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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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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만 강하면 다 잃는다”

인간의 얼굴을 한 기업 꿈꿨던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의 ‘파산’ 이야기
“외부 지원이라는 칼은 내 칼로 쓸 수 있을 때 잡아야”
등록 2015-02-16 16:21 수정 2022-11-08 18:58
난 세상을 바꾸는 일거의 혁명을 꿈꾸는 대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새로운 방법을 찾고 싶었고, 그 일을 기업 내에서 진행함으로써 그 파장을 통해 세상을 점차로 바꾸는 데 힘을 보탤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주류 질서에 편승하지 않고 새로운 기업문화를 일굼으로써 우리 세대와 자라나는 세대에게 이 사회가 암묵적으로 또는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방식에 반드시 맞춰서 살지 않아도 된다는 사례를 남기고 싶었다. -<파산>, 이건범
좌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진수 기자

김진수 기자

‘체인지 메이커’는 다양한 변화를 꿈꾸는 사람일 것이다. 자신이 만든 아이템이 세상을 변화시키기를 꿈꾸기도 하고, 자신이 일군 조직이 기존과 다른 세상이길 꿈꿀 수도 있다. 또 자신이 만든 조직이 씨앗이 되어 전체 사회를 변화시키는 열매를 맺기 원한다.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는 후자를 꿈꿨던 사람에 가깝다.

이 대표는 지난해 12월 펴낸 자신의 책 <파산>을 통해 “내가 ‘착한 자본주의’를 들먹거릴 만큼 순진하지는 않았지만, 일반적으로 우리가 아는 재벌이나 돈만 아는 그런 회사가 아닌 인간적이고 민주적인 기업, 부조리를 최소화한 기업, 사회에 직접 공헌하는 기업, 공동체로서 구성원 개인을 보호하는 기업을 만들고 싶었다”고 털어 놓았다.

그러나 이 대표는 파산했다. 그가 꿈꿨던 조직과 일은 지금의 사회적기업·소셜벤처 등 이른바 ‘체인지 메이커’가 추구하는 것과 멀지 않다. 그의 파산은 과거지만 그래서 그의 이야기는 현재형이다. 지난 1월16일 이 대표가 창업가들을 위한 공간인 ‘스타트업얼라이언스’에서 청년창업가에게 한 강연을 직접 듣고, 2월6일 서울 마포의 한글문화연대 사무실을 찾아 추가 인터뷰를 1시간 동안 진행했다.

“기업을 운영해보니까 결과가 나오더라. 새로운 기업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 힘을 축적해서 큰 영향력을 끼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2000년까지 6∼7년 동안은 그런 생각으로 순방향으로 갔다. 그러다가 벤처 붐이 확 불면서 바뀌었다. ‘이러다 뒤처지겠는데, 큰돈을 당겨서 빨리 키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빨리 힘을 얻지 않으면 그나마 놓칠 것 같았다. 신념에 돈이 따라온다는 신념이 흔들린 거다. 그 뒤로 돈을 따라다녔다.”

이 대표는 그의 생각이 어떻게 파산을 불러왔는지 스타트업얼라이언스에 모인 70여 명에게 담담하게 설명했다. 이 대표는 1994년 아동용 교육 콘텐츠 회사를 창업했다. 1997년 말 외환위기 때 휘청하기도 했지만 뚝심 있게 회사를 지켜냈다. 당시 정보통신부상을 두 번이나 받았고, 2000년 ‘신 인간기업 선언’을 회사 내부적으로 발표하는 등 이 대표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러다 2001년 벤처 열풍에 올라탄 게 화를 불렀다. 당시 벤처기업으로 몰려든 돈은 정보기술(IT) 기업이 모여 있는 서울 강남 테헤란로의 술집들까지 흥청망청하게 만들 정도였다. “좋은 기업을 만들려면 꾸준히 노력해야 했다. 그때 욕심을 냈다. 어떤 갈림길 같은 데서 저쪽에 광채가 비치니까 저쪽으로 가는 게 낫지 않을까. 절벽이 있는 것을 모르고 갔다. 결과적으로 기업의 혁신과 (기업이) 오래가야 한다는 논리가 이런 오판을 불렀다고 생각한다.”

광채 뒤 절벽을 기억하라

이 대표는 자신이 가진 “새로운 기업문화를 만들겠다는 힘이 얼마나 강한지, 나름 향기를 가지고 있는 것을 확신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외부 지원을 통해 자신의 힘을 더 크게 만드려 했다. 그렇게 힘을 갈구하는 마음이 그를 고꾸라지게 했다. 그는 매출액 100억원을 찍은 뒤 투자받은 돈을 갚지 못해 파산했다.

“상황마다 다를 것이다. 자기가 그 힘을 내 칼처럼 쓸 수 있으면 잡아도 된다. 그런데 자기가 잡은 게 칼날이 될 소지가 크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을 하면 자기 돈으로 하는 게 아니다. 정부 지원을 받든, 기업 투자를 받든, 은행 대출을 받든, 자기 돈이 아니면 그걸 관리하고 굴릴 수 있는 힘이 있을 때 받아야 한다. 자기가 (손잡이가 아닌) 칼날을 잡는 꼴이 되어버리면 그때는 돈에 손을 베이는거다.”

박근혜 정부가 내건 ‘창조경제’는 1990년대 말부터 분 벤처 열풍을 떠올리게 한다. 정부는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지역마다 만드는 등 주도적으로 창업을 지원하고 있고, 민간 부문의 스타트업 투자도 크게 늘고 있다. 이 대표는 사회적 기업이 이런 때일수록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자기 돈이 아니면 그걸 관리하고 굴릴 수 있는 힘이 있을 때 받아야 한다. 자기가(손잡이가 아닌) 칼날을 잡는 꼴이 되어버리면 그때는 돈에 손을 베이는 거다.”

“사회적 기업으로 출발하겠다고 했을 때는 더 넓은 사회적 목적을 가지고 있는 거다. (투자를 받다보면) 자칫 그게 사라져버리는 문제가 생긴다. 자신이 내걸었던 것과 완전히 다른 일을 해야 할 상황이 올 수 있으니까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적 기업을 하면서 내부 운영 원칙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갔으면(투자를 받았으면) 좋겠다.”

질문은 짧고 답은 길었다. 그는 사업에 실패하면서 시력도 잃었다. 1급 시각장애인이다. 회한도 있으련만 “그 당시로 돌아가면 어땠을까 생각하기보다 자신의 역사에 대해 스스로 ‘괜찮은 역사’라는 느낌을 사람들이 가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 대표는 젊은이들이 사업에 뛰어드는 것도 권장한다고 했다. 사업에 뛰어들어 변화를 꿈꾸는 이에겐 “일단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기업이 무슨 정당이나 운동단체는 아니지 않나. 기업이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그만의 고유한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기업을 선택했다고 하더라도 기업의 속성을 놓치면 그 목적 자체가 달성되지 않는다. 일하면 사람들이 돈을 받아야하고, 누군가는 지휘를 해야 하고, 누군가는 지휘에 맞춰 움직여야 하는 기본적인 것들 말이다. 좋은 목적을 갖고 일한다고 하면서 회사 내에선 옛날 기업처럼 똑같이 하고 있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사회적 기업을 하려는 사람은 기업으로 생존을 잘 유지하되 체질은 기존 기업과 차별화해 기업으로서의 가치를 새롭게 만들 필요가 있다. 그것을 버리고 (좋은) 목적만 강하게 생각하면 다 잃게 된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는 회사를 창업할 때 3가지 신념이 있었다. △착하게 사는 사람도 기업 경영에서 성공할 수 있다. △민주적 의사소통이 개인 능력과 업무 효율을 높여줄 것이다. △기업과 개인의 가치를 추구하며 열심히 뛰다보면 돈은 따라온다.

20 대 80의 법칙은 잊어라

“그 생각은 여전하다. 한 사람의 영특하고 걸출한 지도자가 있으면 그 조직의 행운일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직원을 20 대 80으로 구분해, 나머지 80은 의미 없는 인간들이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많은 자원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민주적 의사소통은 대단히 필요하다. 서로 상상력을 일으키면서 일의 효율도 높이고 창의력도 여기서 나온다.”

그는 사업에 실패한 뒤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감옥에서 돌아와 사업에 뛰어든 것처럼 출판기획과 글쓰기, 시민운동을 하고 있다. 학생운동과 기업 등 ‘변화를 만드는 그의 노력(체인지 메이커)’은 이제 시민운동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책에 사인을 청하자 그는 ‘힘들때 웃는 힘’이라고 썼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녹취 천다민 인턴기자 abeair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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