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는 들여다보기도 싫은 ‘천덕꾸러기 이슈’로 전락했을까?
참사 이후 1년이 지나면서 여론의 피로감이 쌓인 흐름도 보인다. 한 여론조사기관 수석부장은 “경험상 어떤 단일 이슈가 여론의 관심을 끄는 생명력은 1개월이다. 대형 이슈도 최대 3개월 이상 지속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세월호 문제는 1년이나 흘러왔고, 여전히 제자리 맴돌듯 진행 중이다. 그는 “유가족이 거리로 나오면 직감적으로 ‘아직도? 또?’란 반응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했다.
조대엽 고려대 교수(사회학)는 정부가 지난 1년간 ‘3개의 프레임’을 가동하며 국민의 관심을 세월호에서 떼어내는 시도를 했다고 짚었다. 참사 한 달 뒤 대통령이 국가개조론으로 변화의 기대감을 높여 참사 국면을 돌파(국가개조 프레임)하려다, 세월호 정국이 길어지자 진영 대립으로 끌고 가 유가족을 고립시킨 뒤(두 국민 프레임), 최근엔 배·보상 액수를 발표하며 “산 사람은 살고, 잊을 건 잊자”는 ‘망각 프레임’의 스위치를 눌렀다는 것이다.
이 과정을 거치며 ‘세월호가 지겹다’는 인식이 늘었지만,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지겹다’란 말을 ‘이제 세월호 이슈를 덮고 가자’란 뜻으로만 풀이할 순 없다고 말한다. 그 말 속엔 사태가 더 지겹게 장기화되지 않도록 정부가 빨리 해결(진상 규명)하라는 신호가 섞여 있다는 얘기다. 특히 ‘지겹다’는 말은 세월호 참사를 두고 갈등을 일으키는 정치권의 행위에 대한 반감의 표현이란 해석을 눈여겨봐야 한다. 다른 여론조사기관의 수석연구원은 “시민들은 어떤 이슈가 정치권과 결합하면 진보적 이슈이든 보수적 이슈이든 빨리 끝나기 바라는 경향이 강하다”고 했다. 정치 불신이 있는 상황에서 어떤 사안이 정치권과 결합하면 ‘정치적 갈등에 오염된 이슈’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다시 첫 물음으로 돌아간다. 그럼 세월호 참사 자체와 진상 규명 여부에 대한 여론의 관심은 크게 사그라든 것일까? 한국갤럽은 각종 이슈에 대한 여론의 흐름을 매주 조사하는 기관이다. 은 지난 1년간 세월호 참사 이슈를 7번 조사한 한국갤럽과 함께 그 결과(표 참조)를 살펴봤다. 장덕현 한국갤럽 부장의 결론부터 보자.
“첫째, 사람들은 여전히 세월호 사건 처리에 관심이 많다. 둘째, 진상 규명에 대해선 의구심을 갖고 있다. 셋째, 최근 이슈였던 선체인양에 대해선 (정부가 고민하는 것이) 비용 때문이라면 인양해야 한다는 (찬성) 의견이 많다. 넷째, 여야가 세월호 이슈를 이용해 갈등을 조장하는 건 싫어한다.”
참사 발생 2주가 지난 시점에 진행된 지난해 4월 말 조사를 보면, ‘정부의 사고 수습과 대응이 잘못됐다’는 응답이 82%에 달한다. ‘분향소에서 조문할 의향이 있다’(88%)는 이도 꽤 많았다. 사회가 슬픔, 충격, 정부 무능에 대한 책임론으로 거의 함께 묶여 있던 시기다.
하지만 지난해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통령의 ‘4월16일 7시간 행적’에 대한 의문, 청와대의 구조 실패 책임론이 부각되고 여권 지지층에선 이를 방어하는 분위기가 싹트면서 참사를 보는 시각도 엇갈리기 시작했다. 세월호 참사가 다른 사고와 달리 정치 성향별로 의견이 크게 대립한 사안인 만큼, 장덕현 부장은 ‘여론조사 그래픽’에서 ‘무당층 여론’의 흐름을 주의 깊게 보라고 권한다. ‘세월호의 정치화’ 뒤에서 참사를 조용히 바라보던 여론의 속내를 읽을 수 있다는 뜻이다.
무당층은 지난해 5월19일 대국민 담화에서 눈물을 흘린 대통령의 사과가 오히려 미흡(43%)했다고 판단했다. 만족했다는 대답은 31%였다. ‘유민 아빠’ 김영오씨가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 중이던 7월 말 조사에서, 무당층의 68%가 ‘사고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고 답한 수치도 눈에 띈다. 선장, 선원, 해경 일부 인사에 대한 구속만으론 진상 규명에 다가갈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이 조사는 검경이 사고 책임자로 몰며 대대적으로 쫓던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변사체로 발견된 직후 이뤄졌다. 검경에 대한 불신 탓인지 새누리당 지지층에서도 ‘사고 원인이 밝혀졌다’와 ‘밝혀지지 않았다’가 똑같이 46%로 맞선 혼돈 양상을 드러낸다.
8월 말 조사 당시는 참사를 둘러싼 진영 대립이 극에 달한 시점인데도, 유가족의 뜻에 따라 세월호 특별법을 논의해야 한다는 의견(47%)이 반대(40%)보다 많았다. 유가족의 뜻을 존중해야 한다는 무당층의 지지(58%)가 뒷받침된 결과다.
일부 유가족이 대리기사를 폭행한 여파 탓에 9월 중순 조사에선 유가족한테 불리한 흐름이 감지됐다. 당시 전체 응답자 중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에 수사·기소권을 주라는 유가족 요구에 찬성하는 의견(37%)이 반대(45%)에 밀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10월 조사에선 전체 응답자 중 여전히 사고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는 비율(55%)이 밝혀졌다는 응답(33%)을 크게 따돌렸다. 무당층의 65%가 진상 규명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세월호 인양과 관련해선 지난해 10월과 올해 2월 조사가 유의미하다. 특히 지난 2월은 새누리당 일부 의원이 “세월호 인양은 세금 낭비”라고 주장하고, 이 논리가 여론 지형에 스며들던 시기다. 그런데 2월 조사에서 ‘수천억 비용이 들기 때문에 인양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한 비율은 31%에 그쳤다. 대신 ‘실종자를 찾고 원인 규명을 위해 인양해야 한다’는 것에 공감하느냐며 ‘원인 규명’이란 전제를 단 물음에는 61%가 찬성했다. 이 조사 당시 ‘세월호 소식에 관심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68%였다.
장덕현 부장은 지난해 10월 사고 원인 규명 여부에 대한 새누리당 지지층의 답변을 주목하라고 말한다. 표를 보면 새누리당 지지층의 35%가 ‘사고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올해 2월 조사에선 새누리당 지지층에서도 48%가 ‘원인 규명이 전제’된 인양에 동의하고 있다. 장 부장은 “새누리당 지지층에서도 진상 규명과 관련해 사고 원인이 밝혀졌다는 쪽으로 크게 쏠려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세월호 사고가 정치 이슈화되면서 대통령 담화나 수사·기소권 문제 등은 정치 성향에 따라 답변의 쏠림 현상이 나타나지만, 세월호 사고에 대한 관심도는 꾸준히 높게 이어졌다”고 말했다. 참사 직후처럼 동참의 형태로 표출되지 않을 뿐, 세월호 참사에 대한 관심이 아직도 잠복해 있음을 보여준다.
참사 1주기를 앞둔 4월 초, 코리아리서치가 진행한 조사에선 응답자의 75%가 ‘참사에 관심이 있다’고 답했다. 66%는 ‘지금까지 정부의 대응이 잘못됐다’고 판단했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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