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의 사진이 있다. 6월11일 경남 밀양 송전탑 반대 농성장 행정대집행 장면을 담았다. 목에 쇠사슬을 감은 알몸의 할머니가 남녀 경찰들의 팔뚝에 짓눌리고 있다. 국가의 압도적인 힘 앞에서 힘없는 할머니가 할 수 있는 저항은 옷을 벗고 쇠사슬로 스스로를 묶는 것뿐이었다. 농성 천막을 찢는 데 동원된 경찰의 칼은 6·11을 떠올리는 주민들에게 지워지지 않을 충격을 남겼다. 국가의 완력에 끌려나간 평밭마을 한옥순(67) 할머니가 농활 온 대학생 기자에게 ‘그날’을 이야기했다.
<font color="#006699"><font size="3">날밖에 없는 칼로 천막을 찢고 </font></font>“할머니들 나오세요 나오세요, 라는 말 한 번이라도 듣고 당했으면 우리가 덜 억울할 낀데, 갱찰(경찰)은 한 번도 그런 소리 안 하고 기습을 했다칸께. 할머니들 6명이 굴을 파놓고 그 안에서 옷을 활딱 벗고 쇠사슬을 걸고 앉아 있었는데, 한 2천~3천 명이 갱고(경고)도 없이 기습을 해가지고 칼로 텐트를 완전히 찢으믄서 위협을 하니까…. 너무 가슴에 맺히고 억울하다. 그 칼이 뭐냐면 날밖에 엄따. 이리 예리한 그 칼을 꽉 쥐고 짜르는 순간 내가 갱찰 한 명을 잡았는데, ‘아, 내가 저 칼을 잡아서 내 목을 콱 찔러 죽고 싶다’ 그런 마음이었어. 갱찰 장골들 10명, 20명이 나를 딱 에워싸뿔고 팔을 몬 움직이게끔 급소를 잡는 기야. 그렇게 옷 벗은 채로 개 끌리드키 끌려나왔어.
(내가 옷을 벗은 건) 작년 5월21일이었제. 할매들이 헬기를 막고 있는 127번 움막에 합류할라 카는데 1시간을 설득해도 갱찰들이 길을 안 비켜주는 기라. 내가 그 자리에서 확 죽고 싶더라고. 그때부터 옷을 벗기 시작 안 했나. 증말로 남자들 앞에서 여자로서 옷을 벗어가꼬…. 나 태어날 때 발가벗고 나온 뒤로 목욕탕 아니믄 옷을 벗어본 적이 한 번도 엄따. 근데 그날부텀 내가 안 죽을라꼬, 살라꼬 옷을 벗은 기야. 그때는 고지를 점령해가꼬 이때까지 지키고 있었는데, 요번에는 갱찰이 엄청 많이 온 기라. 갱찰이 우리를 고착해가지고 숨도 못 쉬게 만들었다. 원체 많이 오니까 안 되겄더라고.
6월11일 저녁부텀은 일주일 동안을 갱찰이 새로 채린 요 농성장까지 점령을 해놨어. 온 마을을 군데군데 지키믄서 우리가 차를 타고 가믄 세워가 감시하고. 수배자들·살인자들 잡드키 왜 온 동네를 점령해가꼬 그러냐 말이지. 그래서 (부북면주민대책위) 위원장님(남편인 이남우 할아버지)하고 내하고 둘이 나가서 계속 싸우믄서 갱찰들 물리내서 지금 이만큼이라도 정화가 된 거다.
<font size="3"><font color="#006699">“우리가 총칼을 들었드나 사람을 죽있드나”</font></font>이런 세상은 엄따. 우리가 범죄자가. 어데 우리가 총칼을 들었드나 사람을 죽있드나. 우리는 당당하다. 단지 생존권을 지킬라꼬 하는 거뿐이다. (나라가) 우리를 죽일라 하기 따문에 안 죽을라꼬 발버둥치는 것밖에는 엄따. 나 경찰서도 가고 청와대도 가고 국회에도 여러 번 갔는데, 보니까 이 나라가 썩었다. 내 배 부르고 내 안 죽으믄 마 강 건너 불 보드끼 보는 거 아이가. 그렇기 따문에 이 나라가 이리 되는 기라. 할매는 9년 동안을 저거(송전탑) 막으면서 그거를 깨찼다.”
9년을 싸우며 ‘그거’를 깨달은 할머니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했다. 7월17일 서울로 올라가 국회에서 밀양 주민들의 피해 상황을 증언한 그는 이틀 만인 19일 다시 서울에서 열린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 집회에 참석했다. 7월21일 한국전력이 경북 청도군 각북면 삼평리 송전탑 공사를 재개한 직후에도 할머니는 현장에 있었다.
율이 중앙대 기자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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