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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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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원 당일까지 메르스 환자인 줄 몰랐다”

이송 격리 하루 만에 1차 양성판정 받은 환자 딸의 ‘평택성모병원에서의 열흘’ 증언 “감염자 발생 뒤에도 이동과 접촉 무방비, 엄마는 지금 기계호흡 중”
등록 2015-06-09 15:51 수정 2020-05-03 04:28

의료기관과 보건 당국이 스스로 재앙을 키운 정황들이 드러나고 있다. 재앙이 재배된 밭은 평택성모병원이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확진 환자 41명(6월5일 현재) 중 30명이 평택성모병원에서 감염됐다. 한 병원에서 그토록 많은 감염자가 발생한 것에 대한 의문이 제기돼왔다. 은 이 병원에서 이송·격리되자마자 메르스 양성반응을 보이며 중태에 빠진 김정옥(가명)씨의 딸 박경란(가명)씨와 어렵게 인터뷰했다. 박씨는 현재 자가 격리 상태다.
취재 이문영ㆍ신윤동욱ㆍ송호진ㆍ정은주 기자, 사진 정용일 기자, 편집 이정연 기자, 디자인 장광석, 디지털 편집 김양균 객원기자

메르스 확진 환자가 거쳐간 평택굿모닝병원 제한구역에서 방역복을 입은 의료진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메르스 확진 환자가 거쳐간 평택굿모닝병원 제한구역에서 방역복을 입은 의료진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김정옥(가명)씨는 평택성모병원 환자였다. 대상포진으로 입원했다. 김씨는 경기도 평택에서 서울로 이송되기 직전까지 메르스 검진 대상자도 아니었다. 메르스 의심 환자로 분류된 사실도 몰랐다. 병원이 문을 닫기 전날(5월28일)까지 평택성모병원에서 메르스 감염자가 발생한 일도 알지 못했다. 그러다 서울로 이송된 지 하루 만에 메르스 양성반응을 보였다. 그는 현재 기계호흡에 의존하고 있다.

모녀가 겪은 ‘위험한 열흘’

박경란(가명)씨는 그의 딸이다. 평택성모병원과 집을 오가며 엄마를 보살폈다. 6월4일 박씨와 어렵게 연락이 닿았다. 그의 증언은 평택성모병원이 ‘메르스 감염의 숙주’가 된 이유를 설명해준다.

5월20일 이 병원에서 첫 환자가 발생한 뒤 휴원(5월29일)하기까지 두 사람이 겪은 일은 믿기지 않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보건 당국의 정보통제와 병원의 무책임한 감염 관리가 무형의 바이러스만큼 위험했다는 사실이 ‘모녀의 열흘’에서 드러난다.

① 감염자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다른 환자와 가족들에게 공지하지 않았다.

“엄마는 5월19일 대상포진으로 평택성모병원 8층에 입원했다. 5월20일 병원은 8층 환자들을 모두 7층으로 내려보냈다. 병실을 바꾸는 이유는 설명하지 않았다. 마스크를 쓴 간호사들에게 물어봤지만 ‘모르겠다’는 답을 들었다. 엄마도 나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5월20일은 8층 8104호에 입원 중인 환자가 첫 메르스 감염자로 확진받은 날이다. 평택성모병원은 메르스 감염자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다른 환자와 가족들에게 공지하지 않았다. 자신의 건강을 지켜줄 보루라고 믿었던 병원과 보건 당국으로부터 환자들은 스스로를 보호할 기회를 박탈당했다.

박경란씨의 증언은 이 병원에서 감염돼 경기도 화성시 동탄의 한 병원에서 숨진 첫 사망자(6월1일)의 아들이 페이스북(6월4일)에서 밝힌 내용(“어머니께서 성모병원에 계셨을 당시 병원 측에서는 메르스 감염자가 있다는 사실을 공고하지 않았고 같은 층에 있다는 사실도 말해주지 않았다”)과 일치한다. 이동과 접촉이 무방비로 방조됐다.

② 양성반응자 접촉 인물의 소재를 확인하라 일렀어도 당국은 연락하지 않았다.

“이송(5월29일) 당일까지 엄마는 자신이 메르스 의심 환자란 말을 듣지 못했다. 병원에 메르스 감염자가 있었다는 사실도 전날까지 몰랐다. 알았다면 면회 온 사람들을 함부로 방에 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환자들은 출입이나 이동, 면회에 아무런 통제를 받지 않았다. 누가 어디를 가든 누가 찾아오든 병원은 그냥 놔뒀다. 엄마가 서울로 이송되는 날까지 계속 그랬다. 이송 전날 엄마 지인의 면회도 제지받지 않고 이뤄졌다. 그분은 엄마의 메르스 양성반응 사실도 모른 채 며칠을 돌아다녔다. 질병관리본부는 그분이 엄마를 면회하고 갔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다. 내가 질병관리본부에 연락해서 그분의 소재를 확인하라고 일러줬다. 면회 3~4일 뒤 그분이 엄마 안부를 물으려 전화했을 때 질병관리본부로부터 연락받았는지 물었다. ‘메르스가 무슨 소리냐’며 펄쩍 뛰더라. 결국 놀란 그분이 스스로 질병관리본부에 전화했다.”

③ 감염자 발생 이후에도 마스크 착용 등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다.

이송 전날 모녀는 병원에서 나와 차를 몰고 10여 분 거리의 식당에 가서 밥을 먹었다. “엄마도 나도 메르스에 노출됐다는 사실을 몰랐다. 알았다면 절대 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감염 위험에 노출된 환자와 그 가족까지 정보에서 배제하는 질병관리본부의 비밀주의가 메르스 확산을 부추긴 셈이다.

“알았다면 절대 나가지 않았을 것”
확진 환자 41명(6월5일 기준) 중 30명이 감염된 평택성모병원(5월29일 휴원) 앞에 서 한 시민이 유리벽에 붙은 공지문을 읽고 있다.

확진 환자 41명(6월5일 기준) 중 30명이 감염된 평택성모병원(5월29일 휴원) 앞에 서 한 시민이 유리벽에 붙은 공지문을 읽고 있다.

“엄마는 전화 통화를 할 때도 숨을 잘 쉬지 못했다. 5월28일 면회 갔을 때 내가 간호사에게 ‘혹시 엄마 메르스 아니냐’고 물었다. 간호사는 ‘폐렴’이라고 다시 강조했다. 안심하고 집에 왔는데 저녁에 엄마가 전화해서 ‘병원에 메르스 감염자가 있었대’라고 말했다. 엄마도 다음날 이송된다고 했다.” (확진 환자의 가족 박경란(가명)씨)

감염자 발생 이후에도 병원은 환자와 가족들의 마스크 착용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다. “첫 환자가 발생한 5월20일 이후 엄마나 나나 마스크를 쓴 적이 없다. 엄마가 마스크를 쓴 모습은 이송되던 당일 처음 봤다.”

사태 초기 보건 당국은 격리 대상인 ‘밀접 접촉자’ 범위를 첫 감염자와 한 병실을 쓴 환자나 보호자로 국한했다. 5월28일 1호 환자와 병실이 다른 입원자가 확진 판정을 받은 뒤에야 질병관리본부는 검진 대상을 넓혔다. 김정옥씨는 입원 뒤 전에 없이 숨이 차고 호흡이 곤란해진 이유가 폐렴 때문이라고 알고 있었다.

“5월24일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열이 나고 기침이 난다고 했다. ‘폐렴에 걸렸다고 병원에서 이야기한다’며 이상해했다. 엄마는 ‘폐렴에 걸릴 이유가 없는데 병실이 더워 창문을 열어놓고 자서 그런가’ 했다. 그즈음 엄마는 전화 통화를 할 때도 숨을 잘 쉬지 못했다. 5월28일 면회 갔을 때 내가 간호사에게 ‘혹시 엄마 메르스 아니냐’고 물었다. 간호사는 ‘폐렴’이라고 다시 강조했다. 안심하고 집에 왔는데 저녁에 엄마가 전화해서 ‘병원에 메르스 감염자가 있었대’라고 말했다. 엄마도 다음날 이송된다고 했다.”

첫 발병자와 다른 병실을 쓴 환자도 감염됐다는 사실이 밝혀진 5월28일부터 평택성모병원은 국가지정 격리병원으로 환자들을 옮겼다. 이튿날인 29일부턴 휴원에 들어갔다. 병원은 정문 유리벽에 종이 한 장을 써붙였다. “당 병원은 전염병 확산 방지를 위해 잠정 휴원하였으니 많은 양해 바랍니다.” 휴원 직전까지도 모녀는 메르스와 자신들을 연결지어 생각하지 못했다.

“119에 전화해 스스로를 가뒀다”
평택보건소 주차장의 컨테이너에 설치된 메르스 검사소에서 방역복으로 몸을 감싼 의료진이 9살 쌍둥이 아들들을 데리고 온 한 시민과 이야기하고 있다. 이날 세 부자는 검사를 받지 못한 채 돌아갔다. 정용일 기자

평택보건소 주차장의 컨테이너에 설치된 메르스 검사소에서 방역복으로 몸을 감싼 의료진이 9살 쌍둥이 아들들을 데리고 온 한 시민과 이야기하고 있다. 이날 세 부자는 검사를 받지 못한 채 돌아갔다. 정용일 기자

“5월29일 이송 당일 엄마 속옷을 챙겨 병원으로 들어섰는데 로비에 질병관리본부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서 있었다. 병실 진입은 여전히 통제받지 않았다. 그때 머리에 메르스가 스쳤다. 병실로 올라가기가 겁이 났다. 나도 스스로 방어를 해야 했다. 엄마에게 전화해 로비로 불러내렸다. 엄마가 1층으로 내려오면서 숨을 헐떡였다. 엄마 곁으로 갈 수가 없었다. 눈물이 나고 화가 났다. 의자를 걷어차며 소리를 질렀다. 엄마한테 말했다. ‘나도 안 울 거니까 엄마도 울지 마.’ 그날에야 질병관리본부 사람으로부터 ‘병원에 메르스 환자가 있었고 메르스가 의심돼 엄마를 국가지정병원으로 옮겨 검사해야 한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④ 자가 격리 지침도 주지 않았다. 보건소는 연락을 받지 않았다.

이송 하루 만인 5월30일, 질병관리본부로부터 박경란씨에게 연락이 왔다. 엄마가 메르스 양성반응을 보였다고 했다.

“병원에선 가장 높은 단계의 약을 사용한다고 하더라. 산소마스크를 쓰다가 6월3일부터는 기계호흡기를 달고 숨을 쉰다고 했다. 하늘이 무너질 것 같아 펑펑 울었다. 양성반응 뒤 평택성모병원에 전화해 분노를 터뜨렸다. 병원은 끝까지 ‘7층엔 메르스 환자가 없었다’는 말뿐이었다. 두 번째 검사(메르스 검사는 두 차례 진행된다)가 안 끝났다며 질병관리본부는 확진 판정을 아직 내리지 않고 있다(6월5일 현재). 엄마가 그 상태인데 왜 확진을 안 해주는지 모르겠다.”

엄마의 양성반응 통보를 받았을 때 “나는 어떡하냐”며 딸은 질병관리본부 관계자에게 물었다.

“‘열 안 나면 괜찮다’며 자가 격리 지침도 주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다음날 너무 불안했다. 나 스스로 119에 전화해서 자가 격리됐다. 일요일이라 그랬는지 보건소에서 전화를 받지 않았다. 메르스 핫라인에 전화했더니 보건소에서 연락을 줄 거라고 했다. 연락이 안 와 핫라인에 전화하길 반복하다 보건소를 직접 찾아갔다. 문이 닫혀 있었다. 근처에 경찰이 있길래 어떡하면 되냐고 물었다. 119에 연락하라고 하더라. 119에 전화하니까 몇 분 안 돼 보건소에서 전화가 왔다. 8살짜리 아들과 4살 딸아이는 외할머니 댁으로 보냈다. 남편과 둘이서 방을 따로 쓰며 지낸다. 밥도 따로 먹고 말할 땐 마스크 쓰고 이야기한다. 5월31일부터 보건소에서 아침과 저녁 두 차례 전화해서 체온을 물어봤다. 6월3일부턴 전화도 안 온다. 보건소에선 질병관리본부로 이관했다는데 소식이 없다.”

누구를 위한 비밀이란 말인가!
손님 없이 운전기사만을 태운 버스가 평택 시내 도로를 달리고 있다. 지난 6월1일 사망한 6번째 감염자(남)가 이 회사의 간부다.

손님 없이 운전기사만을 태운 버스가 평택 시내 도로를 달리고 있다. 지난 6월1일 사망한 6번째 감염자(남)가 이 회사의 간부다.

보건복지부는 “평택성모병원 방문자로 신고할 경우 건강 상태 및 방문 이력을 확인하고 증상이 의심되면 임시 격리병원으로 이송한다”고 6월5일 밝혔다. 증상이 없을 땐 자가 격리 조처를 취하겠다며 “국민들의 적극적인 협력”을 요청했다. 한 병원에서 30명의 감염자가 발생할 동안 환자와 방문자의 동선을 사실상 방치해온 보건 당국이 ‘뒷북 신고’를 독려하는 상황이다.

박경란씨는 “엄마가 걱정돼 미칠 것 같고 나도 불안해 죽을 것 같다”고 했다. “검사받고 걱정을 떨쳐버리고 싶은데 검사도 안 해준다”며 답답해했다. 그는 인터뷰에 응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질병관리본부가 솔직하게 정보를 공개하고 알려줬다면 우리 가족이 이렇게 되진 않았을 것이다. 누구를 위한 비밀인가. 우리 목숨과 직결된 일이다. 너무 억울하고 마음이 멍들어서 돌아버릴 지경이다.”

6월5일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첫 감염 환자가 입원한 5월15일부터 병원이 휴업한 29일까지 평택성모병원에 있었거나 방문한 사람들을 전수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적극적인 추적조사”이자 “모든 접촉자를 능동적으로 발굴”하는 “강화된 대책”이란 수사가 동원됐다. 이미 늦었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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