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벌어진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의 ‘탈당 시사 파동과 당의 혼돈’은 제1야당의 자질을 재차 묻게 만들었다. 야권을 정국 운영의 짝으로 예우하지 않는 현 여권의 태도 앞에서 ‘우린 그런 대우를 받아도 싸다’는 모멸감을 제1야당 스스로 부추긴 꼴이란 비판도 다시 고개를 든다. 임시 당대표(박영선)가 ‘집을 나가겠다’고 고심하며 사흘간 당 업무를 중단했던 혼란은 왜 일어났을까?
원내대표+비대위원장은 역량 초과새정치연합 의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박 원내대표가 주요 결정의 고비마다 당 내부 의견을 폭넓게 듣지 않는 등 ‘당내 민주주의’를 작동시키지 않은 것이 사태를 촉발한 1차적 원인이란 평가가 많다. 당 내부에 여러 정치적 의견 그룹(계파)이 존재한다는 현실을 고려하면, 누가 대표이든 간에 다양한 의견을 하나로 수렴하는 고통스러운 절차를 피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이를 간과했다는 얘기다. 그러다보니 이후 박 원내대표의 사퇴론이 제기된 과정에서 ‘당의 권력을 노린 계파들이 박영선을 내쫓아 죽이려고 한다’(박 원내대표 쪽)거나 ‘박 원내대표가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이번 사태를 계파 갈등 문제로 변질시켜 당내 민주주의 무시란 사태의 본질을 흐렸다’는 의심·불신·대립만 깊어졌다.
당 안에는 우선 박 원내대표가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의 사퇴 공백을 메우는 비상대책위원장까지 겸임할 때부터 이 상황이 예고된 것이란 시각이 있다. 강경한 새누리당을 상대로 협상하는 원내대표 직도 힘겨운데, 비대위원장으로서 당 혁신 작업까지 하는 것은 애초부터 큰 부담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년 초로 예상되는 차기 전당대회로 직행해 당권을 쥐려는 주자들이 임시 관리직 성격의 비대위원장을 선뜻 맡으려 하지 않고, 박 원내대표가 8월14일 “독배를 마시고 죽겠다”며 비대위원장 직을 수락하면서 당의 불행이 움텄다. 겸임을 처음부터 반대한 박기춘 전 원내대표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비상상황에서 원내대표를 하기에도 24시간이 모자란데 비대위원장까지 맡아 하루에 48시간 일을 하라고 한 것은 잘못됐다”고 말했다. 당을 이끈 경험이 없던 박 원내대표의 정치적 역량이 감당하기엔 ‘임시 당대표’(비대위원장)란 자리가 과중했다는 얘기도 있다. 박 원내대표를 돕는 측근도 비슷한 의견을 냈다.
“박 원내대표를 향한 비판 중 그래도 수용할 수 있는 것은 비대위원장까지 맡기에는 (역량이) 미흡했다는 지적이다. 원내대표도 처음 경험하는 것인데 비대위원장은 너무 넘치는 자리였다. 그러다보니 버거웠고,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박 원내대표의 대중적 인기를 떠받친 ‘강한 야성과 소신’의 또 다른 면모인 ‘자기 확신과 고집’이 좋지 않은 쪽으로 발현된 경우라는 평가도 뒤따른다.
원내대표와 비대위원장까지 모두 쥔 박 원내대표의 막강한 권력이 폐쇄적으로 작동했다고 비판받는 지점이, 여당과의 세월호 특별법 1·2차 합의와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을 도운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의 비대위원장 영입 파동이다. 박 원내대표의 대중적 인기를 떠받친 ‘강한 야성과 소신’의 또 다른 면모인 ‘자기 확신과 고집’이 좋지 않은 쪽으로 발현된 경우라는 평가가 뒤따른다. 이번에 대중에게 각인된 부정적 이미지가 정치인으로서 상승세를 타던 그에게 치명적 오점으로 남을 것이란 전망도 있다. 물론 박 원내대표 쪽에선 “특별법 2차 합의, 이상돈 교수 영입 과정에서 몇몇 계파 수장들과 공유했다”며 독단적 결단으로 모는 것은 억울하다고 항변한다. 보안이 요구되는 협상과 인물 영입 과정에서 광범위하게 당내 의견을 묻는 것도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언론에서 지도부를 흔드는 강경파로 분류하지 않는 의원들 사이에서도 소통 부재에 대한 아쉬움이 나온다.
독단·음해 속 무너진 당내 민주주의전병헌 원내대표 체제에서 원내수석부대표를 지낸 정성호 의원은 “지난해 말 (원내대표단이 여당과 가합의한) 외국인투자촉진법 처리에 대해 당시 박영선 의원이 강하게 반대해 (최종 합의하기 전에) 장시간 의원총회를 했던 경험이 있다. 세월호 특별법 협상 같은 중요한 문제도 여당과 최종 합의에 사인하기 전에 유족들과 다시 의논하고 의총에서 의원들 뜻도 물어보는 절차를 거쳤어야 했다”고 말했다. 2012년 대통령 선거 직후 원내대표를 맡았던 박기춘 의원도 2013년 1월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을 선출한 과정을 떠올렸다.
“그때 열흘 정도 초선, 재선, 3선, 중진, 상임고문단, 전직 원내대표, 시도당위원장, 원외 인사 등을 두루 만났다. 이들의 의견을 묻고 2명을 위원장 후보로 압축한 뒤 국회의원·당무위원 연석회의를 열어 문희상 비대위원장을 만장일치로 합의 추대했다.”
하지만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 햇볕정책’을 비판했던 이상돈 교수를 당의 얼굴인 비대위원장으로 영입할 때는 더 폭넓은 의견 수렴이 필요했는데도, 이를 소홀히 했다는 지적이 당내에 많았다. 박수현 당 대변인은 “이상돈 교수의 비대위원장 영입(설) 보도가 나왔을 때, 주요 당직자들도 이 교수의 영입 시도를 알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상돈 영입’ 과정에서도 박 원내대표의 소통 부재가 도드라지자 계파를 초월한 3선 이상 중진 모임에서도 ‘박영선 사퇴론’이 나왔다. 3선인 이상민 의원은 “대외 협상도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어려우면서도 중요한 것이 (당 내부를 설득하는) ‘대내 협상’이다. 이번 사태는 여러 계파들의 충돌 때문에 빚어졌다기보다 박 원내대표가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유능함이 부족했던 결과다”라고 말했다. 여러 세력이 공존하는 당에선 더더욱 당내 민주주의 복원이 시급하다는 얘기다.
당내에선 지도부 방침에 대한 반대 의견을 무조건 지도부를 흔드는 반발로 규정짓는 당 안팎의 ‘계파 분열적 프레임’도 잘못됐지만, ‘박영선 리더십 위기’를 틈타 새 권력을 쥐려는 일부 계파들 사이의 신경전과 감정적 음해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다른 당직자는 “‘계파의 수장’들도 당을 수습하고 안정시키는 노력과 책임을 보여주지 못했고, 일부 의원들은 과도하게 지도부를 흔든 호기로 활용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박 원내대표가 세월호 협상과 당 상황을 곤경에 빠뜨린 책임이 크지만, 동료 의원들도 당의 정치적 자산이던 인물(박영선)의 명분 있는 퇴각을 열어주지 못한 채 너무 몰아세웠다는 목소리도 있다.
문희상 비대위원장, 혁신 이미지 부족박 원내대표가 ‘탈당 검토’라는 돌출 강수를 두면서 더 깊은 수렁에 빠졌던 새정치연합은 ‘문희상 비대위원장 체제’를 새롭게 가동했다. 문 위원장은 당의 기본 조직망인 전국 지역위원장을 선임하고, 당의 의사결정 기구인 당무위원회·중앙위원회를 꾸려야 한다. 그간 새정치연합은 핵심 조직(지역위원장)과 의사결정 기구 모두 구성되지 않은 정당이었다는 얘기다. 특히 문 위원장은 향후 지역위원장 선임 과정에서 ‘자기 사람’을 많이 심으려는 계파들의 이해관계가 당의 갈등과 분열로 재현되지 않도록 할 책임을 안고 있다. 그는 차기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를 뽑는 ‘게임의 룰’이 특정 세력에 유리하지 않도록 공정하게 관리해 당의 분란도 막아야 한다. 하지만 당 안팎에선 문 위원장이 비상시국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는 있어도, 당 혁신 이미지까지 대중에 전달하는 개혁적 위원장으로 나아가진 못할 것이란 우려도 있다. 한 중진 의원은 절망 속에 숨은 희망을 찾으려 애썼다. “우린 더 망가져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위기를 더 사무치게 느껴야 한다. 오히려 이렇게 당이 망가지는 것을 보면서, 다시 처음부터 잘해보라는 하늘의 뜻이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하기로 했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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