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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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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은 우리의 인권이에요

“어른들은 잔소리 중독 아닌가요?” 초등 4~6학년이 말하는 ‘우리는 중독될 권리가 있어요’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한국 정부에 ‘놀 권리 증진’ 권고, 좋아하는 것을 즐길 권리는 ‘인권’
등록 2015-05-06 17:11 수정 2020-05-03 04:28
놀이 중독은 안 되고 공부 중독은 괜찮나요?
초등학교 5학년 함소빈 어린이는 말했다. “공부 중독, 책 중독이 좋은 중독처럼 느껴지지만 밤에 잠도 안 자고 책 보고 공부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아요?” 초등학교 4학년 장효빈 어린이는 말했다.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을 모두 ‘중독’이라고 하는 게 이해가 안 가요.”
요즘 아이들은 자꾸만 하고 싶다. 스마트폰 게임, 카카오스토리에 셀카 올리기, 웹툰 보기…. 모두 내 무릎 위, 손안에서 볼 수 있는 ‘개인화된 기기’를 통해서 가능하다. 그것만 하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니다. 40년 전 아이들이 송창식의 을 따라 불렀던 것처럼, 20년 전 아이들이 김건모를 따라 불렀던 것처럼 요즘 아이들은 엑소를 따라 부른다. 20년 전 어른들이 배 깔고 만화책 보는 데 몰두했던 것처럼 요즘 아이들은 파란창(네이버) 웹툰을 일부러 아껴뒀다가 몰아서 정주행한다.
아이들의 취미는 모두 위험할까? 은 어린이 교양지 와 함께 ‘아이들의 중독될 권리’에 대해 이야기했다. 에서 ‘고래토론’에 참여했던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존중은 아이들의 말을 듣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문제의 해결은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는 데서 시작된다. “아이들의 게임 이용을 중독으로 규정하고 무조건 제한하자는 것은 불가능한 꿈을 꾸는 것입니다.”(이희진 대구 서도초 교사) 노는 것은 권리다. 어린이건 어른이건 모두 ‘호모사피엔스’(생각하는 인간)인 것처럼 어린이건 어른이건 모두 ‘호모루덴스’(노는 인간)다. 아이들에게 놀이 중독을 허하라. 아이들이 원하는 놀이를 허하라.
취재 박수진·김선식 기자, 사진 정용일·류우종 기자, 편집 구둘래 기자, 디자인 장광석




참여한 아이들


인천 햇살공부방 윤주원(4학년), 이진선(4학년), 임성민(4학년), 이예나(5학년), 정휘성(5학년), 권찬울(6학년), 이윤지(6학년), 정수빈(6학년)
서울 마포 토끼똥공부방 고경민(4학년), 장효빈(4학년), 채주영(5학년), 함소빈(5학년), 박주환(6학년), 황재현(6학년)
서울 양천 푸른나래지역아동센터 김민욱(4학년), 구본근(5학년), 김찬영(5학년), 이수민(5학년), 정예송(6학년)

일러스트레이션 정광석

일러스트레이션 정광석

“엑소(EXO)요.”(경민·소빈·주영·효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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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요. 매일매일 주말만 기다립니다.”(효빈)

“5월요. 제일 좋은 달.”(경민)

“방학. 노는 거.”(소빈)

“하교 시간. 금요일 끝나는 종소리만 기다립니다.”(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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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금요일 끝나는 종소리 들으면 저도 모르게 어깨춤이 덩실덩실.”(소빈)

4월27일 오후. “매일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생각이 있어요?” 서울 마포 토끼똥공부방에서 만난 6명의 4~6학년 아이들에게 물었다. 질문하자마자 “저요, 저요” 대답이 쏟아졌다. “점심 시간” “미술 시간” “여행 가는 소리” “금요일에 집 가는 소리”…. 채 받아적을 틈도 없이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 늘 기다리는 것에 대한 대답이 꼬리를 물고 속사포처럼 이어졌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건 대체로 노는 것과 관련돼 있다. 그중에 어른들이 특히 경계하는 대상이 있다. 게임·스마트폰·인터넷·아이돌. 이 단어들은 대개 ‘중독’ ‘사생’ 같은 부정적 단어와 이어진다. 게임하는 어린이, 스마트폰 하는 어린이, 인터넷 하는 어린이, 아이돌 좋아하는 어린이를 어떻게 봐야 할까.

우리는 아이들이 왜 게임을 좋아하는지, 왜 스마트폰을 좋아하는지 제대로 물어본 적이 없다. 어른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즐길 권리가 있듯, 아이들 역시 좋아하는 것을 즐길 권리가 있다. 1989년 유엔총회가 채택한 유엔아동권리협약은 아이들을 보호와 돌봄의 대상을 넘어 다양한 ‘권리’의 주체로 인정한 첫 국제협약이다. 한국은 1991년 협약을 비준했다. 협약은 아동의 결사의 자유, 평화적 집회의 자유, 사생활에 독단적·불법적 간섭을 받지 않을 자유, 표현의 자유 등을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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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소빈

함소빈

아이들을 독립적인 존재로 보지 않고 보호의 관점에서만 바라볼 때 규제와 금지가 늘어난다. 아이들에 대한 여러 가지 규제는 아이들에게 얼마나 합리적인 금지로 받아들여지고 있을까. 인천 부평구 햇살공부방, 서울 마포구 토끼똥공부방, 서울 양천구 푸른나래지역아동센터 4~6학년 아이들 19명과 4월26~28일 ‘중독과 금지’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좋아하는 것을 물었을 때 주로 여자아이들의 입에서 가장 먼저 튀어나온 단어는 ‘엑소’. SM엔터테인먼트 소속의 남자 아이돌이다.

효빈 엑소는 노래·외모·성격 하나도 빠짐이 없어요. 처음 노래를 듣는데 너무 좋았고, 얼굴을 봤더니 너무 잘생겼고, 예능 프로그램을 봤는데 성격도 좋았어요.

소빈 엑소를 좋아한 지 1년이 넘었고 엑소 팬클럽에 들어간 지는 200일이 넘었습니다. 엑소 찬열·백현의 카드를 갖고 있습니다.

효빈 원래 멤버가 12명이었는데 2명이 탈퇴했어요. 전 탈퇴한 멤버 크리스랑 타오까지 좋아해요.

소빈 주로 초록창(네이버), 파란창(다음), 빨간창(네이트)에서 검색해서 사진 보고 동영상 보고 뮤직비디오 보면서 생각해요.

경민 저는 블락비도 좋아해요.

수민 저는 B1A4를 좋아해요.

주영 저는 엑소 멤버별로 사진과 함께 생일·혈액형·별자리·키 등을 정리합니다.

효빈 주영이는 공부방에서 엑소 사진밖에 안 봐요.

남자아이들은 대체로 아이돌에는 시큰둥했다. 대신 게임이나 축구를 말할 때 목소리가 높아졌다.

재현 보통 여자아이들은 아이돌, 남자아이들은 게임으로, 좋아하는 게 갈리는 것 같아요.

주환 저는 을 좋아해요. 도 좋아해요. 좋아는 하는데 자주 못해요. 부모님이 평일에는 못하게 해요. 주말에 부모님이 안 계실 때 8시간까지 한 적 있는데 그건 정말 딱 한 번이고요. 부모님 계시면 토요일에도 15분밖에 못해요. 속상해요.

효빈 제 친구 중에 휴대폰을 사서 창이 다 차도록 버전만 5개를 깐 애가 있는데요. 진짜판, 가짜판, 눈 오는 것. 서바이벌판….

재현 적어도 그 정도는 돼야지.

경민 난 베타 버전도 있어. 원래 그 정도는 깔려 있어야 하는 거야.

진선 하루에 1시간만 하긴 하는데 계속 게임이 생각나요.

주원 전 축구가 그래요. 공부할 때는 계속하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드는데 축구할 때는 계속 축구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장효빈

장효빈

아이들은 휴대전화나 PC로 보는 웹툰, 게임방송 등을 좋아했다. 같은 웹툰 이름을 줄줄 댔다. 아프리카TV나 유튜브로 매일 업데이트되는 게임방송을 보고, 저녁에는 카카오스토리(카스)로 친구들의 근황을 확인하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 만난 19명의 아이들이 좋아하며 몰입하는 대상은 대체로 이런 디지털 콘텐츠였다. 여학생들이 좋아하는 웹툰과 남학생들이 좋아하는 웹툰이 서로 겹치지 않았고, 여학생들이 즐겨하는 게임과 남학생들이 즐겨하는 게임이 겹치지 않았지만, 스마트폰이나 PC를 통해 보는 것은 비슷했다. 심리상담 팟캐스트 ‘공공상담소’를 운영하며 등을 쓴 정신분석가 이승욱씨는 “매체 환경이 워낙 변화하고 아이들도 대부분 안전·편의성을 이유로 스마트폰을 갖고 있다보니 아이들이 좋아하는 게 주로 스마트폰을 통해 유통되는 디지털 콘텐츠다”라고 말했다.

효빈 은 연애 판타지물인데 그림체가 너무 예뻐요. 스토리도 좋고요.

주영 슬픈 게 있다면 작가님이 드라마작가 뺨치게 끊는 걸 잘하세요. 정말 결정적인 순간에 다음회로 넘어가요.

소빈 BGM(배경음악)도 너무 잘 맞추세요.

찬영 저는 게임은 안 좋아하는데 게임방송을 좋아해요. 아프리카TV에서 BJ(인터넷방송 진행자) 대정령이랑 악어 방송은 꼭 봐요.

예송 대정령은 게임 컨트롤을 정말 잘해요. 저는 양띵님을 좋아하는데 게임 하면서 보너스를 많이 줘요.

수민 저는 미니어처(손톱만 한 가구·그릇 등의 모형을 역시 비슷한 크기로 음식·꽃 등이 새겨져 있는 토핑 등으로 꾸미는 장난감)를 좋아하는데, 미니어처 만드는 BJ 달려라치킨 방송이랑 액체괴물 점토 만드시는 BJ 아이스마카롱 방송을 챙겨봐요.

예송 보통 아침에 그날그날 올라오는 모닝 웹툰을 보고, 학교·공부방 갔다 오면 유튜브 업로드된 것 중에 양띵님 게임방송 보고 그다음에 카스 살짝 하다가 자요.

어른들은 아이들의 이런 취향을 ‘소비적’이라고 본다. 생산적으로 이어지지 않고, 자극에 반응하며 몰두하는 것이어서 중독되기 쉽다는 점에 주목한다. 아이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웹툰·아이돌·게임 등을 좋아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중독일까, 아닐까.

박주환

박주환

효빈 중독은 자신의 몸에 해를 끼치면서까지 좋아하는 것을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런 적 없거든요. 저는 아주 건강합니다.

경민 중독이라면 보통 사회생활이나 일상생활을 못하는 거잖아요. ‘방구석 폐인’이 되는 거죠. 그런데 저는 학교도 다니고 학교에 가서 친구들이랑 이야기하고 숙제도 하고 공부도 하고 다 해요.

효빈 하루에 게임 1시간 하는 걸 중독이라고 하면 세상 사람들 중에 중독이 아닌 사람, 폐인이 아닌 사람이 있나요? 어른들도 취미를 갖잖아요. 우리들도 우리들의 방식대로 취미를 즐기는 것뿐이에요.

수민 저는 하루에 게임하는 30분이 유일하게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에요. 제 동생이 3살, 초등학교 1학년이거든요. 보통은 두 동생이 제 어깨에 매달려서 하루 종일 시달리며 놀아준다고요.

소빈 이라는 영화 예고편을 본 적 있어요. 19금인데 을 기다리다가 예고편만 봤어요. 거기 보니까 다른 사람이 하지 말라고 하는데 계속 쫓아다니더라고요. 그런 스토킹이 중독인 거죠. 우리는 순수하게 좋아하는 거니까 로맨스?

아이들은 게임이든 뭐든 하나를 많이 좋아하는 것의 장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소빈 그것에 대해 많이 알 수 있잖아요. 만약 게임을 좋아하면 게임의 종류엔 뭐가 있고 게임을 만든 사람은 누구고 게임회사엔 뭐가 있고 그걸 다 알 수 있어요. 또 게임을 열심히 해서 프로게이머가 될 수도 있잖아요.

주영 자신과 같이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대화가 잘 통하기도 하고요.

재현 3천 시간의 법칙이 있잖아요. 어떤 걸 3천 시간 넘게 하면 뭐든지 잘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자전거를 7천 시간 이상 탄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이 세계 1위예요. 수영 선수 박태환도 3천 시간 넘게 수영을 했대요. 뭐 하나를 그만큼 좋아하면 뭐든 잘할 수 있는 거죠.

하지현 건국대 교수(신경정신과)는 아이들의 취향을 중독과 연결하는 것은 나쁜 프레임이라고 강조했다. “모든 놀이는 다 계속하고 싶은 속성이 있습니다. 즐거움을 주는 행위를 하는 것에 대해 병리적 용어를 연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20년 전 어른들이 숨바꼭질, 오징어 달구지 게임을 밤새도록 하고 싶었던 것처럼 매체 환경의 변화에 따라 스마트폰·컴퓨터를 통해 하는 게임이 요즘 아이들의 새로운 ‘트렌드’가 됐다. 그 유행을 인정해야 한다는 얘기다. 하 교수는 “학습을 중요시하는 부모나 학자들이 공부의 경쟁자로 게임·웹툰 등을 생각하는 인식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어른들이 헷갈리는 ‘중독’과 ‘취향’을 오히려 아이들은 구분하고 있다. 중독을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고 스스로 중독을 조절한 적도 있다.

김민욱

김민욱

수빈 좋아하는 것은 절제를 할 수 있는 건데 중독은 나도 모르게 스르륵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찬울 중독은 해도 해도 멈출 수 없는 것, 좋아하는 것은 자기가 즐길 수 있는 것이에요.

본근 중독은 너무 하고 싶어서 머리가 도는 거예요.

예송 못하게 하면 막 울 것 같은 느낌?

수민 맞아. 울화통 터지고 정신 못 차려요.

예송 중독은 제어할 수 없는 것. 좋아하는 것은 절제를 할 수 있어요.

효빈 게임이나 뭐 그런 것에 중독돼서 자기 몸에 해를 끼치면서까지 하다가 결국 우울증 같은 것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도 종종 뉴스에 나와요. 게임이나 휴대폰에 중독되는 건 나빠요.

소빈 게임 때문에 생긴 병도 많잖아요. 게임이나 인터넷을 현실 세계와 혼동하는 리셋증후군이나 뇌가 자극을 받아서 조각조각 난다는 팝콘브레인처럼요.

재현 초등학교 3~4학년 때였던 것 같은데 그때 를 너무 좋아했어요. 그런데 시작할 때 시계를 보고 끝나고 나서 시계를 보면 시간이 너무 많이 가 있었어요,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래서 반성을 하면서 를 안 했어요.

소빈 저도 예전엔 등 인터넷 게임을 12개까지 깔았어요. 매일 출석하면 출석 선물을 주기 때문에 12개를 매일 출석하는 거죠. 매일 30분~1시간 정도 했는데 어느 순간 보니까 시력도 안 좋아지고 너무 많이 해서 질리는 것 같기도 했어요. 아무 생각 없이 순례하는 제가 기계 같기도 하고. 그래서 그 게임들을 싹 지웠어요.

채주영

채주영

아이들은 자신의 자기조절 능력을 인정받고 신뢰받지 못하는 것을 매우 속상해한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아이들은 스스로의 취향과 가치관을 가진다. 김성찬 소아정신과 의사는 책 에서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나타나는 아이들 고유의 취향과 가치관을 무시하고서는 아이와 함께 어떤 문제도 풀어나갈 수 없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규칙을 지킴으로써 어른스러워지고 있다, 성숙해지고 있다’는 느낌을 확장시켜주는 게 좋다고 전문가들은 권한다. 아이들의 자기조절 능력을 길러주는 방법으로는 무조건적 금지보다는 허용 범위를 설정하고 그 범위를 지켰을 때 칭찬·보상을 해주거나 허용되는 자유의 폭을 늘려주는 것 등이 있다. 아이들이 무엇보다 싫어하는 건 어른들의 이율배반적 행동이다.

재현 저는 학원이나 공부방 끝나고 집에 가서 저녁 9~10시까지 딱 1시간 게임하거든요. 그것도 숙제하고 이것저것 하느라 못할 때도 많아요. 어떤 때는 10분, 15분만 하기도 해요. 그래서 일요일 아침에 컴퓨터 켜고 게임하면 엄마가 바로 ‘너 중독이야’ 그래요.

효빈 공부 다 하고 이제 10분 휴대폰 해야지 하고 있는데 엄마가 방에 들어와요. 이때까지 숙제했는데 엄마는 “또 휴대폰 해?” 하세요. 부모님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자기 눈에 보이는 것만 말해요.

소빈 저는 밥 먹을 때 휴대폰 안 하는데 아빠는 외식 가면 휴대폰만 봐요. “아빠 뭐해?” 물어보면 일한대요. 아빠가 노무사시거든요. 그런데 아빠가 보는 건 야구 기사예요.

경민 너도 그럼 휴대폰으로 엑소를 봐, 똑같이.

소빈 데이터가 없어. 아무튼 아빠도 할 만큼 하고 저한테 ‘하지 마라’ 이야기했으면 좋겠어요

본근 아빠는 매일 누워서 텔레비전 보면서 제가 누워서 보면 “이놈” 하세요.

예나 난 엄마가 만날 드라마 봐서 내가 보고 싶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볼 수가 없어요. 엄마는 드라마 중독.

윤지 엄마는 휴대폰 진짜 많이 하면서 제가 10~20분 하는데 “그만해”라고 해요.

재현 우리 아빠는 컴퓨터 중독. 게임하다가 새벽에 자는 것도 봤다고.

본근 어른들은 술 먹고.

수민 어른들은 홈쇼핑 중독이야.

예송 어른들은 담배 피우면서. 근데 아이들이 더 약하니까 더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긴 해.

아이들은 스스로 “우리는 놀아야 한다”고 말한다. 각국의 유엔아동권리협약 이행 상황을 모니터링하는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2011년 유엔아동권리협약 제3·4차 국가보고서 심의에서 한국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경쟁에 우려를 표하며 ‘어린이의 놀 권리를 증진해야 한다’고 한국 정부에 권고했다. 2002년에도 ‘아동이 겪는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한 정책 검토’를 권고했다. 지난해 유니세프 한국위원회는 이에 따라 어린이의 놀이문화를 확산하는 ‘나가서 놀자!’ 캠페인을 진행하기도 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즐길 권리는 일종의 ‘인권’이다.

정수빈

정수빈

찬영 지금 나이는 실컷 노는 나이잖아요. 펄펄 뛰어놀 나이인데. 그런데 왜 계속 공부만 시키는지 모르겠어요. 공부 중독 같아요. 그것 때문에 저희 어린이들은 정말 스트레스 받는다고요. 저는 친구가 정말 좋아요. 친구가 인생의 절반이라고 생각해요. 친구네 부모님과 한 달 동안 함께 제주도에 간 적도 있고, 어떨 땐 휴일에 아침 8시30분에 아침 먹고 나가서 공복 상태로 저녁까지 놀기도 해요. 그런데 너무 많이 놀았을 때 한 달 동안 외출 금지를 당한 적 있었어요. 친구랑 노는 걸 나쁘다고 하고 금지할 필요가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소빈 제가 아이클레이 같은 점토를 저으면서 놀고 있는데도 ‘점토 하지 말고 공부해’ 그래요. 공부 말고 다른 걸 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해요. 왜 그렇게 공부를 원하지. 왜, 왜, 왜.

경민 저는 꿈이 요리사예요. 제가 요리책 읽으면서 메모도 하고 그러는데요. 엄마가 “그거 읽을 시간에 공부나 해”라고 말해요. 그래서 공부 1시간 하고 다시 요리책 보면 이번에는 밥 먹으래요. 공부가 필요하긴 해요. 우리가 꾸는 꿈을 이루려면 꼭 필요하죠. 그런데 제 생각엔 공부를 너무 강조하는 것도 일종의 중독이에요. 강요 중독. 잔소리 중독.

재현 어른들은 애들 키우기를 게임같이 해요. 가상현실 게임을 애들한테 적용시키는 것 같아요.

효빈 맞아요. 게임에서는 자기가 명령하면 게임 캐릭터가 그대로 듣잖아요. 게임 캐릭터처럼 우리 어린이들이 어른들의 말을 무조건 다 들어야만 하는 것으로 생각해요.

주영 엄마는 가끔 ‘완벽하지 않아서 화가 나’라고 말해요. 그러고서는 ‘너한테 완벽하라고 말하는 건 아니야’라고 말해요.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요.

소빈 이 나라는 약간 영어 중독이 심해요. 정말 지금까지 살면서 제일 많이 들은 말이 ‘영어 잘해야지 좋은 대학교 간다’인 것 같아요.

효빈 나는 한국에 살 건데 외국에서 오래 살고 싶은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많은 시간을 영어 공부하는 데 들여야 하는 거야.

어른들은 어른이 만들어낸 세상에 갇혀 아이들에게 금지하지 말아야 할 것까지 금지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이들의 눈에 비친 어른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영어 중독’ ‘공부 중독’에 갇혀 아이들의 권리를 침해한다. 요리사가 꿈인 아이가 요리책 보는 것, 수의사가 꿈인 아이가 동물을 좋아하는 것에 ‘금지령’을 내린다. 아이들은 “무조건 금지만 하지 말고 우리를 한번 믿어주세요”라고 이야기한다. 아이들을 ‘취향과 가치관이 있는 존재’로 인정하고 아이들의 보호자는 그 취향과 가치관에 대해 조언하고 돕는 ‘조력자’가 돼야 한다.

효빈 한 번밖에 없는 제 인생인데 왜 어른들 말을 들어야 하죠.

민욱 여긴 민주주의 국가니까 우리도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할 권리가 있는 것 같아요.

소빈 강요적으로 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재현 기계적으로 하지 말아야 해요. 게임하듯이 기계적으로 금지하는 것, 너무 싫어요.

찬울 무조건 금지하지 말고 우리를 믿어주면 좋겠어요.


14살 이상 관람불가


우리가 좋아하는 것



1. 문상
아이들은 ‘문상’을 좋아한다. ‘문화상품권’의 줄임말. 선물로 딱이다. 돈을 선물로 주는 건 이상하지만 문상은 가능하다. 가장 실용적이기도 하다. 본근이는 지난 생일 선물로 3만원어치 문상을 받았다. “오~” 아이들이 부러워하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PC방에는 현금을 넣고 문상을 파는 기계가 있다. 아이들은 문상 번호를 입력해 게임 아이템으로 바꾼다.
2. 미니어처
거실, 주방 등을 손톱 크기의 미니어처 가구 등으로 꾸미는 일종의 장난감. 요즘 초등학교 고학년 여학생들 사이에서 인기다. 미니어처로 만들어진 가구와 그릇 등을 사고 그 미니어처를 꾸미기 위한 토핑, 토핑을 미니어처 가구에 붙이기 위한 레진(본드) 등을 사야 한다. 토핑 1개는 300원가량 한다. 50개 묶음은 9천원. 레진은 60mℓ에 1만원 정도 한다. 주로 생활용품점 ‘다이소’, 문구점 ‘알파’ 등을 다니며 미니어처를 위한 ‘쇼핑’을 한다.
3. 양띵·대정령
아프리카TV에서 게임방송을 진행하는 BJ(인터넷방송 진행자)들. “대정령님은 게임 컨트롤을 정말 잘해요.” “양띵은 보너스를 엄청 줘.” 게임을 좋아하는 초등학생들이 하루를 마무리할 때 주로 찾는 인기 BJ다. 미니어처 제작 방송을 하는 ‘달려라치킨’, 액체괴물 점토(흐느적거리는 점성의 점토) 제작 방송을 하는 ‘아이스마카롱’ 등도 인기 BJ다.
4. 웹툰
“작가님이 끊는 걸 드라마 뺨치게 잘하십니다.” 공주영(남자)과 왕자림(여자)의 연애 이야기. 둘 다 마음에 상처가 있다. 상처를 딛고 서로에게 마음을 열어주며 사랑을 확인해가는 이야기. 매일매일 ‘심쿵’이다. “판타지예요. 현실에선 일어날 수 없는 이야기죠.”(소빈)
5. 엑소(EXO)
SM엔터테인먼트 소속의 남자 아이돌 그룹. 데뷔 멤버 12명 가운데 2명이 탈퇴해 10명이 활동한다. 최근 2집을 냈다. 등의 히트곡이 있다. “엑소의 노래는 중독성이 있어요.”(소빈) “처음 노래를 먼저 들었는데 노래를 정말 잘 불렀습니다. 그리고 얼굴을 봤는데 잘생겼어요. 그 뒤 예능프로에서 봤는데 성격도 좋아요.”(효빈) “엑소는 완벽하다”는 게 아이들의 평가다.
6. 셀카·카스
‘소통’. 카카오스토리(카스)를 할 때 장점으로 아이들이 꼽는 것이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계기도 된다. 같은 학교를 다니지만 얼굴만 아는 친구들과 안면을 트게 된다. 악성 댓글 등으로 상처를 받기도 한다. 카스에는 셀카(셀프카메라)도 많이 올린다. 셀카를 올리는 것은 새로 산 옷, 오늘 간 곳 등 그날 하루를 ‘인증’하는 의미가 있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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