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비정규직 노동자의 대명사 ‘장그래’는 지금 진행되고 있는 노동시장 구조 개편을 어떻게 평가할까. 해고 요건 완화·비정규직 규제 완화 등 ‘노동시장 구조 개편’에 반대하는 ‘장그래살리기운동본부’의 말처럼 “내가 정규직 시켜달라고 했지 비정규직 연장해달라고 했냐고!”라며 화를 낼까? 아니면 고용노동부 광고에 나온 임시완(드라마 장그래 역)처럼 “노동시장을 개혁해야 청년 일자리가 해결됩니다”라며 웃을까?
지난 8월6일 박근혜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에서 ‘노동 개혁’을 강조하며 14번이나 ‘청년’을 언급했다. 청년을 내세운 ‘노동 개혁’의 핵심은 임금피크제다. 박근혜 대통령은 “내년부터 정년 연장이 시행되고, 향후 3~4년 동안 베이비부머 세대의 아들딸이 대거 대학을 졸업하게 되면 청년들의 고용절벽은 더욱 심각해질 것입니다. 정년 연장을 하되 임금은 조금씩 양보하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해서, 청년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정년이 연장되면 기업이 인건비 부담을 느껴 신규 채용을 꺼리기 때문에 임금피크제를 도입해 비용을 줄여주자는 것이다. 정부는 모든 공공기관에 먼저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고, 최근에는 도입 실적에 따라 임금 인상률을 차등화하겠다며 압박했다.
청년실업이 우리 사회의 중요한 문제라는 데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통계청이 지난 8월12일 발표한 ‘7월 고용동향’을 보면 공식 청년실업률은 9.4%로 청년실업자는 41만6천 명에 달한다. 박 대통령의 말처럼 “미래가 불안한 청년들이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기피하는 현상을 빗대서 소위 3포 세대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졌다”.
그러나 청년실업의 원인과 해결 방법에 대해 노·사·정의 입장은 엇갈린다. 정부는 기성세대, 특히 정규직 노동자가 ‘과보호’되고 있어 청년들이 질 좋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기 때문에 통상임금 기준·저성과자 해고 요건 명확화, 임금피크제 도입 등을 통해 기업 부담을 줄여주자고 말한다.
반면 노동계는 여력이 있는 공공부문과 대기업이 비정규직이 아닌 정규직 일자리를 늘리고, 노동시간을 주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여 일자리를 나누는 노동시간 피크제를 내세운다. 정준영 ‘청년유니온’ 정책국장은 “청년실업의 원인인 기업의 고용 책임이나 정부의 정책 실패부터 인정하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낸 뒤 노동계가 할 수 있는 걸 제안해야 하는데 순서가 바뀌었다. 정규직 노동조합을 공격하기 위한 무기로 청년들을 앞장세워 활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동계도 정부가 노동시장 구조 개편을 밀어붙이기 위해 ‘청년 일자리’를 명분으로 활용한다고 의심하고 있다. 지난해 12월23일 노사정위원회의 ‘노동시장 구조개선의 원칙과 방향’ 기본합의문에는 ‘청년’이란 단어는 없었다. “노·사·정은 동반자적 입장에서 장기적 관점과 노와 사, 현세대와 미래 세대를 아우르는 공동체적 시각을 가지고 노동시장 구조 개선을 추진한다”고 언급됐을 뿐이다.
실제 청년 고용을 내세워 노동시장 구조 개편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시작한 건, 노·사·정 논의가 교착상태에 빠졌던 지난 3월이다. 당시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과 김대환 노사정위원회 위원장은 기자회견, 강연 등에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청년한테 일자리 희망을 주려면 정년 연장, 임금체계 개편, 비정규직 문제 등은 기성세대가 꼭 해결해야 할 책무”라고 강조해왔다.
정부 입장만 담긴 ‘노동시장 구조 개편’이 청년의 희망이 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청년 일자리를 늘리는 노동 개혁”이라는 일회성 구호나 노·사·정 합의로 해결될 수 없다는 건 역사가 말해준다. 청년층 취업촉진 방안이 포함된 2009년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민정 합의’, 2013년 7월 ‘청년고용 증진을 위한 노사정 합의’가 있었지만 청년의 삶은 더 나아지지 않았다.
핵심 주장인 임금피크제와 청년 고용의 상관관계도 입증된 바 없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 6월 낸 ‘임금피크제의 쟁점과 입법·정책적 시사점’을 보면 “임금피크제가 고령자의 고용 안정이나 청년 고용 창출에 미치는 영향은 경영계의 예측이나 정부의 기대보다 훨씬 적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오히려 더 합리적”이라고 결론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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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노동자의 67.1%가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퇴직하며, 퇴직 평균연령은 53살이다. 임금피크제를 적용받기도 전에 일자리에서 밀려나는 사람이 많아 비용 절감 효과가 크지 않다. 고용노동부는 임금피크제를 적용받는 노동자에게 줄어든 임금의 일부(최대 5년간 연 840만원)를 지원하고 있는데, 지난해 예산 291억원 중 125억원만 쓰였다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그만큼 임금피크제 도입률이 낮거나 실제 적용받는 노동자가 많지 않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기업의 인건비 총액 자체는 임금피크제가 도입돼도 정년 연장 때문에 늘어난다. 나아가 민간기업에서 임금피크제로 설령 비용이 줄어들어도 고용으로 이어지리란 보장이 없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연구교수는 “정리해고, 희망·명예퇴직 등을 통해 기업은 인력을 꾸준히 감축했지만 그만큼 청년 신규 채용이 늘어나지는 않았다”고 지적했다. 종합하면 임금피크제가 ‘부모’의 임금을 깎는 건 확실하지만, ‘청년’ 채용으로 이어질지는 불확실한 셈이다.
청년 일자리 문제를 강조하는 정부가 그동안 내놓은 정책의 성적표는 어떨까. 감사원이 지난 3월 공개한 ‘재정지원 일자리사업 추진실태’를 보면 정부의 41개 청년 일자리 사업 참가자 57만593명 중 ‘취업애로 청년’은 2112명(0.37%)에 그쳤다. 41개 사업 중 청년이 아닌 고령자가 참여한 사업도 2012년 12개, 2013년 8개다. 청년 없는 청년 일자리인 셈이다.
국회예산정책처도 지난 6월 고용노동부의 2014년 결산을 분석하면서 1조2960억원의 청년 일자리 사업 예산 집행에 대해 “일부 사업의 성과 부진 등의 문제가 있다”고 평가했다. 예산의 31.7%를 차지하는 직접 일자리 지원 사업은 고용 창출과 유지 효과가 낮았다. 중소기업 청년인턴제, 청년취업아카데미 운영 지원, 해외취업 지원은 목표한 성과를 달성하지 못했다. 정책 실패를 여러 차례 지적받은 정부가 정책을 수정하는 대신 노동계에 양보하라고 윽박지르는 꼴이다.
실체 없는 세대 경쟁에 불붙이는 정부불과 2년 전인 2013년, 국회는 고령화와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로 노동력이 줄어들어 경제성장이 더뎌질 거라며 2016년부터 단계적으로 정년을 만 60살로 연장하는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2010년 당시 임태희 고용노동부 장관은 “정년 연장과 청년실업은 별개의 문제다. 정년 연장은 경제 파이를 키워 신규 채용을 늘린다”고 잘라 말했다.
방하남 전 고용노동부 장관이 참여한 한국노동연구원의 ‘기업의 정년실태와 퇴직관리에 대한 연구’(2012년), ‘세대 간 고용 대체 가능성 연구’(2011년) 등은 한결같이 “중·고령 노동자의 고용 안정과 정년 연장이 청년실업률을 완화했다는 증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2015년 정부는 ‘사형선고’를 받았던 세대 간 일자리 경쟁을 ‘노동 개혁’의 이름으로 다시 부활시켰다.
김민경 사회정책부 기자 salmat@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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