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말 없이 해가 떠오르네
떠오를 것은 따로 있는데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데
오오 기울어진 봄, 오오 변한 게 없는 봄
“세월호 아이들 동영상을 보면 (배의) 기울기를 설명하는 게 있어요. ‘아, 무서워’ 하면서도 (보는 사람에게) 설명할 수가 없잖아요. 그 장면이 마음에 너무 남아서….”
가수 하이미스터메모리는 스마트폰 동영상 속 아이들처럼 손가락을 들어 한쪽으로 기울여보았다. 그가 말하다 목이 멘 듯 멈칫하는 사이 옆에 앉은 재즈가수 말로가 손으로 눈을 슬쩍 훔쳤다. , 이들이 만든 세월호 추모곡의 가사를 설명할 때였다.
“저는 4월18일에 단독공연이 잡혀 있었어요. 16일에 터지고 나서 공연 당일에 안 되겠다 싶어서 취소했죠. 장례식장에서 스스로 예의를 지키듯이 노래하면 안 된다는 마음이었어요. 나중에 보니 (정부에서) ‘이것들 봐라, 가만히 있네’ 그러는 것 같았어요. 노래를 해야겠구나 생각이 들었죠.”
4월16일 저녁 7시 서울시청 광장에서 ‘4·16 약속의 밤’ 행사가 열렸다. 추모를 위한 낮은 진혼곡만 울리던 광장에서는 심장박동 소리처럼 ‘두둥’대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는 소름이 꿈틀댔다. 음악은 기억하게 하고 움직이게 만든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노래 을 발표한 이들을 행사 전 만났다.
봄이 궁금해서 꽃들이 피네파도는 자꾸 들이치며 묻네
도대체 왜 그런 건가요
왜 아무 말도 못했나요
오오 질문하는 봄
오오 대답이 없는 봄
‘다시 봄, 프로젝트 팀’은 재즈·펑크·모던록·모던국악 등 한데 묶이기 어려웠던 음악인들이 세월호를 기억하기 위해 만든 팀이다. 1주기를 맞아 을 함께 불렀고, 매달 곡을 발표해 세월호 참사 500일째 되는 8월 말, 이것을 모아 음반을 낼 계획이다. 대중음악계에서 ‘월드컵 노래’ 같은 대형 이벤트용 음반을 빼고 이런 시도는 흔치 않은 일이다.
“1월에 ‘금요일엔 돌아오렴’ 북콘서트를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어요. 문인들은 옴니버스 책을 만드는데 음악인들도 뭔가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죠. 1주기 되는 날이 얼마 안 남아서 급히 전화를 돌려 같이 음반을 만들자고 제안했죠.”(가야금 연주자 정민아)
“민아씨 전화를 받고 훌륭하다고 생각했어요. (하하) 지난 한 해 동안 ‘내가 음악을 왜 하나’ 생각을 많이 했어요. 재즈를 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테크닉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갑자기 무의미해진 느낌이 들었죠. ‘이 나라에서 나는 왜 노래를 해야 하나’ 하는 생각들. (이렇게) 처져 있고 괴로워하는 사람에게 행동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 거예요.”(말로)
이렇게 강승원, 김목인, 말로, 요조, 박혜리, 사이, 정민아, 차현, 하이미스터메모리, 오종대, 전지나, 유수훈, 정보용, 윤소라 등 음악인들이 한곳에 모여 머리를 맞댔다. 스케치북을 꺼내들고 가사를 함께 고민하고, 마침내 3월15일 한 녹음실에서 이들은 자신만의 연주 방식과 창법 대신 한목소리로 노래를 녹음했다.
“이것은 집단적 타살이잖아요. 확실한 대답을 들어야 하는데 세월호 사건에 대해선 무엇을 슬퍼해야 할지 나와 있지 않죠. 그냥 어이없음 단계에 머물러 있어요. (이유가 뭔지) 풀리지 않으면 계속 기억해야 해요.” 의 작사·작곡을 맡은 가수 사이는 프로젝트에 함께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왜 아무 말도 못했나요, 질문하는 봄, 대답이 없는 봄’ 등 노랫말은 다른 이들을 대변하는 그의 심정이었다.
가을 겨울 오면 봄이 잊혀질까내년에도 봄은 변한 게 없을까
그만하면 바뀔 때도 됐는데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오오 부끄러운 봄
오오 기억하는 봄
“세월호 참사 뒤 (재즈)클럽에 오는 사람이 없었어요. 우리도 연주를 못하겠는 거야. 연주는 마음으로 하는 건데 몸만 하고 있더라고. 가게도 망하고 연주도 안 되고 울화통이 터졌죠. 그런 상황을 보면서 기다린 거지. 정부나 정치하는 사람들이 뭔가 해서 이를 계기로 우리나라가 바뀌는 게 없나 하고.”
베이스 연주자 차현은 세월호 참사 뒤 여름이 가고, 가을이 간 뒤 계속 기다렸다. 그렇게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채 다시 봄이 올 줄 몰랐다. “장사 안 되는 게 애들 책임이 아니잖아. 왜 세월호에다 책임을 지우는 거야. 우리나라는 그런 어른들이 꽤 많은데 화가 무진장 나는 거예요. 그런 사람들이 그대로 있으면 세월호 이후 사회가 바뀌겠느냐고요.” 차현은 부끄러운 마음에 곡을 쓰고, 에 합류했다.
부끄러운 봄은 하나의 계기가 됐다. 가수 김목인은 “비유하자면 장례식장에서 노래를 해서 위로하는 게 중요하냐, 노래가 없는 게 낫냐는 고민이 생긴 거죠”라고 했다. 그 고민의 복잡함에 대해 사이는 “어떤 사회가 나아지기 위해서는 고민이 필요해요. 음악이나 예술이 뭔지 지난해 예술가들이 굉장히 생각을 많이 했어요. 다양한 방식으로 추도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가 아닐까 생각했죠”라고 말했다. ‘세월호를 그만 잊자’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이들의 고민에 대해 무어라 답할 수 있을까.
오오 기울어진 봄오오 변한 게 없는 봄
오오 질문하는 봄
오오 대답이 없는 봄
오오 부끄러운 봄
오오 기억하는 봄
“한 유가족 아버지가 그랬어요. ‘이렇게 울려고 만났나. 그런 거 아니잖아. 이제 우는 것은 그만하면 좋겠다. 정확히 진실을 밝히고 세월호를 인양해야 한다.’ 우리는 유가족을 만나면 어쩔 줄 몰라 하는데, 유가족은 담담하게 저희보다 훨씬 판단을 잘하세요. 이게 해결되지 않으면 다시 돌아온다 알려주시는 거죠.”(정민아)
“추모하는 기념 음반이 아니어서 좋아요. 매달 릴레이로 음악을 발표하고, 유가족을 응원하고, 지치지 않게 갈 수 있잖아요.”(하이미스터메모리)
“‘딴따라’도 이렇게 하는데, 이게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있을 거예요. ‘바다, 슬픔’ 이런 가사를 쓰기보다는 ‘진실이 밝혀져야 하는데’라고 사람들을 부추기고 싶어요.”(사이)
추모 아닌 ‘응원’을 위한 음반한 음원 사이트에 들어가 ‘세월호’를 검색해보니 50여 곡이 나왔다. 조동희는 을 냈고, 조관우는 영화계 인사 100여 명의 재능기부로 노래 의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다. 아마추어 밴드인 ‘남의집이불속’은 라는 곡을 냈다. 음악인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이들과 인터뷰 뒤 서울 광화문광장으로 향했다. 세월호 분향소에 조문하러 온 수많은 시민들의 줄이 광화문광장을 돌고 돌았다. “이라는 제목은 다시 봄(계절)이 왔다는 의미도 되고, ‘다시 보자, 다시 생각해보자’라는 의미도 됩니다.”(사이) 수많은 시민들도 그렇게 서 있었다.
글 이완 기자 wani@hani.co.kr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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