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푸른색 벽에 노란 별이 반짝인다. 별 모양 종이에는 아이들에게 보내는 말이 빼곡하다. “사랑하는 딸 세영아, 항상 너를 생각하며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될게.” 아이를 떠나보낸 아빠가 꾹꾹 눌러 적은 말이다. 그 옆에 다른 별들이 덧붙는다. “오늘은 날이 참 좋다, 얘들아.” 416기억저장소가 안내하는 ‘기억과 약속의 길’을 걷기 위해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 기억저장소에 모인 참가자들이 아이들에게 보내는 말이다.
과 아름다운재단은 지난해 6월부터 11월까지 ‘기억 0416’ 캠페인을 통해 시민들의 기부를 받고 세월호와 관련된 기록물을 모았다. 그 결과로 지난해 9월과 지난 4월2일 기억저장소 1호관과 2호관이 각각 문을 열었다. 416기억저장소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기억과 약속의 길’을 운영한다. 기억저장소 2호관에서 출발해 단원고등학교 2학년 교실, 안산 합동분향소를 차례로 둘러보는 일종의 ‘그리프 투어’(Grief Tour)다. 지난 4월4일 은 그 길을 함께 걸었다.
낮은 연립주택들 사이에 있는 작은 상가로 들어섰다. PC방이 있는 2층을 지나 3층으로 올라가자 벽이 짙푸른 바다색으로 칠해진 전시공간 기억저장소가 나왔다. 전시관에서는 4월2일부터 ‘아이들의 방’ 전시가 열리는 중이었다.
전시관에 들어서자 한가운데 차곡차곡 쌓인 솜이불이 눈에 들어왔다. 아빠 손을 잡은 한 초등학생이 이불에 몸을 기댔다. “이게 무슨 이불인지 아시는 분?” 김종천 416기억저장소 사무국장이 물었다. “진도체육관….” 참가자 중 한 명이 조심스레 답했다. “아이들의 흔적뿐 아니라 진실을 밝히려는 부모들의 활동을 증거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보존하고 알리는 게 우리 목적입니다.” 김 사무국장이 설명했다. 진도체육관에서 아이들을 기다리며 엄마·아빠들이 이불에 흘린 눈물을 참가자들이 쓰다듬었다.
김종천 사무국장이 종이상자에서 검은 가방을 꺼냈다. 물에서 처음으로 올라온 4반 정차웅군이 마지막까지 지녔던 가방이다. 가방을 열자 누렇게 바랜 교복 와이셔츠와 넥타이, 흙 묻은 체육복, 펄 속에서 해진 수건이 줄줄이 나왔다. 정군의 어머니는 아들의 가방에서 나온 물건들을 물에 일곱 번, 여덟 번 빨았다고 한다.
전시관 벽에는 주인 없는 방을 찍은 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가수가 되고 싶었던 3반 예은이의 침대 머리맡에는 기타가, 그림을 잘 그린 4반 하용이의 책상 위에는 물감을 푼 팔레트가 놓여 있었다. 의자에 가지런히 걸려 주인을 기다리는 교복과 아직도 충전 중인 휴대전화, 침대 위에 차곡차곡 개어놓은 빨래에서는 아이들이 금방이라도 돌아오길 바라는 엄마들의 마음이 보였다.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 양지혜(32)씨는 “평온한 일상이 무너진 데서 오는 충격이 (가족에게)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이 사진 속에서 느껴진다”고 했다. 책상 가득한 노란 리본과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은 1년 전에는 아이들의 방에 없었을 물건들이다.
기억저장소에서 나와 단원고로 향했다. 아이들도 걸었을 등굣길에는 노란 개나리와 흰 목련이 가득 피어 있었다. 배에서 생존한 1반 박도연 학생의 아버지 박석훈(44)씨가 학교 정문에서 참가자들을 맞았다. “살아남은 아이들은 무엇보다 친구들이 왜 물에서 올라오지 못했는지 알고 싶어 합니다. 그래야 편하게 보내줄 수 있습니다.”
박씨의 안내를 따라 들어간 단원고 2학년 교실은 지난해 4월16일에 멈춰 있었다. 아이들이 하루하루 가위표를 쳤을 급식 식단표는 4월14일 이후로 깨끗했다. 책상 위에 가득 올려진 생일 케이크와 크리스마스트리, 밸런타인데이 초콜릿만이, 떠난 아이들의 가족과 친구들이 여전히 그들과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줬다. 가족과 친구들이 짬 날 때마다 찾아와 화분에 물을 주고 교실 이곳저곳을 쓸고 닦는다고 박씨는 설명했다.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 정가현(37·가명)씨는 “직접 와보니 끝난 일이 아님을 느낀다. 자라나는 아이들이 많이 와서 보고 대한민국의 문제가 무엇이며 그것을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단원고가 있는 골목에서 큰길 하나를 건너면 화랑유원지에 닿는다. 삼삼오오 소풍을 나온 사람들을 지나 공원 안쪽으로 들어가자 합동분향소가 나왔다. 참가자들은 분향소 앞 유가족 대기실에서 2학년6반 고 신호성군의 어머니 정부자(48)씨와 만났다. 이틀 전 서울 광화문에서 머리를 깎은 정씨가 숨소리인지 말소리인지 구분이 안 갈 만큼 작은 소리를 겨우 뱉어낼 때마다 참가자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제는 ‘내가 잘못한 건가, 내가 내 자식을 죽인 건가’ 하는 생각까지 들어요. 아이가 ‘엄마가 가만히 있으라고 했지, 그래서 죽었어’라고 할까봐 저는 지금 죽지도 못해요.” 그의 목소리가 점점 격해졌다. “애들한테 와서 사과하란 말이야! 용서를 빌라고! 그래야 보내주지!” 그가 말을 더 잇지 못하고 고개를 떨궜다. 김종천 사무국장은 “지금까지 싸워온 방식으로는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유가족들도 알고 있다. 비극적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이날 ‘기억과 약속의 길’을 걸은 참가자들은 생존자·실종자 가족들이 지난 1년간 거쳐온 감정의 부침을 함께 느꼈다. 지난 2월에도 합동분향소를 찾아 단원고 희생자 유가족을 만났다는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 임광순(32)씨는 “이전에는 유가족들이 의연하고 이성적인 모습을 보여 오히려 (내가) 힘을 얻어 갔다. 오늘 보니 이분들의 결연했던 다짐이 무너질 정도로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는 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이날은 정부가 내놓은 특별법 시행령과 일방적인 배·보상안에 반발하며 생존자·희생자 가족들이 416시간 농성을 시작한 지 6일째 되는 날이었다.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날 아침 가족들은 아이들의 영정 사진을 들고 1박2일 도보순례에 올랐다. 길을 걸은 사람들도 서울로 곧바로 돌아가지 않고 도보행진에 합류했다. 생존자·희생자 가족들에게 작은 힘이나마 보태기 위해서였다.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 이혜인(30)씨가 말했다.
“(도보행진단을 향해) 욕하는 사람도 있고 응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저 바라보는 사람도 많더라고요. 비록 함께 걷지는 않더라도 저처럼 계속 (세월호를) 기억하는 마음이 아니었을까요.”
글·사진 정인선
*2014년 하반기 인턴으로 활동했던 정인선씨가 현장 취재 뒤 기사를 작성했습니다.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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