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척척척….
7월14일 점심 무렵 평밭마을(경남 밀양시 부북면 대항리)로 경찰들이 대열을 맞춰 올라갔다. 마을 입구 사랑방(송전탑 반대 새 농성장) 창밖으로 땅을 때리는 군홧발 소리가 들렸다. 주민들은 여전히 익숙해지지 못한 듯 날카로운 반응을 보였다. 함께 밥을 먹던 연대 활동가 한 명은 “체할 것 같다”면서 수저를 내려놓았다. 6월11일 농성장 강제 철거 뒤 국가는 마을 안으로 눈치 보지 않고 진입했다.
<font size="3"><font color="#006699">이사온 주민에게 땅 반절을 임대했는데…</font></font>경찰들의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마을 안 식당이었다. 평밭마을은 화악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다. 행정대집행 전까지 경찰들은 산 아래에서 도시락이나 이동식 밥차를 이용해 끼니를 해결했다. 마을 입구에 농성장이 있었기 때문에 마을로는 올라갈 수 없었다. 농성장을 철거한 뒤론 마을 깊숙이 들어와 식당 밥을 먹기 시작했다. 산 아래에서 다른 마을의 경계를 서는 경찰들까지 식사 시간이면 버스를 타고 마을로 올라왔다. 그 모습을 보면서 주민들은 “원수에게 밥을 줘야 한다”면서 분통을 터뜨렸다.
이남우(72) 할아버지와 한옥순(67) 할머니 부부는 특히 속이 쓰리다. 경찰들이 이용하는 식당 두 곳 중 하나가 부부의 소유지에 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지난해 4월 밀양 시내에서 이사온 주민에게 땅 반절을 임대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세입자는 한국전력 쪽에 찬성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행정대집행 뒤부터 경찰들을 상대로 밥을 팔았다.
이남우 할아버지는 송전탑 반대 부북면주민대책위원장이다. 경찰들이 식당에 가려면 그의 집 앞마당을 가로질러야 한다. 두 줄로 열을 맞춘 경찰 십수 명이 마당을 지나가면 부부가 키우는 개가 사납게 짖는다. 경찰들은 아랑곳 않고 식당에 들어가 밥을 먹는다. 식사를 마친 경찰들은 식당 마당에서 담배를 피우며 담소를 나누기도 한다. 부부의 집 마루에서 1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한 무리가 떠나면 다른 무리가 교대한다. 교대는 다섯 번쯤 반복된다. 한 경찰이 말했다.
“근무를 서면 급식비가 나온다. 이전까지는 도시락만 먹었는데, (행정대집행 뒤) 여기 식당을 잡을 수 있어서 이리로 (전경들을) 데려와 밥을 먹인다. 농성하는 주민들 때문에 식당 주인이 불편해하더라.”
밥을 먹는다는 것은 삶을 잇는 가장 일상적인 행위다. 마을 한가운데서 경찰이 밥을 먹기 시작할 때부터 국가권력은 마을의 일상까지 비집고 들어왔다.
이남우 할아버지는 “이리도 못하고 저리도 못하고 진퇴양난”이라고 했다. 경찰에겐 밥을 팔지 말라고 세입자에게 얘기도 해봤지만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는 대답을 돌려받았다. 2년 계약한 까닭에 내년 4월까지는 참고 견디는 수밖에 없다.
<font size="3"><font color="#006699">열리지 않는 문이 되어버린 길</font></font>마을을 품은 화악산의 두 봉우리는 어머니 젖가슴을 닮았다. 마을 주민들에게 산은 어머니이자, 삶의 터전이며, 아픈 몸을 달래준 고마운 존재다. 마을 최고령 남성인 김길곤(83) 할아버지는 산의 ‘효험’을 자랑스럽게 말했다.
“내는 뇌졸중이었다. 원래 걷도 몬했고 말도 몬했다. 지금은 딴 사람이 봤을 때는 (아픈 줄도) 모른다꼬. 그만큼 여(여기)가 좋은 데라.”
밀양의 긴 싸움이 시작된 뒤부터 산은 전쟁터로 변했다. 송전탑을 세우려는 이들과 막으려는 주민들의 싸움, 진압하는 국가권력의 폭력은 어느새 밀양을 대표하는 풍경이 됐다. 무지막지한 물리력 앞에서 주민들은 자신들이 만든 농성장에서 끌려나갈 수밖에 없었다.
경찰 3천여 명이 투입됐던 행정대집행 이후 주민들은 산과 삶의 터전을 빼앗겼다. 보금자리를 지키기 위해 싸웠던 평밭마을의 할머니·할아버지들은 이젠 경찰의 감시를 받으며 살아간다. 행정대집행을 기점으로 산을 점령한 경찰과 한전이 오랫동안 산을 가꾸며 지켜온 할머니·할아버지들을 감시하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평밭마을 앞을 지키던 경찰은 ‘수상해 보이는’ 사람을 볼 때면 불심검문을 했다. 6·11 뒤 경찰은 129번 공사현장 앞에 초소를 세웠다. 사실상 마을 입구다. 마을의 이름을 알리던 표지석은 이젠 경찰들이 무전기를 올려놓는 용도로 전락했다.
128번 공사현장으로 뻗은 길도 경계가 삼엄하기는 마찬가지다. 비가 쏟아지는 날이나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캄캄한 밤에도, 경찰 10여 명은 그 길목을 단단하게 지키고 있다.
“야 저거 막아. 막아, 막으라고!”
주민들이 공사장으로 몇 걸음 옮기려 할 때마다 경찰들은 다급하게 방패를 들고 길을 막아섰다. 동시에 무전기로 ‘상황’을 보고했다. 경찰들의 초소에서 중대의 책임자로 보이는 사람이 내려와 추궁했다.
“어디 가시는 길입니꺼. 여기는 공사장 가는 길밖에 없는데예.”
길은 문이 되어버렸다. 평밭마을 주민들과 마을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열리지 않는 문이다. 공사 자재를 실은 트럭만은 검문 없이 유유히 문을 통과한다. 산길의 주인도 더 이상 주민이 아니었다. 바깥세상과 평밭마을을 잇는 임도는 차 한 대가 겨우 지날 수 있을 정도로 좁다. 주민들이 이용하던 한적한 길을 거대한 레미콘 차량과 공사 자재를 가득 실은 트럭들이 점령했다. 레미콘 차량과 주민들의 차가 마주치면 경찰과 한전 직원들은 주민들을 향해 손을 휘적휘적 젓는다. 레미콘이 지나가도록 길을 내주라는 수신호다.
<font size="3"><font color="#006699">“철탑, 마음에는 영원히 몬 박지”</font></font>7월14일 할머니들은 공사현장 인근 언덕 위로 달려가 대자로 누워버렸다. 레미콘 차량이 오르는 길목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한옥순 할머니는 아예 차 밑에 드러누웠다. 경찰들이 몰려와 할머니들을 끌어내기 시작했다. 완강히 저항했지만 할머니들은 장정들을 당하지 못했다. 한 할머니는 지쳐 쓰러지기도 했다. 대치를 멈추고 대화를 하자는 이남우 할아버지의 요청에 한전 직원은 “니가 와서 말해라. 왜 나보고 오라고 하냐”고 답했다. 권력의 언어였다.
경찰이 일상적으로 농성장 앞을 지나다니는 장면도 주민들에게는 ‘트라우마’로 남는다. 행정대집행 이후 트라우마는 더욱 심해졌다. 김길곤 할아버지는 ‘그날’을 회상하며 치를 떨었다. “할매들 다 해봤자 열 몇밖에 안 됐거든. 그런데 경찰이 3천 명을 투입했단 말이제. 할매들 죄다 쇠사슬을 목에 매믄서 안 끌리나갈라꼬 버티는데….” 주민들이 경찰을 볼 때마다 떠올리는 이미지는 연행, 철거, 사바키칼(본래 발골용 칼인데 경찰이 행정대집행 때 천막 찢는 데 사용했다고 주민들은 증언) 같은 것들이다.
모든 건설 부지에서 철탑이 올라가면서 공사를 막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긴장의 밀도는 더 높아졌는지 모른다. 송전탑 반대 주민들은 싸움을 포기할 수 없다고 말한다. 6·11 이전과는 다짐의 결이 다르다. 그들의 말엔 ‘죽음까지 각오하겠다’는 절박함이 서려 있다.
“(우리) 힘이라는 것이 한계가 있잖아. 방법이 어데 있노. 경찰이 지키는 철탑 공사현장으로 요이똥 달려가서 그 앞에서 할복자살하든지 음독자살하든지 하는 수밖에 없잖아. (이젠) 그거밖에 엄써. 그래도 우리 마음에는 철탑 몬 박지. 마음에는 영원히 몬 박아.”
박성환 연세대 기자·김펄프 중앙대 기자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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