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는 2003년부터 미니잡(Minijob)이 본격 도입되었다. 애초 미니잡은 월소득 400유로 이하인 고용형태를 말했지만, 2013년부터는 월소득 기준을 450유로로 올렸다. 한국 돈으로 겨우 54만5천원 정도다. 올해부터 독일도 시간당 8.5유로(약 1만원)의 최저임금제도를 도입했으니, 한 달에 52.5시간 정도 합법 노동을 하면 월 450유로의 미니잡 노동자가 된다. 그러나 이건 이론일 뿐, 현실은 차이가 있다.
2013년 12월, 독일 베를린 북부 지역고용사무소에서 구직자들이 취업정보를 찾고 있다. 독일에서는 올해부터 최저임금제도가 도입됐다. 황예랑 기자.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미니잡
2003년 미니잡 종사자는 598만 명이었고, 이 수는 점점 늘어 2012년엔 751만 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해는 714만 명으로 공식 집계된다.
그런데 같은 미니잡 종사자도 둘로 나뉜다. 전업 미니잡은 다른 일 없이 오직 미니잡만을 수행하는 이들이다. 약 500만 명에 이른다. 부업 미니잡은 기존 직업이 있는데도 생활비가 부족해 추가 수입을 위해 일하는 것이다. 2003년엔 140만 명 수준이었는데 현재는 260만 명까지 증가했다. 추가 수입원을 찾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사실상 기존 직업만으로는 생활이 안 된다는 말이다.
도대체 원래 독일말도 아닌 ‘미니잡’(Minijob)의 기원이 무엇일까. 그것을 ‘느낌’으로 아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바로 우리나라의 ‘알바’가 독일 미니잡의 기원이 아닐까 한다. 흥미롭게도 우리나라 ‘알바’는 독일의 ‘아르바이트’란 말에서 왔다. 아르바이트(Arbeit)는 마치 고아가 부모 없이 힘겨운 삶을 살아나가듯 고생스럽게 해내는 노동을 뜻한다. 그런데 이 말이 한국으로 와서 알바가 된다. 알바는 한국의 대학생이나 여성들이 부업으로 하는 시간제 노동의 대명사다. 고용은 대단히 불안정하고, 소득이라 해봐야 시간당 최저임금 수준이다. 바로 이 알바를 모델로 한 불안정 고용형태가 독일에서 ‘미니잡’이 됐다. 최근 한국 정부는 독일의 미니잡이야말로 한국의 실업자나 경력단절 여성들을 위한 시간선택제 근로의 모델인 것처럼 본다. 독일에서 한국으로, 다시 한국에서 독일로, 그리고 또다시 독일에서 한국으로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이 바로 알바와 미니잡 모델인데, 이걸 이름만 바꿔 마치 새로운 대안인 것처럼 다룬다. 한국과 독일이 ‘노동 코미디’를 하는 것인가?
그러면 독일 노동시장의 20%를 차지하는 미니잡 노동자들은 어떻게 느끼고 있나? 그리고 독일에서 최저임금은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가?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베를린 슈판다우 구청에서 3월9~26일 흥미로운 전시 행사가 열렸다. 그 행사 제목이 흥미롭다. ‘왜 미니잡인가? 미니잡에서 좀더 많은 걸 건져보자!’ 이 행사는 미니잡이라는 막다른 골목(Sackgasse)에 몰린 여성의 현실을 폭넓게 공유하고 좀더 나은 현실적 대안을 찾아보자는 취지로 열렸다.
원래 미니잡은 그것을 디딤돌로 삼아 세금이나 사회보험료를 거뜬히 낼 수 있는 정식 일자리를 가질 수 있도록 하겠다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미니잡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여성들 대부분에게 이것은 꿈으로만 남았을 뿐, ‘한번 미니잡은 영원한 미니잡’이 되는 것이 현실이다. 베를린 여성들의 경우, 미니잡 종사자의 4분의 1 정도가 전업으로 미니잡을 하는데 그 수입이 최저생계 수준도 안 된다.
미니잡만 가진 사람은 과연 이것(월 450유로)으로 먹고살 수 있는가? 단연코 ‘없다’. 그러면 이 미니잡에 무슨 강점이 있는가? 바로 여기에 미니잡의 비밀이 숨어 있다. 그것은 한 노동자가 받는 월급에서 근로소득세나 사회보험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보면 당연하다. ‘벼룩의 간’을 빼먹을 수는 없는 법. 1인당 국내총생산 4만7천달러(월평균 430만원)인 부자 나라에서 한 달에 54만5천원 정도 받는데, 거기서 무엇을 또 뗀단 말인가?
독일에는 ‘빈곤위험선’으로 불리는 상대적 빈곤선 개념이 있다. 빈곤위험선이란 전체 소득자를 한 줄로 세워놓았을 때 평균치의 60%가 되는 지점으로, 월 1천유로(약 120만원)라 보면 된다.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위해 이 정도는 넘어서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면 미니잡으로 한 달에 450유로 이하를 버는 이들은 어떻게 되는가? 최소한의 수준인 빈곤위험선에 이르기 위해서라도 550유로를 보조받아야 한다. 실제로 각 주 정부는 해당자들에게 그렇게 지원을 해준다. 이렇게 빈곤선을 기준으로 생활비의 부족분만큼 추가 지원받는 것을 독일에서는 ‘아우프슈토켄’(Aufstocken)이라 하고, 그런 지원을 받는 이들을 ‘아우프슈토커’라 부른다. 기본 벌이에다 추가로 층을 하나 더 쌓는 셈이다. 그렇게 해서 최소한의 생활을 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 독일 사회가 공유하는 일반 정서다.
그럼에도 미니잡의 현실은 척박하다. 첫째, 독일의 공식 실업자가 2005년 486만 명에서 상당히 줄어 300만 명 내외로 되었고 고용률도 70% 이상으로 올랐다고 하지만, 500만 명 정도의 전업 미니잡 종사자를 극빈노동자 또는 준실업자라 본다면, 현재 독일 노동시장은 외형상 평화롭지만 실제로는 난치병의 고통을 당하는 형국이다.
둘째, 기존 정규직 일자리를 최저임금 수준의 미니잡으로 채우고 있다. 식당, 화장실, 슈퍼, 호텔, 우편, 간호, 건설 등의 영역에서 특히 그렇다. 심지어 독일 의회 내부 청소 노동도 미니잡이다. “여긴 미니조버뿐이에요. 정규직은 하나도 없어요.” 미니잡 노동자 브리기테가 말한다. 미니잡이 정규직으로 가는 디딤돌이 아니라 한번 빠지면 나오지 못하는 구덩이가 되는 까닭이다.
셋째, 미니잡의 경우 법적으로는 병가나 휴가를 내는 게 가능하지만, 그걸 실제로 쓰면 다음달 고용계약은 지속되기 어렵다. 심지어 하루이틀 견습 삼아 노동하는 ‘프로베아르바이트’(Probearbeit)에 대해서는 돈을 하나도 주지 않기 일쑤다. 미니잡을 신종 ‘착취’ 또는 ‘사기’라고 비난하는 근거다.
넷째, 미니잡 종사자들은 한편으로는 수시로 고용계약 해지를 당하기 일쑤고, 다른 한편으로는 미니잡을 2~3개씩 갖기도 한다. 미니잡 종사자들은 심신에 걸쳐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다.
다섯째, 미니잡 종사자는 당장에 세금도 내지 않고 사회보험료도 내지 않아 ‘총수입=순수입’이란 공식이 성립해 이득인 것 같지만, 장기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이것은 노인 빈곤의 위험, 나아가 복지 붕괴의 위험을 안고 있다.
그나마 독일 미니잡은 부자 증세로 상징되는 소득재분배에 기초한 사회보장의 정서나 제도가 구축돼왔기에 가능한 것이지, 소득재분배가 취약하고 사회보장이 미비한 한국의 실정에 비춰본다면, 미니잡 모델은 결코 우리의 미래라 보기 어렵다. 다만 최소한 최저임금을 일본·미국·독일처럼 시간당 1만원 정도로 높인다면 사람의 가치, 노동의 가치를 지금보다는 더 존중하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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