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가 지난 1년간 진영 대립으로 변질되면서 애도의 공간에도 균열이 생겼다. 어느 날, 갑자기, 아이를 잃은 유가족들은 어느 날, 갑자기, 공격의 대상으로 둔갑했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참사 1년이 ‘경악→추모와 공감→정치 성향에 따른 혼란과 분열→혐오와 배제(공격)’의 단계를 거치며 유가족의 고립감이 깊어졌다고 진단한다. 어떤 유가족은 “왜 우릴 죄인 취급하느냐”고 오열한다. 애도의 대열은 왜 흐트러졌을까? 세월호 참사와 유가족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왜 생겨났을까?
세월호 참사는 성수대교·삼풍백화점 붕괴 등의 대형 사고와 달리 대통령의 당일 행적과 대응이 의문을 부른 독특한 성격을 지녔다. 정부가 구조에 실패하면서 ‘대통령은 그날 뭘 했느냐’는 물음은 청와대로 곧장 치달았다. 참사 충격의 규모를 보면 당연한 귀결이지만, 여권 지지층은 ‘정권 방어심리’에 기초해 대립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한 여론조사기관 수석부장은 “진상 규명의 핵심이 대통령으로 향하면서 보수층이 유가족을 ‘정권을 흔들려는 세력, 치부를 공격하려는 사람들’로 인식하게 됐다”고 짚었다.
유가족에 대한 대통령과 여권의 태도 돌변은 참사를 대하는 보수층의 시각 변화를 촉발했다. 심리학자 김태형씨는 ‘대장과의 코드 일치’란 말로 이를 설명했다. “참사 직후엔 대통령과 새누리당도 진상 규명의 제스처를 취하면서 (진영을 넘어) 애도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다. 하지만 집권세력이 (유가족과 참사를 대하는) 태도를 바꾸면서 보수층 일부에서도 그런 ‘대장들’의 심리를 읽고 태도를 함께 바꾸는 현상이 일어났다.”
아무리 잘못한 정부라도 위태로운 지경까지 내몰려선 안 된다는 심리가 발동했다는 추정론도 있다. 참사를 키운 정부의 무능을 지적하는 데 동참하는 대신 국가가 흔들리는 게 더 위험하다는 쪽에 서는 경우다. 김찬호 성공회대 초빙교수(교양학부)는 “나쁜 정부라고 계속 욕하면 그 정부 밑에 사는 내가 더 비굴해지고 자기모순에 빠진다. 이럴 경우 ‘문제가 있지만 아주 말이 안 되는 정부는 아니다’라고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들 입장에선 이걸 애국심으로 합리화할 수도 있다. 누군가 자기 아버지의 폭력적인 점을 조목조목 거론하면, 자식은 ‘맞는 말인데, 그래도 이런 이런 좋은 점이 있다’고 항변하며 자신을 정당화하는 것과 비슷하다.
팍팍한 일상을 사는 개인들이 장기간의 애도를 감당하지 못하는 측면도 있다. 김 교수는 “복잡한 사회에 살며 (머릿속이) 용량 초과인 상태에서 뭔가 복잡하고 (진상 규명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참사를 계속 끌어안고 가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고 했다.
심리학자 김태형씨는 권력의 성벽이 진상 규명의 실체에 다가가는 시도를 결국 막을 것이란 무력감이 회피와 외면으로 이어진 것일 수 있다는 의견을 냈다. “처음엔 빨리 해결될 거란 가능성도 보여 (유가족들을) 지지하고 함께했는데, 정부가 하는 것을 보면서 진상 규명이 쉽지 않겠다는 무력감도 생기게 됐다. 정부에 요구해도 안 될 것 같은데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도 힘드니 심리적으로 거리두기를 택하는 쪽으로 흐르게 된다.”
무력감에 선택한 ‘거리두기’사회학자들은 생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연대망이 헐거워지고, 다른 사람의 아픔과 고통에 대한 공감능력이 떨어진 승자독식 사회의 분위기를 근본적으로 염려한다. 서영표 제주대 교수(사회학)는 현대인의 심리상태에 대해 “자신의 상처와 고통을 호소하지만 같은 상처를 안은 주변 사람들에겐 둔감하다. 개인의 고통은 느끼지만 그것을 공유된 집단의 고통으로 느끼지는 못한다”고 했다. 서 교수는 “그래서 서로의 상처를 보듬을 수 있는 가장 쉽고 가장 확실한 치유의 기회를 잃는다”고 했다. 러닝머신 위에서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뛰고 있는데, 타자의 아픔을 돌보기 위해 멈칫하는 순간 러닝머신에서 떨어져 ‘루저’(패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연대와 공감의 확장을 막는다는 뜻이다.
김찬호 교수는 이를 ‘여백의 에너지’가 부족한 현상으로 보았다. 김 교수는 “공감도 그걸 받아들일 여백과 빈방이 좀 있어야 가능한데 사는 게 벅차다보니 그 여백의 공간에 울분과 분노, 모욕감이 쌓여 있다. 공감할 에너지가 별로 없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나서봤자 손해라는 생각 때문에 결국 절박한 사람 외엔 (문제 해결을 위해) 잘 나서지 않게 된다”고 했다. 경기침체의 원인을 세월호 참사 애도 정국 탓으로 돌리는 여권의 전략이 일부 효과를 발휘한 것도 빨리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을 벗어나고 싶은 욕구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래도 자식을 잃은 부모들을 ‘특권 유가족’이라고 비판하는 선까지 나아가게 만든 것은 뭘까?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일종의 질투와 시기로 보는 해석이 있다. 경쟁의 기회가 균등하게 보장되지 않는다고 여기는 개인들은 박탈감과 피해의식을 갖기 쉽다. 이런 생각이 강해지면 ‘유가족들 당신만 억울하냐’는 식으로 방향을 튼다. 그렇게 되면 유가족의 고통 대신 다른 것이 이들의 눈에 들어온다.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언론의 보도, 평범한 시민들의 연대, 그리고 배·보상금까지 ‘특권’으로 확대돼 보인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상실이 우리 사회의 다른 죽음보다 더 주목을 받는다고 여기고, ‘죽음의 위계질서’에서 높은 서열을 차지하고 있다는 비정한 인식으로 나아간다. 한 심리학자는 이를 “학창 시절 아픈 아이에게 관심이 쏠리면 아파서 주목받는 것도 샘이 나던 심리와 비슷”하다고 했다.
심리학자 김태형씨는 “한국 사회가 돈에 민감해, 세월호 유가족들이 돈을 얼마 받는다는 정부의 선전에 쉽게 흥분하고 약이 오르는 상황까지 이르게 된다”고 했다. 박명림 교수도 “(지난해) 유가족들이 요구하지 않은 국가유공자 지정과 특례입학 논란이 왜곡돼 전파되면서 피해 유가족들이 일반 국민을 대신해 국가의 잘못을 바로잡으려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는 게 어려워졌다”고 했다.
이런 인식은 자신의 생각과 비슷한 정보만 취득하고 믿으려는 ‘확증편향의 심리’가 작동한 결과로 보기도 한다. 서영표 교수는 “대중이 접할 수 있는 정보란 서로 분리된 수많은 단편 정보들이다. 그러다보니 깊은 성찰과 종합 능력이 떨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사실이 아니거나, 조각조각 찢긴 정보로 상대를 단정하는 오류를 범할 가능성도 커진다.
정부의 대응이 균열의 뿌리세월호 참사와 유가족을 비판하거나 외면하는 양상은 결국 정부가 진상 규명을 회피하는 인상을 풍기며 사태를 장기화한 책임 때문이란 지적이 적지 않다. 배병인 국민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유가족에게 ‘언제든 찾아오라’던 대통령이 유가족을 피하고, 사후 대응을 무책임으로 일관하면서 세월호가 더욱 정치화되도록 부추겼다”고 했다. 참사로 번진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시민의 힘을 모으는 대신, 돈과 특혜의 왜곡된 문제로 세월호 참사를 변질시킨 상황도 우려스럽다.
서영표 교수는 “개인들 간의 (갈등) 문제로 돌아오도록 만든 정부의 담론이 무섭기까지 하다. 유가족을 비판하는 이들도 어떻게 보면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슬픔을 슬픔으로 공감하지 않고 돈과 특혜의 문제로 바라보도록 한, (국가) 시스템의 피해자다”라고 했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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