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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때 입 다물라는 건가”

곽노현 전 서울시 교육감 인터뷰… 조희연 현 교육감의 기자회견‘충분히 할 만했고 가장 점잖았다’, 교육감 직선제는 최선의 발전 방향
등록 2015-05-27 12:32 수정 2020-05-03 04:28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에 대한 1심 판결을 두고, 다른 색깔의 목소리가 뒤섞여 나온다. 진보 교육감에 대한 정권의 탄압과 표적수사를 강조하는 시각이 그중 하나다. 진보 교육감의 부상이 달갑지 않은 정권이 곽노현 전 교육감에 이어 조희연 현 교육감까지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직을 날리려는 시도에 나섰다는 것이다. 하지만 진보 교육감들이 검찰 수사의 빌미를 주지 않도록 꼼꼼하게 선거를 치러야 했다는 지적도 함께 제기된다. 곽노현 전 교육감과의 인터뷰는 이런 두 시각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듣기 위함이었다.

이미 제기된 의혹 해명 요구했을 뿐인데
곽노현 전 서울시 교육감. 김진수 기자

곽노현 전 서울시 교육감. 김진수 기자

그는 2010년 교육감 선거 당시 중도 사퇴한 후보에게 선거 뒤 돈을 건넨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로 구속되면서 취임 2년3개월 만에 직을 잃었다. 그는 사퇴 후보가 선거비용 때문에 경제적 어려움을 겪자 이를 도와준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사퇴 후보 사후 매수’란 낯선 죄목을 들이대며 선거 이후에 돈을 줬어도 후보 사퇴에 대한 대가성을 띤다고 판단했다. 2013년 3월 감옥에서 나온 그는 교육혁신과 교육자치에 관한 강연과 인터넷 방송 활동을 해오고 있다. 5월20일 서울 삼청동 개인 사무소에서 만난 그는 최근 조 교육감의 상황을 심각하게 바라보았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조 교육감에 대한 1심 재판에서 당선무효형이 나왔다.

의외였다. 조희연 교육감은 2014년 선거에서 ‘인터넷상에 (고승덕 후보가 미국 영주권자라는) 의혹이 있고, 이게 사실이라면 교육감 자격이 없다면서 고 후보에게 (의혹을) 해명해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관련 의혹을) 단정적으로 표현한 것과 가정적으로 얘기한 것, 본인이 의혹을 만들어 제기한 것과 제3자가 제기한 의혹을 받아서 해명을 요구한 것이 다르다. 1심 재판부는 이런 미세한 구별을 거의 하지 않고 어설픈 법리 이해에 근거해 판결했다. 재판관의 그런 법리 이해가 시민배심원들에게도 어쩔 수 없이 공유돼 이런 결론(배심원 만장일치 당선무효)에 이른 게 아닌가 생각한다.

그간의 판례를 보면, 사실관계 확인을 얼마나 했는지가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죄 성립에 중요한 영향을 미쳐왔다. 조 교육감 쪽에서 기자회견 직전에야 의혹을 최초로 제기한 기자와 통화하는 등 사실 확인 노력이 미흡했다는 지적이 있다.

검찰 쪽 증인으로 나온 미국 이민·영주권 전문 변호사조차 ‘고승덕 후보의 자녀들이 미국 영주권을 보유하고 있고 고 후보가 미국 대형 로펌에서 일을 했으면 고 후보도 영주권을 보유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의혹을 갖는 것은 합리적’이란 식으로 답변했다. (이 의혹을 트위터에 처음 제기한) 최경영 기자가 탐사 전문이니까 (조 교육감 쪽에선) 근거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또 영주권 보유 여부는 본인과 미국 정부밖에 확인해줄 수 없기 때문에 본인에게 공개 해명을 요구한 것이다. 만약 당시 나한테 기자회견 여부를 물어봤다면 나 역시 ‘(고 후보가 영주권을 가졌다는) 개연성이 있어 보이고, 후보 검증 차원에서 해명을 요구하는 것이 왜 안 되겠느냐’고 말해줬을 것 같다.

선관위, 왜 ‘경고’만 했는지 밝혀야
“이 정도의 의혹 제기와 해명 요구 발언을 허위사실 공표로 처벌하면 위로는 대통령부터 웬만한 시·도지사, 국회의원, 시·군구의원까지 거의 다 당선무효가 될 것이다.”
1심 결과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겠지만, 그래도 당시 기자회견이 성급했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조 교육감이 해명을 요구한 당시의 기자회견은 역대 선거에서 이뤄진 후보 검증을 위한 의혹 제기 가운데 가장 점잖은 거였다. 이 정도의 의혹 제기와 해명 요구 발언을 허위사실 공표로 처벌하면 위로는 대통령부터 웬만한 시·도지사, 국회의원, 시·군구의원까지 거의 다 당선무효가 될 것이다. 선거 과정에서 의혹을 제기하지 말고 입을 다물라는 얘기밖에 안 된다. 더구나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가 당시 (조 교육감 쪽의 의혹 제기에 대해) 경고 조처로 끝낸 사안이다. 그런데 검찰이 콕 집어 기소한 거다. 표적기소 의혹까지 광범위하게 나오는 상황에서 선관위가 증인을 서서 싸워줘야 한다. 당시 경고로 판단한 근거가 무엇이었는지, 이를 처벌하면 대통령 등 많은 선출직이 당선무효가 될 수 있다고 선관위가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명해야 한다.

조 교육감에 대한 기소에 (정권의)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보나.

조 교육감 기소건은 그렇게 보인다. 대법원은 허위사실 공표와 관련해 ‘현실적 악의’를 중시한다. 본인이 의혹을 만들어내고 아무 근거가 없어도 음모론적으로 의혹을 제기하면서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것이 현실적 악의의 증거일 텐데, 조 교육감은 그런 게 아니었다. (조 교육감이 해명을 요구하고, 고 후보가 해명하면서 당시 논란이) 3일 만에 종결됐다.

오히려 현실적 악의가 대표적으로 드러난 게 2012년 대선 유세에서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의 ‘NLL(북방한계선) 발언’(‘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했다’며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과 유사한 내용을 읽어내려간 사건. ‘NLL 포기’ 부분은 허위로 밝혀짐) 같은 것이다. 이거야말로 대선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다. 그런데 찌라시(사설 정보지)에서 본 내용이라는 김 의원의 주장을 받아들여 무혐의 처분하지 않았나.

진보·개혁 진영에선 진보 교육감이 정치적으로 부당하게 수사를 받아 직을 잃거나(곽노현), 직을 잃을 위기(조희연)에 있다고 우려하면서도, 두 교육감 선거 캠프의 선거 관리가 미숙해 이런 사태를 초래한 측면이 있다는 의견도 있다.

동의할 수 없다. 우리를 돌아보자는 건 좋은 말씀이지만 나도 그렇고 조희연 교육감도 그렇고, 누구보다 불법과 편법에 기대지 않고 적법한 선거운동을 치렀다고 자부한다. 교육감 같은 큰 선거를 정당을 기반으로 치르지 않는 데서 오는 어려움은 있다. 그러나 극복하지 못할 정도가 아니다. 오히려 정당의 선거 전문가들이 중심이 돼 선거를 치르면 돈이 더 많이 들고 혼탁해질 개연성이 높아진다.

조 교육감에 대한 당선무효형 1심 선고를 계기로 새누리당과 보수 교육단체 등에서 교육감 직선제 폐지를 강하게 주장한다.

직선제는 폐지되면 안 된다. 시민들이 교육감을 선택하기 때문에 직선제는 가장 강력하게 교육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제도다. 해방 이후 지방행정자치에서 지방교육자치를 독립시켜 이원적으로 운영해온 것은 우리나라 지방자치의 바람직한 특징이다. 공교육의 중요성을 그만큼 높게 평가해왔기 때문이다. 교육감 독립 직선제는 그 발전 방향의 최정점이다. 이런 역사성에 비춰볼 때 교육감 독립 직선제의 장점을 훼손하는 어떤 절충안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직선제, 어떤 절충안도 안 된다
지난해 당선된 전체 교육감 17명 중 13명이 진보 성향의 교육감이다. 그중 조 교육감은 당선무효 위기에 있고, 진보 교육감의 교육 방향에 대한 중앙정부의 견제도 심하다.

우리처럼 중앙집권적 교육관료 체계에선 교육부 장관의 권한이 워낙 강해 교육감들이 중앙정부를 상대하기가 버겁다. 교육감들끼리 뭉치지 않으면 존재감이 없다. 시·도교육감들이 모이는 협의회를 법적 기구로 상설화해야 한다. 그래서 지속적이고 일치된 목소리를 강도 높게 내야 한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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