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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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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병원과 싸울 수밖에 없었나

대학병원에서 제왕절개 수술 뒤 경련 그리고 ‘저산소성 뇌손상’…
‘지속적 식물인간 상태’ 가족을 둔 <한겨레21> 기자가 의료사고 원인을 밝히기 위해 골리앗과 싸운 849일
등록 2014-11-13 15:08 수정 2020-05-03 04:27
의료사고는 누구에게나 느닷없이 찾아온다. 병원과 의사를 믿고 따랐을 뿐인데 그 결과는 처참하다. 사진 정용일 기자

의료사고는 누구에게나 느닷없이 찾아온다. 병원과 의사를 믿고 따랐을 뿐인데 그 결과는 처참하다. 사진 정용일 기자

의료사고는 누구에게나 느닷없이 찾아옵니다. 병원과 의사를 믿고 따랐을 뿐인데 그 결과는 처참합니다. 죽음을 맞기도 하고, 죽음보다 가혹한 삶을 이어가기도 합니다.
지연은 선생님이 꿈이었습니다. 임용고시를 준비하다 학원 강사가 됐고 2007년 결혼했습니다. 남편은 1997년 3월 같은 대학, 같은 학과에서 만난 동갑내기 기영이었습니다. 10년간 연애한 둘은 외딴 곳에 신혼살림을 차렸습니다. 기영의 일터를 지연이 배려한 것입니다. 몇 달간의 신혼생활에서 지연은 임신을 했습니다. 뜻밖의 선물에 부부는 행복했습니다. 손재주가 많은 지연은 아기 모빌을 만들며 출산일을 기다렸습니다. 기영은 씀씀이를 줄여가며 가장으로 성장했습니다. 2008년 9월9일 아기가 세상에 태어난 날, 지연은 쓰러졌습니다. 아기는 단 한 번, 안아봤습니다. 하지만 엄마의 다정한 눈빛을, 아기는 기억할 수 없겠지요. 아니, 자신의 삶과 바꾼 그 지독한 사랑을 아이가 잘 받아들일 수 있을까, 행여나 자책하지 않을까, 기영은 두렵습니다. 지연과 기영, 그리고 아이는 나의 가족입니다. 의료사고가 발생한 2008년 9월9일부터 의료분쟁이 종료된 2011년 6월24일까지 나는 그 곁을 지켰습니다. ‘왜 그렇게 됐을까.’ 그 물음에 해답을 찾으려고 말입니다. 함께 걸었던 2년10개월의 발자취를 기록합니다. 등장인물의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_편집자


“병원과의 싸움에서 이기더라도 정말 슬플 것 같습니다. 의사가 최선을 다했다면 지연이 살 수 있었는데 병원의 잘못으로 그렇게 된 것이라면, 정말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매일 마음을 위로했는데….” 기영이 말했다.


2008년 9월9일 오후 3시30분 단 한 번의 만남

“엄마, 보세요.” 간호사가 아기를 안고 분만실에 들어서자 지연(30)이 해맑게 웃었다. 오전 수술로 여전히 출혈 중이었지만 지연은 아이와의 첫 만남에 설레었다. 따뜻한 눈빛으로 아기를 안고는 볼을 만졌다. 몸이 퉁퉁 붓고 혈압이 높아져 숨이 가빠지는데도 36주간 뱃속에서 지켜온 아기였다.

임신 전 키 162cm에 몸무게 48kg이었던 지연은 70.5kg의 임산부가 됐다. 22일 전 자궁수축 증세로 대학병원에 입원한 뒤 그의 몸은 9kg이나 불어났다. 혈압은 160/90(정상 120/80)으로 올랐다. 지연은 조기분만을 바랐다. 산부인과 교수는 단호했다. “출산예정일(9월18일)에서 하루만 모자라도 미숙아예요.” 9월8일 과체중, 고혈압, 부종에 이어 단백뇨(소변에서 단백 성분 다량 검출)까지 나왔다. 임신중독증인 전자간증이었다. 9월9일 오전 9시29분께 지연은 하반신을 마취하고 제왕절개 수술을 했다. 아기는 2.94kg. 건강했다.

아기가 신생아실로 돌아가고 지연이 남편 기영(30)에게 말했다. “머리가 아파. 눈앞도 뿌옇고.” 지연의 부은 발을 주무르던 기영이 간호사에게 알렸다. 오후 5시께였다. 30분 뒤 교수가 회진을 왔지만 별다른 처치가 없었다. 저녁 6시20분께 지연이 첫 경련을 했다. 간호사는 의사를 부르러 뛰어나가며 지연을 깨우라고 했다. “지연아, 지연아.” 기영은 지연을 잡고 흔들었다. 눈동자가 돌아가고 몸이 딱딱하게 굳어가는 지연의 모습을 지켜봤다. 주치의(전공의)가 들어와 소리쳤다. “보호자는 나가세요!”

2008년 9월9일 저녁 7시30분 마지막 대화

‘지연은 태어나서 경련을 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왜 저럴까?’ 분만실 밖에서 기영이 서성댔다. “임신중독증 때문에 발생한 증상입니다. 이제 괜찮습니다.” 전공의가 나와 설명했다. 전자간증에 이어 자간증이 일어났다는 뜻이었다. 자간증이란 임산부에게 경력발작과 의식불명을 일으키는 병이다. 첫 경련 이후 지연은 다행히 깨어났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어머니가 “괜찮으냐”고 물었다. “네.” 지연이 답했다. 기영을 쳐다보고는 지연이 어린아이처럼 말했다. “콜라 먹고 싶어.” 대학교 1학년 때 캠퍼스 커플로 만나 10년의 연애 끝에 결혼했지만 지연의 이런 모습이 낯설었다. 지연을 안심시키려 기영이 농담을 던졌다. “코카콜라? 펩시콜라?” 옆에 있던 전공의가 거들었다. “일어나면 남편이 한 박스 사줄 거예요.” “내일이면 다 사줄게. 걱정하지 마.” 기영도 맞장구쳤다. 지연은 눈을 스르르 감았다.

기영을 잠시 다독이던 어머니가 인사했다. “지연아, 엄마 갈게.” 대답이 없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초점 없이 먼 곳을 바라보는 듯했다. 또 이상했다. 기영이 간호사를 다급하게 불렀다. “지연이가 절 알아보지 못해요.” 주치의가 다시 뛰어들어왔다. “보호자는 나가세요.” 저녁 7시36분께, 2차 경련이었다.

“이지연씨, 이지연씨….” 의료진의 외침이 분만실 밖에까지 흘러나왔다. 기영은 불안감에 웅크려 주저앉았다. 지연의 혈압은 77/42로 떨어졌다. 산부인과 주치의는 이때 처음 신경과에 전화했다. 퇴근 시간 이후라 교수는 없었다. 신경과 전공의는 신경안정제를 처방했다. “간질을 멈추게 하려고 약을 썼어요. 30분 내지 1시간 동안 잠을 잘 거예요.” 주치의가 말했다. 시간이 한참 지났지만 지연은 깨어나지 않았다. 분만실을 들락날락하던 의료진은 밤 9시45분께 컴퓨터단층촬영(CT)을 했다. “별 이상이 없네요.”

2008년 9월10일 새벽 2시 너무 적게, 너무 많이

의식이 돌아오지 않은 채 지연이 10여 차례 더 경련했다. ‘간질중첩증’이었다. 뇌가 발작하며 산소와 혈당을 소모하는 것이다. 첫 경련(저녁 6시20분)이 발생한 지 4시간32분이 지난 밤 10시52분께 혈액검사를 했다. 그 결과는 밤 11시33분께 보고됐다. 지연의 혈당 수치는 20mg/㎗. 살아 있다는 게 기적일 정도로 낮은 수준이었다. 고려대 안암병원이 저혈당 입원환자 60명(50mg/㎗ 이하)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30mg/㎗ 이하는 9명 전원(100%)이, 40mg/㎗ 이하 15명 중 10명(67%)이, 50mg/㎗ 이하 27명 중 8명(30%)이 사망했다.


“지연아, 지연아.” 기영은 지연을 잡고 흔들었다. 눈동자가 돌아가고 몸이 딱딱하게 굳어가는 지연의 모습을 지켜봤다. 주치의(전공의)가 들어와 소리쳤다. “보호자는 나가세요!


주치의는 50% 포도당 10cc를 주입했다. 의학 교과서를 보면, 심한 저혈당증에는 50% 포도당 50~100cc를 즉각 투여하라고 돼 있다. 10cc는 턱없이 모자란 수치다. 25분이 지났다. 혈당은 30mg/㎗. 여전히 너무 낮았다. 다급해진 주치의는 50% 포도당 100cc를 줬다. 밤 12시30분께 혈당은 277mg/㎗로 치솟았다.

산소포화도는 90%대를 근근이 유지했다. “(산소포화도가) 80%대로 떨어지면 경련하네.” 주치의가 혼잣말했다. 그 말을 들은 기영은 모니터를 뚫어지게 지켜봤다. 지연의 발작이 이어졌다. 새벽 1시41분께 산소포화도가 56%까지 떨어졌다. 인공호흡기를 달려고 간호사가 기계호흡장치를 가져왔다. “안 쓰는 기계라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네.” 쑤군대는 소리에 기영은 더 불안해졌다. 새벽 2시께 응급의학과 전공의가 지연의 어깨를 뚫고 기도 내 삽관했다. 인공호흡기를 달자 지연의 경련이 멈췄다. 2차 경련이 발생하고 지연이 의식을 잃은 지 6시간 만이었다.

2008년 9월10일 아침 8시20분 “처음 들어요”

산부인과는 의료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곳이다. 의료분쟁조정법에 ‘무과실 의료사고 보상제도’가 생기면서 산부인과 전공의가 줄어들었다고 한다. 산부인과 수술실 모습. 한겨레 김정효 기자

산부인과는 의료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곳이다. 의료분쟁조정법에 ‘무과실 의료사고 보상제도’가 생기면서 산부인과 전공의가 줄어들었다고 한다. 산부인과 수술실 모습. 한겨레 김정효 기자

산부인과 교수가 나타났다. 그에게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아침 회진이었다. “3주나 입원했다가 아이를 낳았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생깁니까?” 어머니가 따졌다. 교수는 당당했다. “얼마나 다행입니까. 일반병원이었으면 큰일이 날 뻔했어요. 대학병원에서, 그것도 분만실에서 경련이 일어났고 의료진이 집중 치료해 환자를 살린 거예요. 안 그랬으면 사망했을지도 몰라요.” 밤새 초조하게 교수를 기다리던 기영은 소름이 돋았다. “사망? 그런 말 하지 마십시오.”

어머니는 밤새 지연의 곁을 지켰던 주치의를 불러다 조용히 물었다. “병원에서 하는 게 영 자신이 없어 보이고 불안해요.” 주치의가 끄덕였다. “경련을 이렇게 많이 하는 환자는 처음이에요.” 다른 큰 병원이 받아준다면 산소 펌프질을 하며 가라고 했다. ‘의식이 없는 지연을 옮기는 게 괜찮을까.’ 기영은 복잡해졌다.

오전 10시10분께 신경과 교수가 회진했다. “산후 뇌혈관 병증입니다.” 그는 자신 있게 말했다. “일주일만 푹 자게 합시다. 간질 기운을 힘센 약으로 다잡는 겁니다. 그다음에 깨어납니다.” 의사의 말을 기영은 믿고 싶었다. 지연은 신경과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답답한 마음에 기영은 산부인과 주치의를 찾아갔다. 6개월간 지연을 진료했고 지난밤에도 함께한 그에게 지연이 왜 이렇게 됐는지 설명을 듣고 싶었다. “처음 듣는 병명이에요. 아침에 (신경과) 교수님이 한번 보라고 리포트를 줘서 읽어보려고요.” 산부의과 교수도 그랬다. “나도 처음 봤어요.” 기영은 기가 막혀서 할 말을 잃었다.

2008년 9월19일 “모르겠어요”

깨어날 것이라고 예고된 날, 지연은 ‘저산소성 뇌손상’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자기공명영상(MRI) 검사 결과였다. 산소와 혈당이 공급되지 않아 뇌가 망가졌다는 뜻이다. 지속적인 식물인간 상태가 된다고 했다.

의료진을 찾아다니며 기영은 그 원인을 묻고 또 물었다. 신경과 교수는 “솔직히 모르겠다”고 했다. “너무 무책임한데요. 사고 당시 환자에 대한 오더(order·명령)권은 신경과에 없었던 상황입니다. 저희가 좀더 적극적으로 개입했어야 한다는 아쉬움은 남아요.” 산부인과 교수는 발뺌했다. “저희는 간질 전문가가 아니에요. MRI 소견을 보고 깜짝 놀랐는데 진료기록상 그런 (저산소성) 시점이 없어요. 이해가 되지 않아요.” 주치의는 쏘아붙였다. “최선을 다했어요. 저 때문에 이렇게 됐다는 거예요?” 기영은 무너졌다. “지난 며칠간 나는 지연이가 왜 그렇게 됐는지, 그를 만난 1997년 3월2일부터 오늘까지 11년을 하루하루 다 떠올려봤어요. 환자가 식물인간이 된다는데 의사라면서 그 이유도 한번 생각해보지 않습니까?”

‘왜 그렇게 됐을까’ 의료사고 피해자 가족은 그 답을 찾아야 한다. 분만 직후 저산소성 뇌손상을 입은 임산부 지연 쪽을 대리한 김성수 변호사(법무법인 지평)가 지난 2년4개월의 소송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김진수 기자

‘왜 그렇게 됐을까’ 의료사고 피해자 가족은 그 답을 찾아야 한다. 분만 직후 저산소성 뇌손상을 입은 임산부 지연 쪽을 대리한 김성수 변호사(법무법인 지평)가 지난 2년4개월의 소송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김진수 기자

기영은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재진단을 위해 더 큰, 더 유명한 병원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저산소성 뇌손상 환자를 받아주는 병원은 없었다. 눈물로 매달린 끝에 한 간질 전문의가 재진단을 허락했다. 11월3일 지연은 대학병원을 퇴원했다. 아이를 낳으려고 입원한 지 78일 만이었다.

간질 전문의가 지연을 재진단했다. “식물처럼 살겠지만 사람처럼 살 순 없습니다.”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원인이 어렴풋이 드러났다. “임신중독증이 간질중첩증의 한 원인”이라고 그는 말했다. 기도 삽관이 늦었다는 인상도 남겼다. “연속적으로 계속 30분 이상 발작하면 기도 삽관을 해요. 6시간이 지나 (기도 삽관을) 했다면 그 안에 아마 (환자의) 의식이 돌아오고 발작이 멈췄기 때문일 거예요.”

2009년 2월26일 소송을 제기하다

‘지연이 왜 이렇게 됐을까.’ 기영은 여전히 안갯속이었다. 원인을 찾지 못한 채 그는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또 다른 질문에 부딪혔다. 병원에 가서 난장을 피울까, 병원에 불을 지를까, 의사의 뒤를 밟을까, 지연을 따라갈까, 나쁜 생각이 맴돌았다. 지연이 지켜낸, 어머니가 돌보는 아기가 그때 떠올랐다. 기영과 지연의 글자를 하나씩 따서 아기 이름을 ‘기연’이라고 지었다.

아기를 위해서라도 기영은 원인을 찾아야 했다. 지연이 ‘저산소성 뇌손상’이라는 진단이 나오자마자 기영은 진료기록을 확보했다. 의료진과 면담할 때도 녹음했다. 지연의 진료기록과 녹취록을 검토한 김성수 변호사(법무법인 지평)가 의료진의 과실을 다섯 가지 지적했다. ① 급격한 체증 증가와 고혈압, 부종, 호흡곤란 등 전자간증(임신중독증) 징후가 보이는데도 조기분만을 결정하지 않았다, ② 분만 직후 경련 전조 증상인 심한 두통과 시야 장애를 호소했는데도 무시했다, ③ 뇌기능이 멈출 수 있는 저혈당(20mg/㎗)이 발생했는데 부적절하게 처치했다, ④ 경련이 계속 이어지는데도 기도 삽관을 하지 않고 6시간이나 방치했다(저산소증), ⑤ 전자간증의 위험성에 대해 보호자에게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

기영은 지연을 대신해 병원과 싸우기로 했다. ‘의료사고’가 발생한 지 6개월 만에 병원을 상대로 손해배상금 5억원을 청구했다. 수백만원의 소송비에 지연 병원비(월 100만원씩), 아기 생활비까지 기영이 떠안아야 했다. 병원(피고) 쪽은 “오로지 결과만을 두고 의료과오로 몰아가는 것은 지나친 처사”라고 반박했다.

2009년 9월21일 칼자루는 다시 의사에

의료소송에서 진료기록 및 신체감정은 필수다. 그 감정은 또 다른 의사가 맡는다. 그 의사는 법원이 정한다. ‘가재는 게 편이 아닐까.’ 실제로 그랬다. 첫 신경과 감정 의사는 진료기록 감정을 아예 거부했다. 두 번째 의사는 더 확실한 ‘우군’이었다. 진료기록에 “몸이 나른하고 눈앞이 뿌옇게 보여”라고 적혀 있는데도 그 감정 의사는 지연이 “두통과 시야 흐름을 호소한 것은 없”다고 거짓 답변했다. 산소포화도가 90% 이하로 떨어진 지 5시간 만에 기도 삽관을 한 것도 “지체가 아니”라고 단언했다. 혈당 수치가 20mg/㎗가 나왔을 때 의료진이 50% 포도당 10cc를 정맥 투여한 것도 “적절한 의료행위”라고 평가했다. 의학 교과서를 뒤집는 주장이었다.

신체감정을 맡은 재활의학과 의사는 기대 여명을 줄여 향후 치료비를 깎았다. 지연을 재진단한 간질 전문의는 “합병증이 오지 않도록만 돌보면 (지연이) 자기 생명만큼 산다”고 말했다. 30살 여성의 남은 생애는 평균 55년이다. 그러나 감정 의사는 지연이 11년 더 살 것이라고 했다. 향후 치료비가 20%로 줄었다. 의사에 대해 기영은 거듭 절망했다.

2010년 5월20일 돌변한 재판장

의료사고 사건을 맡은 재판장은 신경과 의사의 진료기록 감정 결과에 귀기울였다. “이번에는 분만이 지체됐는지 산부인과 의사에게 물어보라.” 지연 쪽은 산부인과 진료기록 감정서를 내면서 간질 전문의에게도 사실조회를 신청했다. 지연을 직접 진단한 그는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 같았다.

한 달 만에 재판장의 태도가 돌변했다. 산부인과 진료기록 감정은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분만 결정이 늦어져 과실이라는 부분은 인정하기 어렵다. 경련 이후 조치가 적절했는지 원·피고가 살펴보라.” 지난번에는 필요하다더니 이번에는 필요 없다니, 무슨 말을 했는지 스스로가 기억하지 못하는 듯했다. 재판장은 그만큼 사건에 관심이 없어 보였다. 병원 쪽은 몰아쳤다. 기영이 지목한 간질 전문의에게 사실조회를 함께 신청하며 맞불작전을 펼쳤다.

재판부가 어이없이 일을 처리했다. 한 달 전에 제출한 지연 쪽의 것을 제쳐놓고 병원 쪽의 사실조회서를 먼저 발송했다. 기영이 항의했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병원 쪽 신청서를 받아본 간질 전문의는 답변을 거부했다. 뒤늦게 도착한 지연 쪽 사실조회서에 대해서도 원칙적으로 답했다. “발작에 의한 저산소증, 저혈당 상태 모두 저산소성 뇌손상을 일으킬 수 있다.” 당신들의 의료분쟁에 휘말리기 싫다는 선언이었다.

2010년 9월17일 “적절하지 않은 것”

재판장이 바뀌었다. 대법원이 ‘법관인사 이원화’(지법·고법 판사 분리) 정책을 펼치면서 예정이 없던 인사가 났다. 반전의 기회였다. 기영은 간질중첩증 대처 프로토콜(지침)이 있는 대형 병원의 신경과 의사에게 진료기록 감정을 재신청했다. 세 번째 도전이었다.


“지연아, 지연아.” 기영은 지연을 잡고 흔들었다. 눈동자가 돌아가고 몸이 딱딱하게 굳어가는 지연의 모습을 지켜봤다. 주치의(전공의)가 들어와 소리쳤다. “보호자는 나가세요!


감정 의사는 “기도 삽관 시기는 특별한 문제가 없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저혈당은 뇌손상에 일정 부분 기여한 것을 배제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특히 혈당 수치가 20mg/㎗가 나오면 “50% 포도당 25~50g을 주게 돼 있어 10cc 투여는 적절한 용량은 아닌 것으로 생각된다”고 못박았다. 완곡한 표현을 썼지만 의료과실을 인정한 것이다. 새 재판장은 저혈당에 대한 대처가 적절했다면 그 근거를 밝히라고 병원 쪽에 주문했다. 병원 쪽 답변은 이랬다. “최초 10cc 투여는 포도당 농도가 혈관에 무리가 갈 수 있음을 고려한 것이다. 20여 분 후 100cc를 추가 투여했기 때문에 총용량이 부족하지 않았던 점을 참작해 책임을 70%로 제한해달라.” 의료과실을 고백한 셈이다.

2011년 4월28일 “분만 시기 늦었다”

재판부가 조정기일을 열었다. 60대 산부인과 의사가 조정위원으로 나와 “분만 시기가 늦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체중의 급격한 증가나 부종이 뚜렷하다. 혈압 상승도 자주 있었다. 전자간증 증세가 분명했다.” 병원 쪽은 “단백뇨가 확인되기 전에는 조기분만을 권하지 않는다. 의학 교과서와 달리 대응했다가 더 곤란해진다”고 해명했다. 재판부는 손해배상금을 최종 제안하라고 했다. 지연 쪽은 5억원을, 병원 쪽은 1억원을 제시했다.

패소할 가능성이 짙어지자 병원 쪽은 배상금을 줄이는 데 집중했다. 첫째, 치료비를 계산할 때는 ‘호프만식 계산법’(현재가액 계산법)을 써야 한다고 했다. 둘째, ‘1인 24시간’ 간호가 필요하다는 신체감정서가 나왔지만 간병비를 50%로 깎으라고 했다. 지연이 의식은 물론 움직임도 없다는 전제였다. 그러나 지연은 자발적으로 움직인다. 눈을 뜨고, 울기도 한다. 다만 그 행동이 의미가 없을 뿐이다.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고, 말을 알아듣지 못하니까 말이다.

2011년 6월24일 화해권고 결정

재판부는 병원이 지연에게 2억6600만원을, 기영에게 1천만원을, 아기와 지연의 부모에게 2천만원을 지급하라고 화해권고 결정을 내렸다. 양쪽이 14일 이내에 이의를 신청하지 않으면 확정판결과 동일한 효력이 생긴다.

“병원과의 싸움에서 이기더라도 정말 슬플 것 같습니다. 의사가 최선을 다했다면 지연이 살 수 있었는데 병원의 잘못으로 그렇게 된 것이라면, 정말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매일 마음을 위로했는데….” 기영이 말했다. 김성수 변호사가 의료사고 피해자는 다 비슷한 마음이라고 했다. 오히려 병원이 “끝까지 가보자”고 배짱을 부린다. 피해자 가족에게는 ‘삶’이, 병원에는 ‘돈’이 걸린 문제니까 그랬다.

이례적으로 병원 쪽이 화해권고를 수용하겠다고 먼저 밝혔다. 지연 쪽도 그렇게 하기로 결심했다. 의료사고가 발생한 지 2년10개월, 의료소송을 제기한 지 2년4개월 만이었다. 3억원 가까운 배상금을 병원이 내놓자 보험회사들도 ‘재해’(의료과실)로 인정해 추가 보상금을 지급했다. 기영은 병원을 한 차례 찾아갔다. 그가 의료진을 만나 사과를 받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 누구도 차마 묻지 못했다.

2014년 11월7일 에필로그

지연은 ‘지속적 식물인간 상태’로 입원 중이다. 기영과 손잡고 병원을 찾는 아이는 “엄마가 아파서 코~ 잔다”고 말하곤 한다. 할머니가 기른 그 아이는 내년 3월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분만 전후 지연을 진료한 산부인과 교수는 대학병원에서 나와 산부인과 전문병원으로 옮겼다. 지연을 산후 뇌혈관 병증으로 진단한 신경과 교수도 지방의 작은 병원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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