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사회적 연대’ 호소가 들리지 않나요

전광판 위로, 굴뚝 위로 올라간 씨앤앰과 스타케미칼 노동자들 응답 없는 외침…

차광호 해고노동자는 “빨리 공장으로 돌아가 동료들과 일하고 싶다”
등록 2014-12-27 15:12 수정 2020-05-03 04:27

임정균 케이블방송비정규직지회 정책부장은 “약이 듣지 않을 만큼 몸 상태가 나빠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사회적 연대”를 호소했다.
“고공농성을 시작한 뒤 생긴 방광염이 심각하다. 약을 먹곤 있지만 호전이 안 된다. 농성이 길어지면서 전자파 때문인지 잠깐씩 의식을 놓는 일도 잦아지고 있다. 성덕(강성덕 정책팀장)이는 얼굴 한쪽이 계속 붓는다. 오른쪽 어깨도 거의 못 쓴다. 전열기구를 사용할 수 없어 침낭과 두꺼운 옷으로 버티고 있다. 성덕이에겐 30일 정도면 끝날 거라고 말했지만 속으론 앞에 ‘어떤 숫자’ 하나가 더 붙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사 쪽은 해고가 아니라 ‘계약 기간 만료’라고 했으나, 해고자가 생긴 업체 모두 계약 기간이 남아 있었다. 싸움 기간이 길어지면서 조합원들 생활이 다 망가지고 있다. 집에 쌀이 떨어지고 가스가 끊기거나 병원에서 아이 진료비를 내지 못하는 조합원도 있다.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우리는 너무 절박했다. 3자 협의체(원청-협력업체-노동조합)가 만들어지고 약간의 기대가 없진 않았다. 이틀째 사 쪽의 입장문(영업·설치 전문 하도급업체 설립)을 본 뒤 시간 끌기 한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우리의 문제는 사회적 연대만이 해결할 수 있다. 더 알려져야 하고 더 관심 가져주셔야 한다.”

프레스센터(서울 중구) 앞 광고탑에서 고공농성 중인 씨앤앰 비정규직 노동자 임성균·강성덕씨가 건강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올라온 조합원을 부둥켜안고 있다(왼쪽). 스타케미칼(경북 칠곡군 석적읍) 굴뚝에서 고공농성 중인 차광호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대표가 손을 흔들고 있다. 왼쪽부터 한겨레 김성광 기자, 박승화 기자

프레스센터(서울 중구) 앞 광고탑에서 고공농성 중인 씨앤앰 비정규직 노동자 임성균·강성덕씨가 건강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올라온 조합원을 부둥켜안고 있다(왼쪽). 스타케미칼(경북 칠곡군 석적읍) 굴뚝에서 고공농성 중인 차광호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대표가 손을 흔들고 있다. 왼쪽부터 한겨레 김성광 기자, 박승화 기자

씨앤앰과 스타케미칼 고공농성의 배경엔 공통점이 있다. 해고다. 국내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 3위 업체인 씨앤앰은 하도급업체 변경 때 전원 고용을 승계하겠다는 지난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새 협력업체들의 고용 승계 거부로 협력업체 노동자 109명이 해고됐다. 투쟁 과정에서 협력업체들은 동시다발로 직장을 폐쇄했다. 폴리에스테르 원사 제조업체인 스타케미칼은 2007년 파산한 옛 한국합섬을 인수해 2011년 재가동했다. 2013년 공장 가동을 중단한 사 쪽은 권고사직을 거부한 29명을 해고했다.

<font size="3"><font color="#C21A1A">더 알려져야 하고 더 관심 가져주어야</font></font>

‘먹튀’ 의혹도 같다. 씨앤앰의 대주주는 ‘국민유선방송투자’다. MBK파트너스(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사위인 김병주씨가 만든 사모펀드)와 맥쿼리코리아오퍼튜니티(오스트레일리아 사모펀드 맥쿼리 계열)가 컨소시엄으로 씨앤앰을 인수했다. 당기순이익의 81.6%(1344억원)를 주주들이 배당금으로 가져갔다. 수익성 악화로 씨앤앰을 되팔기 위해 두 사모펀드가 노동조합을 희생시켜 매각 가치를 높이려 한다는 분석이 많다.

스타케미칼이 옛 한국합섬을 인수한 뒤 공장 가동을 중단한 건 1년8개월 만이었다. 투자 없이 라인을 절반만 가동했고, 적자와 경기침체를 이유로 돌연 폐업을 선언했다. 애초부터 헐값에 공장을 인수해 상품가치를 높인 뒤 팔아치울 의도였다고 노동자들은 판단한다.


<font color="#C21A1A">“우리는 너무 절박했다. 3자 협의체(원청-협력업체-노동조합)가 만들어지고 약간의 기대가 없진 않았다. 이틀째 사 쪽의 입장문(영업·설치 전문 하도급업체 설립)을 본 뒤 시간 끌기 한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우리의 문제는 사회적 연대만이 해결할 수 있다. 더 알려져야 하고 더 관심 가져주셔야 한다.” -임정균 케이블방송비정규직지회 정책부장</font>


고공농성은 절망에 내몰린 노동자들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선택이었다. 씨앤앰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파업에서 복귀했으나 회사는 일거리를 주지 않았다. 대주주가 해결하라며 MBK파트너스 건물을 점거했다가 경찰에게 끌려나왔다. 국회의 압박도 소용없었다. 11월12일 임정균·강성덕 두 노동자는 광고판 위에 섰다.

스타케미칼 사 쪽은 차광호 당시 노조위원장이 구조조정에 동의하지 않자 일방적으로 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새로 구성된 집행부는 회사의 권고사직안을 받아들였다. 거부한 노동자들은 조합원에서 제명했다. 사 쪽과 노조는 지난 5월26일 ‘청산·매각 관련 합의서’를 쓰고 공장에서 철수했다. 다음날 새벽 차광호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대표는 다급하게 굴뚝으로 올라갔다. 굴뚝 위 그의 전화기 저편에선 바람에 펄럭이는 비닐 소리가 선명했다.

“낙동강 강바람에 더해 날씨까지 안 좋아 바람이 세다. 바람막이 비닐이 많이 떤다. 몸무게가 크게 감소했다. 운동을 하지만 기력이 많이 떨어졌다. 팔굽혀펴기 숫자도 줄어들고 있다. 아직까진 견딜 만하다. (굴뚝 생활이 210일을 향해 가는데) 농성이 일상이 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않을 수가 없다. 예전에 한국합섬 5년 투쟁(그는 2007년 5월 한국합섬이 파산한 뒤 스타케미칼에 인수될 때까지 5년간 빈 공장을 지켰음)을 할 때도 고공농성은 하지 않았다. 그땐 조합원이 많았지만 지금은 11명밖에 안 남았다. 이 방법밖에 없었다. 굴뚝 위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보다 문제가 해결되는 게 중요하다. 하늘에서 빈 공장을 보고 있으면 같이 일했던 동료들이 생각난다. 내가 20년 동안 일했던 곳이다. 한 장소 한 장소마다 추억이 어려 있다. 빨리 공장으로 돌아가 같은 기억을 가진 동료들과 일하고 싶다. 마음이 가장 고되다. 보고 싶은 사람들 보지 못해 힘들다. 목욕을 하고 싶다.”

<font size="3"><font color="#C21A1A">“기댈 곳은 공장 안의 동료들뿐”</font></font>

쌍용자동차 두 해고노동자 김정욱·이창근에게도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11월13일 대법원이 정리해고 무효를 파기환송 하자 그들은 “기댈 곳은 공장 안의 동료들뿐”이라고 했다.

고공농성으로 사회적 압박이 심해지자 씨앤앰 사 쪽은 3자 협의체를 제안했다. 12월15일까지 7차례 열렸다. 사 쪽 안과 노동자들 요구의 간극이 커 해법을 찾지 못한 채 교착상태다. 12월17일 금속노조와 스타케미칼 사 쪽 관계자가 고공농성 이후 처음 만났다. 외면하던 사 쪽이 금속노조의 교섭 요청에 처음 반응했지만 진전은 전혀 없다. 12월30일 2차 만남이 예정돼 있다.

칠곡=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