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잘 다니지?’ 명절을 맞아 집을 찾은 어르신의 한마디에 온 식구들이 입을 다물어 집에 몇 초간 정적이 흐르는 경험을 했어요.”
지난해 많은 이들이 ‘평생직장’이라고 여기던 회사를 떠났다. 오래된 경기불황은 지속적인 구조조정과 많은 희망퇴직자를 낳았다. 회사를 떠난 이들에게 이번 설 연휴는 유난히 길고 추웠을 것이다.
2016년이 열리자마자 정부는 인사규칙과 취업규칙 지침을 새로 내놨다. 노동계는 저성과자 해고를 가능하게 한 인사규칙과 노동조합 동의 없이 쉽게 바꿀 수 있게 만든 취업규칙 지침이 기업에 ‘해고 허가’를 내준 셈이라고 주장한다. 법적으로 일반 해고가 쉬워지면서 기업을 떠나야 하는 희망퇴직에 동의하는 노동자가 많아지는 것은 이미 관찰되고 있다.
쉽게 퇴사당하는 시대의 개막. 퇴사한 이들의 삶을 통해 이들이 어떤 변화를 겪는지 추적해보기로 했다. 모두 8명의 30~40대 퇴직자를 만나거나 전화·전자우편으로 인터뷰했고, 부족한 것은 남녀 직장인 172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해 살폈다. 이들의 ‘시그널’(신호)은 미래로 이어질 것이다.
취재 이완·신소윤·황예랑 기자, 편집 정은주 기자, 디자인 장광석
회사를 나온 첫날 밤, 문성우(47·가명)씨는 잠에 들지 못했다. ‘왜’ ‘어째서’ ‘내가’. 눈을 감았는데 ‘째깍째깍’ 시계 소리만 가까워졌다. 다음날 입안도 휑했다. 수저를 들지 못했다. 자지 못했고, 먹지 못했다. 문씨는 48시간 동안 그렇게 지냈다. 직장을 잃은 충격보다 가족이 함께 사지로 몰렸다는 충격이 더 컸다.
이웃들이 알아볼까봐 두문불출사흘째 되는 날 문씨는 병원을 찾았다. “이러다가 내가 죽을 수 있겠구나 싶어 신경정신과에 갔다.” 의사는 약을 처방해줬다. 약을 먹고 밥을 먹고 잠을 잤다. 나흘째 되는 날부터는 밥을 먹고 약을 먹고 잠을 잤다. 일주일 내내 그는 집에 틀어박혀 있었다. 경기도의 한 도시에 정착한 그는 오랫동안 이 아파트에서 살았다. 이웃들은 알아볼 것이다. ‘출근해야 할 사람이 왜 여기 있을까’ 쳐다볼까봐 그는 낮엔 집을 나서지 않았다.
퇴사자 김성율(44·가명)씨는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첫날에도 집을 나섰다. 경기도의 한 위성도시에 사는 그는 평소와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 짙은 양복을 입고 서울행 광역버스를 탔다. 10여 년째 계속된 출근길이었다. 회사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신 뒤 김씨는 ‘처음으로’ 자신이 갈 곳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카페에서 시간을 죽이다가 옛 회사 동료들과 점심을 먹었다. 오래전에 잡은 약속이었다.
점심을 먹은 뒤 김씨는 홀로 영화를 봤다. 이었다. 권력을 쥔 이들에게 권력 없는 이들이 대항하는 영화였다. 그 영화를 보기 전, 마지막으로 영화를 언제 보았던 것인지 기억 나지 않았다.
저녁때는 서울 마포구 홍익대 주변 골목을 찾았다. “스스로 갈 곳이 없다는 것을 느끼고 싶어서 일부러 혼자 돌아다녔다.” 취직하고 서울로 처음 올라와 살던 원룸이 있던 동네였다. 그가 살던 집은 그대로인데, 그는 회사에 들어갔고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고 퇴직을 했다. “20년 가까이 다닌 직장을 안 가게 되니까 감정이 과잉상태가 되더라. 예전 살던 골목을 본다는 게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힘들었다. 그런데 무거운 마음을 피하고 싶지 않았다.” 김씨는 자신이 실업자가 된 사실과 바로 마주하는 것을 택했다. 이날 밤 그는 친구들과 술을 마셨다. 술값은 승진한 친구가 냈다.
30대에 회사를 나온 황명호(32·가명)씨는 회사를 가지 않은 첫날, 잠을 잤다. 주말에도 습관적으로 일찍 일어나는 편이라 이날은 기억에 남을 정도로 오래 잔 날이었다. 그러나 문씨처럼 밥을 못 먹지 않았고, 김씨처럼 직장을 떠나는 아픔과 마주하지도 않았다. “이렇게 시간을 보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해외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예약했다.”
지난해, 그들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오래 일했던 직장을 떠나 ’퇴사 이후’의 첫날을 경험했다. 2015년은 그나마 안정된 일자리를 공급하던 한국의 주력 산업들이 힘을 잃은 기록적인 해였다.
한때 수출 1위 산업이었던 조선업계의 맏형 현대중공업이 연초부터 과장급 이상 직원 1300여 명을 희망퇴직으로 내보낸 데 이어, 금융업계에서는 1년 내내 구조조정 바람이 몰아쳤다. 국내 1위 재벌인 삼성에서도 사업 재배치 등을 이유로 회사 밖으로 나온 직원들이 상당했다. 중장비와 공작기계 등을 만드는 회사인 두산인프라코어에서 연말에 20대 직원에게 희망퇴직 신청을 받은 것은 2015년 구조조정에 정점을 찍은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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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선 훨씬 더 많은 이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의 의뢰를 받아 직장인 1720명을 대상으로 2월1일부터 4일까지 실시한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해 자신의 회사가 희망퇴직이나 권고사직 등 인적 구조조정을 했나’를 묻는 질문에 30.2%(519명)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그렇지 않다’는 57.3%(985명)였고, ‘모르겠다’고 답한 이는 12.6%(216명)였다. 회사에서 인적 구조조정을 했다는 519명 가운데 중소기업에 다닌다는 이가 392명으로 75.5%를 차지했다.
퇴사자들은 어떻게 회사를 떠나게 됐을까. 자신의 삶을 구성했던 일부를 허물어낸 이들의 삶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만나봤다. 회사 밖으로 나가면 ‘지옥’이라고 생각한 이도 있었고, 회사 안이 ‘지옥’이었다는 이도 있었다.
“앞으로 남은 건 부하들한테 야단치는 삶”김성율(가명·44)씨는 스스로 희망퇴직을 선택한 경우다. 그는 금융회사에 입사해 10여 년을 일했다. 자정이 되어서야 집에 들어가기 일쑤였고, 주말도 반납한 적이 많았다. “일을 못하겠다기보다 명대로 못 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은 한 번인데 이러다 정말 회사가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가 오면 내가 너무 무기력해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저런 사람이 되어야지 생각하던 선배도 사라졌다. 앞으로 남은 건 후배들한테 야단만 치는 삶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김씨는 회사가 희망퇴직을 공고하자 신청 마지막 날에 퇴직원을 썼다. “노조에서 희망퇴직에 대해 설문조사를 했는데 우리 부서원들은 모두 희망퇴직에 찬성했다. 희망퇴직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수는 있지만 회사 안에서는 (목돈을 쥐고 나가는) 기회라고 보는 이도 있다.” 희망퇴직의 의미는 직장마다 개인마다 다르게 다가온다.
대형 출판사에 다니던 정미선(36·가명)씨는 퇴직 지원금은 구경도 못해보고 지난해 회사를 나왔다. 한창 더위가 깊어지던 6월 말, 사장은 전체 긴급 경영회의를 한다며 직원들에게 갑자기 모이라고 했다. 매출이 좋지 않으니 조직을 개편하겠다는 서늘한 말을 내뱉었다. 그중에서 정씨가 속한 본부를 콕 찍어 해체하겠다고 했다. 모두들 어안이 벙벙했다. 정씨는 “모멸감을 느꼈다”고 했다.
직원 4명이 바로 퇴사하겠다고 했다. 모멸감은 이미 쌓여 있었다. 회사는 사무실에 폐회로텔레비전(CCTV)을 설치했다. 보안용이라고는 했지만 카메라는 직원들이 일하는 장소를 향했다. 4명 외에 정씨 등 다른 직원들도 며칠 간격으로 사표를 썼다. 회사의 조처 때문에 사실상 두 손 들고 나가는 것인데, 회사는 권고사직 처리를 해주네 마네 말이 많았다. 권고사직 처리를 해주지 않으면 회사를 나간 뒤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다. 정씨는 간신히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었다.
작은 회사에서 희망퇴직 지원금은 언감생심이다. 지난해 말 회사로부터 해고된 유소라(35)씨는 퇴직금을 받는 것조차 힘들었다. 유씨가 다니던 회사는 공공 프로젝트가 중단됐다며 느닷없이 유씨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공공 프로젝트라 3년은 일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게 착각이었다. 회사는 퇴직금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았다. 유씨가 고용노동부에 진정한다는 이야기를 꺼낸 뒤에야 회사는 퇴직금을 내밀었다.
“처음에는 퇴직금 달라는 말도 못했다. 법의 울타리가 중요하다. 이거라도 있어야 고용주한테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양심이나 도리를 따져서는 되지 않는 일이었다.” 벌써 다섯 번째 회사였다. 고용이 보장된 정규직은 없었다. 가장 오래 다닌 직장이 2년이었다. 유씨는 퇴사를 반복한다고 해서 자신이 받는 충격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다섯 번째 퇴사 … “벌써 삶이 지겹다”잡코리아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자신이 회사에서 계속 일하고 싶다는 의지와 상관없이 퇴사할 수 있다’고 한 이는 전체 응답자 1720명 가운데 59.4%(1022명)에 이르렀다. 정씨는 사표를 썼지만, 사표는 그가 쓴 게 아니었다. 그는 “퇴사를 강요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면 내 선택(사표)은 달랐을지 모른다”고 했다.
‘그렇다’고 응답한 1022명에게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물었더니 제일 많이 나온 답변이 ‘회사 경영 여건이 좋지 않아서’(44.2%)였다. 다음은 ‘내가 아니어도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일이어서’(35.4%)였다. 자신의 책임인 ‘업무 고과가 좋지 않아서’는 9%에 불과했다.
연령대별로 차이도 있었다. ‘회사 경영 여건이 좋지 않아서’를 더 많이 꼽은 건 30~40대였지만, 20대는 ‘내가 아니어도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일이어서’(131명)를 ‘회사 경영 여건이 좋지 않아서’(123명)보다 더 많이 꼽았다. 젊은이들에게 퇴사는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일이 돼가고 있다.
문화기획을 하는 젊은 창작자인 유씨는 다섯 번째 회사에서 퇴사를 한 뒤 “벌써 삶이 지겹다”고 했다. 더 좋은 조건을 찾아 이직하는 것이 아니라, 퇴사를 당한 뒤 직장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재취업을 하더라도 이전 직장의 경력은 사라진 채 급여가 다시 밑으로 내려갔다. 월급여는 항상 200만원 언저리를 맴돌았다. 받은 월급은 재취업하기 전까지 쓴 생활비 빚을 갚는데 들어가 모이지 않았다. 20대에 돈을 모을 수 없으니 취업 상태에 따라 빚만 늘었다 줄었다를 반복했다.
“그동안 아주 열심히 살았는데 안정돼가는 게 없다. 경력도 쌓고 일도 했는데 나는 왜 그대로일까. 급여가 올라가지 않으니 직장을 찾을 때마다 서러웠다.”
올 3월 그는 ‘퇴사파티’를 준비하고 있다. 술 마시고 노는 파티가 아니라 전시회를 기획 중이다. 서울 성북동의 한 갤러리를 빌려 그동안 만났던 직장인들의 인터뷰 동영상을 상영할 계획이다. 퇴사를 하거나 퇴사를 고민한 직장인 5명을 찾아 인터뷰했다. 주제는 아이러니하게도 직장생활의 의미다.
“퇴사파티 기획을 시작한 것은, 한 친구의 페이스북을 보고 나서다. 그 친구는 화가 나 있었다. 젊은 아이돌 배우가 샐러리맨을 연기하면서 ‘직장생활의 무료함과 오늘과 내일이 다르지 않는 것은 연기하려 했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내 자신의 삶이 그렇게 보이는 것에 대해 화가 났다고 썼다. 그게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다섯 번 밀려났어도 유씨가 주목한 것은 직장의 의미였다. 단순히 무료한 삶이 아니고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지, 회사를 나간다는 것에 대한 고민이 얼마나 치열한지 보여주려 했다. 어쩌면 퇴사파티는 유씨가 회사를 나가면서도 자신이 의미 있는 일을 했음을 증명하려는 노력인지도 모른다.
파티 대신 책을 낸 이도 있다. 지난해 4월 삼성전자에서 사표를 쓴 장아무개(32)씨는 책으로 자신을 증명했다. 장씨는 자신의 블로그에 ‘퇴사의 추억’이라는 연재글을 썼고 수많은 누리꾼들의 호응을 얻었다. 장씨는 이를 묶어 최근 라는 책을 냈다.
“한국 기업의 조직문화에 대해 공론화를 해보고 싶었다. 조직문화에 허덕이는 이들도 있고 문제의식을 가진 이들도 있는데, 공감이 되는 글을 통해 위로가 되면 좋지 않을까 했다.”
“일을 배워서 나가자고 마음 먹어”장씨는 2011년 입사해 4년 넘게 일한 뒤 사표를 썼다. 그는 삼성에 입사했을 때부터 평생 다닐 생각 대신 일을 배워서 나가자고 마음을 먹었다. 보고서 줄 간격을 맞추는 것부터 회의실을 잡는 것까지 한국 기업에서 막내 사원이 하는 일을 배웠고, 무의미한 야근도 하면서 거대한 조직이 어떻게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지 눈으로 확인했다. 그리고 “퇴직 뒤의 삶을 100% 계획한 것은 아니지만 글을 제일 쓰고 싶었다”는 장씨는 대기업에서 겪은 일을 써내려가면서 자신의 퇴사를 정리하는 기록를 완성했다.
물론 퇴사파티가 발랄할 수만은 없고, 퇴사기록이 미래를 향한 정리일 수만 없다. 젊은이와 40~50대의 퇴사는 또 다르다.
퇴사 첫날 잠을 이루지 못했던 문성우(47·가명)씨는 1년이 넘도록 재취업을 하지 못했다. 경기불황으로 금융권에서도 구조조정이 있었고 채용시장은 얼어붙었다. 좁아진 자리에는 뒷배경으로 밀고 들어오는 이들이 차고 넘쳤다. 동년배보다 승진이 빨랐던 문씨가 나이에 맞춰 다른 회사에 들어가기에도 애매했다.
재취업에 실패한 어느 날, 문씨는 경기도 의왕에 있는 물류기지를 찾아갔다. 금융업계로 돌아가지 않으면 무엇을 할까 고민하며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화물트럭 기사가 해볼 만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한 업체의 소개로 문씨는 그날 바로 화물차에 올랐다. 그 화물차의 운송 코스를 함께 다녔다.
마침 그 화물차의 운전기사는 은행에서 조기퇴직을 한 남자였다. 운전기사는 문씨에게 “당신 마음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운전기사는 좋은 대학을 나와 은행에 입사해 승진이 빨랐던 이였다. 그는 계속 승승장구할 수 있는 위치까지 갔지만 은행에서 명예퇴직을 당했다. 퇴직 뒤 부동산 중개업소를 하다가 망하기도 했다. 퇴직금으로 화물트럭을 사야 기사로 일할 수 있는 조건이었지만 아이들 학자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근데 의왕까지 갔다온 걸 아내가 알았다. 아내가 화를 냈다. 나는 조건을 달았다. 연말까지 일자리를 못 찾으면 이제는 여의도에서 직장을 못 찾는 게 고착화되는 거다. 오래 쉰 사람을 누가 써주겠는가. 그때까지 버텨보고 안 되면 화물 운전기사를 하겠다고 했다.”
“부속품이 아니라 사람으로 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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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이란 뭘까. 나와야 할까 남아야 할까. 잡코리아의 설문조사 결과 50대 이상 직장인(27명)은 퇴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 이유에 대해, ‘나이나 직급으로 볼 때 내 순서인 것 같아서’(12명·44.4%)를 가장 많이 꼽았다. 많은 직장인들이 꼽은 ‘회사 경영 여건이 좋지 않아서’에 동의한 50대는 8명(29.6%)에 불과했다. ‘내가 아니어도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일’은 6명, 기타가 1명이었다. ‘업무 고과가 좋지 않아서’를 꼽은 이는 없었다. 경륜이 쌓이면 업무 고과는 걱정하지 않게 되지만, 나이나 직급을 따지다보면 나가야 하는 게 직장이다.
화물차 기사까지 고려했던 문성우씨는 우여곡절 끝에 어느 작은 투자회사에 재취업했지만, 다시 회사를 떠나게 되면 회사를 돌아보지 않겠다고 했다. “퇴사를 하게 된다면 자신의 감정에 충실했으면 좋겠다. 숨기지 말고, 숨기지 말고…. 회사를 떠난 사실을 숨기게 되면 엄청난 스트레스가 된다. 내가 그만둔 것을 다른 이에게 알려줘야 다른 사람이 적당한 일자리를 찾아준다.”
문씨가 후회하는 것은 더 있다. “(원래 일하던 직종에) 재취업하기 힘들다고 판단이 되면 빨리 다른 직업으로 눈을 돌렸어야 했다. 다시 금융 쪽에 일자리를 얻기는 했지만, 그동안 재취업이라는 희망이 고문이 되어 나를 괴롭혔다. 갑자기 이 일도 그만두게 되면 이제는 이쪽을 쳐다도 보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찾겠다.” 그런 일이 생기면 ‘직장’이 아니라 ‘직업’을 찾겠다고 문씨는 말했다.
대형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했던 정미선씨는 퇴사 이후 작은 출판사로 옮겼다. 정씨는 자신이 대형 출판사라는 직장의 부속품이었다고 했다. 책이 물건처럼 다뤄지고 편집자가 책 만드는 기계로 여겨지는 곳이었다.
퇴직 뒤 가족들이 걱정했지만, 정씨의 마음은 한결 편해졌다. 지금 다니는 회사는 이전보다 훨씬 작지만, 자신이 만들고 싶은 책을 만들 수 있다는 기대를 품고 있다. “회사 인원이 몇 명 되지 않아 노조가 큰 의미는 없지만, 노조도 있고 회사가 노동자를 사람으로 대해주는 것 같아 마음이 한결 편하다.”
조직 및 리더십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는 오래전부터 ‘직장 대신 직업을 가져라’고 주장했다. “2016년은 전환기다. 밀려나지 않고 직장에 있는 사람도 안으로는 떨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제대로 하지 못할 테고, 밀려난 사람은 결국 ‘직장이 가족이 아니구나, 내 직업을 만드는 게 낫겠구나’ 생각할 것이다. 언젠가는 조직과 대등한 관계를 만들고 내 직업을 만드는 게 훨씬 더 이득이라는 생각을 하겠지만, 지금은 초기 단계다.”
“회사를 떠난 사실을 숨기지 말고”
물론 김호 대표가 제안한 직업이 퇴사해서 창업을 하거나 프랜차이즈 체인점을 하라는 것은 아니다. “일본과 중국의 문화를 보면 한국의 기업문화보다 수평적인 게 있다. 수평적이어야 자신의 전문성을 개발할 수 있다. 기업문화도 바뀌어야 하지만, 개인적으로도 아직 조직에 있다면 자신이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어떤 기술을 가져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퇴사가 인생의 일반적 경로가 된 시대, 퇴사 이후의 삶은 아직 각자에게 맡겨져 있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신소윤 기자 yoon@hani.co.kr※카카오톡에서 을 선물하세요 :) ▶ 바로가기 (모바일에서만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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