉽다. 하지만 이들은 오히려 아주 단단한 보수화 성향을 지닌다. 저자들은 “그러한 보수 경향은 청소년기의 교육을 통해 이미 머릿속에 내재화된 것으로 시간이 지나도 영향력이 발휘”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개신교, 새로운 보수의 통로</font></font>

보수를 지지하는 노년층에게는 탈권위를 지향하는 청년 세대에 대한 반발심도 짙게 나타난다. 학교든 국가든 엄격한 통제와 규율이 작용했던 시절을 보낸 이들 세대는 현재를 ‘질서 없음’으로 규정한다. 장신기씨는 다소 권위적인 방식일지라도 조직의 안정을 위해서는 질서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세대가 노년층이라고 썼다.

노년층은 자신들이 추구했던 전통, 공동체 의식 같은 것이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단서가 될 거란 인식이 강하다. 진보세력이 개인의 인권과 자유, 소수자 권리를 강조하면서 공동체 일반의 질서와 사회 결속력 강화에 소홀하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이런 경향의 응답자들이 과거를 아쉬워하는 복고적 태도를 지닐 수도 있다고 예측했지만, 응답자는 전통과 인습을 구분하는 시각을 보였다. “맘에 들지는 않지만 보수정당을 지지한다”는 노년층의 태도다. 다른 방식의 문화와 정체성을 가진 세대가 주류로 등장하면서 사회·문화적으로 소외감을 느낀 노년층의 반발 심리가 보수화 경향에 영향을 준다는 해석이다.

저자들이 2015년 세대별 이념 성향을 조사하며 ‘자유와 질서 중 어떤 가치가 더 중요한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질서를 더 중시할수록 10점에 가까워지도록 설계된 설문에서 56~65살로 구성된 ‘유신체제 세대’는 질서 선호도에서 6.76점을 나타냈다. 반면 43~49살이 주를 이루는 ‘진보대중화 세대’의 질서 선호도는 6.25점이었다. 노년층일수록 자유의 가치보다 질서의 가치를 더 중시한다는 점이 다시 확인된 셈이다.

개신교가 노년층의 정치의식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도 흥미롭다. 진보정권 집권 이후 성소수자의 인권 문제가 공론화되면서 정치의식과 상관없이 종교·문화적 갈등으로 보수화한 사람들이 있다. 장신기씨는 성수자 인권 문제는 진보세력이 중심 의제로 제기한 문제라기보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자유로워지면서 자연스레 대두된 문제의식이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보수적인 개신교회가 생존 전략의 하나로 이 문제를 정치적 프레임으로 활용하면서 (그 신도들이) 진보와 보수를 악과 선의 대립으로 설정하게 됐다는 것이다. 장신기씨는 “2000년대 들어 특히 개신교 계열의 대형 교회를 중심으로 한 보수주의 운동의 영향력이 실질적으로 존재한다”고 썼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여전히 부족한 노년층 분석</font></font>

저자들은 노년층의 보수화가 국민의 보수화로 이어질 것을 우려한다. 한국 사회의 고령화 속도는 어느 국가보다 빠르다. 지난 3월23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5 한국의 사회지표’에 따르면, 2015년 고령인구는 13.1%로 다음 단계인 고령사회(고령인구 14%)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 고령화사회에서 고령사회로 넘어가는 데 소요되는 시간이 불과 20년이 걸리지 않을 것으로 예측된다. 일본 24년, 미국 72년 등에 비하면 굉장히 짧은 수준이다.

그렇지만 이들 세대에 대한 연구 결과가 풍성하게 나와 있는 편은 아니다. 살펴본 대로, 노년층은 단순히 신체·경제적으로 취약해지기 쉬운 세대라는 까닭만으로 보수화 경향을 보이지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왜 보수에 스며들게 되는지 좀더 깊이 이해하려면 활발한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font color="#A6CA37">노년층  보수화  연구한  장신기씨  인터뷰 </font>

“집단이  아닌  개별의  역사  이해해야

노년층의 보수화 경향이 짙어지는 이유는 진보 성향에서 보수로 돌아서는 사람들의 증가도 한몫한다. 본문에 언급했듯 이는 생애주기에 따른 현상이기도 하지만, 정치·사회적 특성이 세대에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보수화한 시민 32명을 인터뷰한 결과를 책으로 엮은 를 쓴 장신기씨에게 보수 지지 노년층 인터뷰의 뒷이야기를 들었다.

나이가 들면서 보수화하는 경향 가운데 한국적 특징이 읽혔나.

이 연구를 진행하면서 봤던 것 중 하나는 나이가 든다고 해서 모두 보수화하는 것은 아니라는 거다. 유럽의 어떤 지역에서는 그런 경향성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한국 노년층의 보수화 메커니즘을 좀더 세밀하게 분석하려면 질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보수화 경향이 짙은 경제적 계급과 세대를 보면 빈곤 노년층이 많았지만, 딱 집어 경제적 소외감만으로는 볼 수 없었다.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공통된 정서가 있었다. 이들 세대가 느끼는 정치·사회적 소외감은 ‘분절’과 ‘단절’이라는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50~60대의 생애 흐름을 보면 그들은 짧은 시간 동안 축적된 역사를 경험했다. 새로운 역사를 살아가는 세대와의 괴리감이 여기서 비롯된다고 본다.

인터뷰하면서 예측 못한 순간이 있었다면.

박근혜 대통령 사진을 스마트폰에 담아 다니는, 진보에서 보수로 돌아선 인터뷰이가 있었다. 단순히 개인으로 추앙한다기보다는 소외감을 만회하기 위해 뭔가를 추구한다는 느낌이 강했다. 국가주의를 지향하지만 뉴라이트라고 볼 순 없었다. ‘나도 이때(박정희 정권 시절) 이만큼 했다’, 자랑스럽고 보상받고 싶은 심리와 결부한 정서로 읽혔다. 박정희 정권의 패악을 이성적으로 잘 이해하고 있기도 했다. 그러니까 독재정권의 역사를 자신의 역사와 별개로 인식함과 동시에 그 시절을 체화했다고 볼 수 있다.

보수화한 어른들의 ‘진심’을 들여다본 셈인데.

2012년 대선 이후 진보 진영은 이른바 ‘멘붕’에 빠졌다. 진보 엘리트들의 문제는 보통 사람들이 왜 보수세력을 지지하는지 잘 모른다는 거다. 보수화한 노년층이 ‘뭘 모르고’, 신앙적·종교적으로 보수를 지지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그런 사람이 상당수 있을 수도 있겠지만, 전체가 다 그런 것은 절대 아니다. 보수 노년층을 ‘말아먹는 세대’로 도식화해서 볼 것이 아니라 이들의 역사를 개별화해서 보고, 이 안에 진실이 있다고 파고들 필요가 있다. 여러 결이 보일 것 같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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