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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MBC·EBS 이사진 “나도 고영주”

‘극우’ 논란 공영방송 이사진들이 뽑은 KBS·MBC 사장이 오는 총선·대선 방송도 책임
등록 2015-10-12 17:15 수정 2020-05-02 04:28

퀴즈 하나. 다음 보기에 등장하는 A, B, C씨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① 최근 한 달 동안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 140여 개 중 130개 이상이 박원순 서울시장 아들의 병역 비리 의혹 제기 내용인 A씨(힌트: 극우 성향 논란이 있는 ‘일간베스트저장소’ 게시글을 자신의 트위터에 퍼나르기도 했음)
② 2013년 EBS 생방송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해 배재정 당시 민주당 대변인을 “미친 여성”이라고 표현한 B씨(힌트: 2010년 무상급식이 주제인 MBC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해 “대한민국에 굶는 아동이 어디 있느냐”고 발언한 사람과 같음)
③ 2013년 서울 광진구 어린이회관에서 열린 ‘박정희 대통령 탄신 96주년 기념 강연회’에 참석해 “박정희·이승만 대통령을 포함해 지도자들을 나쁘게 평가하는 것을 주도하는 세력은 ‘좌파’다. 좌파와의 싸움에서 패배하지 않고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좋은 평가를 우리 사회에 늘리는 게 앞으로의 과제”라고 말한 C씨
정답. 이들 모두 2015년 현재 대한민국의 공영방송 이사진이다. A와 C는 KBS이사회의 차기환·조우석 이사, B는 EBS이사회의 조형곤 이사다. 공영방송 이사진에는 이미 ‘고영주들’이 차고 넘친다. ‘고영주들’이 지닌 사상과 그 표현 방식은, 이들이 맡고 있는 ‘공영방송 이사’라는 직책 때문에 더욱 중요한 사회적 논의 대상이다.
판사 출신인 차기환 KBS 이사는 2009년부터 올해 8월까지 6년 동안 MBC의 최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도 지냈다. 기자 출신인 조우석 이사, 21C미래교육연합 공동대표이자 논설위원인 조형곤 이사는 올해 8~9월부터 이사로 일하고 있다.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도 2012년 방문진에 감사로 먼저 합류했다.

2009년 8월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임명식에서 최시중 당시 방송통신위원장(왼쪽 6번째)이 이사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당시 정부·여당 추천 몫으로 선임된 차기환 이사(왼쪽 3번째)는 1회 연임해 6년 동안 방문진 이사를 역임하고 올해 8월에는 정부·여당 추천 몫의 KBS 이사로 선임됐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2009년 8월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임명식에서 최시중 당시 방송통신위원장(왼쪽 6번째)이 이사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당시 정부·여당 추천 몫으로 선임된 차기환 이사(왼쪽 3번째)는 1회 연임해 6년 동안 방문진 이사를 역임하고 올해 8월에는 정부·여당 추천 몫의 KBS 이사로 선임됐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어떻게 이사까지? ‘공영방송 지배구조’의 문제

이들은 어떻게 공영방송 이사가 되었나. 제도적으로는 ‘공영방송 지배구조’의 문제다. KBS이사회는 총 11명의 이사 중 정부·여당 추천 몫이 7명, 야당 추천 몫이 4명이다. MBC를 관리·감독하는 방문진 이사는 총 9명 중 정부·여당 추천 몫이 6명, 야당 추천 몫이 3명이고, EBS이사회는 방문진처럼 이사가 총 9명이지만 정부·여당 추천 몫은 7명, 야당 추천 몫은 2명이다.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는 이들 이사의 선임 과정을 총괄하고, 대통령이 최종 임명한다. 앞서 언급한 이사진은 모두 정부·여당 추천자다.


‘고영주들’이 공영방송 이사진에 진출한 MB 정부 때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정부·여당에 대한 ‘충성심’은 더 중요한 자격 요건이 됐다. 최근 중요한 국면에서 정부·여당 추천 이사들의 ‘분열’이 문제시됐기 때문이다.

공영방송사에 이사회가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방송을 정부·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시키기 위함에 있다. 독자적인 관리·감독 기구를 갖춘다는 것은 ‘국영’이 아닌 ‘공영’이라 불리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그러니 국민이 선출한 여야 국회의원들이 이사진을 추천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그런데 힘의 균형이 보장되지 않는다. 여야 추천 몫 이사들의 비율은 7 대 4, 6 대 3, 7 대 2인데, 과반 찬성이면 안건을 통과시킬 수 있다. 야권 추천 몫 이사들의 표결 불참, 회의 파행 같은 ‘잡음’이 다소 거슬리더라도, 정부·여당이 원하는 대로 방송사를 좌지우지하기에는 문제가 없는 것이다. 정부·여당에서 굳이 방송이나 토론과 합의 같은 민주주의에 능한 사람을 이사로 추천할 이유가 없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 공영방송 이사회는 최대 권한인 방송사 사장 선임·해임을 둘러싸고 양대 정당의 ‘방송 장악’ 욕망을 실현시키기 위한 정치적 싸움터가 되어왔다.

특히 ‘고영주들’이 공영방송 이사진에 진출한 MB 정부 때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정부·여당에 대한 ‘충성심’은 더 중요한 자격 요건이 됐다. 최근 중요한 국면에서 정부·여당 추천 이사들의 ‘분열’이 문제시됐기 때문이다.

“정부·여당 추천 이사들 표 단속 더 중요해져”

지난해 세월호 참사 직후 길환영 당시 KBS 사장이 해임되고, 보궐로 새 사장을 뽑을 때 KBS이사회 내 정부·여당 추천 이사 7명 중 2명이 야권 추천 이사들과 뜻을 함께해 표결에 참여했다. 최인식 한국시민단체협의회 집행위원장이 지난 7월 방통위에 제출한 고영주 이사 공모 추천서를 보면, 이같은 상황을 두고 “조대현 사장은 여권 이사 2명이 반란하여 야권에 붙음으로써 뜻밖에 선임된 경우”라고 표현한다. “6월에 KBS는 사장이 잠시 공석인 틈을 타서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청문회를 앞두고 문 후보자의 교회 강연을 들추어 국정을 뒤흔들었다.”(같은 추천서에서 발췌)

MBC의 사정을 잘 아는 한 방문진 관계자는 “지난 방문진의 몇몇 정부·여당 추천 이사 가운데는 이진숙 전 보도본부장을 MBC 사장으로 뽑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작년 사장 선임 투표에서 안광한 현 MBC 사장이 5표를 얻고 이 전 본부장은 0표가 나왔다. 2등을 한 후보는 야권 추천 이사 3명과 정부·여당 추천 이사 1명에게 4표를 받았으니, 정부·여당 추천 이사들이 더 분열이라도 하면 위험한 상황일 수 있었던 것”이라며 “(2013년) 김재철 전 MBC 사장 해임안을 통과시킬 때는 아예 찬성 5표로 절반을 넘기기도 해서 이사들 표 단속이 더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김 전 사장 해임안 통과 때 정부·여당 추천 몫 이사 6명 중에 MBC를 포함한 언론인 출신 2명이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맥락이라면 공안 검사 출신인 고영주 이사장 카드는 지난 8월 선임 당시에는 ‘안정적인’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고영주 이사장이 ‘전국구 국감 스타’로 떠오르면서, 방문진을 겨냥한 감시 범위가 확대됐다. 일명 ‘고영주법’까지 거론되며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문제까지 다시 입길에 오른다.

최근 KBS 새 사장 공모 시작

‘고영주들’이 공영방송 이사진이 될 수 있었던 건 한국 사회 정부·정치권의 공영방송에 대한 낮은 인식 수준은 물론 시민사회 감시 집단의 무기력함을 방증한다. 이제 고영주 이사장이 직을 유지하느냐 마느냐는 다시 정부·정치권의 공영방송관을 시험하는 리트머스지가 됐다. 최근 새 KBS 사장을 뽑는 공모 절차가 시작됐다. ‘고영주들’이 주도해서 뽑은 KBS·MBC 사장은 내년 총선과 2017년 대선 방송까지 책임지게 된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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