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누리집에 검색어 ‘세월호’를 넣었다. 2014년 4월16일~2015년 4월16일의 검색 결과를 살폈다. ‘청와대 소식’ 56건과 ‘청와대 활동’ 24건이 잡힌다. ‘청와대 인사이드’엔 2건(1주기 전날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과 1주기 당일 전남 진도 팽목항 방문 소식)이 뜬다. 모두 82건이다. ‘청와대 활동’은 ‘청와대 소식’을 홍보용으로 만든 영상과 기사들이다. 이를 제외하면 58건이 남는다. 내용별로 분류해봤다.
‘세월호’를 언급한 박 대통령의 발언과 그 발언을 전한 대변인의 브리핑이 30건이다.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나 대통령 일정 브리핑에서 말해진 경우가 10건이다. 14건은 정상회담이나 외국사절 접견 때 인사말로 오갔다. 4건은 참사 직후 외국 정상들의 위로전으로 접수됐다. 의례성 발언을 빼면 청와대가 누리집에 공개한 박 대통령의 ‘세월호’ 발화는 지난 1년간 30건이다.
[명사] 비참하고 끔찍한 일.
청와대 누리집에서 ‘참사’는 15건 검색된다. 세월호 이슈는 12건이다. 사고 두 달 뒤인 2014년 6월10일 마지막으로 사용됐다.
【사건】[명사] ①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거나 주목받을 만한 뜻밖의 일 ② 소송 등 법률적 쟁점이 걸린 사안도 사건이다.
‘사건’은 청와대 누리집에서 56개 글에 찍혔다. 마크 리퍼트 주한미국 대사 피습과 프랑스 총격, 송파 세 모녀 자살, 어린이집 아동 학대, 말레이시아 민항기 격추, 강원도 동부전선 일반전초(GOP) 총기 난사 등이 사건으로 명명됐다. 세월호 이슈는 4차례만 사건의 지위를 얻었다. ‘세월호 사건’은 2014년 8월14일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과의 면담에서 마지막으로 등장했다.
【사고】[명사] 뜻밖에 일어난 불행한 일.
청와대 누리집에서 ‘사고’가 포함된 글은 171건이다. 171건 중 세월호를 일컫는 사고는 53건(‘청와대 활동’ 제외)이다. 청와대가 세월호를 규정하는 가장 빈번한 명칭이다.
세월호는 ‘사고’가 ‘참사’가 된 ‘사건’이다. 물살 센 바다에서 늙은 배가 침몰하는 ‘사고’가 있었다. 배에 갇힌 304명을 국가가 한 명도 살리지 못했으므로 사고는 ‘참사’가 됐다. 사고로 그칠 일이 참사로 번지면서 전 국민을 충격한 ‘사건’이 됐다.
언어는 볼록렌즈가 되기도 하고 오목렌즈가 되기도 한다. 어떤 언어를 놓고 보느냐에 따라 진실은 가까이 다가오기도 하고 멀리 떠밀리기도 한다. 수많은 단어가 피멍 든 바다에 부려졌다. 건져야 할 언어는 물고기밥으로 던져졌고, 버려야 할 언어가 구명정에 올라탔다. 언어의 선택과 배제는 그 자체로 정치 기획이다. 호명을 둘러싼 격랑의 바다에서 국가는 세월호 참사를 ‘사고’라 부른다. 정부는 참사 초기부터 ‘침몰 사고’를 공식 용어처럼 사용하고 있다.
참사 수습의 주무부처인 해양수산부 누리집에서 ‘세월호 사고’를 검색하면 498건(소속기관·유관기관 글 포함)의 글이 걸린다. ‘세월호 참사’로 찾으면 25건으로 격감한다. 그나마 보도 해명 글 6건과 시민의 항의 글 1건이 합쳐진 양이다. ‘세월호 사건’으론 0건이 나온다.
【교통사고】[명사] 운행 중이던 자동차나 기차 따위가 사람을 치거나 다른 교통기관과 충돌하는 사고.
참사를 사고로 규정하려는 정부·여당의 전략이 집약된 단어다. 지난해 7월24일 주호영 당시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은 “저희들의 기본 입장은 교통사고”라고 했다. 5일 뒤 같은 당 홍문종 의원도 “일종의 해상 교통사고”라고 발언했다. 교통사고엔 운이 나빠서 당한 일이거나 운전자의 잘못이란 의미가 내포돼 있다. 교통사고를 ‘교통참사’나 ‘교통사건’이라고 부르진 않는다. 단어의 차이는 미묘하지만 의미의 차이는 미묘하지 않다. 사고는 우연에 가깝지만 참사엔 필연적 책임이 있다. 사고엔 이유가 없을 수 있으나 사건엔 이유가 있다.
“세월호 참사는 천재지변의 사고가 아니라 인간의 탐욕과 국가의 무책임함이 초래한 사건”(4월16일 성공회대 교수회 성명)이다. 참사가 사고가 될 때 국가의 책임은 사라진다.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로 바라보는 인식은 정부의 배·보상금 책정에서도 주된 이념이 됐다. 해양수산부는 법원의 교통사고 기준에 따라 사망자 위자료(초안 1명당 8천만원→의결안 1억원)를 매겼다.
세월호가 대통령의 지지율을 끌어내리자 정치적 반격도 언어에서부터 왔다. ‘추모 국면’을 ‘혐오 국면’으로 전환하는 데 언어들이 앞장섰다. ‘사고’ 프레임을 치고 익숙한 문법들이 전개됐다.
【불순】[명사] ① 물질 따위가 순수하지 아니함 ② 딴 속셈이 있어 참되지 못함.
지난해 4월21일 박 대통령은 참사 원인을 두고 제기되는 의혹에 “사회 혼란을 야기시키는 불순한 의도”(수석비서관 회의)라고 평했다. 하루 전엔 한기호 새누리당 의원이 “북괴의 지령”과 “좌파단체의 정부 전복 작전”을 운운했다. 4월22일엔 지만원 시스템클럽 대표가 “시체장사”와 “국가 전복 획책”이란 험한 말을 쏟아냈다.
【순수】[명사] ① 전혀 다른 것의 섞임이 없음 ②사사로운 욕심이나 못된 생각이 없음.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기소권 부여’ 요구가 일자 박 대통령은 불편한 감정을 ‘순수한 유가족’이란 표현에 실어 터뜨렸다(지난해 9월16일). “세월호 특별법도 순수한 유가족들의 마음을 담아야 하고 희생자들의 뜻이 헛되지 않도록 외부 세력이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4개월 전인 5월9일 성난 세월호 가족들이 청와대 앞에서 밤새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고 있을 때 그의 대변인(민경욱)도 ‘순수 유가족’과 ‘불순 유가족’을 분리해 논란을 빚었다.
【경제】[명사] 인간의 생활에 필요한 재화나 용역을 생산·분배·소비하는 모든 활동.
불순세력을 거론하며 시작된 언어 전략은 ‘경제 부담’을 내세우며 ‘세월호 피로’를 확산시키는 방식으로 나아갔다. “사회불안이나 분열을 야기시키는 일들은 결정적으로 우리 경제에 악영향을 끼친다.”(지난해 5월9일 긴급민생대책회의에서 박 대통령 발언) 보수단체인 엄마부대봉사단도 “세월호 때문에 국민들 생업이 죽었고 국가 경제가 죽었다”며 유가족들을 비난했다.
세금도둑(지난 1월 김재원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가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를 지칭)과 떼쓰는 사람들(지난 4월9일 세월호 특위의 새누리당 추천위원인 고영주 위원이 유가족들을 비난)도 연장선상에서 나왔다. 참사의 이유를 알고 싶어 하는 부모를 ‘돈 밝히는 사람’으로 만든 국가는 이제 화해(‘세월호 참사 피해 구제 특별법’ 제16조에 “배·보상금, 위로지원금 지급 결정에 동의할 때 국가와 신청인(피해자)이 민사소송법상 화해가 성립한 것으로 본다”)를 강요한다.
미셸 푸코는 사건을 “세력관계의 역전”이라고 봤다. 사건은 구도의 전환이자 전복의 계기가 된다. 국가는 힘써 ‘사건’을 버리고 필사적으로 ‘사고’를 획득했다. 그래서 여기 하나의 ‘사건’이 더 발생했다. ‘참사’라 칭해야 할 비극을 ‘사고’로 규정해버린 ‘사건’. 희생자·실종자 가족들의 심장을 도려내는 ‘세월호 사전’은 그렇게 만들어지고 있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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