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려는 부모는 이 나라 대한민국에선 목숨을 내걸어야 한다. 세월호 특별법 통과를 위해 거리로 나서 단식농성을 시작한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줄줄이 쓰러지고 있다. 7월17일 오후 3시께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농성하던 고 이창현군의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져 응급차에 실려간 데 이어, 인근에서 피켓시위 중이던 고 정차웅군의 어머니도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다. 건강한 몸으로도 버티기 어려운 단식농성이다. 90일 넘게 고통과 싸워온 이들에겐 더욱 그러할 수밖에 없다.
유족 화장실 출입도 막은 국회세월호 참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가족대책위)는 지난 7월14일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진상규명위원회를 내용으로 포함한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하라”고 촉구하며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고 유예은양의 아버지인 유경근 가족대책위 대변인 등 10명이 국회 앞에서 단식을 시작했고 고 김빛나라양의 아버지인 김병권 가족대책위원장 등 5명이 광화문광장으로 나섰다.
가족들이 가는 곳마다 다시 ‘팽목항’이고 ‘진도 실내체육관’이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 여러분들에 대한 진심 어린 애도를 표한다”는 애도문을 누리집에 내건 대한민국 국회는 가족들의 화장실 출입마저 막았다. 엄마들은 무리지어 들어가지 않는 한 화장실에 갈 수 있지만, 아빠들은 아예 건물 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폐회로텔레비전(CCTV)으로 지켜보며 “섣부른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
공권력의 무도함이 시민들의 합리적 분노를 막을 수는 없었다. 단식농성 이틀째에 접어든 7월15일 아침 ‘4·16 특별법 제정 촉구 청원’ 행사를 위해 시민 1500여 명이 서울 여의도로 모여들었다. 애초 예상한 1천 명을 훨씬 넘긴 수였다. 350만 국민의 서명을 나눠든 채 여의도공원에서 국회로 시민들이 행진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행렬이 이어졌다. 국회 본청에서 나오던 고급 승용차들이 시민들의 행렬을 뚫고 지나려 하자 여기저기서 분노가 터져나왔다. “저 사람들이 가만히 있게 해야죠. 비켜주지 마요.”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가득했다. 여야가 합의한 특별법 통과 시한인 7월16일을 하루 남겨둔 상황이었다.
7월16일, 경기도 안산에서 40여km를 걸어 세월호 생존자 학생들이 여의도 국회에 도착했다. 그 자신들을 위한 것인 동시에 잃어버린 친구의 부모님을 응원하기 위한 것이었다. 아이들이 떠나자 경찰이 다시 바리케이드를 친다. 유가족 중 누구도 국회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자 가족들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
“문을 열어라.” “잘못한 게 없으면 나와라.” 국회에 들어가려는 가족들과 경찰·국회방호처 직원들의 몸싸움이 벌어졌다. 어느 엄마의 손톱이 빠지고 누군가가 팔을 다쳤다. “도대체 왜 유가족을 못 들어오게 하는지 이해되지 않아요.” 어느 아버지가 분통을 터뜨렸다. “우리 여기 오래 있어야 하나봐요.” 또 다른 아버지가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시민사회 인사 13명 동조 단식가족들이 말한 대로였다. 여야는 7월16일 오후 5시부터 담판을 벌였지만 1시간30분에 걸친 논의 끝에 합의에 실패했다. 회기 마지막 날인 7월17일에도 국회의원들은 가족들의 하나뿐인 바람을 들어주지 못했다. 특별법 처리는 7월 임시국회로 또다시 미뤄졌다.
가족대책위는 특별법이 통과될 때까지 단식농성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조계종 노동위원회 도철 스님,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 등 시민사회 인사 13명도 7월18일 동조 단식을 시작했다. 이 여름, 다시 몇 명의 자식 잃은 부모가 거리에서 쓰러져나갈지 알 수 없다.
장슬기 인턴기자 kingka8789@hanmail.net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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